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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피아니스트의 사명_피아니스트 문지영

피아니스트의 사명

 

피아니스트 문지영은 반짝이기보다 담담한 단어들로 침착하게 자신의 음악세계를 연주해나간다.
editor 김은아  

 


ⓒ Anne-Laure Lechat

 

영국 런던의 위그모어홀은 클래식 연주자들에게는 상징적인 곳이다. 1901년 문을 열어 120년이라는 세월을 품은 유서 깊은 장소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거쳐간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기 때문이다페루치오 부조니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아르투르 루빈스타인자클린 뒤프레 등 클래식을 이야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거장들이 이 무대에 섰다그리고 지난해 10피아니스트 문지영이 바로 무대에서 런던 데뷔 무대를 가졌다현지 언론에서는 곡의 눈금을 예리하게 읽어내고 이를 편안한 음으로 풀어내어 월등히 곡 전체를 온전히 자신의 곡으로 흡수했다거나 “지적이면서도 자유로운기품이 있는 연주라는 호평을 쏟아냈다그러나 문지영은 하나의 성취에 취해 머물러있거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앞서 2014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고, 2015년 부조니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하는 연이은 쾌거를 달성한 뒤에 이어지던 수많은 인터뷰가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로 이어졌던 것처럼또 부조니 콩쿠르 결선에서 박쥐가 눈 앞으로 날아들었음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마쳤던 것처럼 말이다.

한동안 유럽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났던 문지영은 오는 4월 오랜만에 한국 관객 앞에 선다. 20대 초반 시절 그가 흠뻑 빠져지냈던 슈만이 아닌 브람스의 작품과 함께화려한 수식어나 목표를 꿈꾸는 대신음악을 통해 해낼 수 있는 자신만의 사명을 찾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그가 이번 리사이틀에 대한 기대감을 메일로 전해왔다.

(*리사이틀 취소 전 발간된 4월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먼저 지난 10월 있었던 위그모어홀에서의 런던 데뷔 리사이틀 이야기를 해볼까요클래식 연주자들에게는 성지라고 불리는 공간인 만큼피아니스트 문지영의 음악 인생에서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위그모어홀 측으로부터 초청 연락을 처음 받았을 때는 물론이고연주를 위해 홀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가면서까지 이것이 실제 상황인가 싶은 마음에 얼떨떨했던 것 같아요많은 음악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주홀로 꼽는 곳이자,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의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음악이 연주되어온 성스러운 곳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꿈같은 일이었어요.

그날을 되돌아보면 유독 선명히 기억되는 것들이 있을까요홀에 울리는 악기의 소리객석의 분위기… 어떤 것이든지요.
사실 연주 당일 심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어요상황에 대한 원망과 함께 무사히 연주를 마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컸죠그런데 리허설을 시작한 순간위그모어홀의 모든 것이 제 상황을 전부 잊게 만들었습니다과연 어떤 장소가 그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피아노는 말할 것도 없고소리를 전달하는 음향에도 그저 압도될 뿐이었죠크지 않은 홀에서 숨을 죽이고 저의 연주에 귀 기울여주는 청중들과의 특별한 소통도 경험할 수 있었고요.

남다른 의미를 가진 리사이틀인 만큼 프로그램을 두고도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1슈만의 ‘유모레스크’, 라벨의 ‘거울과 알베니즈의 ‘이베리아로 이어지는 레퍼토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구성하셨나요.
시대와 스타일에서 대조를 이루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었어요이를 위해서 많은 고민을 했고, 1부는 독일, 2부는 프랑스스페인 작곡가의 작품으로 구성했어요그중에서도 제가 좋아하고 또 저와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곡들을 연주하고 싶었죠.

오랜만의 한국 리사이틀이에요이번 공연에서는 브람스의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겠다고 발표했는데이런 결정을 내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20대 초반에는 슈만에 빠져서 그의 많은 작품들을 공부하고 연주해 왔어요그러다 어떤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그래서 지난해에는 그동안 공부하고 싶었던 여러 작곡가들의 다양한 곡들을 다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을 구상할 때 브람스 소나타 1번을 연주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김대진 선생님께서 소나타 전곡을 연주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도전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겁이 나기도 해서 용기를 내고 결정하는 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이지만다른 공연에서는 협주곡이나 실내악곡 등 협연을 통해 브람스의 작품을 연주한 경험이 있죠오롯이 피아노로만 연주되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이전과는 다른 접근이나 준비를 시도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독주곡을 접하기 전 실내악협주곡으로 브람스의 음악을 미리 접할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제가 이번에 연주할 소나타 세 곡은 특히나 매우 초기의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 당시의 브람스의 삶이 어땠는지에 대해 알아가고 있어요또 스스로가 훌륭한 피아니스트였던 만큼그의 연주 스타일은 어땠을지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생각하고 있고요.

