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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눈이 먼 한 남자의 로드드라마_무토 박우재X입과손스튜디오 이향하

눈이 먼 한 남자의 로드드라마

두 개의 눈. 한자로는 ‘이안(二眼)’이랄까. 혹은 다를 이(異)를 써서 ‘이안(異眼)’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다른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 2023 쿼드초이스 ‘무토×입과손스튜디오의 <두 개의 눈>’은 전통 판소리 ‘심청가’를 심청이 아닌 심학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작품이다. 주인공도, 그래서 내용도, 음악도, 영상도 어느 하나 옛 것과 같은 게 없다. 이 두 눈의 홍채 격인 무토의 박우재, 입과손스튜디오의 이향하를 만나보았다.
editor 김일송 photographer 문겨레


박우재먼저 두 분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두 분의 단체 소개도 함께.
박우재 저는 무토에서 거문고를 맡고 있습니다. 무토는 두 명의 음악가와 두 명의 비주얼을 다루는 시각 아티스트로 구성된, 조금 특별한 형태의 밴드라고 소개할 수 있어요. 음악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게 해석할 건지, 또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음악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한국적인 색채들을 어떻게 담을 것인지에 대한 작은 물음표를 던지는 팀입니다.
이향하 저는 고수(鼓手)입니다. 입과손스튜디오에서 음악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과손스튜디오는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을 의미하고요, 소리꾼 둘, 고수 셋, 그리고 프로듀서 하나, 이렇게 6명이 공동 창작을 하는 단체입니 다. 저희는 판소리가 가지고 있는 연희적인 특성들을 활용해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고 있어요.

두 단체가 처음 협업했을 때, 입과손스튜디오가 아니라 ‘포스트MNH’로 활동 하셨더라고요.
이향하 무토와 작업하기 이전에는 모든 작업을 함께 했어요. 처음으로 외부단체와 본격적으로 컬래버레이션한 작업이 <두 개의 눈>이었는데, 당시 각자의 일정상 모든 멤버가 함께하지는 못했죠. 그래서 아이돌그룹의 유닛 활동 개념으로 포스트MNH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입(mouth)의 M, 손(hand)의 H를 넣어서. 그러다 이 작업을 계속하면서 이 작품이 입과손스튜디오의 고민과 맞닿은 지점이 있어서, 두 번째 공연부터 입과손스튜디오라고 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두 단체가 협업하게 되었나요? 누가 제안을 하셨는지.
박우재 처음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창제작 공연을 제작하게 되었는데, 예술극장 극장1이 아주 크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판을 벌일까 고민하다가 극적인 요소를 넣자고 했죠. 그때 제가 개인적으로 입과손스튜디오를 상당히 좋아하고 있었어요. 공동 창작의 의식도 가지고 있어서, 입과손스튜디오와 함께 우리 판소리의 한 대목이나 한 과장을 미디어아트와 버무리면 극장의 미션이 해결될 것 같아서 연락했어요.

극장의 미션이라면?
박우재 미디어와 접목한 전통 소재의 대극장 공연이라는 미션이요. 그렇게 시작한 다음에, 이제 어떤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과손스튜디오랑 대화를 나눠가면서 정했어요. 최종적으로 심청 이야기의 플랫폼을 가져오기로 해서 <두 개의 눈>이라는 작품이 나온 거죠.

그 많은 작품 가운데 심청가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향하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한 바탕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다, 박우재 선배님이 심청가를 다뤄보면 어떻겠냐고 먼저 제안을 주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심청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죠. 심청가라는 게 어찌 보면 효에 대한 판타지인데, 지금의 우리에게 그리 맞지 않은 이야기잖아요. 심청이 우리에게 와 닿지 않는 인물이랄까. 그러면서 심청가를 제대 로 들여다보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그래도 우리가 전통을 하는 사람이니까, 심청가를 일상을 사는 사람들한테 당겨올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심봉사의 눈부터 시작해서, 아내, 여자, 딸까지 다 잃어가는 이야기를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별 반대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발전한 것 같아요.

