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언어_작가 크리스토퍼 햄튼
사랑의 언어
묵직하게 울림을 전하는 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이 말하는 뮤지컬 <드라큘라>.
editor 손정은 photographer 문겨레
1897년 브램 스토커가 써낸 소설 ‘드라큘라’는 이후 호러, 코미디, 멜로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수많은 버전으로 재해석되었다. 그중 브로드웨이에서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뮤지컬 <드라큘라>는 애절한 러브스토리에 집중했다. 여기에 프랭크 와일드혼의 드라마틱하면서도 서정적인 음악이 어우러져, 2001년 초연 이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공연되었다. 국내에서는 논레플리카(Non-Replica: 원작을 수정 및 각색해 국내 정서에 맞도록 재구성한 공연) 버전으로 선보이며 넘버를 추가하고 대본을 각색하는 등 한국 관객들이 조금 더 몰입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2014년 처음 무대에 오른 후 매 시즌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올해 한국 초연 10주년을 맞이했다.
10주년을 기념해 작가 크리스토퍼 햄튼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희곡부터 뮤지컬, 영화까지 폭넓게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그는 최근까지 영화 <더 파더><더 썬> 등의 각색을 맡으며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에게 <드라큘라>는 이미 오래전에 완성한 작품이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계속해서 작품을 향한 사랑을 보여주는 한국 관객들을 위해 다시 뮤지컬 <드라큘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개막 첫날 무대인사를 통해 한국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소감을 여쭤보고 싶어요.
굉장히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열정적인 관객들을 직접 만나게 되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한국은 첫 방문인데,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항상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에 처음 오게 되었는데, 너무 즐겁고 재밌는 경험을 하고 있어요. 일정이 길지는 않지만 <드라큘라> 공연도 관람하고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드라큘라>가 한국 공연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한국에서 초연될 당시, 이렇게 사랑받을 것이라 예상하셨나요.
평소에 작업할 때, 작품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는 잘 하지 않는 편이라서요. <드라큘라> 또한 그런 생각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되면, 항상 뜻밖의 선물을 얻은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특히 <드라큘라>처럼 한 작품이 오랫동안 공연되면, 제 삶에도 굉장히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 공연을 보셨다고 들었어요.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너무 좋았습니다. 요즘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굉장히 인정받고 있기에 영화는 많이 봐왔는데, 한국 배우들의 공연을 직접 본 건 처음이었거든요. 배우들의 연기에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2001년 초연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서 공연되고 있는 작품입니다. 각 나라의 프로덕션마다 차이가 있나요.
나라마다 공연계의 전통이나 역사가 다르기 때문에, 프로덕션의 방향에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브로드웨이부터 독일, 영국, 한국 등 각기 다른 면이 있어요. 예를 들자면 독일은 공연 예술에 대해 ‘연출의 예술’이라고 부를 정도로 작가의 의도보다는 연출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이 큰 편입니다. 반면에 한국 프로덕션은 오페라적인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나 캐릭터의 감정이 더 부각되기 때문일까요?
말씀하신 부분들이 한국 프로덕션의 공연에서는 특히 더 잘 보입니다. 감정적인 표현이 확실하고, 배우들의 에너지도 강렬하고요.
드라큘라 이야기는 원작을 바탕으로 코미디, 호러 등 다양한 장르로 재탄생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작가님의 <드라큘라>는 서정적인 면이 강하다고 느껴져요.
작업할 때 그 부분을 의도했습니다. 원작인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 가장 가깝게 각색하고 싶었거든요.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처음 봤을 때 너무나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에, 소설이 가지고 있는 면에 최대한 집중해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서정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쓰신 작품이긴 하지만, 작업하던 당시의 과정에 대해 듣고 싶어요.
극작과 작사는 워낙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작사가인 돈 블랙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란히 앉아서 가사와 대사를 쓰며 같이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과는 <드라큘라>가 첫 작업이었어요. 이전에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작업을 해본 적이 있긴 했지만, 작곡가들은 저마다의 방식이 있거든요. 프랭크 와일드혼은 작가들이 제안한 아이디어에 굉장히 빠르게 반응하는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을 듣고 가사 작업을 하는 건 돈 블랙과 저에게 굉장히 즐거운 일이었어요.
그 결과 이야기와 꼭 들어맞는 음악이 탄생했네요.
