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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UNLIMITED_베이스 바리톤 길병민

UNLIMITED

스스로가 턱없이 부족해서 늘 ‘고전(苦戰)하고 있다’는 이십대 청춘과 ‘고전의 길(The Road of Classics)’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예술을 한다는 건 타동사가 아니라 자동사다’라는 어느 예술가의 말이, 인터뷰를 하는 도중 내내 맴돌았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태우 stylist 조윤희 hair 박희승 makeup 강지혜


생애 처음,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 앞에 서서 길병민은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원래 재능이 많다거나 타고난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고, 늘 객석에서 잘하시는 분을 오랫동안 동경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도 무척 긴장되고 간절합니다.” 이후 꽉 채운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레떼아모르의 멤버로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엔터테이너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베이스바리톤으로서 리사이틀을 매진시키거나 앨범 발매 전 멀티 플래티넘에 오르는 등 제법 탄탄하고 반짝이는 길을 걷고 있다. 하지만 길병민은 그리 동요하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자신이 선택한 정공법에 대해 한치의 주저함이 없고, 더 높은 경지를 위해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음악을 대하는 애티튜드는 자로 그린 정사각형처럼 반듯했다. 그의 에너지,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 누구도 못 말리는 클래식에 대한 열의, 그래서 응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모두 무한대였다.

 

 

<로드 오브 클래식> 앨범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념 리사이틀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요즘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우전 저의 정통 클래식 앨범이 나와서 아주 바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저의 근본이자 뿌리인 클래식 음악을 많이 들려 드리기 위해, 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곳에서 들려드릴 수 있을까 기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리사이틀 마지막에 울어버릴 것 같았는데, 잘 참으셨어요.
네, 잘 참은 거 맞아요. 지금까지 제가 노래를 부르는 공간은 오페라하우스에서의 외국 관객분들 앞, 혹은 오디션 현장이었어요. 낯선 눈빛을 바라보며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죠. 이번 리사이틀을 하는 동안 공연장에 오신 관객 분들을 보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그 시절이 오버랩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를 사랑해주시는 한국 관객분들이 마음을 활짝 열고 제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시는 거예요. 관심을 받지 못했던 아리아, 클래식 음악에 집중해주시는 모습을 보니 뭉클해졌어요. 제가 천 번도 넘게 시뮬레이션 했거든요. ‘분명히 나는 울컥할 테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따뜻한 눈빛으로 이해해주시고 느껴 주셔서 너무 행복한 마음에 눈물을 참기 힘들었어요. 특히 타이틀곡이기도 한 ‘사랑한다 말해주오, 마리우(Parlami Damore, Mariu)’를 노래할 때는 팬님들에게 드리는 선물의 마음으로 불렀어요. 곳곳에서 많은 분들이 우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있으니까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2년 전이 떠올랐어요. ‘팬텀싱어3’ 오디션 첫 녹화한 날이 2월 17일 제 생일이자 이번 앨범 발매일이거든요. 정말 딱 2년이 지난 거에요.

음반 기념 리사이틀이라 ‘로드 오브 클래식’ 음반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지난 ‘꽃 때-A Time to Blossom’에 이어 이번에는 가장 익숙한 클래식을 선택했어요. 정통 클래식 곡으로 멀티 플래티넘을 달성하기 쉽지 않은데 그 어려운 걸 해내셨고 말이에요.
제가 갈고 닦아온 클래식, 제가 걸어온 모든 길에서 경험하고, 그 다음 단계를 꿈꾸게 하고 성장하게 한 곡들로 구성했어요. 이 안에는 지금 제가 잘 부를 수 있는 곡, 해외 무대에서 인정받았던 오페라 아리아, 수련하고 기술을 연마하지 않으면 퍼포먼스할 수 없는 가곡, 크로스오버, 칸초네까지 있죠. 이 작업을 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이 결실을 맺게 되었고, 저에게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이 되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처음 이 앨범에 대해 주저했다고 들었어요.
‘아직 무르익지 않음’을 기록한다는 것이 두려웠고 아쉬웠거든요. 제가 도달하고 싶은 경지에 간 이후, 좀 더 남다른 차원에서, 소위 ‘전성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기에 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결정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워너 뮤직 이사님께서 지금 현재를 남기는 것 자체가 특별한 의미를 지닐 거라 말씀해주셨어요. 누군가에겐 제 목소리가 스쳐가는 한 음정으로 느낄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을 반추하는 음악이 될 수 있다고요. 현재의 목소리를 기록할 수 있는 일에 의미 부여가 생겼고, 생각해보니 저 역시 어렸을 때 닮고 싶은 롤모델이나 멋진 아티스트를 보면서 그들의 10대, 20대 목소리를 찾아다닌 기억이 나더라고요. 특히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젊은 시절을 참 좋아해요. ‘BBC 카디프 싱어 오브 더 월드’에서 우승했던 모습, 지금 제 나이와 딱 맞는 당시의 앨범과 영상을 수도 없이 봤거든요.

