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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하고 유대하라_서울남산국악당 <2022 남산초이스> 국악인 황민왕

소통하고 유대하라

국악인 황민왕은 무속예술을 통해 공동체의 연결이 가지는 힘을 보여주고자 한다.
editor 조은화 photographer 문겨레


서울남산국악당에서 <2022 남산초이스>가 공연된다. 강민수, 방지원, 황민왕 세 사람이 각기 다른 지역의 굿을 무대로 올려 무속예술의 앞날을 제시하고, 굿의 미학적인 요소를 선보일 예정. 2022년 마지막 날의 굿판을 이끌 연주자는 황민왕이다. <남산초이스 : 황민왕의 별신>이라는 제목으로 무대를 준비하는 그는 무형문화재 남해안별신굿의 이수자다. 황민왕만의 방법으로 특별히 신을 모시며, ‘개인’의 사정을 모두가 함께 듣고 살피며 ‘우리’가 되기를 바라는 무대를 준비했다. 전통을 이어 나가는 예술가로, 굿판의 연희자로 존재하는 황민왕이 우리가 원하는 소망을 하나로 모아 기도를 올린다.

이번 겨울에 <황민왕의 별신>을 공연하게 됐습니다.
제가 국악을 처음 시작하며 배웠던 남해안별신굿을 선보이는 자리예요. 때마침 연말이니 여러분들에게 안녕과 평화를 빌어주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해안별신굿 중에서도 선왕굿이라는 한 거리(굿의 절차를 세는 단위)를 한 후 공연의 일부는 무속음악을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곡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많은 공연들 중에서도 <남산초이스>를 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산국악당이라는 공연장에서 특정 아티스트를 선정해서 기획 공연으로 선보인다는 건 극장이 보증을 선다는 뜻 아닐까요. 돈을 내고 관람하러 오시는 분들이 공연의 퀄리티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티스트로서 저의 레퍼토리가 선정되어 공연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반갑고, 영광스럽기도 해요.

이번 는 강민수, 방지원 님과 함께 합니다.
학교 선배인 강민수 형님은 국가무형문화재 ‘진도다시래기’ 예능보유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연희자예요. 형님이 준비한 진도씻김굿은 예인 집안에서 태어난 ‘개비’의 예술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는 공연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방지원 씨는 저희 사이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4번 타자’라고 불려요. (웃음) 굿판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사람들의 세대가 바뀌면서 다음 세대는 어떨까 궁금했는데, 무서울 만큼 미래가 밝다고 느낄 수 있었던 계기가 방지원 씨일 거예요. 능력도 탁월하고, 굿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식과 자기 작품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대단히 작가적인 시간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처음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무속예술을 시작하셨어요. 전공을 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당시 서울에서 사물놀이로 활동하던 선배님들이 여름, 겨울마다 찾아와서 후배들을 가르쳐 주셨거든요. 그때 선배님들이 대회에서 1등을 하고 동남아 순회 공연을 갔다 와서 ‘어제 비행기 타고 들어와서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저거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순식간에 전공으로 마음먹을 정도면 대범하신 편인가 봐요.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그런 면이 있는데, 지금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때 하숙을 하고 있어서 옆에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거든요. (웃음)

지금도 무속예술을 하며 행복하신가요.
동남아 순회 공연이 멋있어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외공연을 다녀보니 굳이 그 생각은 하지 않았어도 되겠다 싶은… (웃음) 행복해요. 제가 딸이 둘 있는데, 주변 선후배들은 자녀들에게 절대 국악을 시키지 않겠다고 말해요. 저는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재밌고 행복한 걸 왜 시키지 않으려고 하지? 라는 마음이에요.

2016년부터 ‘이음굿 프로젝트’를 해오셨습니다. 굿의 형태를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앙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그것을 배제할 수는 없을 거예요. 예술적인 시선으로만 본다면 우리 음악의 큰 뿌리 중 하나라는 이유 때문이죠. 서양음악이 기독교 음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처럼요. 근본을 잊지 않고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모든 축제를 굿이라고 불렀어요. ‘난리굿’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세요. 풍물놀이를 해도 굿이라고 불렀고, 사람들이 모여 노래만 불러도 굿이 벌어졌나 보다 하고 말했죠. 사람들이 모여서 북적거리는 현상은 언제나 필요하다고 보는데, 그것을 우리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굿이라고 생각해요.