<드라큘라>의 음악은 너무 아름답고 완벽합니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굉장히 유연한 작업 스타일을 가지고 있고, 정말 좋은 파트너라고 느꼈어요. <드라큘라> 이후에 작사가인 돈 블랙과는 뮤지컬 <보니앤클라이드>를 같이 작업하기도 했고요. 그만큼 서로 호흡이 잘 맞았습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에요. 최근 영화 <더 썬><더 파더> 등 여러 작품에서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담아내고 계시기도 해서,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정의가 궁금합니다.
고대 그리스 언어에는 사랑을 표현하는 단어가 매우 많잖아요. 그만큼 사랑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모두가 사랑을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저 또한 지금까지 많은 작품에서 사랑에 대해 다뤄왔는데요. 서로 다른 종류의 사랑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뮤지컬이나 희곡뿐만 아니라 영화 작업도 하고 계십니다. 작업할 때 느끼는 장르별 차이가 있나요.
공연은 매일 밤 무대에 오를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느낌이라면, 영화는 완성이 되는 것과 동시에 하나의 작품으로 남게 됩니다. 영화 대본을 쓰는 것도 굉장히 좋아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는 대본을 다 쓰고 나면 영화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가 없는데요. 공연은 대본을 한 번 다 완성한 이후로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즐거운 작업이 되기도 합니다. 굉장히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평소에 어디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일단 <드라큘라>의 경우에는 원작 소설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새롭게 탄생시킨다는 자체가 굉장히 즐겁고 영광스러웠어요. 이외에도 줄리아 로버츠가 함께했던 영화 <메리 라일리>는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소재로 한 작품이었고요. 이런 고딕 정서의 작품에 많은 매력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애드거 앨런 포도 마찬가지고요.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작품에 함께하는 건 정말 즐거운 작업이에요.
어릴 때 좋아했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한국에서는 ‘성덕(성공한 덕후)’이라고 부르곤 해요.
사실 브로드웨이에서 작품을 올린다는 것이 많은 부담이 되는 작업이고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요. 좋아했던 작품이라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아끼는 캐릭터를 하나 뽑는다면 누구를 고르시겠어요?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반 헬싱처럼 의로운 캐릭터를 골라야 할 것 같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대부분의 관객들이 드라큘라를 응원하게 되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금지된 것에 대한 끌림과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어두운 면에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사연 많고 어두운 캐릭터들이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하죠. 관객에게도, 창작자에게도요.
작가들끼리 하는 말 중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행복에 관해서 쓰려고 하면 백지만 남는다고요. 대신 인간의 어두운 면에 대해 파고들면 더 흥미롭고, 결과적으로 많은 것들을 써낼 수 있게 되죠.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도 그런 면에 더 깊게 파고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에 대한 영화를 쓰기도 했을 만큼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 작품이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이 연출한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였어요.
기존에는 드라큘라 역 배우들의 연령대가 지금보다 높았다고 들었어요. 한국 공연에서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 후, 해외의 프로덕션에서도 나이대가 낮아졌다고요.
제가 직접 그 과정에 참여했던 건 아니지만, 프랭크 와일드혼 작곡가를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연령대가 낮아지고 영상으로 봤었는데, 이 스토리를 전하기에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드라큘라라는 캐릭터와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라고 느꼈습니다.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작가님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예술은 다양한 방법과 장르를 통해 진실을 찾아나가는 여정인 것 같아요. 예술은 진실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니, 사실 거짓이라고 볼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는 역설적인 면이 있어요. 픽션의 역설이랄까요. <드라큘라>도 강력한 은유로 무대에 표현하지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진정한 가치와 정서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그러한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에,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야기도 여전히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나 봐요.
맞아요. 작품이 품고 있는 본질이 뚜렷하기 때문에 100년이 넘은 드라큘라 이야기가 여전히 매혹적인 거죠. 관객들이 끊임없이 내재된 의미를 발견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드라큘라>를 사랑해 주시는 관객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처음으로 한국 관객분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열정적인 관객분들 만나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저희 작품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관객분들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는 메시지를 찾아주셨기 때문이에요. 강력한 힘이 있는 이야기고, 오락적으로도 재밌는 작품이니 앞으로도 많이 아껴주세요.
뮤지컬 <드라큘라>
기간 2023년 12월 6일-2024년 3월 3일
시간 화·목·금 19:30 | 수 14:30 19:30 | 토·일·공휴일 14:00 19:00
장소 샤롯데씨어터
가격 VIP석 17만원 | R석 14만원 | S석 11만원 | A석 8만원
문의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