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tale of three men_연극 <환상동화> 배우 강하늘, 기세중, 원종환
A tale of three men
배우 강하늘, 원종환, 기세중이 우리 앞에 펼쳐낼 환상에 대하여.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장원석 stylist 김선미 hair&makeup 이창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 남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바라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방금 전까지 두어 시간을 바라보고 있었던 공간이 더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을. 단지 어둡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 숨쉬던 무언가의 숨이 꺼질 때 느껴지는 듯한 적막감이 있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종종 연극을 비유할 때 사용되는 무대 위의 ‘마법’이라는 말이 더없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텅 빈 공간에 영혼을 불어넣어 그곳을 바다 건너의 먼 도시로, 가끔은 지구를 벗어난 공간으로, 혹은 몇 백 년 전의 시간으로 만들어놓으니까. 그 주문에 걸린 관객 또한 저항할 수 없이 자신이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이 아닌 다른 곳에 존재한다고 믿게 된다. 연극 <환상동화>는 이 마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 위에서 펼쳐내 보이는 작품이다. 사랑광대, 예술광대, 전쟁광대는 한스와 마리라는 가상의 인물을 탄생시키고 두 사람의 삶에 각자가 탐닉하는 사랑과 예술, 전쟁을 심어놓는다. 이 세 명의 광대를 연기할 배우는 강하늘, 원종환, 기세중이다. 이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마법을 걸고 어떤 환상을 펼쳐 보일지에 대해 수많은 이들이 기대에 찬 시선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바닷가 마을의 지고지순한 청년 경찰 황용식(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주인공의 머릿속에 살며 유쾌함과 진지함을 오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조연 김철수(연극 <뮤 하트>), 보이지 않아야 할 것들이 보여서 슬픈 유품정리사 이선동(뮤지컬 <이선동 클린센터>)까지, 현실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인물들을 마치 아는 사람인 듯 마법을 걸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그들이니까. 연극 안에서 또 한 편의 연극을 만들어 보이는 재미있는 우연 속에서 우리는 이들이 만들어낼 환상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다.
믿고 보는 세 명의 배우가 <환상동화>라는 작품으로 모이게 되었네요. 오래 전에 작품과 인연을 맺은 하늘씨의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하늘 하하, 맞습니다. 저의 ‘인생 공연’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예요. 대학생 때 지금 한스 역의 최정헌 배우와 함께 관람했는데, 극장을 나오면서 세상 풍경이 다르게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더 예쁘고 따뜻해진 것 같은. 이후에 영화 <어바웃 타임>을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라도 이 작품을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러다가 군대에서 <신흥무관학교>를 하면서 김동연 연출님과 만나게 되어서 먼저 여쭤봤어요. 혹시 <환상동화>를 다시 할 계획이 있으시냐고, 하게 된다면 꼭 저를 불러주시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드라마 촬영 중에 연락을 받았을 때 정말 기뻤죠.
종환씨와 세중씨는 아쉽게도 공연을 보지 못했다고요. 대본을 읽으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종환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광대들의 대사가 보통 연극처럼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내레이션에 가깝잖아요. 그래서 이 장면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그려질지,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의심 반 호기심 반이었죠. 그런데 연습을 해나가면서 대사가 입에 붙고, 광대들이 서로 맞춰가기 시작하니까 생각하지 못한 재미들이 생기더라고요. 요즘 그 재미를 발견하는 데 한창 빠져있어요.
세중 저에게는 ‘대본을 읽는다’는 생각 없이 읽어내려간 첫 작품이에요. 캐릭터들의 대사가 주루룩 써있는데 대본이라기보다 소설책 한 권을 읽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죠. 지금까지 했던 공연들과는 구성도, 표현방식도 다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기심이 생겼어요. 제목처럼 동화 같은 아기자기함도 있기 때문에 따뜻하고 재미있게 만들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세 명의 광대는 사랑과 전쟁, 예술에 심취해있는 캐릭터들이죠. 실제 자신의 모습과 공통점을 발견하는 부분도 있나요?
하늘 저는 삶의 모토가 사랑광대와 비슷해요. 대사 중에 “모든 존재는 사랑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대사가 있는데, 저 역시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것들과 닮아있어서 그런 공통점을 시작으로 캐릭터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종환 저는 나잇대별로 다른 것 같아요. 실생활에서 현실적인 것과 타협을 많이 하는 성격이기도 해서 예술광대와는 거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사랑광대와 닮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조금… 역시나 연극인의 삶은 예술광대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세중 세 광대의 성격이나 속성이 모두 제 안에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전쟁광대와 비슷한 모습을 찾자면 이성적일 때 엄청 이성적이고, 감정적일 때는 또 한없이 감정적인 점. 전쟁광대에게 그런 극단적인 모습이 있거든요.
