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Image Alt

시어터플러스

꿈의 무대가 되기를_세종문화회관 사장 안호상

꿈의 무대가 되기를

세종문화회관의 새로운 수장이 된 안호상 사장은 이 역사적인 공간이 문화예술인들과 시민 모두에게 꿈의 공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지연

 


우리나라의 굵직한 예술단체(예술의전당, 서울문화재단, 국립극장 등)에 계셨던 분으로서, 세종문화회관을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상징적인 문화예술기관이자 문화예술인들의 꿈의 무대, 시민들에게는 예술의 중심 혹은 메카 같은 공간이죠. 역사가 증명하고 있기도 하고요. 제 입장에서는 이 곳을 관객으로, 그리고 예술경영을 하는 사람으로,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열심히 공연 보러 다니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이곳에 대한 로망이 남아있고요, 이곳을 거쳐가셨던 사장님들을 보면서 ‘쉽지 않은 곳이구나’ 생각하기도 했어요.

쉽지 않은 곳이라고 판단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분석적인 이야기라 재미없을 수도,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웃음) 일단 세종문화회관 극장 자체가 예술장르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좋은 공연을 많이 하면서 왜 그리 말씀하시냐고 물을 수 있는데, 오페라와 뮤지컬에 맞는 극장이 아니에요. 물론 대극장을 선호하는 관객이 많고 사이즈가 커서 경제성을 갖추긴 했지만, 공연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거나 효과적인 무대를 구현하는 기술적 특성이 부족하다고 할까요. S씨어터를 제외한 나머지 극장 전부요.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점을 굳이 말씀드리자면, 예술단체 중심극장인지 대관 공간으로서의 극장인지 그 성격이 명확하지 않아요. 두 가지를 겸할 수 있죠. 그런데 실질적인 물적·인적 포션은 내부 단체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프로그램의 대표성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대관이 차지하고 있으니, 이러한 불일치에서 오는 문제점이 세종문화회관을 구속하는 거에요. 하나라도 잘하면 됩니다. 대관으로서 차별성을 가진 극장을 운영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체 중심 극장으로서의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운영할 수 있는가.

그래서 새로운 운영 전략으로 ‘예술단 중심 제작극장’을 말씀하신 건가요.
갈수록 대관경쟁력이 떨어지니까요. 그렇다면 빨리 세종문화회관이 지닌 자체 제작능력, 예술단체의 역량을 키워야 하는 일이 남았어요. 예술단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건 ‘작품’이잖아요. 좋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극장의 역할이고 예술계의 위상을 확보하는 일인데, 사실 여기에도 어려움이 있죠. 예산상의 문제, 충분하지 못한 연습실, 단원들의 처우… 이러한 문제가 지속되다 보니 작품에 대한 예술단체들의 목표가 다소 희미해지지 않았나, 그 상태가 지속되지 않았나 안타까워요.

