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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EAT PRAY LOVE_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배우 송상은

EAT PRAY LOVE

배우 송상은이 지니고 있는 수백 가지 색깔들이 무대 위에 쏟아진다.
editor 손정은 photographer 박명희 place 비투프로젝트


1인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이 처음으로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작품의 주인공은 15세 소녀 로리. 갑작스럽게 찾아온 아빠의 죽음 앞에서 로리는 무너져내리는 대신,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이뤄 주기 위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간다. 그렇게 시작된 혼자만의 북극 여행. 그리고 이 여행에 배우 송상은이 함께한다. 약 5년 만에 돌아온 대학로 무대에서 1인극에 도전하게 된 그는 로리처럼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고 있다.

 

오랜만에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로에 오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벼웠던 적이 없어요. 정말 행복한데,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해요. 1인극이라 한 사람에게 주어진 부담이 크다 보니, 같이 하고 있는 유주혜 배우와 출퇴근하면서 한탄을 하곤 했어요. 우리가 이걸 어떻게 소화해내려고 하겠다고 했을까. 그 생각은 사실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이 작품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처음에는 그냥 ‘좋은 작품이다. 이 제작사가 좋아할 작품을 잘 가져오셨네’라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을수록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었고, 1인극이라는 것이 되게 특별한 기회이기도 하잖아요. 공연을 너무 그리워하고 있을 때 찾아온 작품이기도 했고요.

혼자 무대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목표는 다 외우기였어요. 완주하기! 그리고 두 번째 목표는 이것을 재밌게 해내기. 이 두 가지만 생각해도 너무 벅차요. 사실 연습을 하다 보면 쉬워질 줄 알았거든요. 보통은 한두 달 정도 연습을 하다 보면, 공연을 올릴 때쯤에 자다 가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니까요. 그런데 이 작품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공연인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잘 떨지 않는 스타일인데, 리허설까지도 덜덜 떨면서 했어요.

무대에서 주인공 로리를 비롯해 약 10개 정도의 역할을 소화합니다.
잠깐 나오는 역할들이 대부분이라 많지는 않지만, 목소리에 변화를 주기에 쉬운 성대가 아니라서 최대한 말투나 분위기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아무리 낮게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고요. 로리와 다른 인물의 대화, 그리고 로리가 관객들에게 하는 말까지 3가지를 동시에 해야 할 때가 너무 많아서 이걸 어떻게 하면 관객들이 헷갈리지 않고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다른 분들은 1인극을 어떻게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배우분들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캐릭터 간의 상호작용을 혼자 해결하는 과정은 어떤가요?
저는 무대 위에서 주고받는 호흡을 너무 사랑하거든요. 상대방의 감정을 받아서 저의 감정이 나올 때가 많은데, 혼자 자가발전을 해야 하니까 힘든 점이 있어요. 하지만 저 혼자 무대를 이끌어가는 것에서 오는 성취감이나 기쁨도 있어서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유연해지는 방법을 배우고 있어요.

로리는 어떤 아이인가요?
문과 감성과 이과 감성의 적절한 조화를 이룬 친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호기심도 많고 용기도 대단하고. 그리고 그 나이대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있는데, 로리는 ‘나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어. 이 감정 진짜 대단하다!’라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요. 자신의 감정을 명확하게 아는 아이라서 엄청 부러워요.

로리를 만난 후 스스로도 저돌적이고 당돌해지고 있다면서요?
어린 시절의 감성이 살아나는 느낌이랄까요.

송상은 배우의 15살은 어땠어요?
저는 되게 모범생이었어요. 공부하라고 얘기하지 않아도 알아서 공부하고, 말도 잘 듣고요.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 크는 애들 있잖아요, 제가 그랬어요. 그런 성격의 단점이라면, 제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사는지 저 스스로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냥 착하고 성실하게 살다 보니 로리처럼 일탈을 해보지도 않았고, 엄청난 도전을 하거나 큰 용기를 내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로리를 보며 부럽다고 느끼나 봐요. 나도 이렇게 많은 경험들을 하고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싶은 거죠.

로리와 송상은 배우의 어린 시절은 꽤 다른 것 같네요.
작품에서 로리가 반항을 하기도 하거든요. 부모님에게 반항을 하거나 자기 생각을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이 저로서는 완전히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부러운 부분이었어요. ‘나도 반항 좀 해보고 살 걸.’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호기심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로리는 모든 것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친구예요.