굿은 신앙적인 인상이 강한데, 이번 공연을 통해 굿에 대한 편견을 해소할 수 있을까요.
누군가 죽어서 굿을 하면 죽은 이의 극락왕생을 비는 거라고들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이유예요. 굿은 남아있는 사람을 위한 거예요. 잘 갔을 거라고 믿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 소망들이 체계화되고 광범위해지면 신앙이 돼요. 굿의 장점이자 단점은 익명성이 없다는 건데, 옛날에는 누군가 굿을 하는 이유, 굿이 끝난 후의 결과까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었어요. 공개적으로 하니까요. 공동체에서 굿의 역할은 서로가 서로의 사정을 살피는 것입니다. 지금은 철저히 익명화 되어 있죠. 얼마 전 벌어진 참사처럼 모든 이들이 공감하며 마음 써야 하는 큰 사건들은 끊임없이 벌어지는데, 개인의 힘만으로는 헤쳐 나가기 쉽지 않잖아요. 개인이 우리가 되는 순간이 필요하고, 굿이 오늘날 가장 필요한 방법이 되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별신을 통해 무엇을 기도하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서로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알 수만 있어도 외로움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혼자만의 고민이라고 생각하면 이상해 보이고, 병이 되는 사회잖아요.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라는 메시지를 통해 위로받고 배려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개인’보다는 ‘우리’가 더 든든하고 푸근하니까요. 사실 공연을 통해 굿을 널리 알리겠다는 거창한 생각은 없어요. 원래 굿이 하던 역할인 소통과 유대감을 해내는 것에 집중하고 싶어요. 전통이라는 글자만 들어가면 어렵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보다 문턱이 높지 않다는 걸 여러분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국악이 가진 힘도 비슷할까요.
국악에서는 연주자가 보고 듣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리며 연주를 해요. 즉흥성과 현장성이 바로 그 지점이죠. 연주자와 관객의 상호작용이 가장 많이 녹아있는 게 굿이거든요. 연주자 개인의 현재 상태에 관객이 공감할 수도 있고, 관객의 집중도나 흥미를 연주자가 알아챌 수도 있는데 결국 서로 소통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아마 이번 공연에서는 소통의 힘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무속예술에서 주목해야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전통예술은 악가무 종합 예술 형태라고 하죠. 노래와 춤, 연주가 다 들어있는데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고, 놀이의 형태까지 겸해집니다. 다양한 예술적 요소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를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고, 굿에 나오는 말의 힘을 얼마나 오래 간직할 수 있을지도 중요해요. 귀를 기울여야겠죠. 무녀들의 사설 중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는 명과 복이지만 많이 타가십시오’라는 말이 있어요. 무녀들도 알 수 없지만 굿을 보는 이들이 많이 받아가기를 바란다는 뜻이거든요.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으니,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가져갈 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또다른 사설은 ‘인간의 마음이 좋아야 신의 마음도 좋다’인데, 굿이 신을 위해 하는 절차라고 하지만 결국 하는 사람이 좋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즐거워야 해요.

