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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규정 짓고 싶지 않아요_연극 <테베랜드> 배우 이주승

규정 짓고 싶지 않아요

 

editor 김일송 photographer 문겨레


S 이런 식으로 불쑥 시작해도 될까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 잘 지내시고 편안하시길 바랍니다. 환영합니다. 저는 우리가 왜 여기 있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여러분께 설명하려 합니다. 저는 배우 인터뷰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연극 <테베랜드>의 이주승 배우를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을 보여주면 어떨까요? 괜찮죠? 좋습니다. 어느 여름 아침이었습니다. 조금 더웠죠.
이주승 안녕하세요?

 농구 좋아하나요?
이주승 좋아하는데 잘하진 못해요. 배워야 할 것 같아서 센터에 다니고 있어요. 연습 때문에 자주 가진 못하지만 재미있어요.

 어떤 게 재미있어요?
이주승 시야를 넓히는 연습을 하고 있거든요. 앞을 보면서도 공을 튀길 수 있게. 그렇게 시야를 넓히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연기에 도움도 되는 것 같아요.

S  무대에 골대가 설치되나요?
이주승 네, 그래서 골대를 좀 넓혀달라고 했는데…하하.

S  그렇죠. 골이 잘 들어가야 연기도 기분 좋게 잘할 수 있겠죠.
이주승 그래도 농구 연극이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골을 꼭 넣어야 하는 공연이 아니라서. 골이 들어가냐 안 들어가냐가 중요한 공연이면 큰일이잖아요.

S  오랫동안 태권도를 했으니 운동 신경이…
이주승 아니에요. (태권도랑 농구랑) 다르더라고요. 제가 못하는 편일 수도 있는데… 제가 ‘개발’이란 소리를 많이 듣거든요. 축구도 못 하고, 족구도 못 하고. 농구도 저보다는 (손)우현이나 (정)택운이 가 훨씬 잘해요.

S 농구 연습도 많이 해야겠네요. 그런데 태권도는 언제까지 했어요?
이주승 9살 때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했어요. 군대에서도 태권도 조교를 하고. 제가 4단이거든요.

S 4단이요?
이주승 태권도를 한 8년 정도 하면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요. 그게 4단이라 군대에서 태권도 조교를 했어요, 덕분에 포상 휴가도 받고.

S 태권도는 왜 그만뒀나요?
이주승 원래는 태권도 선수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중학교 때는 선수부에 들어가서 잠들기 전까지 태권도만 했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태권도가 폭력은 아닌데, 누군가를 때리고 맞는 데에 회의감이 들어서 태권도를 그만두게 됐어요. 그래서 선수 생활은 중3 때 그만뒀어요. 그 뒤로는 그냥 했고요.

S 그리고 바로 연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가요?
이주승 그때가 길거리 캐스팅을 한창 많이 했던 때에요. 롯데월드 같은 곳 가면 “이미지가 좋다. 연락 한 번 줘라.” 그런 제안을 몇 번 받았어요. 그렇게 명함을 몇 번 받으니까, ‘나도 배우가 될 수 있겠구나, 배우로 태어난 사람만 배우를 하는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싶어서 연기자가 되기로 한 거예요.

S 거기가 첫 번째 매니지먼트사였나요?
이주승 매니지먼트회사라기 보다 연기학원이었어요.

S 아, 연기학원이요. 어떤 걸 배웠나요?
이주승 생각해 보니 연기학원도 아니었네요. 연기는 안 가르치고, 연기랑 상관없는 워킹이랑 재즈댄스 같은 거 가르쳐줬어요. 배우를 키우는 곳이라기보다는 배우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나 부모님들에게 배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면서 돈을 뜯어낸달까? 물론 정확한 사실은 모르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그만두고 연극부에서 연극을 하기 시작했죠. 영화에도 관심이 있어서 단편영화 찍고 다니고요.

