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로 얼굴 전체를 덮은 실리콘 두상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인간의 생애 전체를 머리카락의 색상만으로 표현한 작품. 인간이 태어났을 때는 밝은 색 머리카락이었다가 자라면서 색이 점점 진해지고 시간이 더 흐르면 결국엔 머리카락이 회색 빛에 이르게 된다. 사람들은 대개 염색으로 시간의 흔적을 감추려 하지만 종국에는 시간 앞에 패배를 인정하고 나이 듦에 대해 받아들인다. 마르지엘라는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오랜 시간 동안 하나하나 이식하여 완성했다.

잡지 더미가 쌓여있는 가운데 연기자가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한 권씩 벽에 잡지를 거는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잡지들은 유명인에 관한 뉴스를 전문으로 다루던 ‘주르 드 프랑스(Jours de France)’나 ‘르 수아르 일러스트레(Le Soir Illustré)’같은 1960-1970년대 프랑스와 벨기에 매거진으로 세월에 훼손되지 않도록 투명 비닐에 세심하게 포장되어 있다. 벽에 걸린 잡지 표지에는 시대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인물들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신의 정체를 감춘다. 이 전설적인 인물들은 ‘셀러브리티’ 문화의 수단인 잡지를 통해 우리의 상상 속에서 살아있음을 은연 중에 드러낸다.

마르지엘라는 현대적인 프로젝터 스크린을 캔버스 삼아 고전적인 목탄 드로잉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신체의 어떤 부분을 매우 확대하여 그려진 도상으로 2개의 동일한 이미지는 데칼코마니처럼 서로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 스태프는 관람객 앞에서 프로젝터 스크린을 내려서 이미지를 공개한 후, 다시 스크린 올리기를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캔버스에서 번지고 떨어져 나온 흔적이 생기는데, 마르지엘라는 이런 우연성으로 작품이 변형되는 과정을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차용한다. 

마르지엘라는 사람의 모발에는 제각기 수많은 유전적 단서와 삶의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을 포착하여 두피의 정수리 부분을 존재의 기억과 경험이 저장된 하나의 지도로 여겼다. 이러한 지도 만드는 과정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며 시간의 궤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며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대 조각상은 인체의 미를 찬양하며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와는 다르게 작가는 토르소의 형태, 크기, 재질, 그리고 사람의 몸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재고함으로써 몸의 개념을 파괴하고 확장한다. 대리석에서 현대의 실리콘으로 재료를 변경하여 작품의 기원을 불분명하게 만들고, 인공 피부와 같은 재료를 도입하여 촉각적 경험을 더했다. 또한 여러가지 컬러의 실리콘을 차용해 다양한 피부색을 작품에 반영한다. 작품을 받치는 좌대와 오브제를 하나의 재료로 연결하여 받침대까지 작품으로 포함시켜버리는 근본적인 혁신을 모색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