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where Over the Rainbow_뮤지컬 배우 최정원
Somewhere Over the Rainbow
그녀는 이 순간이 소중해서 웃었고, 새처럼 가볍게 춤을 췄고, 눈이 빨개지도록 눈물을 흘렸다. 손끝이 스치는 공기마다 발바닥이 닿는 곳마다 최정원의 무대가 된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ROBIN KIM
보지 못한 걸 보거나 듣지 못한 걸 들었거나 혹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게 되면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마블(Marvel) 영화들을 테마파크에 비유한 마틴 스콜세지처럼, 한때 나도–창작의 고통 한 번 경험한 적 없는 주제에!-논리적이지도 않고 인간의 심리가 디테일하게 살아있지 않다는 이유로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얕봤던 적이 있다. 어쩌다 초대장을 받아 극장에 가면 등을 의자 깊숙하게 밀어넣은 채 팔짱을 끼고 봤던 오만했던 시절. 그런 나를 무장해제시켰던 첫 작품이 <맘마미아!>였다. 지금껏 가만히 있다가 난데없이 아빠를 찾겠다고 나서는 황당한 이야기에 왜 내가 열광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왜 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지, 자꾸 뇌 속에서는 왜이리 세로토닌이 흘러 넘치는지 설명할 길은 없었다. 가슴이 뛰고 멜로디에 취하고 배우들의 표정에 한동안 넋이 나가있었다. 비장하고 심각해야 예술이라 여겼던 편견은 그날 이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저 인간을 골고루 이해하게 되면, 그거면 되는 거였다.
‘한국 뮤지컬 1세대’의 맨 첫줄에 있는 최정원은 어느 비루한 개인이 예술을 대하는 삶의 방식이 달라진 사건의 한가운데 있는 배우다. 자그마치 <맘마미아!>의 도나로 살아간 지 12년째. 지난 가을에도 <맘마미아!>를 위해 무대에 올랐고, 이변이 있지 않는 한 올봄에도 관객을 만난다. 같은 작품, 같은 캐릭터를 10년 이상 반복한다면 지루할 법도 한데 그녀는 하루도 빠짐없이 ‘오늘 무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에너지와 열정을 쏟아 붓는다. “의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1박 2일 동안 일어나는 드라마, 아름다운 하모니… <맘마미아!>의 좋은 점은 헤아릴 수 없어요. 저는 모든 작품의 커튼콜을 가장 좋아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자신이 도나의 친구가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요. 일어날까 말까 주저하던 관객도 결국은 일어나 노래를 부르죠. 매번 처음 하는 것 같이 떨리고, 무대에 설 때마다 성장하고, 오늘은 또 어떤 여정을 발견할까 기대됩니다.”
꿈은 시들지 않는다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며 살아가면 봄 눈이 온다’고 노래했다. 최정원 배우의 어린 시절이 딱 그랬다. 안암동의 가난한 산동네, 작은 방에 네 식구가 부둥켜 살았지만 가난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엄마의 사랑을 받았다. 할아버지까지 돌보느라 일상이 벅찼을 텐데 엄마는 아침마다 웃으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고, 눈을 보며 얘기를 들어주고, 틈만 나면 안아주었다. “엄동설한에도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로 빨래를 하던 모습이 기억나요. 그 옆에서 노래를 부르면 엄마는 저를 향해 씩 웃어 보였죠. 엄마가 웃는 게 보고 싶어서 저는 계속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를 흉내내기 시작했어요.”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배우들을 따라하는 딸의 모습을 엄마는 허투루 보지 않으셨던 것 같다. 없는 살림에 돈을 모아 연기 학원에 넣어주셨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때였어요. 항상 집에서 원맨쇼만 하다가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우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유관순이 되어보고 역사 속 공주도 되어 연극을 했고 상도 몇 번 받았던 기억이 나요. 매일 매일이 기뻐서 그때부터 배우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중학교를 들어가면서 학원에 들어가는 비용도 아껴야 한다는 아빠의 조언에 한동안 조용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TV ‘주말의 영화’에서 해주는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 in the Rain)’를 보다심장이 터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잊고 있던 배우의 꿈이 또다시 꿈틀거림을 느꼈다. “비가 내리는 날,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고 사랑에 빠진 남자가 사랑스럽게 노래를 불러요. 부드럽게 춤을 추면서요. 우산은 그냥 지나가는 사람에게 건네주고요. 가지고 있는 용돈 다 털어 교보문고 가서 뮤지컬 관련 책을 몽땅 샀어요. 혼자 공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롯데월드 예술단에 뮤지컬 배우로 뽑혀 들어가게 됐어요. 그것도 최연소 여자 단원으로요. 돈을 받으면서 브로드웨이에서 오신 선생님들께 1년 반 동안 탭댄스, 발레, 연기, 재즈 모두 배우다니 저에겐 꿈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가을부터 학교를 못나갔으니 엄마는 학교 가서 졸업만 시켜달라 사정하셨죠.”
그렇게 훈련을 받고 데뷔한 첫 작품이 1998년의 <아가씨와 건달들>. 뮤지컬 팬들에게 아직까지 회자되는 ‘아가씨 6번’ 역할이다. 많지 않은 개런티를 받았지만 내게 맞는 길이라는 느낌이 확신으로 변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가스펠>,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등 새로운 작품과 관객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짜릿했다. 조연을 해도, 앙상블을 해도, 심지어 대사 한 마디 없어도, 그녀는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1995년 <그리스>에서 샌디 역을 맡았으니 첫 주인공이 되기까지 6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요. 제가 무대에 오르는 순간 모든 관객이 저의 리액션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해요. ‘아가씨 6번’을 할 때도 제가 무대에 오르면 아들레이드도 사라 브라운도 아닌 제가 주인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거에요.”
