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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I’M NOT TIRED_뮤지컬 배우 강홍석

I’M NOT TIRED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진호


사람들은 강홍석을 두고 ‘남다른 DNA를 지녔다’고 입을 모은다. 관객을 순식간에 하나로 모으는 에너지와 카리스마, 그가 말한 ‘투포리듬’에 맞춘 자연스러운 몸의 표현, 드넓은 무대에 혼자 우뚝 서 있어도 모자라지 않은 그 무엇. 그가 춤을 추면 나도 모르게 몸이 좌우로 움직이고 그가 껄껄 웃으면 덩달아 재미있어지는데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뮤지컬 <데스노트>의 ‘류크’로 돌아온 그는 세상에 없는 상상의 캐릭터를 눈 앞의 현실로 만들어버리며 ‘싱크로율 120%’ ‘찰떡캐’라는 수식을 쏟아내고 있다.

 

쉼 없이 작품을 하시는 것 같아요.
재작년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 당시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해 드라마, 영화, 뮤지컬을 합쳐 여덟 작품을 했더라고요. 40시간 동안 잠 한숨 못 자면서 <시티 오브 엔젤> 공연하고 그랬어요. 워커홀릭이 되려고 했던 게 아니었는데 놓치고 싶지 않은 캐릭터들이 계속 생기니까 그렇게 됐죠. 한번 힘들게 하고 났더니 이제는 건강을 좀 생각해야겠구나 싶어요. 지금 이 정도는 정말 가뿐합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작품과 캐릭터 모두를 유심히 살피나 봐요.
예전에는 두루두루 봤는데 지금은 그냥 ‘느낌’을 봐요. 시놉시스나 대본을 읽었을 때 느낌이 팍 오면 바로 가죠. 느낌이 오지 않으면 몰입이 잘 안 되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작품의 폭이 좁아지는 느낌이랄까요? 좀 아쉬운 일이에요.

‘사신전문배우’라는 별명이 있지만 <시티 오브 엔젤>의 ‘스타인’을 기억하는 분도 많은 걸요.
제게는 정말 신선한 작품이었어요. ‘과연 할 수 있는 배역일까’에 대한 고민을 엄청했는데 연출님과 제작사 대표님께서 캐릭터와 어울릴 거라 자신감을 주셨어요.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고’를 떠나서 <시티 오브 엔젤>이 배우 강홍석 에게 좋은 연기 공부가 된 건 확실해요. 굳이 강렬한 역할만 하지 않아도 되는구나 생각했는데, 확실히 관객분들은 차분한 저를 보고 심심해하더라고요.(웃음)

<데스노트>를 세 번 연속 출연하신다는 건 이 작품의 ‘느낌’이 엄청나신 거네요?
새로운 프로덕션에서 제작할 거라는 소문을 들은 상태였는데 어느 날 ‘한 번 더 해보는 거 어때?’ 제안을 주셨어요. 너무 기분 좋았죠. 작품 자체가 워낙 강렬해서 푹 빠져 있는 상태로 초연과 재연에 참여했던 기억이 나요. 이번 공연은요, 보신 분들도 느끼셨겠지만 무대 볼거리가 엄청납니다. 저는 전 세계 3대 뮤지컬 시장이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그리고 한국 뮤지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뮤지컬 시장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세계 관객의 눈높이를 맞춘 것 같아요. 새로운 시도에 저 역시 깜짝 놀랐으니까요.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더라고요.
아직 저희 아버지, 어머니도 못 보셨어요.(웃음)

 

 

첫공이 끝나자마자 강홍석 배우의 류크는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평이 들려왔어요.
감사합니다. 신기하게도, 연습 때처럼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요. 함께 초연했던 광호 형(홍광호 분), 준수(김준수 분)와 셋이서 했는데 그냥 자주 보는 사람들끼리 하니까 무대만 바뀐 느낌이었다고 할까요.(웃음) 처음 맞춰본 분들과는 새로워서 설레고, 했던 분들과는 어떤 호흡이 나올지 알고 있기 때문에 편안하고요. 하루하루 너무 좋아요.

