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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계속 그렇게 연기하는 사람으로_연극 <2시 22분> 배우 최영준

계속 그렇게 연기하는 사람으로

인터뷰를 다하고 녹음기를 끄자마자 최영준이 묻는다. “저랑 인터뷰하는 거 재미있죠?”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문겨레


새벽 2시 22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제목부터 뭔가 오싹한 이야기일 것 같은 연극 <2시 22분-A GHOST STORY>는 웨스트엔드 최신작이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부부인 샘과 제니는 얼마 전 이사했다. 샘은 새로 이사 온 집에 오랜 친구 로렌과 그녀의 남자친구 벤을 초대한다. 제니는 이들에게 똑같은 시간 집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이 이 현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도록 새벽 2시 22분까지 깨어 있자고 제안한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을 두고 4명의 배우는 각자 다른 신념과 믿음으로 때로는 차갑게, 때로는 뜨겁게 충돌한다. 영화와 드라마, 무대 위를 골고루 소화하고 있는 배우 최영준은 이 작품에서 ‘샘’을 맡았다. “사물은 절대로 그냥 나타났다 저절로 사라질 수 없어요.”라는 샘의 대사처럼,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이 스스로와 너무 닮았다고 하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확실한 건 좀더 나은 연기자, 좀 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이 작품에 합류하게 되었나요.
제가 무대에서 공연한 지 16년쯤 됐는데 신시컴퍼니랑 한 번도 작품을 못 해봤어요. 이렇게 큰 프러덕션에서 연락이 오니 신기하기도 하고, 솔직히 말해신났어요. 그래서 대본 받기도 전에 한다고 했죠.

무조건요?
네. 하겠다고 한 뒤 읽었어요.

읽어보니 어떠셨어요?
엄청 재미있고 읽으면서 막 궁금했어요. 공연을 처음 보는 이들은 (저도 그랬듯이) 굉장히 충격적일 것이고, 반전이 강력해서 재관람이 쉬울까? 약간의 우려도 있지만 구현을 잘하면 정말 괜찮은 작품이 될 것 같았어요. 요즘에는 다들 할 말이 많으셔서 작품 자체가 다소 장황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작품은 포커스를 맞춰 놓고 할 얘기만 딱 해요. 그 역시 매력적이에요.

대개 처음에는 전체적인 흐름 위주로 대본을 읽고, 이후에는 자신이 맡은 인물 위주로 읽게 되잖아요. 샘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실 저는 샘하고 좀 비슷한 데가 있어요.

앗, 저는 벤하고 비슷하겠거니 생각했는데…
저는 벤하고 전혀 달라요. 벤 같은 사람 싫어해요.(웃음)

그렇다면 역할에 몰입하기 수월하겠어요.
진짜 좀 그런 것 같아요. 샘처럼 대놓고 깐죽거리지는 않지만 저도 직설적인 편이고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얘기하는 편이어서… 그래서 샘을 이해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리딩할 때 다들 샘이 얄밉다고 하는데 전 왜들 그러시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느 지점에서 얄미운 거지? 그냥 할 수 있는 얘기, 마땅히 해야 될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말이죠.

거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해서 그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편이에요. 일할 때는 더 그래요. 기다려주고, 돌려서 말하고, 배려하는 일 등이 가끔 시간 낭비처럼 느껴지거든요. 뭐가 눈에 걸리면 바로 얘기하는 편이긴 해요. 물론 상대가 상처를 받을 수 있으니 자알~ 얘기하긴 합니다.

상처 받았다는 분이 계신가 보네요.
엄청 많이 들었죠.(웃음) 지금은 한결 덜해요. 20대 후반이 제일 피크였던 것 같아요. 심지어는 상처받는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들어서 “상처받는 네가 잘못한 거야.” 이렇게 얘기했었고, 상대가 “서운해.” 하면 “아니야. 서운한 감정이 든 네 잘못이야.” 이렇게 답해줬어요.

재밌네요. 근데도 주위에 사람 많으시죠?
많아요. 그래도 저라는 사람은 조금 폐쇄적인 편이고 인간관계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만나는 사람만 만나는 편이고,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자리를 막 좋아하지도 않아요. 낯도 가리고요. 모르겠어요. 사람한테 뺏기는 에너지가 제일 많은 것 같아서 잘 안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

제작사에서는 최영준 배우의 성격을 아신 걸까요. 본인과 비슷한 캐릭터로 제안하신 걸 보면.
그래서 저도 연출님께 여쭤봤어요. 제가 지금까지 맡았던 역할을 보면 착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닌, 혼란이 오는 인물들을 많이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샘에게도 ‘이 사람이 좋은 남편이야? 나쁜 남편이야?’ 갸우뚱하게 되는 지점이 있어요. 연출님도 그러시더라고요. 제게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분간이 잘 안 되는 이미지가 있다고요. 다른 분들이 보는 제가 있는 거니까 인정을 해야겠죠?(웃음)

제니 입장에서 샘은 좋은 남편일까요, 안 좋은 남편일까요.
만약 제 여동생이 샘하고 결혼한다면 저는 말려요. 저렇게 꼬치꼬치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얘기하는 사람과 어떻게 살아요! 저는 그래도 공사 구분을 좀 한답니다.(웃음) 밖에서는 말도 덜 하고 날카로운 면도 있지만 집에 들어오면 제가 엄마와의 관계를 엄청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거든요. 샘은 이렇게
못하잖아요. 집에서도 밖에서 하는 그대로, 학생들 가르치듯이 아내한테 똑같이 하고 있는 거니까.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제 여동생이 샘하고 결혼한다 그러면 암튼 말릴 겁니다. 샘 스스로는 좋은 남편이라고 생각하겠죠. 자신이 사람들을 바로 잡아주고 있다고 느끼니까.

