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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은미와 혜경_‘싱크 넥스트 22’ 안은미컴퍼니 신작 <디어 누산타라>

은미와 혜경

‘씽크 넥스트 22’의 시작을 알리는 <은미와 영규와 현진>에서 세계적인 안무가 안은미는 20년 전에 발표했던 솔로작을 또 한번 선보이며 ‘희망찬 반란’을 이끌어냈고, 안은미컴퍼니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는 김혜경은 <자조방방(自照房房)>을 통해

스스로를 비웃는 자조(自照)에서 스스로를 위해 애쓰는 자조(自助)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제 이들은 ‘안은미컴퍼니 신작’이란 브랜드를 달고 <디어 누산타라>라는 작품을 세상에 드러내려 한다.

다섯 명의 인도네시아 무용수와 다섯 명의 한국 무용수가 만나 탄생될 새로운 언어, 나라와 나라를 잇는 몸의 사유가 궁금해 안은미와 김혜경을 만났다.

춤에 있어서 초능력자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도, 선생님과 학생도, 사장과 사원도 아닌, 모든 작업의 흥망성쇠를 함께 하는 동료에 가까워 보였다.

한번도 한가해본 적이 없는 이들과의 인터뷰에 여유 따윈 없었지만, 즐거움과 진지함과 명쾌함으로 뭉쳐놓은 농축액을 서서히 물에 풀어본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진호


<은미와 영규와 현진> 공연을 마친 소감을 듣고 싶어요.
안은미 개인적으로 이번 공연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이유는 ‘평생 춤추는 사람의 몸’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오랜 만에 올리는 솔로 공연이라 과연 체력적으로 버텨낼 수 있을까, 안은미도 이제 나이 들었네 같은 얘기를 듣게 되는 건 아닐까, 댄서로서의 경지를 보여줄 수 있을까 등 여러모로 스스로에 대한 도전이라고도 생각했죠. 무용은 한 방의 승부라 무대 위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어야 하거든요. 다행히 <은미와 영규와 현진>을 통해 확실히 느낀 건, 안은미는 진짜 춤꾼이라는 사실입니다. 리허설까지 다섯 번을 공연했는데도 몸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거든요.

한꺼번에 만나기 어려운 아티스트 세 분(안무가 안은미, 음악감독 장영규, 가수이자 화가인 백현진)이 모여서 2003년에 했던 작업을 다시 올린다는 자체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이었습니다.
안은미 장영규와 백현진 모두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이잖아요. 영규가 너무 바빠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영규 말로는 현진이가 더 바쁘다는 거예요.(웃음) 준비하는 과정은 너무 재미있었고, 공연을 끝내고는 서로 고마워했어요. 어어부 프로젝트가 90년대 말에 활발히 움직이던 밴드라서 저의 동년배들은 레트로 감성을 일깨워줬다며 굉장히 좋아했고, 1996년에 짰던 이런 스타일의 춤을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십대 친구들은 오히려 새롭게 받아들이더라고요. 우리 끼리 농담 삼아 “경로잔치하듯 일년에 한번씩 모이는 거 어때?” 물어봤다니까요.
김혜경 선생님의 오래전 솔로작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온 저로서는 이번에 그 한을 풀었습니다. 처음 작업했던 2003년 ‘그때’를 회상했을 때 ‘그때로 돌아가는 몸’이 완전 멋있더라고요. 어릴 적 놀았던 감각이 날아가지 않고 몸에 그대로 남아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재미있게 잘 살아야 되는구나를 다시금 느꼈어요.