이번 <2022 남산초이스>는 진도, 동해안, 남해안의 굿으로 구성되었습니다. 남해안별신굿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인가요.
진도씻김굿은 남도 음악의 정수를 담고 있어요. 국악에서 말하는 육자배기토리(전라도를 중심으로 나타나는 대표적인 음계)라고 하는 진도 아리랑 같은 선율을 가지고 있어요. 기악 연주가 매우 발달되어 있죠. 동해안별신굿은 기악 연주 대신 타악 연주가 발달되어 있고, 메나리토리(경상도·강원도·함경도 민요에 사용되는 음계)의 큰 축과 같은 역할을 하죠. 남해안별신굿은 앞서 말한 남도와 동부가 붙어있는 곳의 음악인데,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신 분들은 ‘재미없는 굿’이라고 하는데, 직설적인 표현이 적고 점잖은 분위기의 굿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점잖지 못해서 굿할 때 되게 힘들었어요. (웃음) 비교해보자면 동해안별신굿은 놀이의 요소가 잘 드러나고, 진도씻김굿은 기예적인 음악 연주와 같은 요소들이 중요해요. 남해안별신굿은 사제의 의미가 강합니다. 기도를 하는 행위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비교적 심 심해지고 담백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남해안별신굿을 현장에서 보면 어떤가요.
남해안별신굿을 이수하며 공부할 때 해마다 굿을 하는 동네에서 하루이틀 정도를 지냈어요. 그 날은 마을 어르신의 집에서 묵게 되는데, 저녁 대접을 해주시며 모든 이야기를 해주세요. 예를 들면 올해 고기가 많이 잡히지 않았고, 우리 영감이 아프고, 농사가 잘 됐다 등의 이야기들요. 다음 날이 되면 굿판에서 구술할 때 들은 이야기를 다 해줘야 해요. 말의 힘이라고 하죠. 속으로 생각하는 것과 입 밖으로 내뱉는 말에는 무척 다른 힘이 있는데, 말의 힘이 가장 왕성한 곳이 바로 굿판이에요.

남해안별신굿이 무형문화재로서 가지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첫번째로는 사라져가는 굿의 형식과 예술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화재로써의 가치는 그게 다라고 생각해요. 없어지면 안 되니까요. 다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사람들이 지켜야 하는 가치는 또다른 것이 있는 것 같아요. 나라의 지원이 끊기면 없어질 지도 모르는 현실에서, 굿을 유지하고 이것으로 먹고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해요. 예술은 절실해야 발전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동시대적인 가치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동해안별신굿이 가장 이상적인 형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굿판의 뒤풀이를 할 때 본식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사설을 하더라도 뒷부분에서는 판소리, 트로트도 하거든요. 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문화가 바뀌면 굿을 향유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해진 틀을 갖고 가되, 내부의 방식이나 형식 은 충분히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전통예술의 힘인데 무형문화재 제도가 생기고 나서 자유성이 없어졌어요. 마음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보존에 의의를 두고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보다,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국악과 무속예술을 처음 접할 때는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전통, 음악, 극장 같은 단어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연주하는 악기나 선율에 치중하기보다는, 연주자의 표정이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긴 여운을 간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악기보다 사람을 먼저 보는 것이 관전 포인트죠. 연주자가 힘들어하면, 내가 낸 표값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무대는 연주와 연기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야 객석에서 좋아하세요. 그래서 이번에도 힘들게 공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웃음)

현시대는 음악과 예술도, 정보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악은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표면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성질을 찾아 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얼음과 물, 수증기는 형태가 다를 뿐 모두 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잖아요. 국악에 가장 필요한 정체성은 옛날, 현재, 미래에 물 같은 근본적인 속성을 어떻게 변형시켜 갈 것인가라고 생각해요. 바뀐다 하더라도 결국 물이라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요. 변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현재의 우리는 표면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화가 필요하다거나 앞으로의 날들에 고민이 들었던 순간이 있나요.
제자들과 후배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라는 질문을 할 때가 많아요.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국악의 방향성을 정해 놓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취사 선택을 할 수 있도록이요. 근본을 유지하되 유연성과 변화성을 갖춰야 하는 거죠. 사회가 빠른 속도로 흘러가는데 반해 국악은 국가의 정책으로 인해 보존이 되어왔죠. 다른 장르에 비해 많은 지원과 기회를 얻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어요. 그럼에도 국악의 형태가 다양하게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결국은 앞선 사람들이 어떻게 걸어갔느냐가 후대에게 중요한 지표가 되어 줄 테니, 다양한 세대들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한다면 다양성이 확보되지 않을까요. 지금 국악에 가장 필요한 키워드가 다양성과 개성이라고 생각해요.


ATTENTION, PLEASE!

서울남산국악당 <2022 남산초이스>
기간 2022년 11월 18일-2022년 12월 31일
시간 금 20:00 토 15:00
장소 서울남산국악당
가격 전석 2만원
문의 02-226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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