인생의 햇살 같은 <맘마미아!>
서른 한 살에 아이를 낳으면서 본의 아니게 일년을 쉬게 됐다. 유독 입덧이 심한데다 유산될 뻔한 고통을 겪으면서 힘들게 낳았다. 유부녀가 마음 먹으면 당장 공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출산 후에는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극에 달했다. 남경주 선배가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며 <렌트>를 제안했고, 마침 신시 대표님도 손을 내밀어 주셨다. 그때부터는 매해 한 두 작품씩 쉬지 않고 계속 했다. 다행히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건강하신 친정 엄마와 뮤지컬 배우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신랑이 있어서다. 남편은 아이의 학부모 모임에도 가고 준비물도 척척 챙겨주는 것은 기본, 아이 목욕시키기 위해 매일 저녁 6시 이전에면 집에 도착했다. “덕분에 저의 연기력은 좋아졌어요. 결혼하기 전에는 할아버지, 할머니, 가족 등 신경 쓸 게 많았거든요. 연습을 하다가 ‘아, 빨리 가서 남은 집안일을 해야지’ 걱정하기 일쑤였는데 결혼한 이후에 오히려 공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죠. 더욱이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조건 없는 사랑, 가령 아이가 아프면 내 살이 도려내지는 것 같은 아픔, 내 목숨을 내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대해 알게 됐으니 그 느낌들을 배우로서 내 몸에 자연스럽게 축적했다고 할까요.” 그 사람의 경험을 끄집어내는 것만큼 좋은 연출은 없다는 건 사실이고 진리였다.
그러다가 2007년 도나를 만났다. 그녀는 <맘마미아!>가 자신의 인생에 ‘전화위복’이 되어준 작품이라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미스 사이공>을 연습하면 제가 베트남 사람의 분위기가 나는지 외국 선생님들이 언젠가 킴을 하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영어로 전곡을 외울 정도로 이 작품 연습에 매진했었죠. 그리고 드디어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오디션을 봤는데, 결국 안됐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매니저 실장님이랑 스테이크를 먹다가 고기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던 순간을. 일주일을 집에서 꼼짝 않고 있는데 신시 대표님이 <맘마미아!> 오디션 준비하자고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처음엔 귀에 안 들어왔죠. 그러다가 예전에 봤던 <맘마미아!> 기억들을 떠올려보면서 내가 너무 <미스 사이공>에만 깊이 빠져있나 싶어, 진짜 준비를 많이 해서 오디션을 치렀어요. 굉장히 좋은 평을 받으며 2007년부터 <맘마미아!>를 하게 된 거에요.”
12년째 <맘마미아!>로 무대에 서는 동안 한국 뮤지컬 세계는 많이 변했다. 뮤지컬학과가 생겨서 체계적으로 뮤지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점도 좋고, 배우가 공연 하나에만 신경써야 하는 환경도 놀랍다. “제가 <그리스>할 때만 해도 배우들이 공연 10분 전에 밖에서 프로그램북을 팔러 다녔어요. 마케팅, 홍보를 배우들이 다 했는데 공연에 관계된 일이라면 다 행복했으니까 하기 싫은 적은 한번도 없었죠. 얼마전 홈쇼핑에서 <맘마미아!> 홍보를 했던 것도 진짜 재미있었다니까요(웃음).”
기적은 언제나 무대 위에서
매일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에게도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일 터. 아이를 낳고 일년을 쉰 이후로 이렇게 오랫동안 쉬어본 적이 유튜브로 음악을 듣고 오디오북으로 책을 읽는다. 이 또한 지나갈 거라 믿으며 다시 무대에서 건강하게 오르는 그날을 위해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한다. “예전에는 친구들을 만나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남들보다 몇 배로 연습하고 노력해야 하니까. 술을 잘하는 편인데 한번도 회식 때 많이 마셔본 적이 없어 다들 못 마시는 줄 알았죠. 그런데 요즘에는 우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깨닫고 있어요. 누군가 힘들 때 귀 기울여 주고, 나의 즐거움과 기쁨을 나눠주는 게 좋다는 걸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고 할까요.”
공연이 없는 날에는 수영과 사우나를 즐기고, 새로운 공연이 시작되는 전에는 무조건 여행을 떠난다. 바닷가에 앉아 음악을 듣고 매주를 마시며 책을 보는 일은 백지 상태로 만드는 작업이다. <맘마미아!>가 블루, 다음 작품인 <시카고>가 레드라면 레드로 나를 채우기 전에 스스로를 하얗게 만들어야 해서다.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라고 카프카가 말했듯 배우로 살면서 이런 일상과 삶을 누리는 것 또한 감사하고 행복하다. “목욕탕 가서 5만원 주고 때만 밀어도 정말 좋아요. 암네리스가 된 것 같다니까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건, 지진이 나서 땅 밑에 깔려 있어도 어디선가 한줄기 빛이 새어 나올거라는 대책 없는 믿음은, 유년 시절 엄마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그녀는 이 인터뷰가 끝나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말했다. “어릴 때 TV 드라마에서 스파게티를 먹는 장면을 보고 저게 무슨 맛일까 궁금해했어요. 엄마는 라면을 졸여서 접시에 담아 포크와 함께 내주셨죠. 짜디짠 라면을 먹으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던 것 같아요.”
세상에 배우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최정원. 누군가 날 보고 행복할 때가 가장 좋다는 그녀는 오늘이 마지막 같아서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표현하고 소중한 오늘을 잘 살아내리라 다짐한다. 행복하게 만난 오늘이 쌓여 육십, 칠십, 팔십이 결정된다고, 퍽 괜찮은 배우가 될 거라고, 무대 위에도 무지개 넘어 어딘가에도 기적은 존재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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