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향한 곳_뮤지컬 <사의 찬미> 배우 최수진, 최연우
그들이 향한 곳
1926년의 어느 깊은 밤, 검은 물결 속으로 몸을 던진 두 연인이 있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었다. 뮤지컬 <사의 찬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사람과 이들과 얽힌 미스터리한 인물 ‘사내’의 마지막 시간을 좇는다. 심덕 역의 배우 최수진, 최연우는 무대 위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시를 낭송하는 ‘詩語터(시어터)’를 찾았다. 이들은 서점에서 또 다른 항해를 떠났다.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속으로.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도진영
두 배우 모두 여러 시즌에 걸쳐 <사의 찬미>에 참여했다. 이번 공연이 지금까지의 공연과 달라진 부분이 있나.
수진 확신이 좀 더 생기면서 표현이 과감해진 것 같다. 이 확신은 캐릭터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다. 심덕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고, 그것을 대범하게 추구해나가는 사람이다. 이전까지는 나와 공통점이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었는데,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나 자신이 많이 바뀌었다. 지금은 여러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느낀다. 많이 편해졌다.
연우 내가 그리는 심덕은 자유에 집착하는데, 각자 전혀 다른 느낌을 지닌 ‘우진’과 ‘사내’를 만나면서 선택의 지점들이 굉장히 많이 변했다. 어떤 우진은 첫 등장부터 나를 흔들어놓고, 어떤 우진은 정말 죽이겠다고 생각하다가 막판에 마음이 바뀐다. 어떤 사내는 지옥 같은 삶에서의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고, 어떤 사내는 그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진짜 다 죽겠다 싶다. 심덕에게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경우의 수가 다양해서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가 된 것 같다. 목표지점은 같지만 그로 향하는 길이 다양해졌달까.
각자 ‘성년의 비밀’ ’겨울 약속’이라는 시를 골랐다. 시를 낭송하는 동안 서로 “너의 심덕과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였나.
수진 연우가 고른 시에는 어떤 확고한 중심이 느껴지는데, 그게 자신과 닮아있다. 저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이 있기보다 신앙에 의지하는 편인데, 연우는 겉으로는 작고 여리여리한 외모와 달리 단단하다. 동갑인데도 언니처럼 느껴지고, 한 번 같이 살아보고 싶을 정도로 알수록 매력있는 친구다. 연우의 심덕도 비슷하다. 세상의 날카로운 시선과 사랑하는 이의 흔들림이 그를 무너뜨릴 때, 그 단단한 사람이 좌절하는 순간이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연우 저는 ‘세상에 믿을 건 나랑 엄마밖에 없다’는 스타일인데 수진이는 정 반대다. 사랑이 참 많은 친구다. 배우의 연기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심덕은 어떤 캐릭터보다 배우 본인을 많이 반영하는 것 같다. 수진이의 심덕 역시 우진에게도 사랑을 주고 사내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다. 끝자락에 섰을 때의 마지막 선택 역시 사랑일 수밖에 없는. 참 예쁘면서도 그만큼 안타까운 캐릭터다.
작품 안에서 가장 시(詩)적이라고 느끼는 대사가 있다면 무엇인가.
수진 역시 “나는 찰나에 사는 사람이니까”다. 윤심덕이 실제로 남긴 말이라서 더 드라마틱하게 느껴진다. 사실 지금도 완벽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자신을 불사르는 그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표현했을까.
연우 “어차피 오래 살 생각 없어“. 정말 너무 행복하면 죽고 싶을 때가 있다. ‘이게 마지막 순간이라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마음에서. 그래서 대사에 담긴 순간의 미(美)가 좋다. 어쩌면 내가 이룰 수 없기 때문에 더 갈망하고 선망하게 되는 것 같다.
<사의 찬미>가 나에게 특별한 이유를 한 가지씩 말해본다면.
수진 이 작품 덕분에 확실히 성장한 부분이 있다. 공연 전 무대 바로 뒤에서 소품 정리를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극장 계단을 내려오는 관객들의 발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두 시간을 위해 먼 걸음을 하고 비용과 시간, 체력을 기꺼이 쏟은 이분들을 만족시키는 게 내 사명이구나, 하는. 그 앞에서 어떤 자만심도 가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관객을 위한 기도를 했다. 무대에서 좋은 기운을 드리는 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 순간, 아무것도 무섭지 않아졌다. 그것이 모든 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사의 찬미>가 준 소중한 선물이다.
연우 정말 사랑이 넘치는 친구 아닌가. 나는 ‘사명’ 같은 큰 단어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가자! 가는거야!’ 하는 스타일이다. 정말 이 순간 전쟁이 나도, 죽어도, 이 순간이 우리의 찰나의 순간이니까 불태워보자, 하는 마음이랄까(웃음). 개인적으로는 워낙 떠는 스타일이 아닌데 이번 공연 때는 유난히 긴장을 많이 했다. 배우들이 스스로에게 불신의 시선을 보내는 시기가 있는데 아마 그 때가 아닌가 싶다. 이 시간을 잘 보내고 나면 나에게 확신이 들지 않을까.
▶詩語(시어)터
시어터플러스와 혜화동의 시집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컬래버레이션 유튜브 프로젝트. 무대 위 공연의 감성을 고스란히 담은 시를 배우의 목소리로 낭송합니다. 영상은 시어터플러스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기사의 저작권은 ‘시어터플러스’가 소유하고 있으며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무단 편집 및 재배포 하실 수 없습니다. 해당 기사 스크랩 시, 반드시 출처(theatreplus.co.kr)를 기재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민·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