이 작품에서는 귀신(영적 존재)을 믿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대립하기도 해요. 배우님은 어느 쪽인가요.
영적인 영역이 있다고는 분명히 생각하지만 귀신이 무섭지는 않아요. 예전에 실제로 귀신을 본다는 친구가 있어서 어떻게 생겼냐고 계속 물어보기도 했고, 지금도 공포 영화 보는 거 좋아해요.

이 작품이 웨스트엔드에서 인기가 많았을 뿐 아니라 상도 많이 받았더라고요.(※2022년 WhatsOnStage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 연극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 연극 부문 최우수 남 우조연상 수상, Laurence Olivier 어워즈에서 최우수 신작 연극, 여우주연상, 최우수 음향 디자인상 부문 노미네이트) ‘A GHOST STORY’라는 부제를 단 연극이 상까지 받은 게 신기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귀신 얘기를 덮어씌운 소통에 대한 얘기인 것 같아요. 모두 이해의 부제가 있거든요. 커플끼리 모였지만 관계들이 썩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좋고 나쁨도 드러나요.

지금 공연과 방송 통틀어 4작품을 하고 있어요. 체력적으로 괜찮은가요.
예전에 번아웃이 될 뻔해서 매니저랑 아주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지금은 괜찮아요. 스케줄 조절이 가능해서 충분히 할 만해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작업과 무대 위의 공연을 계속 병행하고 있잖아요. 즐거움이나 감각의 차이가 있나요.
제가 서른아홉에 <아스달 연대기>라는 작품으로 카메라 앞에서 처음 섰을 때 당시 공연계 선배들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너, 지금 가면 재미없어서 금방 온다.” 저는 그 말이 너무 싫었어요. 한 두 달 드라마를 찍고 있는데 진짜 재미가 없는 거예요. 아,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했다가 문득 선배들이 했던 얘기가 생각나더라고요. ‘지면 안돼!’ 혼자서 막 재미를 찾기 시작했어요. 누가 뭐래도 배우에게 본연의 임무는 연기잖아요. 무대에서는 카메라 없어도 계속 연기를 해야 하는데, 드라마 촬영장에서는 “카메라 안 돌아가는데 왜 연기하고 있어?” 살짝 민망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어요. 처음에는 똑같이 휘말려서 민망해 하다가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여기 뭐 하러왔지?’ 정신 차리게 되더라고요. 연기하러 왔기 때문에 카메라가 없어도 저는 계속 연기했어요. 그랬더니 이 세계가 이해가 되고 제가 서 있는 이곳이 믿어지면서 재밌어지더라고요. 지금은 솔직히 똑같아요. 대신에 무대 위는 관객을 직접 만나니까 반응에 대한 힐링이 좀 있죠.

노래를 잘 부르셔서 가수도 하셨는데 지금은 누가 뭐래도 배우고 연기자세요. 연기가 왜 좋으세요?
중학교 2학년 때, <서울의 달>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김홍식을 연기한 한석규 선배님께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나도 저런 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으니까. 이후에 뭐 질풍노도의 시기가 와서 다 잊어버리고 놀러 다녔지만요.(웃음) 대학 입학할 때 창피한 얘기지만 저는 연극과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노래 좀 할 줄 아니까 친구가 노래로 학교 갈 수 있다고 해서 음악 쪽으로 간 거거든요. 근데 들어가고 나니 연극과가 딱 있는 거죠. “아, 이거 할 걸.” 후회를 좀했어요. 연기를 엄청 하고 싶어서 가수 생활 할 때도 ‘잘 돼서 연기해야지.’ 이런 생각을 품었던 것 같아요. 딴 맘 먹으니까 잘 안 됐죠!

세븐데이즈(7Dayz) 멤버가 정말 좋긴 좋았어요.
멤버들은 완전히 음악에 몰두하는 친구들이었고 지금도 너무 잘하고 있어요. 저는 ‘예능 해야지, 스타 해야지, 연예인 해야지’ 좀 이랬어요.

지금은 그런 생각 전혀 없죠?
전혀요. 제 사생활이 침해되면서, 제 삶을 누리지 못하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배우로서는 더 가야 할 바가 있고 가고 싶은 곳도 있기에 그걸 위해 열심히 살겠지만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는 건-잠깐이었으나-예전에 해봤어요. 별로 미련이 없어요.