<환상동화>는 세 명의 광대가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세 분의 호흡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연습실 밖에서도 돈독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가요?
종환 어휴, 그럴 틈이 없어요. 쉬는 시간에도 광대들이 눈 마주치면 대사부터 맞춰볼 정도거든요. 연습실에서 만나도 인사가 “오늘 뭐했어?”가 아니라 “한스는~“ 이러면서 다짜고짜 대사부터 외운다니까요. 그렇게 두 명이 맞춰보고 있으면 다른 배우들도 하나씩 껴들고.
하늘 어제도 엄청 웃겼어요. 한스 배우가 쉬는 시간에 혼자 연습을 복기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광대들이 오더니 대사를 막 치는 거죠. 그러니까 어느새 연출님도 와서 이렇게 해보라고 디렉션을 주시고. 그렇게 언제 다시 연습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하는 거죠.
종환 저도 나름 공연 많이 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연습실에서 대본을 많이 읽는 건 처음이에요. 집에 가서도 대본을 못 놓고요. 하루라도 연습실에 대본을 놓고 가면 정말 큰일이에요.
하늘 그런데 연습실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누구 하나 빠지는 사람 없이 다들 선한 에너지를 ‘뿜뿜’하고 있어요. 어떤 특정 순간이 아니라 연습실에 그 기운이 맴돌고 있다니까요. 제가 원하는 현장이자 연습이라서 기분이 좋아요.
세 배우 모두 무대 위에서 날아다니는 배우들인데 새삼 대사 외우는 것을 힘들어한다니 의외인 걸요.
종환 양도 양이지만, 맥락에 맞게 이어지는 대사가 아니어서 더 어려운 것 같아요. 한스와 마리의 이야기를 각자 사랑, 예술, 전쟁으로 흐르도록 가로채와야 하니 서로의 반대되는 상황을 이야기해야 해요. 상대방의 대사까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정확한 타이밍에 그 다음 대사를 칠 수 있는 거죠. 공연 내내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저희끼리는 그런 농담을 해요. 호아킨 피닉스가 와도 못 외울거라고.
세중 다른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대사를 잘 못 외우면 연출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외우려고 하지 말고 이해를 하라”고. 이번 공연에서는 반대예요. “이걸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외워! 토씨 하나 틀리지 말고 외워!”(웃음)
김동연 연출이 극작과 연출을 모두 맡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겠죠. 이전에 다른 작품에서 호흡을 맞출 때와 다른 점이 있나요?
종환 연습실에 매일 나오시는 것? 하하.
하늘 동연 연출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배우를 믿고 많은 부분을 맡겨주시기 때문이에요. <신흥무관학교> 때도 느꼈지만, 모든 연기자가 자신감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게 해주세요. 배우가 어떤 아이디어를 내도 일단 “괜찮다, 해보자”고 말씀하세요. 스스로를 믿고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자체가 배우들이 힘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종환 공감해요. 연출가로서 고집이 있어야 하지만 권위적이거나 일방적으로 고집을 내세우지 않으세요. 배우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불편한 점에 대해서도 수긍하고 나중에 의견을 말씀하시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작업하면서 상처받거나 자존심 부릴 일이 없죠.
세중 동연 연출님과 올해만 세 편의 작품을 함께했는데, 이전까지는 절 보실 때마다 매일 “너 여기까지만 먹어라”는 말씀을 제일 많이 하셨어요. 제가 잘 먹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환상동화>에서는 “많이 먹고 와라” 그러시는 거예요. 런스루를 돌아보니까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네 번 정도 숨이 넘어갈 뻔 했어요. 연출님은 본인의 그림을 정말 명확하게 가지고 계세요. 그래서 처음 함께 작업할 때는 부딪히기도 했어요. 납득이 잘 안 되는 장면이 있어도 워낙 생각이 확고하시니까. 그런데 그 부분을 극장으로 옮겨서 무대와 조명과 음악과 함께 맞춰보니까 단숨에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완전히 믿게 됐죠. 아, 머릿속에 다 있으시구나.
세 배우가 처음으로 함께하는 작품이기도 해요. 지금까지 발견한 서로의 장점에 대해 말해볼까요.
하늘 배우가 일정한 톤으로 연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새롭게 반응할 수 있는 것도 좋은 배우의 자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종환 형님의 최고의 장점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정형화된 연기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그래서 같이 연기를 해도 항상 새로운 느낌을 받죠. 어떤 역도 소화할 수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세중이와는 아직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실하고, 자신이 구축해놓은 길이 선명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연출님이 노트를 주는 시간에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그려놓은 밑바탕이 확실하고, 그를 바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느껴지는 정당성, 자신감이 멋있어요.
