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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HAPPY TOGERTHER_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HAPPY TOGERTHER

 

인생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리처드 용재 오닐을 만났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못 말리는 열정도,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갈등과 유혹을 거둬내는 방법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뭐든 배우려는 자세도, 슬픔이나 환희의 순간을 경험하는 일도, 이 모든 것은 이등변삼각형의 꼭짓점처럼 오직 음악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 과연 예술은 지혜로운 해답을 안겨줄까, 훌륭하고 깊이 있는 음악은 진짜 우리에게 희망과 기적을 선사할까, 그를 만나면서 궁금해졌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만 분명한 건 그는 삶을 관찰하기보다 삶을 ‘살아가는’ 연주자란 사실이었다.

editor 이민정 interviewer 정새미 photographer 목나정 stylist 조윤희 hair 김선희 makeup 유혜수


어제 선보였던 마티네 공연 <크레디아 클래식 클럽 2022>의 테마가 ‘어머니를 위한 노래’더군요. 용재 오닐에게는 더욱 특별한 연주가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다른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음악에 대한 이해 역시 개인의 경험과 지식에 많은 영향을 받아요. 특히 클래식 음악은 보다 친숙한 환경이어야 관객들이 집중하기 쉽죠.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크고 넓은 주제를 떠올리듯 ‘어머니의 사랑’은 한 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엄마 관객들이 많았어요. 많은 분들이 손을 흔들어 주셨는데 절반이 여성분이었어요. 한국에서 연주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면 엄마, 할머니들이 저를 아낌없이 지지해 주셨던 것 같아요. 가장 충실하게 저를 믿어주고 응원해주신 분들. 

한국은 역동적인 나라라서 비행기에 내릴 때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기대한다’고 했었죠. 이번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어떤 생각을 했나요.
참으로 바쁜 시기였어요. 올 하반기 3개월 동안 한국에 무려 세 번이나 왔으니까요. 10월, 일본에서 타카치 콰르텟(Takács Quartet) 공연을 한 뒤 한국 투어를 위해 멤버들과 함께 방문했고, 11월에는 프라이빗 콘서트를 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어요. 그게 불과 2주 전이에요. 그러고 나서 포틀랜드, 버클리에서 타카치 콰르텟의 시즌 공연 일정을 마무리했어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풍경을 보면서 떠났는데 다시 돌아오니 눈이 오네요. 한국의 가을과 겨울을 모두 보게 되어 기분이 좋아요. 너무 자주 와서 한국이 익숙한 때도 있었어요. 그러다가 2021년 12월에 왔을 때는 굉장히 낯설었어요. 전 세계가 코로나로 고통받던 시기였고 한국도 다르지 않았죠. 팬데믹 이후 한국에 네 번 방문했는데 이곳에 오는 건 항상 기쁘지만 올 때마다 분위기가 달라요. 다이나믹할 때도 있으나 이번에는 뭐랄까, 안타깝게도 이태원 참사 때문인지 서울이 좀 우울한 느낌이네요.

지난 2019년 디토 페스티벌의 마지막 공연이 있었고 ‘앙상블 디토(Ditto)’를 사랑했던 많은 한국팬들이 아쉬워했어요. 하지만 아쉬움이 무색할 정도로 여러 가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고 있어요. 올해는 타카치 콰르텟을 통해 한국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타카치 콰르텟이 연주했던 프로그램은 하이든 현악사중주, Op. 77 No. 2, 버르토크 현악 4중주 6번, 슈베르트 현악 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였어요. 고전주의부터 낭만주의 시대를 아우르는 대표 작품들로 프로그램을 구성했죠. 한국에서 공연한 프로그램은 일본과 동일했어요. 누군가 티켓 판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왜 이렇게 어렵고 진지한 프로그램을 연주하냐고 물어보셔도 괜찮아요. 쉽지 않은 음악이라도 우리는 타카치 콰르텟만의 개성과 깊이감으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니까요. 공연을 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15년 전, 우리가 디토 프로젝트를 하던 시절 그 이전에, 이런 프로그램으로 연주했다면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들으러 왔을까, 과연 지금처럼 많은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와주셨을까. 이제는 클래식을 즐기는 관객들, 실내악 공연을 찾는 이들, 또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프로그램을 이해하고 즐기는 관객들이 많아졌어요. 실로 어마어마한 종류의 광기 어린(?) 프로그램을 연주했던 디토 프로젝트가 도움이 된 것 같아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종종 예술, 혹은 모든 종류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과는 다른 무언가를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요. 과학이 될 수도, 음악이 될 수 있겠죠. 사람들이 만들어낸 소위 상아탑(Ivory tower) 같은 거 말예요. 한 분야에 전문가가 탑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 있는 다른 이들은 뚫고 들어가기가 힘든 것 같아요. 탑 안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머물면서 밖에 있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 안으로 초대하지 않죠. 때때로 밀어내기도 하면서 이렇게 말해요. “당신들은 우리만큼 똑똑하지 않아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완전한 삶을 영위해 내곤 해요. 그렇기에 저는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균형감을 가진 좋은 ‘전달자(앰배서더)’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전문적인 실력을 유지하되, 끊임없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요. 