 

 

길병민이 원하는 ‘무르익은 목소리’가 되려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데요?
적어도 40대 혹은 50대가 되어야 오페라에서 캐릭터를 표현하는 구력이 생길 테고, 전성기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젊은 시절부터 꾸준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는 가정하에서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베이스 바리톤이라서 그런 걸까요.
네, 아무래도요. 소프라노와 테너 캐릭터는 10대, 20대도 많고, 그때의 퍼포먼스가 가장 명반으로 남거나 어울리는 옷으로 표현되기도 하거든요. 저의 파트는 완숙이 되어야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다리는 거죠.

최종까지 고민하다 수록하지 못한 곡 중에 아쉬운 곡이 있을 것 같아요.
열두 곡으로 추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냉정을 찾고 추렸어요. 마지막까지 오케스트레이션 편곡을 끝내 놓고 수록하지 못한 곡, 녹음하다 멈춘 곡도 있어요. 스페인 민속 오페라 사르수엘라(Zarzuela), 쿠바 민속 오페라 등 다양한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은 큰 아쉬움으로 남아요.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스토리텔링은 무엇인가요.
우선 오페라 아리아로 선정한 여섯 곡이 성악가 혹은 아티스트로 인정받고 거듭나는 성장과정이라고 한다면, ‘마왕’ 같은 가곡은 성장의 증명이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연마해야 하는 곡이에요. 무르익음, 기술, 삶의 경험이 필요해서 끊임없이 레벨 업을 해야 완성할 수 있는 난이도 있는 곡이죠. 칸초네는 길병민의 감수성이라고 할까요. 제가 살아가는 이유, 사랑받고 있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들어있어요. ‘사랑한다 말해주오, 마리우’는 감사와 보답의 마음이고,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은 클래식한 편곡을 함으로써 저의 정체성을 한 번 더 드러낼 수 있었어요. ‘바람이 머무는 날’은 저를 무한하게 믿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번 앨범에는 사랑 이야기가 많아요. 제가 인터뷰를 하거나 팬님들께 지난 날을 얘기할 때마다 한없이 어둡고 고독했던 시절로 돌아가곤 했는데, 그 시간을 극복하는 축을 세우는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첫 녹음 곡은 우울했지만요.

혹시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인가요.
맞아요.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겠다는 역설인데요, 내가 처참히 무너진 모습을 본 당신이 그때를 기억하는지 물어보면서 사실 더 많은 사랑을 함유하고 있는 인간을 표현하고 있어요. 이 곡을 첫 곡으로 선택하여 길병민다운 정서를 푹 담아낸 뒤, 밝은 곡을 부르면서 극복되는 모습을 의도했습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을 클래식으로 편곡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앨범의 타이틀을 ‘근본’이라고 지었어요. 제가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이자, 일을 하면서 더 정제하고 바른 길로 가게 만든 것이 클래식이라서요. 근본, 길병민의 더 루트!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음반사에서 “조금만 더 찾아보자.” 하시더라고요.(웃음) 가족이나 저를 아는 친구들도 “참 너답다. 그런데 다른 건 없니?” 하니까 바로 떠오른 게 ‘로드 오브 클래식’이었어요. 길 위에서 헤맨 시간이 많았고 늘 표류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중심은 늘 바르게 서 있었거든요.

