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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예술가의 작업실①_작곡가 박정아

예술가의 작업실

 

음악과 글과 연출로 지어지는 무대 위 예술이라는 세계그 우주가 지어지는 공간에서 만난 2020년의 예술가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도진영


눈물의 밤이 쓴 음악
작곡가 박정아

 

 

 

작곡가 박정아의 작업실은 용인시 죽전에 있는 자택 안에 있다대학로를 기반으로 두고 활동하는 창작자들이 극장 근처에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거리가 먼 공간이다대부분 작품을 작곡뿐 아니라 편곡과 음악감독까지 맡는 그이기에 연습이 시작되면 출퇴근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지만, ‘24시간 작업이라고 부를만한 그의 하루를 들여다 보면 집 안에 작업실을 마련한 이유가 보인다박정아의 아침은 오전 7시 30분쯤 전날 그의 디렉션에 따라 새벽 시간 편곡팀이 작업해놓은 결과물을 들으면서 시작된다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10시쯤 작업실에서 가족들이 돌아오는 저녁까지 작업에 몰두한다잠시 식사 함께 보낸 뒤 다시 키보드 앞에 앉는다하루가 끝나는 시간은 대중이 없다작업실에서 뜨는 해를 맞이하는 날도 비일비재하다. “작업할 때는 약속도 잡지 않고 장시간 동안 집중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놔요그리고 끝을 보기 전에는 밖에 나가지 않죠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을 확보다는 것이 스태프와 관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밤을 꼴딱 새더라도 끝을 볼 때해결이 날 때까지 혼자 외롭게 앉아있어요.” 그 밤 시간의 작업실은 자주 눈물 바다가 된다. “음악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불러볼 수밖에 없어요감정이 격한 곡에서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노래 사이의 구간에 여유를 더 주고중간에 대사가 있다면 길이에 맞게 간주의 박자도 조정해야 하니까요캐릭터들에 감정에 빠져들 수밖에 없죠그러다 보면 새벽의 작업실 안의 저는 거의 울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그러면서 가족들도 붉어진 눈시울로 방을 나서는 그의 모습에 놀라지 않는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박정아의 작업은 대본을 받아드는 순간 본격적으로 시작된다처음 읽는 동안 곡에 떠오르는 멜로디를 스케치 해나간다그 과정에서 대략적으로 완성되는 곡도 있다이 초벌’ 작곡 과정을 바탕으로 한 곡씩 완성해나간다그렇지만 끝까지 쉽게 멜로디를 허용하지 않는 곡들도 있다대표적인 넘버가 <최후진술>의 마지막 넘버인 그래도 지구는 돈다’. “써지지 않았다기보다는 욕심이 나는 곡이라 끝까지 고민을 많이 한 곡이죠길이도 길고 그 안에서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는 곡인데앞서 나온 모든 넘버의 리프라이즈를 다 넣고 싶었어요물론 새롭게 삽입되는 주제도 있고요그래야 등장인물들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것 같더라고요. <트레이스 유>의 나를 부숴봐, <해적>의 우리 모두의 기억나지 않는 꿈도 끝까지 고생했던 곡이에요.”



작곡 과정에서 중요한 열쇠 중 하나는 노래를 부를 배우다곡을 쓸 단계부터 배우 목소리의 특징과 장점을 고려해 음악에 반영한다처음으로 함께 작업하는 배우의 경우에는 오디션에서의 노래를 녹음하는 것은 물론이고최대한 많은 조사를 통해 목소리 톤을 반영한다이를테면 <귀환>에서 현민이 부르는 자전거는 배역을 맡은 고은성·조권의 장점이 잘 드러나도록 곡을 썼다주요 배역들의 중창곡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는 대부분 배우가 가수 출신인 점을 고려해 가요의 색이 느껴지면서도 귀여움이 느껴지도록 작곡했다. <트레이스 유넘버에는 초연 멤버인 최재웅의 장점인 저음과 톤이 반영되어 있다배우마다 매력적인 음역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호흡을 잘 써서 고음을 잘 살리는 배우가 있고호소력있고 발라드에 강한 배우가 있죠목소리의 장점을 살리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쓰다 보니 배우들이 악보를 받아들었을 때 이 노래저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라는 반응이 많죠.”