엄마 몰래 아빠의 유골함을 들고 북극으로 떠나는 자체가 반항이기도 하죠.
제 말이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요. 엄마한테 말은 하고 가야지! 엄마의 입장에도 공감이 되어서 ‘왜 이렇게 철이 없어!’ 이렇게 느끼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 나이에 철이 들면 이상한 거잖아요. 소위 말하는 ‘중2병’에도 좀 걸려줘야 되고요.

처음으로 소중한 사람과 이별했기 때문에 로리가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을 것 같기도 해요.
로리가 그런 이별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혼자 극복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작품에 그런 대사가 있거든요. “슬픔은 외로운 감정이니까 서로 챙길 사람이 있다는 건 중요하지.” 북극에 가는 길에 만난 프리다가 로리에게 해주는 말인데, 이 말이 엄청 와닿더라고요. 혼자 그 사람을 보내는 과정도 필요하지만, 서로 지탱해 줄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주변에 같이 슬픔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도 나중에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겨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서도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예전에 이런 주제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어요. 사람은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이 생각하는데,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서는 생각을 안 하고 사는 것 같다는 거예요.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어쨌든 인생은 죽어가는 과정이잖아요. ‘나는 어떻게 죽고 싶지, 진짜 멋있게 죽는 건 어떤 걸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었어요. 아직 답은 못 내렸지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후회 없이 사는 것이 멋있게 죽는 길일 수도 있겠다는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죽느냐를 고민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멋있게 죽는 걸 인생의 목표 중 하나로 삼는 것도 괜찮은 것 같고요.

후회 없이 살겠다고 마음먹으면 용기가 생기기도 하잖아요.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저는 해보고 싶은 건 다 배워요. 그래서 취미 부자가 되었답니다! 세상에는 재밌는 일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지금도 와인이나 클래식 음악 등등 배우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공연을 올리고 생각해 보려고 다 미뤄 놓은 상황이에요. 여행도 가보고 싶은 데는 다 가보려고 해요. 이제 곧 날이 풀리고 꽃이 피면, 벚꽃을 바라볼 수 있는 캠핑 장소를 한번 알아보려고요. 저희 직업의 장점 중 하나가 평일에 쉴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캠핑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작품 덕분에 언젠가는 북극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겠어요.
주혜 언니, 연출님과 셋이서 공연이 끝나고 언젠가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북극까지는 못 가더라도 노르웨이까지는 한번 가보자는 얘기를 많이 했어요. 저희도 로리와 같은 경험을 해보려고요. 작품에 지도나 감자칩, 아쿠아비트라는 이름을 가진 술 등 노르웨이와 관련된 소품들이 꽤 나오는데, 연습을 할 때마다 “이 감
자칩을 먹으러 노르웨이에 가자”, “우리가 가서 이 술을 마셔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어요.

김세은 연출, 유주혜 배우까지 세 분이서 작품을 만들며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셨겠군요.
연출님은 이 공연을 보시고 직접 한국으로 가지고 오셨고, 번역도 하셨어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애정도 크시고 로리의 모든 대사를 다 외우고 계셔요. 저희가 장난으로 언더스터디로 세워야 한다고 할 정도예요. 셋이 너무 잘 맞아서, 연습하는 내내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할 수 있었어요. 대사의 양 때문에 지칠 법도 한데, 서로 응원해 주고 북돋아주면서 힘들지 않게 온 것 같아요.

두 배우의 색깔이 다르다 보니, 각자가 만드는 로리도 다른 색을 띠게 될 것 같아요.
연습할 때는 주어진 것을 소화하기에 벅차서 잘 몰랐는데, 주변에서 정말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목표는 연출님이 바라는 것들을 최대한 해내는 것이었어요. 다른 1인극은 배우들의 개성에 맞춰 대사를 바꾸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저희 둘은 어차피 성향이 많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대사를 하더라도 충분히 다른 공연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결과적으로 전혀 다른 색깔의 로리가 나와서, 관객분들도 골라보는 재미가 있으실 것 같아요.

