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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삶의 물결 앞에서_코끼리들이 웃는다 <물질>

삶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섬처럼 떨어져 있을지라도 같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다.” 
커뮤니티와 장소가 지닌 이야기를 결합해 이머시브 공연을 만들어온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이진엽 연출은 그동안 청계천과 안산 다문화 거리 노동자, 다문화 가족, 난민, 독산동 중국 교포, 재봉 노동자 등 다양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왔다. 2016년 안산 난민 커뮤니티와 초연한 <물질> 역시 제주도 해녀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무대(혹은 실외 공연장) 한 가운데 놓인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배우(와 관객)이 몸을 담근다. 턱 밑까지 차오른 물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 속은 엄마 품처럼 편안할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울까. 서울을 거쳐 창원, 고양, 광주에서 재공연 중인 이진엽 연출이 작품을 통해 관객과 나누고 싶은 메시지를 전해왔다. 
editor 이민정


극단 이름이 독특합니다. 
영국에서 유학한 직후, 한국에 돌아와 단체 이름을 짓는데, 사람들이 이름을 부를 때 노래를 부르는 느낌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어로 엘리펀츠 라프(ELEPHANTS LAUGH)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한국어로 직역을 했더니 ‘코끼리들이 웃는다’가 되었어요. 지금은 한국어의 강한 느낌이 더 마음에 듭니다. 

제주 해녀들의 삶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진 <물질>이 세종문화회관 ‘싱크넥스트 23’에 이어, 창원, 고양, 광주까지 이어집니다. 이미 실외공연으로, 영상전시로도 시도된 적이 있는데 지역마다 서사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까요. 
해외 투어를 하면서 각 지역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소통하며 공연을 올렸어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들도 저도 한국의 다양한 커뮤니티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번 지역 투어를 준비하게 되었고, 다양한 지역의 커뮤니티와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공연의 구성이나 내용은 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지역마다의 커뮤니티를 만나면서 공연의 주제와 등장 인물들을 이야기하고, 그들 각자의 역할과 움직임을 찾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양에서는 학교 밖 청소년을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모집하고 있고, 창원에서는 이주 여성들 그리고 광주에서는 우크라이나 피난민들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종종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되는 공연을 만날 때면 (무대로 나오라고 할까봐) 덜컥 겁이 납니다. 이 작품에서 관객이 꼭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웃음) 관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극장에 오시는 것입니다. 극장에 오신 후에는 편안하게 관람하시면 됩니다. 관객의 참여는 각자의 선택이기 때문이죠. 몰입이 잘되어 이끌려 갈 수도 있고 한걸음 물러서 있을 수도 있고요. 저희는 관객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구성했어요. 공연 초반 네 명의 인물(배우)의 일상과 ‘물질’ 움직임을 보여주고, 이후 인물과 커뮤니티가 수조에 함께 머뭅니다. 배우는 수조에서 나와 관객을 이끌고, 마지막으로 관객은 수조로 들어가 커뮤니티와 만나게 되죠. 

관객 참여가 적극적이지 않을 때를 대비한 플랜 B도 있는 걸까요. 
<물질> 첫 공연을 올릴 때는 배우들의 제안으로 객석에 자원활동가분들을 배치하여 관객이 참여하지 않으면 그분들을 참여시키려고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딱 한 번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관객 모두가 참여했습니다! 관객은 기꺼이, 옷이 다 젖음에도 불구하고, 수조로 들어가 커뮤니티와 머무르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왔어요. 관람하는 관람하는 분들은 공연이 끝났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아요. 수조 안에 있는 관객과 커뮤니티가 수조 밖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창작자로서 이러한 관객들의 몰입과 참여는 상상하지도 못한 감동의 순간입니다. 커뮤니티와 참여한 관객이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낸 용기, 그 순간 보이지 않는 연대의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요. 혹여 관객이 참여를 원하지 않을 경우 관객의 빈자리를 그대로 가지고 갈 계획입니다. 

<물질>에는 4개의 수조가 등장합니다. 물이 가득 담긴 수조를 무대 위로 올려놓으실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요.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어느 제주도 해녀의 인터뷰 중에 ‘죽기 위해 들어가 살아서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조를 만들어서 비극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하지만 비극을 생각하다 보니 힘을 내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연 중에 나오는 ‘우리는 섬처럼 떨어져 있을지라도 같은 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다’라는 문장이 관객과 나누고 싶은 가장 큰 이야기입니다. 