지난 시즌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류크의 모습이 있다면요?
초연과 재연 때는 빛과 어둠을 표현하기 위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망토를 펼치거나 표정 하나에도 때로는 연극스럽게, 때로는 현대무용을 하듯 예술적인 느낌을 전하기 위해 애썼다면 지금은 명확한 무대 연출 덕분에 오히려 심플하게 캐릭터에 접근할 수 있었어요. ‘데스노트’를 처음 읽었을 때의 류크 캐릭터에 대해 느꼈던 감정 그대로 표현했다고 할까요. 외모는 ‘쎈캐’지만 어딘가 만만해 보이고 어쩔 때는 깨방정스럽기도 하고요. 인간계를 방관하는 것 같으면서 개입하는 것 같고, 인간을 만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가 어느 순간 이용당하는 것 같고… 만화적인 느낌을 살리고 싶었어요.

원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첫인상은 어떠셨는데요?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은 다 공감할 걸요? ‘슬램덩크’와 ‘데스노트’를 빼놓고는 대화가 안 되던 시절이 있었죠. 그래서 제게 너무나 친숙했던 작품이 뮤지컬로 나온다고 했을 때 꼭 하고 싶어서 오디션 준비를 엄청 열심히 준비했었어요.

말씀하신 대로 류크는 정의로운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고, 그러다가 결국 데스노트에 라이토의 이름을 적어요. 아리송한 사신이에요.
저는 류크가 이 서사의 ‘사회자’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공책을 떨어뜨리고, 자신이 깔아놓은 판에서 인간들이 노는 걸 지켜봐요. 저 애가 지쳐 있으면 텐션을 좀 끌어올리고, 또 다른 애가 흥분한 것 같으면 다운시키면서 바람잡이 역할을 하죠.

그런 면에서 같은 사신인 렘이랑 구분이 되네요.
완전 그래요. 렘은 그냥 앞만 봐요. 인간에 대한 애정, 미사에 대한 애정만 바라보고 결국 죽음을 택하니까요. 류크는 놀다가 재미없으면 다시 하늘로 올라가고…

류크는 심심하다는 이유로 인간 세상에 데스노트를 떨어뜨리잖아요. 어떤 일이 벌어지길 바란 걸까요.
그냥 재미만 쫓는 것 같아요. 공책을 떨어뜨리는 행위가 사신계에서 올바른 걸까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요. 대본에는 렘의 이런 대사가 있거든요. “류크, 그러면 안 돼.” 분명히 사신계에서 혼나야 하는 행동일 거란 말이죠. 학교에 서도 꼭 선생님 말 안 듣는 애들 있잖아요. 류크는 사신계의 장난꾸러기, 악동이 아니었을까요. 블랙 커피를 앞에 두고 “저 커피 흰색이잖아.” 계속 반대로 얘기하면서 사람들의 상황을 살피는 아이 같은 느낌… 1막 9장을 보면 라이토 앞에서 심심해 죽겠다고 칭얼대면 장면이 있거든요. 라이토보다 더 애기 같아요.

근데 또 아주 나쁘지 않아서 미워할 수가 없어요.
맞아요. 왜 나쁘지 않을까도 생각했는데, 뮤지컬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류크가 완벽한 악당이라면 전체적으로 처지고 무거워질 테니까요. 원작자도 이 작품이 끔찍하고 무거워지는 걸 바라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류크의 사과 깨무는 소리가 굉장히 강렬했다는 점이었어요.
인간의 심장이라고 생각하면 아찔해지는 느낌이 있죠?

아, 의미심장하네요.
지난 시즌에 류크가 사과를 먹을 때 강렬한 소리가 나면 어떨까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연출님께서 제 생각을 아시고 먼저 말씀하시더라고요. 저와 마음이 맞아서 반갑고 좋았어요.

작품의 넘버도 현대적이라 강홍석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좋지요. 클래시컬하거나 템포가 맞지 않으면 좀 늘어지게 되거든요. 일명 ‘투포리듬’을 참 좋아해요.

무대 위의 강홍석을 보면 가끔 국적을 의심할 때가 있죠.
어렸을 때부터 힙합을 좋아했어요. 고등학교 때도 친구들이 가요를 들을 때저는 팝송을 들었으니까. 스티비 원더, 루더 밴드로스, 투팍, 나스, 소울틱한 흑인음악들… 저희 어머니 에너지가 정말 엄청나세요. 옛날 동네 노래 자랑에 나가서 맨날 1등 하셨는데 그 피를 물려받은 게 아닌가…

<킹키부츠> 보시고 좋아하셨겠어요.
너무 좋아하셨죠. 자기랑 똑같이 생겼다고요.(웃음)

드라마에서도 강렬한 연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 그런 작품에 더 끌리시나봐요.
제 생김새가 특이하잖아요. 목소리가 탁성이기도 하고요. 뮤지컬 배우분들 중에는 성악을 공부하신 분이 많은데 저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고, 어찌 보면 이단아에 가까워요. 그러다 보니 독특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제안주시는 것같아요. 재미있는 건 드라마에서도 자꾸 독특한 역할이 들어온다는 거.(웃음)

노래, 춤, 연기가 다 되는 분이잖아요.
<스트릿 라이프> 작품을 하면서 춤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댄스 학원을 다녔어요. 1년 반 동안 매일 일주일에 두 번씩 레슨을 받았는데 지금은 또 몸이 살짝 굳은 상태예요.