두 단체의 역할 분담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박우재 무토에서는 이 이야기를 ‘무대 공연화’시키는 방식을 고민했어요. 연출적인 부분, 비주얼아트, 그리고 판소리가 있으니까 반주라고 할까요, 배경 음악들을 담당했어요. 테크노가 강세인 이디오테잎의 제제(신범호)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거문고를 연주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박우재, 이 둘이 합쳐진 이 색깔과 판소리라는 영역을 어떻게 섞을 것인가를 고민했던 거죠.

판소리는 처음이셨던 건가요?
박우재 무토의 경우, 그동안 전통 음악에 관련해서는 작은 경험들밖에 없고, 본격적으로 해본 기억도 없어요. 경기민요를 음악적으로 해석해보는 작업은 있었지만, 극이 있는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무대 위에서 펼치는 건 <두 개의 눈>이 처음이었어요.

아, 저는 판소리도 음악의 한 장르라고 생각해서, 소리와 음악, 영상의 만남이 라는 문구가 낯설었던 것 같아요.
이향하 판소리라는 게 그냥 음악으로만 설명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어요. 그러니까 <두 개의 눈>은 입과손스튜디오의 (판)소리와 무토의 음악, 그리고 미디어의 결합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음악적인 질문을 안 드릴 수가 없는데, 판소리에도 기본적인 선율 같은 게 있 잖아요. 그러면 작곡하는 입장에서 편할 수도 있고, 한편으론 제한적이라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박우재 우선 노래가 완벽하게 있어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장점이죠. 노래만 따라가도 되니, 따로 반주를 만들지 않아도 되잖아요. 우리나라 성악이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징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슬픔을 표현하는 계면조가 같은 경우 굵게 떨거나 슬프게 읊조리는데, 그런 부분들이 자칫 잘못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을 어떻게 다르게 들리게 할 것인 가를 표현하는 게 힘들죠.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음악이 인물을 대변하기도 하고, 어떤 장면에서는 배경으로 들려야 하기도 해서 그런 안배를 하는 게 어 려우면서도 재밌는 작업이죠.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 심봉사의 감정을 표현 할 수도 있고, 판을 설명할 수도 있고, 전지적 시점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 질 것인지 골라서 다르게 작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두 개의 눈>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이향하 제목은 무토의 박훈규 감독님이 제안해 주셨어요. 사담이지만 판소리는 말이 엄청 많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구구절절하게 표현하는데, 무토는 그걸 굉장히 직관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서 직관적인 심상으로 표현해주세요. 그런 연습 과정에서 박훈규 감독님이 “저는 이게 두 개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공표하시면서, <두 개의 눈>이라는 제목이 정해진 거예요. 그러고 나서 두 개의 눈을 공연의 전체적인 의미로 가져가면 좋겠다고 해서, 의미가 붙여졌어요. 어떻게 보면 이 공연이 전통과 현대를 잇는 두 개의 눈일 수도 있고, 무토와 입과손스튜디오의 두 개의 눈일 수도 있고, 심학규가 눈을 뜨기 전과 뜨고 난 후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판소리에 ‘이면’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눈에 보이는 것 뒤에 있는 실체를 가리킬 때, ‘이면’이라는 단어를 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이 이면을 찾는 ‘두 개의 눈’이라는 의미로 심청가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게 이번 쿼드 공연에서는 2개의 LED를 통해 더 직관적으로 표현 될 예정입니다.

이번에 대학로극장 쿼드에서 공연되는 <두 개의 눈>은 이전과 무엇이 다른가요?
박우재 이전에는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공연이 진행됐었는데, 이번에는 가변형 극장이라, 그런 특징을 살려서 런웨이 형식으로 관객분들이 3면에 앉고, 객석에서 무대까지 긴 런웨이에 LED가 있고, 다시 천장으로 올라가는 LED가 세워지고… 그리고 관객 위로도 LED가 설치될 예정이에요. 무토 공연에서 자주 사용되는 빨간색 레이저로 된 모습들도 확인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해서 관객들이 앉는 위치에 따라 다른 영상을 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두 개의 눈’이랑도 연관되고요. 눈이 두 개, 혹은 인물이 둘, 혹은 우리의 마음이 둘, 혹은 아까 판소리의 이면처럼 표면적인 이야기와 뒤에 있는 또 다른 이야기. 이렇게 여러 다른 모습을 상상할 수 있도록 실험하는 중입니다.