종환 하늘이는 연기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이미 다 잘 알고… 지금 가장 핫한 배우잖아요. 그런데 연습실에 온 첫날부터 구석에서 혼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연습을 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랬죠. 황용식이가 지하 연습실 구석에서 혼자 고생하고 있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라고. 그 모습이 되게 귀엽기도 하고 사람 냄새가 많이 났어요. 세중이는 만나자마자 음색에 반했어요. 또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굉장히 좋아요. 연습 때 살살 하려고 다가갔다가도 이 친구가 저에게 주는 에너지가 진지하고 강하니까 저도 어느새 분위기를 딱 만들게 되더라고요.
세중 공연 끝나고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보기를 해서 꼭 챙겨보는 애청자였어요. 제가 지금까지 본 드라마 중 1위로 뽑을 정도거든요. 그래서 하늘 형을 만나자마자 ‘와 연예인이다!’ 싶었어요(웃음). 조금만 함께 시간을 보내더라도 형이 내뿜는 인간적이고 선한 에너지를 금방 느낄 수 있어요. 종환 형은 특유의 ‘릴렉스’가 있어요. 주변 사람을 다 포용해줘요. 컨디션 안 좋은 배우가 있으면 꼭 챙겨주고, 제가 어리고 부족한데 열심히 삐걱삐걱하고 있으면 중심을 딱 잡아주시더라고요. 그래서 형한테 기대서 열심히 자신감 있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죠.
작품을 떠나서 2019년은 세 분에게 어떤 해였나요? 가장 인상적인 사건을 하나씩 말해볼까요.
하늘 전역이요! 6개월 되었습니다. (벌써 까마득한 일 아닌가요?) 아니요,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나요. 전쟁 신에서 소품으로 탄피가 등장하는데 보기만 해도 진저리가 나요(웃음). 사실 제가 바라던 대로 흘러간 해는 아니었어요. 군대 안에 있는 동안 여러가지 생각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전역 후에는 좀 더 여유있게 내 삶을 찾으면서 보내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 전까지 쉬지 않고 많은 작품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동백꽃 필 무렵>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내서 너무 감사하면서도 조금은 정신이 없었어요. 지금 <환상동화>를 하는 이 시점이 재충전하면서도 작품에 올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종환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힘든 해였어요. 다른 것보다 공연계가 많이 힘든 상황이라는 걸 피부로 느꼈죠. 작품이 엎어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올해가 얼른 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2020년에는 공연계의 상황도 좋아지길 바라봅니다.
세중 저는 올해 빚을 갚았어요! 집안과 제 앞으로 된 빚 모두를요. 그러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해왔는데, 문득 돌아보니 2년 동안 쉬지를 못했더라고요. 정말 하루도 집에서 쉰 날이 없었어요. 그렇게 집과 극장, 연습실만 왔다갔다 하다보니 배우로서 얻은 것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잃은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사라진 듯한 느낌도 좀 있고요. 2020년에는 배우로서도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도 스스로를 찾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해요.
이번 공연이 자신에게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종환 ‘광대’라는 단어가 배우들에게 주는 의미는 남달라요. 두 글자의 무게가 무겁기도 하고, 큰 단어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래서인지 배우로서 광대를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가볍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하늘 저는 어렵게 말할 것 없이 배우는 구연동화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글로만 읽으면 심심하니까 거기에 목소리를 불어넣고, 목소리만 더하면 심심하니까 움직임까지 붙이고. 그게 연기 아닌가 생각해요. <환상동화>는 광대들이 구연동화로 극을 만들어가는 내용이니까 배우로서 더 공감이 될 수밖에 없죠.
하늘씨는 <동백꽃 필 무렵>의 차기작으로 연극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있었죠.
하늘 큰 의미를 두지는 않으려고 해요. 제 안에서는 정당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하나하나 설명을 하는 것도 웃기는 일 같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것보다 예전에 감동을 받았던 공연을 직접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큰 의미인 것 같아요. <신흥무관학교>도, <동백꽃 필 무렵>도 즐거웠고, 마찬가지로 이번 작품도 즐거울 것 같아요. 세중씨는 올해 거의 동연 연출님의 페르소나였죠?
세중 하하. 올해 연출님과 같이 한 작품이 다 어려웠어요. <뱀파이어 아더>는 B급 감성이 녹아있으니 연기 톤을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알앤제이>는 셰익스피어 고전의 대사를 무게감 있게 소화해야 했고요. <환상동화>로 다시 한 번 연출님과 만나게 되었는데, 성장하면서 보낸 한 해의 마지막을 또 한 번의 성장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연극 <환상동화>
기간 2019년 12월 21일-2020년 3월 1일
시간 화-금 20:00 | 토,일 14:00 18:00
장소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
출연 강하늘, 송광일, 백동현, 장지후, 기세중, 원종환, 육현욱 외
가격 전석 6만원
문의 1577-3363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민·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