역시나 이번 공연에서도 한국 관객은 열정적이었어요. 멤버들도 인정하죠? 
한국 투어를 마무리하고 타카치 콰르텟의 동료 연주자들은 모두 제게 감사를 전했어요. 제2바이올린 연주자인 하루미 로데스(Harumi Rhodes)는 한국을 사랑했고, 저도 일본 공연을 통해 그녀의 고국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헝가리인인 첼리스트 안드레스 페어(Andr’s Feje’r)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멤버인데 그는 재밌는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한국 관객들이 커튼콜에서 앙코르를 외치며 돌고래 소리를 지를 때마다 웃어보였어요. 한국 팬들 특유의 열정적인 환호가 익숙하지 않았나봐요. 커튼콜에서 그의 웃는 얼굴을 보는게 재미있었어요. 

타카치 앙상블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솔직히 지구상에 타카치 콰르텟과 같은 그룹은 흔하지 않아요. 정말 드물죠. 제가 자라면서 들었던 모든 콰르텟은 이미 은퇴했거나 해체했으니까요. 알반 베르크(Alban Berg) 4중주단을 비롯하여 과르네리(Guarneri) 4중주단처럼 세계 최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앙상블이 해체했고, 그 유명한 에머슨 콰르텟(The Emerson Quarter) 또한 활동을 마무리하며 2023년에 마지막 은퇴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어요. 타카치 콰르텟은 음악 세계에서 너무나 특별해요. 창단한 지 거의 50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유럽 전역을 다니며 공연을 하고 팬덤도 있어요. 팬들은 수십 년 동안 타카치 콰르텟의 연주를 즐겨 듣죠. 제가 이 그룹의 멤버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껴요. 세계적으로 알려진 타카치 콰르텟의 일부가 되어, 멋진 프로그램을 가지고, ‘클래식 애호가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음악 인생의 거의 절반을 바친 한국을 다시 찾았다는 점이 아주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12월 말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문태국과 함께 송년 콘서트를 열었어요. 선배로서 최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는 젊고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입니다. 5, 6년 전, 디토에 합류할 의사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거절하더라고요. ‘더 나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게 이유였죠. 그 대답을 듣고 오히려 기뻐했던 기억이 나요.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 이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도 한국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그는 위대한 업적을 쌓아 가고 있습니다. 첼리스트 문태국 역시 속이 꽉 차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젊고 훌륭한 음악가예요. 이러한 연주자들이 클래식 음악을 한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줘요. 왜냐하면 세상은 젊은 세대들에 의해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있으며, 그들의 세상에서 이제 그들이 자신들의 세대를 감동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나서서 ‘디토’와 같은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혹은 새로운 청중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채로운 시도를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코로나 4년차에 들어선 지금,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듯도 하고 여전히 코로나로 힘들어 모습도 보입니다. 연주자로서 코로나라는 시기는 굉장히 힘들었을 텐데 어떠했나요. 
저 역시 너무 힘들었어요.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 기간은 모든 음악가들에게 최악의 시간이었죠. 말 그대로 전 세계의 모든 무대가 닫혔고 콘서트가 사라지면서 친구들과 동료들이 모두 실직했어요. 수입이 없어 절망하는 이 천지였고, 급기야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했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센트럴 파크에 사망자들이 묻히기 시작했는데 묘지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뉴스가 공포스러웠어요. 두려움에 대한 이 기억은 앞으로도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아요. 백신을 기다리는 과정 역시 고통인 한편, 그럼에도 백신을 맞을 수 있다는 사실은 현대 과학의 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4년 째가 되었지만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어요. 비록 강제적인 상황이었지만 인간의 견디는 능력을 진화시켜 준 점에서 좋은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코로나 이전의 수준으로 돌아 오지 않은 상태라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어요. 특히 노인 관객들이 공연장에 오는 것을 아직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올 연말에는 전 세계 모든 공연장이 정상화되기를 조심스럽게 예측하며 희망을 가져봅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백신 접종 현장에서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연주하는 첼리스트 요요마를 보았습니다. 실크로드 앙상블 등 그분의 음악적 성취와 삶을 보면 연주자는 무대 위에서의 연주가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첼리스트 요요마를 매우 존경해요. 그분은 진정으로 훌륭한 음악가인 동시에 전 세계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요. 음악가의 소명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더 나아가 드넓은 세상에 사랑과 즐거움을 전달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일입니다. 그것을 실천했을 때의 힘은 굉장히 강해요. 말이 쉽지 실천하기 정말 어려운 일인데, 요요마는 음악과 음악 외적인 분야를 지혜롭게 연결하세요. 초월적인 음악과 스마트한 아이디어, 넘치는 에너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은 ‘좋은 인간(Good human-being)’입니다. 