(c)Jino Park



남다른 애정을 가진 작곡가이자첫 레코딩 앨범의 주인공이기도 한 슈만에 대해 “가장 솔직하고 인간적인 작곡가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죠그렇다면 브람스는 어떤 작곡가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저에게 있어 브람스는듣는 순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작곡가예요슈만의 곡들을 공부해온 만큼 브람스와 오랜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기에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하지만요그렇지만 브람스의 작품은 가슴 속 깊이 파고드는 떨림과 울림을 주는 동시에 이 세상을 완전히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줍니다그래서 연습하거나 연주할 때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하죠.

무대에 오르기 전혹은 피아노 앞에 앉기 전에 치르는 자신만의 루틴 혹은 의식이 있나요.
특별한 건 없어요리허설과 연주 사이에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야 하고무대에서 제 음악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그 전에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편안하고 안정된 상태로 만들며 준비를 해요.

연주와 연습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합니다피아노 밖에서 보내는 시간에서 연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하하특별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독서를 좋아해서 책을 자주 읽고반려견을 산책시키고가끔은 영화 보러 가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죠그러나 이 모든 시간이 연주에 영향을 미치고 반영된다고 생각해요그렇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고저에게 다가오는 모든 좋고 나쁜 일들이 다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여기려고 노력합니다.

고향 여수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16세때 서울에 올라와 비로소 피아니스트로서의 길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죠많은 연주자들이 어릴 적부터 영재로서 교육을 받으며 일찌감치 훈련을 시작한 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이러한 차이가 지영씨만의 스타일을 완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중·고등학교 과정 6년을 홈스쿨링으로 대신했는데그때야말로 아무런 걱정 없이 제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해서 보낸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제가 어떠한 경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스스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이었나 싶어요덕분에 여러 콩쿠르에 참여할 때도 그렇고지금도 마찬가지로 외부에서 오는 압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5년 부조니 콩쿠르 우승 이후 어느덧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우승 직후 생각했던 향후 연주자로서의 모습이 있다면 무엇인지실제 지금의 모습과는 얼마나 가까운가요.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이 달라진 것은 없어요제게 주어지는 연주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고길게 바라보며 예술가로서 성숙해 나가고 싶어요어떤 특정한 무대나 목표를 꿈꾸거나 욕심내기보다는 스스로가 나아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요.

최근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예술가는 누구였나요.
최근에 클라라 슈만의 제자였던 몇몇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유튜브로 찾아봤어요당시의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의 연주를 직접 듣고 그들에게 조언을 들었던 분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해요그들의 연주는 순수하고 자유롭고 아름다워요지금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그 점이 감동적이면서도 어딘가 씁쓸하더라고요.

어떤 이유에서든여운이 길게 남은 공연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어떤 특정 하루를 꼽기는 어렵고실내악을 할 때가 특별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실내악은 그야말로 마법 같다는 느낌을 주거든요연주를 마치고 나서도 며칠간 헤어나오기가 어려울 정도죠그런 의미에서 올해 5월에 예정되어 있는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의 무대도 정말 기대하고 있습니다.

올해로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전문사 과정을 졸업하며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몸 담아왔던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유럽 무대에서의 좀 더 활발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어요그래서 거주지도 유럽으로 옮길 생각을 하고 있고요이번 리사이틀 후에는 바이올린 듀오 공연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2021년에는 LA필하모닉에서 주최하는 ‘서울페스티벌에 참여해 독주와 실내악으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에요.

피아니스트 문지영의 꿈은 무엇인가요.
음악과 연주를 통해 스스로가 좋고 행복한 것을 넘어서는 사명이 무엇일지음악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는 요즘이에요음악가로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발전해나가는 연주자가 되고 싶습니다.

 

 

  ATTENTION PLEASE!
2020 세종체임버시리즈 <김다미 문지영 듀오>
4.28(화) 19시 30분에 네이버 TV에서 생중계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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