제작극장으로서의 변화에 대해 예술단장님과는 어떤 논의를 하셨나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결단의 문제니까요. 단장님들이야 너무 간절하시고 좋은 작품을 올리기 원하죠.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외면해온 부분이 있던 터라, 우리가 다시 한 번 도전해보자, 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체를 지닌 극장이라면 홈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극장의 관객과 극장 단체의 작품을 분리시킬 수 없어요. 단체가 없는 극장에서 오랫동안 있으면서, 다른 단체에서 만든 작품을 사다가 보여주는 일을 했었거든요. 다른 단체라고 했지만 사실 다른 ‘극장’이었어요. 그들은 자체적으로 잘 만들어 극장 관객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외부로 투어하는 여력까지 갖춘 거였죠. 이곳에는 무려 7개의 예술단체가 있어요. 전면에 내세우지 못했던 한계를 극복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하지 못했던 걸 저라고 할 수 있겠냐만은 그럼에도 다시 도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국제적으로 한국의 문화적 위상이 올라가고, 국내 문화 소비층은 한결 탄탄해졌으며, 젊은 세대들은 다양성을 요구하고 있어요. 유명하고 특정 예술가를 일방적으로 선호하던 시대에서, 다양성을 요구하는 시대로 바뀐 거죠. 이러한 시대적 변화 속에서 지금 다시 도전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다시 한번 해보자, 한 겁니다. 우리가 진성성을 가지고 가치 있는 예술작업을 하면, 분명 옹호하고 지지하는 관객이 생길 거라는 믿음으로 시작했습니다.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공공예술단체의 역할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민간단체가 만드는 작품과 차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민간단체의 경우 제작 여건이나 재원이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공공 영역이 유리한 입장이죠. 그렇기에 새로운 예술적 도전, 선택, 민간에서 할 수 없는 실험적인 영역을 좀더 터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예술가집단과 소비자집단 모두에 대한 책임감도 크고요. 소비자들에게 좋은 예술 작품을 꾸준히 공급
해야 하는 책임, 예술가들의 참여 기회를 늘리는 일에 대한 책임, 예술계를 확장하고 예술생태계를 넓혀야 하는 책임… 이런 책임과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면 민간과 공공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80년대에서 90년대 예술계를 돌이켜보면 당시에는 민간예술단체의 활동이 훨씬 왕성했어요. 시립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이 있었지만 민간오페라 작품이 많았고 대중적인 호응도도 좋았죠. 오케스트라, 극단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다가 IMF 이후 민간단체가 어려워졌어요. 해외예술단체들이 유입되면서 관객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고, 관객의 성장과 함께 국립단체 내부적으로 개혁이 일어났어요. 지금은 우리 예술계의 흐름이 민간에서 공공으로 넘어가고 있는 느낌일까요. 관객이 국립극장, 국립현대무용단, 국립국악원 등 국립단체를 바라보는 기대가 바뀌었으니까요.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세종문화회관이 뒤떨어지면 안되겠죠. 덩치만큼의 역할을 해야 해요.

세종시즌의 운영 방식이 ‘봄시즌’과 ‘가을·겨울 시즌’으로 개편되었습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요즘 유럽에서의 시즌 운영 방식이 연간 단위에서 계절, 혹은 3개월로 바뀌고 있어요. 공연에 대한 다양한 선택이 있다 보니 관객들이 일정을 멀리 잡으려 하지 않는 거죠.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공연의 ‘핫 시즌’은 겨울이거든요. 세종문화회관의 지난 프로 그램을 보면 겨울에 중심적인 작품을 배치하지 못했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예산 승인, 단원들의 스케줄 등 여러가지 제약이 있으나 지혜롭게 극복해보려고 합니다.

 

‘Sync Next 시즌(이하 싱크 넥스트)’이 흥미롭습니다. 국립극장의 ‘여우락 페스티벌’이 떠올랐습니다만,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국립극장의 컨텐츠를 저는 ‘컨템포러리’라 정의해요. 이전의 관객 이나 운영하시던 분들, 그곳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은 ‘국립극장=전통예술’이라는 생각이 강하셨던 같아요. 하지만 국립극장은 전통의 요소를 가지고 현대 예술을 하는 곳이에요. 전통과 현대의 비율이 어느 정도냐는 판단하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저는 시대적 장르성을 ‘현대’라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한국음악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가장 적합한 게 무얼까 생각하는데, 국악을 전공하신 분들이 ‘공명’ ‘들소리’ 같은 단체를 만들어 밴드활동을 하고 있더라고요. ‘재즈, 클래식, 무용과의 콜라보를 통해 국악의 활용성을 확장하면 좋겠다’라는 출발점이 있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 적극적으로 플랫폼화시킨 시도가 ‘여우락 페스티벌’입니다.
‘싱크 넥스트’는 세종문화회관 단체들이 지닌 다양한 장르를 가장 컨템포러리한 방법으로, 예술의 원형을 담은 축제입니다. 예를 들어,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대적 음악과 결합했을 때의 새로운 반응을 기대하는 거죠. 예술단체의 오리지널한 활동에 현대적 소스를 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는다면 ‘싱크 넥스트’에 오시는 관객들은 완성된 예술이 아닌 새로운 예술의 단서, 그 가능성을 찾기 위해 오실 거라 생각합니다.

