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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베토벤의 시대_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

베토벤의 시대

 

한국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Valentina Risitsa)가 내한한다. ‘베토벤 탄생 250주년에 걸맞게 템페스트’ ‘열정’ ‘함머클라비어라는 괴물 같은 프로그램을 들고서.
editor 이민정


 
만약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면 발렌티나 리시차는 시샘 날 정도로 모든 걸 갖췄다하늘이 내린 음악적 재능드라마틱한 기교강하고 기다란 손가락청중을 휘어잡는 카리스마지치지 않는 열정과 체력매력적인 긴 금발까지… 콩쿠르의 수상 이력 없이 그녀는 정확하면서 독창적인 동시에 깊이 있고 에너지 넘치는 연주를 통해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해왔다심지어 유튜브라는 매개를 통해 전세계 지구인에게 피아노 선율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어마어마한 클래식 팬들을 양성하지 않았던가여전히 대중과 소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그녀에게그녀만큼이나 열광적인 한국팬을 다시 만나기 전의 기분이 어떠한지한 달 후 어떤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지 메일을 보냈다그녀의 일상은 건강했고그녀의 마음은 베토벤에 대한 경외로 가득했다.

 
지난 2017년의 내한 공연에서 클래식 공연에서 흔하지 않게 3시간 동안의 연주를 보여줬고, 2018년에서는 마시모 자네티(Massimo Zanetti)가 이끄는 경기필하모닉과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했다이번에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들려준다발렌티나 리시차가 바라보는 베토벤이 궁금하다.
나는 올해가 단순히 베토벤 탄생을 기념하는 해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불안과 고난변화의 시간인 ‘베토벤의 시대가 돌아왔음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지난 수십 년 동안 낭만주의 음악은 큰 사랑을 받아왔다이것은 우리가 자신들의 개인적인 필요와 욕구스스로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에만 집중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었다하지만 이제모든 사고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우리는 오로지 ‘나나 자신내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이기주의자나르시시스트로서 계속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닫고 있다우리가 인류로서 이 행성에서 살아 남으려면 이제 희생을 감수하고인내하고협력해야 하며세상이 우리를 돌봐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바로 이것이 베토벤과 그의 음악에 담긴 내용이다베토벤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베토벤 소나타 가운데 템페스트’ ‘열정’ ‘함머클라이버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에서의 공연을 앞두고 내가 제시한 프로그램은 두 가지였다하나는 고전부터 현대까지 여러 시대의 레퍼토리가 포함된 좀더 ‘전통적인’ 프로그램이었고나머지 하나가 베토벤의 작품으로만구성된 것이었다베토벤 레퍼토리가 선택되어 정말 기쁘다템페스트를 얘기해 보자아름다운 이 소나타는 당시 시대를 뛰어넘는 낭만주의적 분위기를 가지며특히 3악장을 매우 인상 깊게 만드는 현대적인 미니멀리스트 구성 요소이기도하다. ‘엘리제를 위하여를 매우 빠르게 한 버전 같기도 하다작은 파편들이 물줄기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만드는 것은 꽤 어렵다또한 매우 낭만적인 터치가 필요한매우 잘 알려진 레치타티보 카덴차인 1악장 도입부에서는 베토벤이 기입해 놓은 페달을 현대 피아노로 구현해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도하다이 부분은 레치타티보  전체가 한 페달로 표시되어 있다몇몇 선생들은 단순히 불가능하다고 치부하고 페달을 바꾸라고 가르치지만 페달을 바꾸는 순간 이 부분은 매우 평범하고 관습적인 것이 돼버린다베토벤이 마치 영화의 슬로모션 효과처럼 시간이 계속 머물러있는 듯한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열정의 경우기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가장 도전적인 소나타 가운데 하나다하지만 이 작품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비밀은 바로 리듬더 정확히 말하자면 ‘심장박동’을 느끼는 것이다음악은 마치 살아있는 신체와 같아서 호흡과 맥박을 가지고 있다심장박동은 이 작품의 첫 마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베토벤은 8분의 12박자를 명시해 놓았지만흔히 악명 높은 오른손의 하강하는 패시지가 나오기 전까지 표현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이 부분을 네 박자로 세고 싶은 강력한 유혹이 들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 부분을 다른 음악적 방식으로예를 들면 극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나 엄청난 위험을 느끼는 순간혹은 겁에 잔뜩 질렸거나 화가 난 것 같은 온갖 종류의 강한 부정적인 감정을 상상하며 접근해 보라너무 빨리 뛰어서 곧 튀어나올 것 같은 심장의 박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이것이 이 첫페이지가 말하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반면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은 전형적인 무궁동 스타일이다.