연기를 할 때 얻는 희열은 무엇인가요.
저는 저라는 사람한테 별로 자신이 없어요. 근데 연기는, 물론 나쁜 역할도 하지만, 말 몇 마디로 내가 좋은 사람이 되잖아요. 저는 이게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이 되어볼 수 있는 점이 제일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짧지만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거. 어쨌든 저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연기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인물처럼 되고 싶었던 역할은 누구였어요?
2017년에 <경식아 사랑해>라는 연극이 있었어요. 서울에서 가까운 시골 마을에 영배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해외에 있어서 한 동네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애지중지 키워요. 그런데 영배가 갑자기 공부하러 미국을 간다고 해서, 온 가족이 총출동해 손자 유학을 막으려고 장가보내기 대작전을 펼쳐요. 이 작품에서 제가 친할아버지 역할을 했거든요. 어찌보면 강압적이기도 한데 완전 츤데레에다 굉장히 멋있었어요. 겉으론 무뚝뚝해도 할아버지와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이분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서 어떻게 행동해도 다 믿어줘요. 그 역할을 하면서 이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손자는 미국을 갔나요?
가려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못 갔어요.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손주의 꿈에 나타나 가지 말라고 아주 으름장을 놔요. 최근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의 방호식도 제게는 멋진 아빠였어요. 어렸을 때 유혹에 휩쓸려 다니다가 딸내미 때문에 정신 차리면서 사는 사람. 저는 그런 ‘계기’가 있는 사람이 좋아요.

 

배우 소개하는 글이나 영상을 보면 ‘오디션 제안이 오면 역할, 감독, 주연 같은 거 묻지 않고 무조건 간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조금 정정할 필요가 있긴 한데, 지금도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부르면 무조건 가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나를 알고 부르는 걸 테니까 저를 아무데나 쓰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배우님’이라는 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왜죠?
배우들이 스스로를 높이는 계기가 돼버려서요. 배우들이 배우님 소리를 듣고 대우를 받은 만큼 더 열심히 연기를 하면 좋겠어요. 저는 어쨌든 죽을 때까지 ‘을’로 살고 싶어요. 저도 가끔 무서울 때가 있거든요. “왜 자꾸 오래 기다리게 해”라고 말하다가 “아니지. 기다리는 것도 나의 일인데.” 스스로를 다독여요. 감독님이나 작가님께서 “여기 톱니바퀴가 있는데 너가 이만큼 들어와야 완성이 돼.” 이러면 무조건 가야 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

저는 좀 대단하다고 진심으로 느껴져요.
아, 아니에요. 당연한 겁니다.

연기를 할 때 고민을 좀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본능적으로 하는 편인가요?
일단 초독을 제일 좋아해요. 처음 읽은 그 이미지를 제일 좋아하고, 그 이미지가 맞다고도 믿어요. 대신에 작업하면서는 생각을 엄청 많이 해요. 상의도 많이 하고 배우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근데 이런 작업은 결과적으로 생각을 안 하려고 하는 거에요. 올라가면 다 비우기! 이게 좋아요.

공과 사에 대한 구분이 확실하다고 했는데 일하지 않을 때는 뭐하세요?
프라모델이나 레고… 하루 종일해요.

하루 종일이요?
네. 열 시간씩. 꽤 오래 했다가 중간에 경제적으로 힘들었을 땐 못했어요. 그러다 작년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집에 많아요?
엄마가 제발 이거 좀 치워라, 정신 사나워 죽겠다고 하세요. 직업상 생각을 많이 하니까 자꾸 단순한 거를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완성하기까지 별도의 공정이 있지만 그 공정들이 굉장히 단순해요. 정말 아무 생각 안하고 그것만 할 수 있어요.

생각을 비우는 건가요?
네. 그냥 음악 하나 틀어놓고 해요. 열 시간 그냥 앉아 있어요. 하다 보면 밤이 되고.

어떻게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정말 어려운 일인데, 모르겠네요. 음, 저는 ‘고민자’였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느끼기에 고민하는 사람처럼 보였으면 싶어요. 죽을 때까지요. 저도 이제 기술이 생기다 보니 별 고민없이 연기할 때가 생기는데, 그렇게 완성한 작업은 결과물이 좋지 않더라고요. 역시 나는 좀 더 고민하고 생각을 해야 결과물이 좋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저 사람은 그래도 쉬운 거 내놓지 않고 좋은 거 주려고 애쓰고 있구나’라는 인식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우리가 고민하는 이유는 관객들이나 시청자들이 편하게 듣고 보기 위해서 잖아요. 어렵게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거든요. 배우의 언어가 있고 배우의 뜻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게 저는 가장 쉬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지금 제가 마흔넷이니까 한 15년 더 하다 보면 그때는 ‘이런 배우다’라는 수식이 생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거창한 이야기를 하는 건 너무 쑥스러워요.

 

ATTENTION, PLEASE
연극 <2시 22분 – A GHOST STORY>
기간 2023년 7월 19일-9월 2일
시간 화-금 19:30|토-일 14:00 18:30 (월 공연 없음)
장소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가격 VIP석 9만원|R석 7만 원|S석 5만 원
출연 아이비, 박지연, 최영준, 김지철, 방진의, 임강희, 차용학, 양승리
문의 02-577-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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