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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개츠비의 맨션으로_이머시브극 <위대한 개츠비>

개츠비의 맨션으로

 

이머시브극 <위대한 개츠비>의 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시공간을 벗어나게 만드는 무대의 마법에 동참하게 된다.
editor 김은아


 

 

이머시브 시어터(Immersive theater)는 간편하게 참여형 공연으로 번역되곤 한다그렇지만 이 단어는 요즘의 이머시브 극을 포괄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배우가 객석의 관객과 가위바위보를 한다거나관객을 잠시 무대에 올려 일종의 소품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머시브라기 보다는 이벤트라는 말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해 보이기 때문이다무대와 객석의 엄격한 구분이 진정한 의미에서 허물어진다는 의미에서 이머시브 극을 정의한다면 그 기준은 관객이 극의 주체가 될 수 있느냐의 여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등장한 시작점으로 꼽히는 것은 2011년 뉴욕에서 막을 올린 <슬립 노 모어>작품은 허름한 호텔을 개조해그 안의 100개의 객실을 각각의 무대로 삼고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공간에 맞게 펼쳐내는 무언극이다가면을 쓴 관객들은 자신의 의지대로 극장을 누비며, 100가지의 이야기 중 자신이 선택한(또는 선택된장면으로 이야기를 완성하게 된다관람이 아니라 체험을 선사하는 이 새로운 형식의 공연은 앞선 것을 기대하며 뉴욕을 찾는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이를 시작으로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각색한 <댄 쉬 펠>, 2020년 한국 초연 예정작이자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살롱에서 재현하는 <더 그레이트 코멧>까지 ‘웰 메이드로 꼽히는 이머시브 작품이 등장하며 공연계의 뚜렷한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2019한국에도 이머시브 시어터 <위대한 개츠비>가 한국에 상륙했다작품은 2015년 영국의 폐업한 술집에서 개막한 뒤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공연그러나 공연 소식에 반가움만큼이나 걱정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과연 이머시브 시어터가 한국 관객과 어우러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질문 있는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물음에 자신 있게 손을 들기보다는 나서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쳐다보기 바쁜, ‘쭈뼛쭈뼛의 나라 아니던가실제로 창작진이 작품 제작에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 중 하나도 어떻게 관객들의 마음을 열게 만들 것인가라는 화두였다이러한 고민의 흔적은 극장에서부터 느껴진다그레뱅 뮤지엄이라는공연장으로는 생소한 공간은 관객들이 개츠비 맨션으로 초대받았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관객들이 안내에 따라 들어서게 되는 곳은 메인 홀로주인공 개츠비가 주최하는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곳이자 등장인물들의 중심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곳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 개츠비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데이지와 톰 부부가난하지만 사랑을 위해 노력하는 머틀과 윌슨 부부 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청년 닉 캐러웨이는 이곳을 채운 관객 사이를 오가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전한다그야말로 손 대면 닿을 거리에서 대사를 읊는 배우들을 지켜보는 일은 예상했던 것보다 어색하지 않았다이는 한 명씩 눈을 맞추며 집중된 에너지를 보내는 배우들의 열정 덕분이다이 주문에 제대로 걸린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된 지 불과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자신이 개츠비 맨션에 초대받은 손님이라고 믿는 듯배우들의 애드립과 안부 인사에 스스럼없이 대답하고질문하고몸을 흔들기 시작했다그러나 관객이 이야기의 진정한 등장인물로 거듭나는 순간은 비밀의 방에 들어서는 순간이다메인 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시에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들은 몇몇 관객을 분리되어 있는 작은 공간으로 이끈다이곳에서는 개츠비와 데이지톰과 머틀 등 표면적인 관계 아래 숨겨진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공개되기도 하고고뇌에 찬 캐릭터의 독백을 들을 수도 있으며캐릭터의 조력자로서 고민에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기자가 찾은 공간에서는 데이지의 남편인 톰이 머틀과 불륜사이라는 것을 친구인 닉에게 처음 털어놓았다이렇듯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는 일들은 보지 않아도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그러나 이야기의 겹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사실이다숨겨진 이야기를 엿들은 다음에는 아름다움과 부사랑까지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데이지의 얼굴에 스치는 공허한 웃음과 불안함이 무엇 때문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이와 같은 체험을 거듭하며 관객은 제3자가 아니라 등장인물의 친구가 된다이야기는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처럼 파국으로 결말을 맺지만멀찍이 떨어진 객석에서 접할 때와는 분명 다른 깊이로 비극적인 파장을 남긴다.  



개츠비 맨션을 빠져나와 큰 길에 발을 내딛자마자 눈에 보이는 것은 현실을 단숨에 자각시키는 서울시청의 광장이다마치 나오는 밤새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흥으로 가득했던 파티를 즐기고다음날 약간의 숙취와 함께 텅 빈 집에서 눈을 떴을 때의 기분이랄까꿈이었을까 싶은 허망한 기분그것까지가 이머시브극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장면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