극단의 작업을 ‘장소 특정형, 커뮤니티, 관객 참여’의 세 가지 요소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언제부터 ‘코끼리들이 웃는다’는 이러한 성격의 단체가 되었나요.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극장을 찾지 않는 관객을 만나고 싶었어요. 극장을 찾는 사람은 제가 아니더라도 많은 공연이 있으니까요. 그들이 살아가는 곳에서 공연을 만들어 그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오직 그 곳에서 할 수 있는, 그 곳에 살아가는 사람들과 장소에 초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 <물질>은 조금 다른 경우예요. 처음으로 무대(수조)와 조명을 사용했어요. 그래서 빈 공간 어디서든 가능한 공연입니다. 그래서인지 국내외 투어를 많이 한 공연이기도 하죠. <물질>은 장소성보다는 ‘커뮤니티’와 ‘관객 참여’에 중점을 둔 작업입니다.

이 작품은 물론 <동네박물관 시리즈>, <몸의 윤리>, <커뮤니티 대소동> 등을 보면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초창기 작업으로 청계천에서 10여 년 넘게 작업했고 안산에 위치한 경기도미술관의 상주단체를 하는 동안 다문화거리 일대와 안산시민시장에서 작업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다양한 커뮤니티들과 자연스럽게 만났던 것이 그 시작이었죠. 그리고 집이 경복궁역 근처입니다. 맹학교가 있어서 시각장애인분들을 길에서 자주 마주치곤 하는데, 그들의 일상이 제 일상과 겹쳐지면서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알게 되었어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제 일상에서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고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공연에 담고자 합니다.

요즘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어르신들에게 관심이 많습니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나이 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이듦’에 대한 작업을 하고 싶어졌어요. 

초창기 작품과 15년 정도 지난 지금의 작품을 비교했을 때 ‘커뮤니티’에 대한 시선이나 표현 방식, 다른 감각의 활용에 있어서 진화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처음 청계천에서 작업했을 때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어요. 어떠한 시선으로 청계천의 재개발과 노동자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이 정도로 모르는데 공연을 만들 수 있는지, 많은 혼란과 어려움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제 안에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제가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뚜렷한 의견이나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급하지 않게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여전히 불쑥 튀어오르는 제 안에 숨겨진 선입견과 편견들 때문에 괴롭기도 합니다. 지금은 스스로를 덜 다그치고 바꿔가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어요. 

관객참여형 공연을 접하다 보면 미학적인 관점, 미장센 등은 어떤 측면에서 봐야할까 생각하게 됩니다.
초반에는 배우들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지금은 배우가 방아쇠의 역할을 해주고 커뮤니티와 관객 혹은 관객과 관객이 서로 힘이 되어 참여할 수 있는 동력을 제공해준 뒤 거울이 되어주는 요소를 만들려고 합니다. 관객참여형 공연의 미학적인 관점은 관객의 참여로 공연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배우들도 예상할 수 없는 관객들의 참여로 매일 설레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합니다. 배우들과 관객, 관객과 또다른 관객이 에너지를 주고 받으며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죠. <커뮤니티 대소동> 공연을 할 때 시각장애인 커뮤니티들이 “공연하는 게 너무 재밌다”고 하셨어요. 오늘은 또 어떤 관객들이 올까 예상하기가 어려워서 재밌다고요. 

앞으로 ‘코끼리들이 웃는다’를 통해 관객들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살아가는 재미를 이야기 할 것 같아요. 여기서 ‘재미’라는 것이 꼭 긍정적인 것을 의미하지만은 않습니다. 살아가면서 제가 느끼는 혹은 필요한 것들을 나누고 싶어요. 아직까지는 계속해서 나누고 싶은 것들이 떠올라요. 전과 달리, 지금은 하나의 작업을 할 때 긴 시간을 두고 작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제 머릿속에 기다리고 있는 작업이 많지만 서두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연출님이 원하는 혹은 꿈꾸는 세상이 궁금해졌습니다. 
아직까지 제가 원하는 세상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세상까지는 아니지만 작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함께 하게 되었죠. 소규모로 작업할 때만큼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지 못하더라구요. 그래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존중 받을 수 있는 작업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ATTENTION, PLEASE
코끼리들이 웃는다 <물질>
기간 2023년 9월 1일-3일(고양)
장소 고양 새라새 극장(실내공연)
문의 1577-7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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