S 독립영화계의 아이돌이란 별명이 있던데요.
이주승 아이돌은 아니었고요. 그냥 대학생들(이 제작하는) 영화를 많이 찍었던 것 같아요. 그게 고등학교 때 우연한 기회에 찍게 된 건데, 고등학교 3년 내내 수업 빠지면서 영화만 찍으러 다녔어요. 하지만 그런 영화는 영화제에서 공개가 되어야만 볼 수 있잖아요. 과제로 발표되고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도 많아서, 못 본 영화가 많아요. DVD라도 주면 좋은데.

S 장편영화 데뷔도 그때인가요?
이주승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장편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했는데, 그게 인연이 되어 다른 오디션 제의가 들어와서 주인공을 하게 됐어요. 그중 <장례식의 멤버>라는 영화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베를린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었고요. 그 영화가 많이 이슈가 되어 자연스럽게 다른 장편영화에도 캐스팅이 되면서 제가 다른 배우들보다는 기회를 좀 쉽게 얻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장례식의 멤버>는 열일곱 살 소년 희준의 장례식장에서 마주치게 된 한 가족에 대한 영화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아빠와 엄마, 딸, 각자가 고인과 어떤 인연으로 조문을 오게 되었는지 밝혀진다. 이주승은 소년 희준으로 출연했다. ‘장례식의 멤버’는 희준이 쓰는 소설의 제목으로, 희준은 소설이 완성되자 세 사람에게 선물로 책을 주고 자살한다. 영화는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과 2009년 베를린 영화제 포럼 부문에 초청되었다.

연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감독도 했더라고요. 작년에는 직접 쓰고 연출한 영화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관객상도 받았어요.
이주승 
글 쓰는 걸 좋아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직접 쓴 대본으로 공연을 올리곤 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고 연기도 했는데, 서른 살 넘으면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이 세계관을 다른 시선으로 보여주고 싶어져서 (영화) 연출까지 하게 된 것 같아요. 관객상을 받은 영화는 <돛대>라는 영화인데, 사회적 감정선과 맞닿은 따뜻한 영화라 관객분들이 좋아해 주셨어요. 관객들이 직접 뽑아주신 상이라 더 의미가 있고요.

쟁여놓은 다른 시나리오가 많이 있나요?
이주승 
지금도 영화 하나를 준비하고 있어요.

S 감독은 누가 하나요?
이주승 
아, 제가 쓰고 감독까지. 내일도 제작사 회의가 있어요.

엄청 바쁘군요. 그 와중에 <테베랜드> 연습까지.
이주승 
주변에 저처럼 이렇게 많은 일을 멀티로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영화, 드라마, 예능, 매년 한 편씩 연극을 하고, 또 감독도 하고 있고.다양한 근육을 쓰는 게 제 운명 같아요.

S 그러게요, 2018년 <킬롤로지> 때부터 매년 한 편씩 연극에 출연하고 있더라고요.
이주승 <킬롤로지>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얻었어요. 그전까지는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려고 했었는데, <킬롤로지>하면서 되감기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음속에 있는 뭔가 버리는 느낌. 그래서 매년 연극을 하면서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S 1년에 한 편에만 출연하니, 작품 선택에 신중할 것 같아요.
이주승 
저는 궁금증을 주는 작품이 좋아요. 궁금하게 만들거나, 성찰할 수 있거나, 성장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 같아요.

<테베랜드>는 어떤 점이 궁금했나요? 아니면 무엇을 성찰하게 됐나요?
이주승 
일단 형식이 너무 독특했어요. 이 작품에서 제가 1인 2역을 하는 데, 한 배우가 두 역할을 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어요. 그리고 시공간이 계속 바뀌는데, 양자역학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양자역학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 작품을 같이 만들어 가다 보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양자역학이요?

이주승 이 작품에 시공간이 없거든요. 시간이라는 게 사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무어라 말로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우리가 만든 약속일 뿐이지. 과거, 현재, 미래가 흐르지만 존재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런 게 양자역학의 하나인데, 이 작품이 시간의 개념을 없애는 작품인 것 같아요. 그게 이 작품의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까요.

어려운데요.
이주승 
대본 처음에 ‘진정한 시적 아름다움은 법의 울타리 바깥에 있다’라고 쓰여 있어요. 그 말처럼 어떤 선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그 선을 없애기 전까지 선은 없어지지 않잖아요. 우리가 무언가 규정 짓고, 인지하고 있는 것들을 버렸다가 다시 인지해야만 그 선을 다시 그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이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하게 된달까, 조금 어려운 작품 같아요.