무대가 어떻게 꾸며질지도 궁금합니다.
무대와 조명의 조화가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워요. 작품 속에서 장소 이동이 많은 편인데, 무대가 다 표현을 해주고 있어서 연기를 하는데 큰 도움을 받고 있고요. 그래서 부담이 될 정도예요. 연습실에서는 1인극이니 당연히 ‘나만 잘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무대를 보니까 너무 예뻐서 ‘정말 나만 잘하면 되잖아?!’ 싶더라고요. 로리가 늘 지니고 있는 아빠의 유골함도 정말 예뻐요. 항상 유골함에 의지하면서 연기하고 있어요.

북극에 다녀온 로리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로리가 중2병에서 좀 벗어나지 않았을까.(웃음) 사춘기가 혼란스러운 이유는 아직 어리지만 스스로는 절대 어리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난 이제 어른이야!’라며 혼자 뭐든지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죠. 로리는 여행을 통해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 걸 깨닫고, 아직 누군가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돼요. 하지만 동시에 혼자 북극까지 갔다는 성취감과 엄마와 함께 여행을 이뤄냈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얻어요. 그래서 북극에서 돌아오면 엄마랑 아주 잘 살았을 것 같아요. 때로는 아이같이, 때로는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로리의 중2병 치료 과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동안 영화나 드라마 등 무대 밖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오히려 무대에서보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공연에서는 제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역할을 해본 적이 별로 없는데, 드라마에서 도전을 많이 하고 있어요. 공연은 우선 제가 잘할 수 있는 걸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현실적인 로맨스를 연기해 보고 싶어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연애를 표현해 보고 싶어요. 사소하고 세밀한 감정 하나하나를 그릴 수 있는 그런 캐릭터요.

노래가 그립지는 않아요?
그립죠.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뮤지컬로 무대에 복귀했다면 조금 더 무서웠을 것 같아요. 제가 해내야 하는 것이 하나가 더 추가되는 거니까요. 그래도 다음 작품은 뮤지컬로 인사드리면 좋을 것 같네요.

벌써 데뷔 12년 차가 되었어요. 처음에 그렸던 배우의 길을 잘 걷고 있다고 느끼나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잘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되게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첫 데뷔작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부터 저에게는 꿈꿔보지도 못했던 기회였거든요. 그 뒤로도 너무 감사한 길을 걷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처음 데뷔할 때를 떠올려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너무 귀엽다.(웃음) 얼굴이나 그런 걸 떠나서 그때의 모습이 너무 귀엽더라고요. 예전에 뮤지컬 시상식에서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축하 공연을 한 영상이 있는데, 볼살이 통통한데 너무 예쁘고 귀여운 거예요. 그래서 ‘잘 자라다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같이 공연했던 언니, 오빠들도 다들 어릴 때라 초롱초롱하고 반짝반짝하더라고요. 지금 작품을 같이 하고 있는 주혜 언니가 저의 데뷔작에 함께 했었어서, 요즘 그때의 추억을 많이 떠올리고 있어요. ‘그땐 그랬지’ 하면서요.

지금의 송상은 배우가 15살 로리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아빠 유골함을 들고 북극 가는 거 너무 멋있어! 대신 나중에 후회하기 싫으면 엄마한테 잘해라.(웃음) 지금 충분히 멋있게 살고 있는 아이라서 조언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똑똑하니까 잘 살 거라고 믿어요.

그럼 ‘15살의 송상은’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너는 좀 더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조금 더 누려도 될 것 같아요. 일탈도 해보고요.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연기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분들은 어떤 것을 얻어 가게 될까요?
우선 누군가를 잃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라는 과정에서 놓쳤던 나의 성장 기록을 로리를 통해 다시 한번 꺼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 나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어. 나도 이 감정을 느껴봤을 텐데 잊고 있었네.’라며 추억을 떠올리는 느낌이랄까요. 이 작품 덕분에 저는 되게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거든요. 제가 이 작품을 통해 느꼈던 것들을 잘 담아서, 관객분들이 가져가실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Attention, Please!
연극 <눈을 뜻하는 수백 가지 단어들>
기간 2022년 3월 15일-2022년 5월 1일
시간 화-금 20:00 주말·공휴일 15:00 18:00
장소 드림아트센터 4관
가격 전석 4만5천원
문의 02-744-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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