한국의 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후배 연주자가 있다면요? 
지난해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점은 그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그는 젊은 음악가 중에서도 가장 젊어요. 선배 혹은 중년 음악가로서 지금까지 봐 온 많은 젊은 음악가들이 유명해지고 싶어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대회에서 수상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임윤찬은 ‘나는 유명해지고 싶지 않고 내가 가장 바라는 점은 실력이 더 나아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감동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진정한 예술가’라고 받아들이게 된 중요한 이유였죠. 

이러한 젊은 후배 음악가들을 보면 용재 오닐의 젊은 시절이 떠오를 것 같아요.  
저보다 훨씬 훌륭하죠! 국제 콩쿠르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에요. 임윤찬은 열여덟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어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연주만 봐도 믿을 수 없을 정도에요. 유튜브에서 9백만이 훌쩍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잖아요. 어떤 연주에 비견될 수 없는 훌륭한 연주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대한 성취며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젊은 음악가들에게 한 가지 해주고 싶은 말은 클래식 대회 우승으로 황제에 자리에 오르는 것이 ‘제로섬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음악가들의 커뮤니티에서 우리는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는 필요한 존재입니다. 때로는 너무 많은 대회와 경연에서 최고가 되어야만 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거든요. 좋은 음악을 만들면서 전 세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어 언제나 위대한 음악을 평생 목표로 삼는 것이 연주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 아닐까요. 저는 완벽하지는 않아도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떤 상황에서도 음악 자체를 최우선에 두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긴 해요. 관객들의 환호와 무대 위에서의 긴장 등 우리를 유혹하고 방해하는 요인이 얼마나 많아요. 음악 외적인 일에 집중하는 일이 지속되면 음악은 결코 우리에게 다시 손을 뻗지 않아요. 반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으면 음악은 고이게 되고 말죠. 그래서 균형을 갖는 건 참으로 까다로운 일입니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성악 등 국제 콩쿠르마다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데 유럽의 몇몇 클래식 비평가들은 한국을 ‘콩쿠르 강국’이라고 합니다. 관객은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한국이 각종 클래식 콩쿠르 대회에서 우승하기 때문에 가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그 비판은 음악적인 시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말은 조심스러운데 여전히 프로필 란을 보면 마른 체형이라고 써 있는 등 인종차별의 뉘앙스가 묻어 있어요. 저는 유럽에서 ‘아시안 연주자는 기술적으로 훌륭하지만 감정이 없다’는 등 좋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어요. 그럼에도 거의 모든 주요 콩쿠르 대회에서, 한 명 이상의 한국 결선 진출자가 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운 일이에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이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이 사실만으로도 한국에 축하를 보냅니다! 이번 월드컵을 보면서도 깨달았어요. 아무리 돈이 많은 나라라도 월드컵을 가질 수 없잖아요.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역사가 거의 없는데도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은 뛰어난 실력을 보여줘요. 때때로 콩쿠르 대회는 클래식 인생에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열심히 연습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국제적으로 많이 노출되면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음악은 스포츠와 달리 이기고 지고의 차원이 아니에요. 대중은 어떤 이슈에 대해 불꽃 같은 관심을 갖다가 금세 잊어버리거든요. 그렇기에 관객이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감상하고 소양을 키우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듣기’에 전념하지 않으면 안돼요. 20초짜리 클립 영상을 보고 바로 끄는 것과 다르니까요. 