이 작품이 오이디푸스 신화를 모티프로 하죠?
이주승 
오이디푸스는 저도 많이 알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공부하게 됐어요.

연극 <테베랜드>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제목의 ‘테베’는 신화의 배경이 되는 도시다. 작품은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수감 중인 마르틴의 이야기로, 연극을 준비 중인 극작가 S와 마르틴이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연극에는 또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무대에 설 수 없게 된 마르틴을 대신하여 마르틴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 페데리코다. 연극 <테베랜드>에서 이주승은 마르틴과 페데리코, 1인 2역으로 출연한다.

S그렇다면 마르틴은 어떤 인물인가요?
이주승 저희가 테이블 작업하면서 이 작품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는데, 마르틴도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물인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좀 어둡게 보이는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마르틴을 연기할 때는 그런 모습을 버리고 있어요.

S페데리코는요?
이주승 페데리코는 또 다르게, 분명한 차이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찾고 있는 중이에요.

S대본을 보니, 마르틴에서 페데리코로 바로 변신해 연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이주승 태도나 성격에 변화를 줘서 ‘나는 지금 페데리코를 연기하고 있어’ 라고 설명하는 연극은 아닌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워요.

S인물들 사이에 차이가 크지 않으면 관객들이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도 있잖아요.
이주승 아까 시공간에 대한 말씀을 드렸잖아요. 이 작품은 우주가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 작품 같아요. 바다와 육지를 나누지만, 사실 지면은 다 연결되어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마르틴과 페데리코를 구분 짓지 않고, 관객에게도 지금 저 배우가 마르틴을 연기하는가, 페데리코를 연기하는가 질문하게 만드는 거라 생각해요.

S그게 배우로서는 더 힘들지 않을까요. 확연하게 캐릭터가 변화가 있으면 오히려 연기하기가 수월할 텐데.
이주승 지난주에는 정말 너무 혼란스러워서 세르히오 블랑코(원작자)에게 막 분노가 치밀더라고요. 진짜 눈물이 날 뻔했어요. 이렇게 지문이 하나도 없는 작품은 본 적이 없거든요.

S겸손의 표현이겠지만, 남은 기간 연습하며 더 많은 것들을 찾겠죠. 또 나중에 의상을 입고 무대에 서면 자연스럽게 찾아지는 부분도 있을 거고요.
이주승 그게 배우로서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첫공부터 막공까지 변화 없이 똑같은 것들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첫공부터 막공까지 변화가 없는 게 또 정답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어서요. 아이러니한데, 그게 배우로서도 고민이에요. 어쨌든 지금은 첫공 관객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온전히 다 전달해서 배우로서 역할을 수행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제가 느낀 걸 최대한 전달하는 게 이 작품에 대한 사명 같아요.

S그러면 마지막 질문으로, 관객분들이 어떤 메시지나 느낌을 받아 가면 좋겠어요?
이주승 각자에게 어떤 울타리가 있을 텐데, 그런 울타리의 열쇠를 한번 풀어보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는 작품 같아서, 각자가 규정해 놓은 어떤 선이나 규칙, 법에 대해 생각해 보시면 좋지 않을까요.

S긴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실제 인터뷰에서는 <테베랜드> 신유청 연출의 연출력과 <킬롤로지>, <아들>에 함께 출연했던 이석준 배우와의 인연, 그리고 함께 출연하는 다른 배우들에 대한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습니다. TV 드라마와 예능, 영화, 특히 현재 준비 중인 장편영화까지 다양한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종횡무진 나누었죠.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양자역학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도 극장에서 양자역학의 세계를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ATTENTION, PLEASE
연극 <테베랜드>
기간 2023년 6월 28일-9월 24일
시간 화·수·목 19:30|금 15:00 19:30|토 14:00 18:30|일 15:00
장소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가격 R석 6만6천원|S석 5만5천원
출연 이석준, 정희태, 길은성, 이주승, 손우현, 정택운
문의 02-3485-8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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