2022년 시즌 프로그램 가운데 ‘세종문화회관의 브랜드’ 공연이 될 거라 확신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전 몰라요.(웃음) 준비할 때는 늘 걱정만 하니까. 이 공연은 무조건 잘 될 거다, 라고 생각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어요.

꽤 오랜 시간 단장님의 부재를 겪은 단체들이 있었어요. 박종원(서울시합창단), 김성국(서울시국악관현악단), 김덕희(서울시뮤지컬단), 박혜진(서울시오페라단) 단장님들에게 바라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 단체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점이 무엇인가라는 관점에서 모신 분들이세요. 그럼에도 단장으로 갖췄으면 하는 몇 가지 바람을 말씀드리면 가장 기본적인 것은 예술적 성취,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세 번째는 기획자로서의 통찰력입니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단원들과의 소통은 물론 다른 예술가들, 대중, 언론과의 소통이 포함되겠죠. 그리고 단장님들은 예술가인 동시에 기획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의 관객을 이해하는 통찰력, 단체가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가에 대한 통찰력이요. 정말 많은 분들이 지원해주셨는데, 경험 많은 분들과 함께 산뜻한 출발을 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예술단체의 리더와 공연장의 리더가 지녀야 할 리더십은 다를까요.
‘세종문화회관의 어려움이 무엇이다’라고 정의했을 때, 상대적으로 제가 가진 역량이 뭔지는 모르겠으나,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해서 찾으시지 않았을까요.(웃음) 단장님들은 예술적 성과를 만드시는 분이고, 저는 그것을 어떻게 조직 전체의 역량과 합쳐서 관객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인가, 확신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이니까, 필요로 하는 리더십이 조금 다르겠죠?

사장님께서 선호하는 예술 장르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분야는 없지만 공연장에 앉아있을 때 가장 편안한 건 아무래도 클래식인 것 같아요.

세종문화회관의 조직 문화, 직원들에 대한 바람은 없으신가요.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드는 예술작품, 여기 오는 관객들의 마음에 따라서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했으면 좋겠어요. 관객들의 만족, 관객의 반응에 귀 기울이는 일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으면 합니다.

예술경영에서 가장 필요한 감각, 그리고 사장님께서 생각하는 예술경영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직원들이 종종 예술경영의 철학이 뭐에요? 하고 물으면 저는 언제나 ‘전석 매진’이라고 대답해요.(웃음)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전석 매진을 하면 나머지가 다 되거든요. 새로운 예술가를 발굴하는 일, 신작을 만드는 일, 프로그램 라인업을 기획하는 일, 브랜드를 바꾸고 조직을 개편하는 일 모두 결국 새로운 관객을 만들기 위해서니까요. 극장에 오는 관객이 우리 극장에 대한 사랑이 더 넘치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 더 근사한 철학이 있어야 할 것 같나요?(웃음)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예술을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아요. 때때로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요. 공연을 보면서 별 것 아닌 장면에서 펑펑 우는 분들 계시잖아요. 극장 안에 들어왔을 때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지고 감성적으로 바껴요. 예술의 가치를 새롭게 경험하고 발견하면서 자신의 삶에도 변화가 왔으면 좋겠고, 세종문화회관이 그런 곳이 되길 바랍니다. 저희는 공급자니까 일방적인 필요에 의해 공급하지 말고 시민들이 반응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자,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일단 많은 분들이 와야 하니까, 전석 매진!


*기사의 저작권은 ‘시어터플러스’가 소유하고 있으며 출처를 밝히지 않거나 무단 편집 및 재배포 하실 수 없습니다. 해당 기사 스크랩 시, 반드시 출처(theatreplus.co.kr)를 기재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민·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