 

(TMI 질문: 용재 오닐은 월드컵 얘기가 나오면 슬픈 표정을 지었다.) 이번 월드컵에서 어느 나라를 응원했나요. 
저는 한국 국가 대표팀의 승리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어요. 포르투갈과의 승리는 대단했고 16강 진출소식에 엄청 흥분했죠! 한국팀이 16강 진입에 극적으로 성공했을 때 저는 지난 2002년이나 2006년 같은 결과가 나오길 진심으로 기대했던 것 같아요. 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투혼을 보여준 손흥민 선수를 보며 놀라움과 슬픔을 동시에 느꼈어요. 그는 월드컵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어요. 어려움도 있었지만 결국 위대한 승리를 이룬 메시와 실망감을 안겨준 호날두. 즐거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월드컵은 항상 그 안에 빠져들게 만드는 드라마가 있어요.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너무 특별해서 생긴) ‘미친 교수님’이라는 애칭이 있잖아요. 여전히 이 애칭이 유효한 상태인가요. 
최선을 다해 좋은 선생님이 되는 일.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예술을 전달하는 동시에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른 이에게 알려주고 훈련시킬 의무가 있어요. 선생님이 된 것은 제게 큰 기쁨이었어요. 제자들 가운데 젊고 어린 친구들이 많은데, 모두 성실하고 좋은 성품을 갖고 있어요. 과거 제 세대에서는 비판적이고 직접적으로 가르치신 선생님도 있었죠. 이따금 “아주 엉망이야, 넌 아직 준비되지 않았어.” 하시며 수업에서 쫓아내신 적도 있고, 음악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며 스튜디오 밖으로 쫓아내기도 하셨어요. 아마 그분들은 윗세대 스승들에게 더 심한 가르침을 경험하셨겠죠. 저는 스승들을 존경하지만 현 세대에서의 가르침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준을 정해 놓되, 그 안에서 학생들이 우리보다 더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도와야 해요. 