내용상의 변화는 없는 건가요?
이향하 큰 변화는 없고요. 다만 저희가 4년 동안 이 공연을 해오면서, 이야기가 심봉사의 이야기로 귀결될 수 있도록 조금 정교해졌어요. 그리고 이전에는 심봉사의 목소리를 소리꾼이 이야기하기도 하고 다른 배우가 나레이션을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박우재 선배의 목소리로 거문고 연주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전달할 예정이에요.

내용상의 변화가 없다고 하면 독자들이 오해할 수 있겠네요. 이 작품은 심학규의 시선으로 재해석해서 원래 심청가에 없던 장면도 추가되었으니까요.
이향하 판소리에 더늠이라는 게 있는데, 소리꾼이 자신이 이야기를 더 넣거나 장기로 삼는 대목을 말해요. 저희는 첫 번째 의미를 살려서 무토와 입과손스튜디오의 더늠을 세 군데 넣었어요. 첫 번째 더늠은 곽씨 부인이 죽고 나서 혼자 남은 심봉사가 “눈 없는 내가 너를 진짜 어떻게 키울까”라며 자장가를 부르는 대목이에요. 두 번째 장면은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질 때 도화동에서 절규하는 심봉사의 장면이에요. 마지막으로 심봉사가 뺑덕어멈하고도 이혼하고 목욕을 하는데, 저희는 그게 어떤 의식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 심봉사의 솔로곡을 추가했어요. 그 곡은 고가신조 중에 ‘북천이 맑다커늘’을 차용했어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 부르면서 대중가요로 편곡되기도 했는데, 원래는 조선 시대 어떤 선비와 기생의 사랑 이야기에요, 그 가사를 그대로 가져와서 사용했어요.

심학규의 로드무비라는 표현도 보았습니다.
박우재 아주 세련되지는 않지만, 영화적인 구조를 차용했어요. 그러니까 공연은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플래시백으로 과거의 일들을 보여주고, 다시 현재로 오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대개 로드무비라고 하면, 주인공이 여행 중 이런저런 고생을 하다가 무언가 성찰하게 되잖아요.
이향하 심봉사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안보이는 게 아니라 후천적 시각장애인이거든요.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면서, 심봉사는 눈만 잃었는데도 삶 전체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살았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사실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순간들도 있었는데, 좋은 추억을 잊고 살았다는 걸 나중에 깨닫게 돼요. 어쩌면 이 공연을 영화관에서 보신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영화관에서 보는 것과의 차이를 소개해주시면 어떨까요?
박우재 국립극장에서 공연 실황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었던 터라 특별히 다른 점은 없었어요.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죠. LED에서 나오는 영상을 다시 카메라로 찍어서 보여주다 보니 화질이 깨지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이향하 저희 공연은 바라볼 것들이 굉장히 많아서 관객들이 선택적으로 향유해야 되는 공연인데, 영화관에서 보게 되면 다 똑같은 장면을 볼 수밖에 없잖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부분이 아쉽더라고요. 실제 공연을 보면 어떤 분은 영상을 위주로 보시고, 어떤 분은 정말 거문고 연주를 보시는 등 선택적으로 볼 수 있는데, 영화관에서는 보여주는 장면만 봐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남기고픈 말씀이 있다면요.
박우재 <두 개의 눈>이 단순히 판소리 심청가를 지금을 사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쉬운 음악으로 변환한 작업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조금 다르게 보고 싶어 하는 예술가들의 선천적인 욕구가 발현된 작품이고요, 그래서 관객분들도 다르게 체험하시라고 열린 결말로 구성했어요. 쿼드에서도 레디투고(ready to go)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오뜨꾸뛰르(haute couture) 같은 공연을 보여주잖아요. 그런 점에서 <두 개의 눈>이 적절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 것들을 관객분들이 즐기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향하 판소리는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는 장르인데, 저희가 무토를 만나면서 어떻게 보면 딱 배반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이야기하고 말하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미디어아트와의 협업이니까요. 처음에는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새로운 감각으로 판소리를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감상의 지점이 있는데, 관객분들께서도 판소리가 이렇게 새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며, 새로운 감각의 판소리를 감상하러 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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