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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환경극의 외피를 두른_연극 <렁스>

환경극의 외피를 두른

연극열전 8’의 첫 번째 작품인 <렁스>. write 김일송

 

 

우린 재활용을 해, 장바구니를 들고 다녀. 양치할 때 물도 계속 틀어놓지 않아. 우린 뉴스를 봐, 투표를 해. 시위도 나가. 대형 프랜차이즈 말고 작은 카페에 가. 우린 다큐를 봐. 괜찮은 내용의 책을 읽어. 고전도 읽고. 우린 자전거를 타. 공정무역 제품을 사고. 자선단체에 기부를 해. 보노의 아프리카 에이즈 퇴치를 위한 빨간색 신용카드를 갖고 있어.”

연극 <렁스>는 표면적으로 환경극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지구환경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는 여성과 그의 남자친구다. 앞서 인용했듯 두 사람은 비닐을 쓰지 않으려 애쓰고, 수자원 고갈을 막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기 위해 자동차도 타지 않으려 한다. 3세계의 환경과 노동자를 원조하기 위해 가치 중심의 소비를 실천하는 이들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을 위해 시위를 하는 등 목소리를 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다. 환경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인 그들은 누가 보아도 좋은 사람이다.
다만 이 좋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면 고민이 너무 깊은 나머지 아이를 갖는 일에 주저한다는 사실이다. 남자는 아이를 갖길 원한다. 그러나 여자의 마음은 남자와 다르다. 여자는 인구 70억인 지구를 지키는 길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라며 거절한다. 덧붙여 아이 한 명의 탄소발자국(개인이나 단체가 직간접적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이 에펠탑 무게에 버금가는 1만 톤이라고 한다. 그러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여기까지 환경을 주제로 했던 일종의 환경극처럼 비쳤던 <렁스>는 다른 방향으로 장르를 선회한다.
아이를 생긴 뒤, 남자는 직장을 구한다. 아이를 갖는 일에 부정적이었던 여자는 아이 방을 꾸민다. 비극은 바로 찾아온다. 유산이다. 절망에 빠진 여자는 깊은 침묵에 빠진다. 남자는 여자를 불행으로부터 건져보려 하지만, 속수다. 무책이다. 사실 남자에게도 위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입을 닫은 여자로부터 아무 위로도 받지 못하고, 그는 직장동료의 위로에 무너진다. 유산은 이별로 이어진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은 재회하지만, 남자의 곁에는 또 다른 약혼자가 생긴 이후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연극은 두 사람이 아이를 가지려 한 시점에서 시작해 남자가 죽은 후에야 끝난다. 등장인물은 단둘. 두 사람은 퇴장 한번 없이 100분 내내 아무것도 몸 가릴 곳 없는 무대를 지킨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몇십 년의 세월을 살아낸다. 흥미로운 사실은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의 시간을 비약하는 방법이다. 무대전환은 물론 없다. 조명이나 음향, 영상의 힘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작품은 오로지 대사와 이를 연기하는 배우의 힘으로 시간의 경과를 보여준다. 유일한 소품인 신발 7켤레는 그들이 지나온 세월을 보이는 듯싶다.
작가는 영국의 작가 던컨 맥밀란으로, 국내에서는 그의 <1984><내게 빛나는 모든 것>이 공연된 바 있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임신으로 호르몬의 변화하는 여성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마치 자신이 유산을 겪기라도 한 듯 생생하게 여자의 머릿속 단상들을 옮겨 놓았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며, 작품을 쓸 당시 아이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로지 상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중요한 것은 인생 일대의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둘의 관계이다.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를 생각하는 그들은 분명 좋은 사람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리숙하다. 욕망 앞에서 망설이고, 관계 앞에서 흔들린다. 그래서 그들은 묻는다. “우리는 좋은 사람일까?” 이에 대해서는 작가가 예비해놓은 답이 있다. 남자의 대사가 곧 작가의 말인 듯싶다.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 연극 <렁스>는 대학로 아트원시어터 2관에서 75일까지 공연된다.

 

ATTENTION, PLEASE
연극 <렁스>
기간 2020년 5월 9일-2020년 7월 5일
시간 20:00 화·목·금 | 16:00 20:00 수 | 15:00 18:00 토·일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
가격 R석 5만5천원|S석 4만원
문의 02-766-6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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