올해로 44세, 인생의 한 가운데에 서 있어요. 연주자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작곡가에 대한 생각, 연주에 대한 변화가 느껴진다고 말씀하세요. 나이, 경험이 연주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요. 반대로 젊음이 그리워지는 순간도 있나요.
젊을 때는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해서 강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음악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인지 확신해요. 그러다가 자신의 연주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되면 여러 비판에 맞닥뜨리게 되면서 매일의 삶이 도전이 되죠. 시간이 지나면서 무언가를 알아가는 일은 삶의 여러 부분에서 발생해요. 왜냐하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변화하고, 음악 역시 우리와 함께 성장하면서 그 의미가 깊어지기 때문이에요. 인생에서 삶과 죽음을 실제로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려요. 부모님이 늙고 여러분도 늙어가고 또 누군가는 태어나고 그들을 키우고 가르치고… 변화하는 삶의 주기와 인생의 전체적인 스펙트럼을 지켜보면 무엇이 중요한지, 사랑이 무엇인지, 음악이 무엇인지,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게 정상이고 저 역시 그 부분을 즐겨요. 젊었을 때, 나이가 들었을 때 그리고 그 사이의 음악 모두 다 옳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절대 소진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많은 층(Layer)을 가지고 있고 한없이 깊으니까요. 위대한 음악이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고갈되지 않으면서 다른 의미와 다른 해석의 방식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나이가 들수록 이해의 관계가 깊어졌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죽음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여전히 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힘들어요. 슬프고 쉽지 않은 일이지만 예술가로서 말씀드리면, 모든 일이 예술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기쁨도 이해하지 못하고,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행복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20년 전 자신이 연주한 음악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때때로 그 시절의 음악을 갑작스레 듣게 될 때가 있는데 마치 20년 전 찍은 제 사진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20년 전에 녹음한 곡을 들으면 그때의 저를 음파로 그린 초상화 같아요. 저는 저의 변화가 자랑스러워요. 가끔은 ‘와, 연주 정말 잘했어’라고 느낄 때도 있고, 어떤 부분은 ‘요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하며 과거의 제게 속삭이곤 하죠. 그래서 녹음을 해두는 게 좋은 일인가 봅니다. 앨범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선물이에요. 음악가가 앨범 없이 세상을 떠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스스로가 꼽는 용재 오닐의 베스트 앨범은 무엇인가요. 유니버셜 도이치 그라모폰의 아티스트로서 총 9장의 솔로 앨범을 냈잖아요. 
가장 애착이 가는 앨범은 2016년 발매한 ‘브리티쉬 비올라(British Viola)’입니다. 이 앨범 안에는 처음 비올라를 배웠을 때 연주했던 비올라 협주곡이 수록되어 있어요. 당시 발매를 간절히 원하기도 했고 BBC 심포니, 앤드류 데이비스와 함께 녹음했기 때문에 이 앨범에 대한 자부심도 크답니다. 물론 판매가 훌륭하지는 않아요.(웃음) 재미있게도, 그때 제가 깨달았던 점은 관객들이 좋아하고 판매도 잘 되는 앨범이 어쩌면 저와 저의 팬이 가장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에요. 요즘은 앞으로 발매할 앨범을 고심하고 있어요. 아직은 비밀이지만 아마도 ‘제 자신’에 관한 주제이지 않을까요.  

지금 연주하는 비올라가 굉장히 특별한 악기라고 들었어요.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제 첫 번째 실내악 교수님이 쓰시던 악기입니다. 1600년대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비올라인데 4~5년 전부터 잘 사용하고 있어요. 원래는 커티스 음악원이 소장한 컬렉션이었는데 재정상의 이유로 학교 측에서 비올라를 팔게 됐고 저의 스승님이 사신 거죠. 턱받침 아랫 부분에 ‘Curtis’라고 새겨져 있어요. 이 악기는 콰르텟에서 많은 세월을 보냈기에 현재 딱 맞는 자리를 찾았다고 느껴요. 에네스 콰르텟에서 베토벤 리사이틀을 선보였을 때 처음 이 비올라로 연주한 이후 다른 악기는 쓰지 않았어요. 저는  4개의 악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 악기는 제가 무대에서 연주하는 유일한 비올라입니다.

벌써 2023년입니다. 올해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지난 12월 초, 미국에서 어머니와 이른 크리스마스를 보냈어요. 그리고 2023년, 저는 44세가 되었네요. 2023년의 첫 번째 일정은 앤 하버의 미시간 대학교에서 시작해요. 산타 모니카 방송국, 앨버 쿼키, 투싼, 솔트 레이크 시티, 버클리 칼 퍼포먼시스, 워싱턴 시애틀 유니버시티를 거쳐 밴쿠버, 산 호세 등 일정이 많아요. 오렌지 카운티 아트 센터에서 연주 실황 녹음을 한 뒤에는 마드리드, 프랑크푸르트, 런던 위그모어,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 홀 등 유럽 투어가 계획되어 있어요. 2월에는 메디치 가문에서 소유했던 특별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로 리사이틀을 선보입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비올라는 굉장히 희귀한데 제가 연주할 비올라의 값어치가 무려 20만 달러에 이른다고 해요. 의회 도서관에서 제게 이 비올라로 특별한 연주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는 워싱턴 DC로 가서 매일 연습한 뒤 제 친구인 피아니스트 제레미 덴크과 함께 공연할 예정입니다. 한국 일정도 빨리 결정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운 계절에 다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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