함머클라비어 이 작품은 길이가 다른 소나타들보다 두 배 이상이 길다이 소나타는 작곡 당시동시에 진행되던 교향곡 스케치 작업이 없다베토벤은 전원소나타를 작곡하면서 전원교향곡12의 ‘장송행진곡’을 작곡하며 3번 교향곡을 스케치 하는 등 소나타 작곡 시 교향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이중적으로 진행시켰다베토벤이 소나타 작곡의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있던 교향곡에 담았으리라 예상할 수 있는데 29번 소나타와 동시에 스케치된 교향곡이 없다는 점에서 이 소나타에 피아노로 연주하는 하나의 교향곡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우리는 종종 리스트가 피아노를 오케스트라적으로 확장했다고 생각하지만베토벤이 이 부분에서 선구자임이 분명하다트럼펫의 울림처연한 오보에 솔로흐느끼는 바이올린팀파니의 천둥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피아노를 위해 쓰인 작품 중 가장 어려운 작품인 것 같다.

 
구글이 놀라고 있을 정도로 한국의 유튜브 시청 시간은 압도적이다유튜브가 클래식의 대중화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에 모두가 동의하는 바다여전히 유튜브의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는 당신에게 유튜브는 어떤 의미인가.
유튜브는 팬들과 음악을 공유하며 관객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방법이다내가 유튜브에 대해 싫어하는 유일한 것은농담으로 말해보자면다른 모바일 화면으로 넘어가면 재생이멈춘다는 거다꽤 짜증나는 일인데(웃음)나는 실제로 애플뮤직이나 얀덱스(Yandex)에서 특별한 연주를 찾기보다 유튜브에서 새롭고 희귀한 것들을 발견하는 걸 훨씬 즐긴다.
 
여전히 발렌티나 리시차에 따라다니는 수식은 ‘건반 위의 마녀’ ‘피아노의 검투사남자 피아니스트 못지 않은 에너지와 화려한 기교 덕분일 텐데당신의 엄청난 열정과 체력의 동력은 무엇인가.
계속되는 여행과 연주 사이에 많은 시간을 가질 수는 없다모스크바로 이사한 뒤에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집 바로 옆 야외수영장에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거다지붕도 없고수온이 항상 28도로 유지되고 있어서다집에 있을 때마다 몇 시간 동안의 연습을 끝내고 나면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수킬로미터씩 수영을 한다수영 선수들의 체력 함량을 위한 특별한 패들도 발견했는데사용해 보니 팔과 어깨에 효과적이었다수영 외에 하는 게 있다면걷는 거다나는 매일 밤헤드폰을 끼고 작게는 1만보평균 2만보를 걷는다모스크바 주변에는 아름다운 건축들이 있고밤거리가 붐비지 않아서 걷기에 좋다.
 
모든 이들이 그렇듯 피아니스트 역시 같은 곡이라도 20, 30, 40대의 연주가 다르다. 40대를 통과하는 당신은 혈기왕성했을 때의 연주와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나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태도가 달라진 게 있는가.
음악에 대한 이해는 인생의 경험과 함께 성장한다책이나 영화 등을 통해서 많은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체험 할 수 있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음악에 반영되며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간다또한 서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음악에 무의식적으로 결부되기도 한다지난 몇 년 간나는 죽음전쟁사람에 대한 파괴들을 목격했고배신이 무엇이며또한 배신을 당한 것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기는지 여러 어려움을 통해 겪으며 성장하게 되었다깊은 우울을 경험했고내 영혼은 불멸을 느끼던 활발한 젊은 자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죽음도 받아들이도록 변화됐다이 모든 것들이 내 음악을 통해 전달될 것이라 생각한다.
 

ATTENTION, PLEASE
<발렌티나 리시차 리사이틀-격정과 환희>
일시 2020년 3월 22일 17:00
장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가격 R석 13만원|S석 9만원|A석 5만원
주최 ㈜오푸스
문의 1544-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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