 

 



박정아 작곡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여러 편의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춰온 김운기 연출과 이희준 작가다특히 이희준 작가와는 데뷔작 <사춘기>를 비롯해 <마마 돈 크라이> <트레이스 유> <최후진술> <신흥무관학교> <귀환>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함께했다이희준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사춘기초연 때 세 창작자의 우정이 얼마나 뜨거웠는지 모를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박정아 역시 <사춘기> <마마 돈 크라이초연을 작업했던 2008~2010년의 설치극장 정미소에서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한다. “이제 저희 셋은 한 마디만 들어도 서로 뭘 하고 싶은지어떤 의도인지를 알죠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대화를 길게 하는 편이 아니에요대본만 읽어도 다 보이니까요대화도 주어목적어 다 생략하고 이야기해요대본을 읽고 제가 다짜고짜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하면 작가님이 ‘들켰다’ 하는 식이죠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보여서 작가님여기에서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예요?’하면 ‘알잖아라는 답이 오고요.”



이렇게 찰떡 같은 호흡이 묻어있어서일까이들이 함께 탄생시킨 <최후진술>과 <해적>은 초연부터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으며 앙코르 공연에서도 전석 매진을 거듭하고 있다그러나 창작 과정에서는 결코 쉽지 않았던 작품. “<최후진술>은 부담이 컸어요무엇보다 초연을 함께한 네 명의 배우(이승현유성재박규원양지원)의 각오가 작품에 임하는 각오가 남달라서 좋은 작품을 만 들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죠오랜 시간을 들인 작품이고스트레스도 컸지만 돌아보면 기쁘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같은 해(1564)에 태어났다는 사실에서 출발하는 작품은 윌리엄의 안내로 갈릴레오의 생애를 반추해나간다두 예술가는여정을 통해 신념에 대해 곡을 쓰고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위안을 많이 받았어요스트레스는 분명 있었지만 쓰는 순간만큼은 재미있었는데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이 제가 작곡가로서 살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었거든요소위 예술하는 사람들의 독특함이나 엉뚱함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부분도 그렇고요읽으면서 치유와 위로를 받았죠“.  전 배역이 젠더프리 캐스팅이었던 <해적>은 까다로웠던 작업으로 기억된다남녀 배우 음역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야했기에 음악팀으로는 작업이 두 배였다. “조성은 똑 같은 대신 남녀의 키를 다르게 만들었어요남녀 목소리가 가진 느낌이 달라서 머리를 정말 많이 써야했죠수학문제를 풀 듯이 작업했던 것 같아요남녀남남여여여남까지 모든 경우의 수에 맞는 MR을 제작해야 했기에 작업이 정말 오래 걸렸어요배우들과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죠저희 집에 초대한 두 팀이 시어터플러스 그리고 <해적>팀이에요(웃음).”

 

 



2020년은 그에게 여러 측면에서 기념할 만한 해다무엇보다 초기작인 <마마 돈 크라이>가 초연 10주년 기념공연을 올린다창작자로서 가장 보람되는 순간으로 재공연이 확정될 때를 꼽는 그로서는 작품이 어느덧 열 번째 생일을 맞았다는 감회가 남다르다.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이에요초창기 작품이다 보니 작업하면서 배우들보다 경력이 짧은 작곡가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죠경험과 노하우가 부족했을 때다 보니 배우들이나 음악팀이 고생했을 거예요그렇지만 작품이 잘 버텨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활동하는 밑바탕이 되어주었어요.” 세상에 새롭게 선보일 신작 또한 계획 중이다이중 첫 번째 작품은 뮤지컬 <알렉산더>. 특별한 세 살 짜리 말(알렉산더와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박정아 작곡가가 김운기 연출이희준 작가가 다시 한 번 합을 맞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작품아직 본격적인 곡 작업을 준비하는 단계이지만 재즈풍의 음악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것이 박정아의 귀띔. “뮤지컬 음악이 땅으로 내리꽂는 듯한 힘을 가진 단단한 음악이라면재즈는 허공에 떠있는 듯한 느낌이랄까요사뭇 다른 두 장르를 어떻게 가져올지를 고민하고 있죠그러면서도 경주마라는 소재에 걸맞게 말의 역동성을 가져와야 하고요매일 고심하고 있는데 아직은 해결이 나지 않네요.”

이어 발표할 열 번째 신작을 앞두고도 고민이 많다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어요관객분들의 믿고 본다는 응원은 너무나 큰 힘이 되지만 그만큼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제 음악을 식상하다고 느끼시지 않도록 공부도고민도 많이 하는 편인데 여러모로 새로운 결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아요지난해 <해적>과 <귀환>을 통해 희준 작가님과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사춘기때의 기억이 많이 났어요그러면서 처음의 마음을 다시 새겼다고 해야 할까요. ‘같은 팀이 선보이는 작품인 만큼 정말 좋은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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