 

 

콩쿠르 인생은 끝인 줄 알았는데 바쁜 와중에 콩쿠르에 나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콩쿠르에 도전한다거나 장르를 확장하는 건 현역선수로서 당연한 일이지 딱히 새로운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저는 오페라 입단이나 콩쿠르 우승으로 요동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저 인정받고 관심 받으면서 제가 하는 일에 용기를 얻었죠. 저를 성장시키고 어느 경지를 뚫고 나갈 수 있다면 저는 계속 도전할 거에요. 오래 건강하게 산 뒤 저의 생이 끝날 때쯤 필모그래피를 돌아 본다면 남달리 살았다는 느낌보다 ‘잘 개척했다’라고 느낄 것 같아요.

팬텀싱어를 통해 대중적인 사랑을 얻기도 했고, 또 팬텀싱어 선배들 중에는 다시 도전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메인 필드에 계신 선배님들을 제가 더 존경할 수 있던 이유가 팬텀싱어 이후 에도 꾸준히 메인 필드에서 활동하신다는 사실이었어요. 저는 길바닥 출신이기 때문에(웃음)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고, 잃을 게 없으니까 자신있게 달려갈 수 있었어요. 다만 저의 팬님들이 제가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에 대해 걱정해 주시는데, 제가 구상한 제 미래에 아직 10%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거든요. 한국의 클래식 관객층이 형성되지 않을 때부터 꿈꾸던 일이어서 이런 시간을 소화하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직 나는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자책하죠. 제 형이 수영 국가대표 선수였던 덕에 가까운 곳에서 피 터지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어요. 당연한 1등은 없고 당연한 챔피온은 없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저는 ‘새발의 피’예요. 감사하게도 저는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건 의무이자 행복입니다.

겉모습은 20대 맞는데, 속은 철든 어른 같아요.
아무도 가르쳐주는 이 없이 인터넷 검색해서 콩쿠르에 다녀오곤 했어요. 제가 직접 보고 느끼고 현장에서 평가 받는 과정은 고생스러웠지만 달콤한 고생이었어요. 직접 부딪히고 닫힌 문을 여느라 빙 도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어쩌면 이런 제가 반항하는 애처럼 보였을 지도 몰라요. 저는 십대 시절에도 곧 세상이 빠르게 변할 거라는 것, 엔터적인 요소들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는 게 느껴졌거든요. 대개 클래식 하는 친구들이 세상 흐름에 무디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바뀔 세상에 대비하고 싶었어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길병민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는 길병민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많이 하고 비관적이고 현실적이고 지독해요. 내가 너무 못난 것 같아서 늘 깎아내리고, 내 재능이 흡족했으면 좋겠고, 상상하는 대로 실력이 됐으면 좋겠어요.

‘팬텀싱어3’로 달라진 점이 많을 텐데요.
관심,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 달라졌어요. 제 껍데기 말고 저의 가치관, 성실하게 만든 결과물을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있으니까 신이 나요.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도 오래 걸렸으니까, 앞으로 오래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하는 느낌? 제가 하는 일에 대한 피드백이 생기고, 저를 꾸준히 봐주시는 관객이 생긴 거잖아요. 제가 도전하는 다채로운 장르, 다양한 형태의 공연, 엔터테이너로서의 여러가지 모습을 매일 모니터링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건, 무섭고도 재미있는 일이에요. 저 역시 롤모델을 계속 되새기며 영감을 얻고 그들의 공연을 보면서 저에게 부족한 것을 습득해요. 고전의 매력이기도 하고요. 저는 관객과 저의 ‘케미’가 시너지를 낸다고 믿고 있어요.

지금의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누구로 정한 건 없고 다 열려 있어요. 저에게 부족한 점을 일깨우거나 참신하거나 영감을 주면 무조건 배우려고 하죠. 어린 시절부터 예중 예고, 서울대, 영국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 언제나 재능이 비교되는 경쟁 구도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적당히 우쭐해지고 만족하는 이들을 많이 봤어요. 정말 제 가슴이 뛰는 방향은 한 단계 수준을 높이고 한 뼘 더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피곤합니다.(웃음)
하하. 피곤한 거 맞아요. 그런데 그렇게 해야 보람 있죠.