작품을 위해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부분은 연기인가요, 노래인가요.
연기요. 연기는 놀라워요. 대본을 보면 볼수록 새로운 게 계속 나오거든요. 제가 대본을 진짜 많이 들여다봐요. 열심히 분석하고 계산한다기보다 그냥 계속 봐요. 소주 한 잔 하다가 갑자기 가방에서 대본 한 번 꺼내 보고, 밥 먹다가 대본 보고… 볼 때마다 달라지는 부분도 있고 더 명확해지는 부분도 있어요. <하데스타운>의 경우에는 대본이 너무 어려워서 눈물 날 정도로 힘들었어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단편적인 사랑 이야기로만 알고 달려들었다가 혼쭐났죠. 환경, 인종 등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거론되니까 헤르메스라는 캐릭터가 품어야 할 게 너무 많은 엄청난 존재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대본을 보면 볼수록 새로웠어요.

 

 

생각해 보니 <하데스타운>의 헤르메스도 사회자네요. 사회자만 무려 1년 가까이 하신 셈이에요.
<나폴레옹>의 탈레랑, <엘리자벳>의 루케니도 사회자 역할이네요. 신기해라.

<하데스타운>의 공연 기간이 길어 힘에 부칠 때도 많았을 것 같아요.
작품이 너무 좋아서 행복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고요. 우리나라에서도 분명히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있는데 여건이 허락하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제작비와 기간만 충분하다면 우리나라 이야기를 소재로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해외 관객에게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같거든요. ‘금도끼 은도끼’랄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같은 전래동화로도 훌륭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많은 작품 중 <데스노트>가 특별한 이유는 뭘까요.
강홍석이라는 사람을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도와줬던 작품이 <킹키부츠> 라면, <데스노트>는 많은 분들에게 저를 알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준 작품입니다. 원작의 힘도 세고 캐스팅도 좋고요. 이 속에서 저의 연기,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선보이게 되어 감사할 따름입니다.

앞으로 꼭 한번 해 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얘기가 있어요. <알라딘>의 지니는 무조건 해야 한다고. 마치 이 역할은 ‘네가 아니면 안 돼’라며 누군가 속삭이고 있는 느낌이에요. 만약 몇 년 안에 이 작품이 들어온다면 오디션 열심히 준비해서 꼭 하고 싶고요. 다음으로 욕심나는 작품은 <해밀턴>입니다.

<해밀턴> 작품과 너무 잘 어울리네요.
브로드웨이에 갔을 때 티켓이 무려 3백만 원이라 너무 비싸서 못 봤어요. 한창 인기있을 때라고 하지만 3층 맨 끝자리가 50만 원이더라고요. 나중에 OTT로 봤는데 정말 새롭고 좋더라고요. 연기, 음악, 아이디어, 연출 등 그냥 끝내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많이 받아 보셨을 마지막 질문, 어떤 배우로 남고 싶으신가요.
이 질문을 받으면 제 삶을 돌아보게 돼요. 어떤 배우가 될 것이냐,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냐… 지금은 현재에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1, 2년 뒤를 바라볼 필요도 없고, 내일도 바라볼 필요 없고, 지금 이 순간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땀 열심히 흘려가면서 많은 분들에게 내가 했던 고민들, 내가 연습했던 것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관객에게 박수 받을만한 사람이기를 바라고요. 지금을 즐기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거 말고 더 좋은 말은 없는 것 같습니다.

 

Attention, Please!
뮤지컬 <데스노트>
기간 2022년 4월 1일-6월 26일
시간 19:30(화·목·금) |14:30 수 |14:00 19:00 주말 및 공휴일
작곡 프랭크 와일드혼
연출 김동연
출연 홍광호 김준수 고은성 김성철 김선영 장은아 강홍석 서경수 외
문의 1588-5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