 

 

어려운 길을 가고 있어요.
‘고전의 길’, 정말 잘 지은 거 같지 않아요? 계속 고전하는 맛에 덤비는 거예요. 그냥 잘되는 놈이었으면 이렇게 못 살 텐데, 잘 안되니까 이래요.

그냥 잘되는 놈이 있어요?
많죠. 그냥 잘되는 놈도 많은데 일찍 잘되는 놈일수록… 더 최고예요.(웃음) 제가 그렇지 않으니까 늘 배우고 산다고 푸념하지만, 받아들이니까 재밌어요.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넌 뭐가 그리 매번 파이팅이냐” 하시는데 정말 다르거든요. 더 연구하고 있는 사람의 성장과 감동에는 ‘한끝 차’라는 게 존재해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모범생 타입입니다. 아직 인생에서 한번도 일탈을 경험한 적 없는…
어릴 때 ‘잘 논다’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미안하지만 그건 한심하게 허비하고 있는 거야, 라고 생각했죠.(웃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그 당시 노는 친구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못 찾고 방황하는 거니까 저에게 그런 종류의 일탈은 없었어요. 저에게 일탈은 하지 말라는 일에 도전하고, 나가지 말라는 콩쿠르 나가고, 무시하는 것에 대해 반항하는 거였어요. 온실 속 화초같은 분위기에 이질감을 느끼고 제 것에 더 정진하는 일, 연습실에서 처절하게 울면서 노래 부르고, 친구들과 토론하고, 혹독하게 훈련하는 일이요. 정직한 방식에서 오는 짜릿함이 있거든요. 제 스승님은 늘 말씀하셨죠. “안 되면 될 때까지 하라. 선생님이니까 되는 거잖아. 타고났으니까 되는 거잖아. 그런 생각들이 너를 막는다”고요. 일탈할 시간이 없기도 했어요.

부모 입장에서 이보다 더 훌륭한 아들이 없네요.
여전히 늘 걱정하세요. 아버지는 항상 유쾌하고 인생 안 되는 거 없다, 다 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정작 온갖 고생은 다 하고 힘들어하셨으면서요. 어머니는 이상적인 꿈을 심어주시고 모험할 수 있도록 세계의 중심에 가기를 늘 바라셨어요. 마음껏 지원해주시지 못하는 부분에 한없이 걱정하고 미안해하셨고요. 부모님 덕분에 인내하고 채찍질하고 핑계 대지 않는 방법을 따르게 된 것 같아요.

같은 베이스 바리톤이라도 목소리마다 특징이 있어요. 깊은 울림, 부드러움…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와 결이 닮았다고들 합니다.
제가 드미트리 흐보로스톱스키의 팬이 되었던 이유는 너무 많아요. 그가 주는 에너지, 귀족적이고 고급스러운 목소리, 어두움 안에서 솟아오르는 찬란한 음성, 오페라 가수가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아웃풋… 모든 걸 갖춘 분이죠. 저도 어릴 때 ‘복잡하다’ ‘사연이 많은 목소리다’ ‘어두움에서 오는 밝음’ 이런 얘기들을 들었어요. 밝으면 밝고, 어두우면 어두운 거지, 도대체 무슨 얘기야? 했었는데 복잡하게 들리는 것이 어떤 특별함을 지니는 건지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타고난 것과 노력으로 만든 결과물, 저라는 복잡한 삶을 표현해낼 수 있는 목소리라는 점에서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드미트리와 비교했을 때는 한없이 부족한 음역입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던 제가 그를 보면서 꿈을 꾸고 그의 이름만 들어도 설렌 것처럼,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왜 노래를 하고 가수가 되고 싶었는지, 순간순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 앞에서 노래 지어 부르고 연기하고 재롱을 피웠어요. 저를 바라보는 가족의 눈빛과 웃음을 보며 행복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관객과 함께 울고 행복하고 즐거워하죠. 저는 교감의 감수성을 크게 갖고 태어난 사람이라 노래는 저의 교감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이 역할을 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앞으로도 이 감사함을 되새기면서 살아갈 것 같아요. 음악은 절대 변하지 않는 저의 시작과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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