김혜경의 <자조방방(自照房房)> 역시 2018년에 무대에 올린 적이 있죠. 이번 S씨어터에서의 공연은 어땠나요.
안은미 오우, 마담뱅뱅!
김혜경 외국분들이 제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해서 바꿔보려고요. <자조방방>의 ‘방방’과 ‘마담’을 합쳐서 마담뱅뱅으로.(웃음) 2018년 12월 마지막 날에 올린이 작품은 스스로를 비웃는 지점에서 시작해, 스스로를 반성하고, 궁극적으 로는 스스로를 위해 애쓰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요. 저는 늘 생각했거든요. 나는 지구에 잘못 떨어진 외계인이 아닐까. 굉장히 디테일한 사람이라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다른 사람에 비해 속도가 느려요. 치열하고 재빠른 사회 안에서 내 속도로는 살아갈 수 없나 늘 고민이었어요. <자조방방>을 통해 폐쇄의 공간이자 자유의 공간이기도 한 ‘방’에서 정직하게 스스로를 비춰 보고 싶었어요.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에 존재할 거라는 가정 하에, 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인지 관객과 나누면서요.
안은미 어쩌면 혜경이의 속도가 일반적인 사람들의 속도일 수도 있어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삶이 그리 다이나믹하지 않거든요. 특별할 게 없는 삶이 무한 반복인 거지. 하지만 어찌됐든 우리는 그걸 이겨내야 하잖아요. 관객은 조금 힘들어할지 모르겠으나 저는 명상 같은 이 작품이 참 슬펐어요. 좁은 방에 있는 우리에게는 가지고 있는 여력이 이것밖에 되지 않지만, 이거라도 짊어지고 가야하니까요. 요즘은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강조하는 솔로 작업이 많은데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자조방방>은 안무가로서 필요했던 과정이었다고 생각했어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본 특별한 인연이 있었나요?
안은미 혜경이가 학생이던 시절, 우리는 대학 특강 때 만났어요. 제가 사실 쉽지 않은 사람, 잘못 말하면 혼날 것 같은 사람으로 보이잖아요. 학생들도 저를 그리 궁금해하지 않은 것 같았고…
김혜경 무슨 말씀이세요? 엄청 궁금해했어요.
안은미 이 친구가 굉장히 독특하더라고요. 눈동자가 딴 데 가 있다고 할까.(웃 음) 뭐든 잘하겠다 싶어서 제가 얘기했죠. 자네는 여기 있지 말고 미래의 젊은 주자로서 외국으로 가게나~.
김혜경 그때 선생님 말씀 듣기 정말 잘했어요.
안은미 여기저기 제가 막 찔러보지만 대부분 위험한 도전을 싫어하니까 주저하다가 결국 안정을 택하거든요. 다 버려야 어려운 걸 해도 재미있는데.
김혜경 용기를 내어 해외에 나가 부딪히고 할큄을 당하면서 이게 현실이구나, 난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를 시시때때로 느꼈어요.

안은미 선생님께서는 제자를 삼는 기준 같은 게 있으세요?
안은미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는 거지, 저는 ‘제자’라거나 누구를 ‘가르친다’라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안은미컴퍼니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얻은 뒤 본인의 입으로 제자라고 한다면, 제가 그것까지 뭐라 할 순 없겠지만 “이 친구는 내 제자야” 이런 말은 하지 않죠. 누군가 나를 선생이라 불러줘야 내가 선생이 되는 거니까. 들어오고 나가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다고 할까요. 갑자기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더 이상 춤을 못 추게 될 수도 있고, 가까운 누군가가 춤추는 걸 반대할 수도 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 가는 거예요. 제가 프로젝트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비전공자, 밀레니엄 베이비, 할머니, 아저씨, 소수계층, 장애인 등 많은 이들을 만난 건, 제 나름대로의 경험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나이 50에 모든 욕망을 끝낸 터라, 이제는 털어낼 준비가 되어 있어요. 무언가를 나눠주는 리더의 자격이 생겼다고 자부하고요. 그래서 쉰이 딱 되었을 때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를 올렸습니다.
김혜경 안은미컴퍼니에 들어오자마자 할머니들 인터뷰 해오라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 춤이 너무 좋아서, 춤추고 싶어서 들어왔는데 자꾸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라 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하고… 뒤돌아보니 반드시 해야 했던 인문학 공부였더라고요.

두 분이 함께 참여하시는 신작 <디어 누산타라> 역시 제목만 봐도 인문학적인 색이 물씬 묻어납니다. 여름 축제의 성격을 지닌 ‘싱크 넥스트 22’의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네요.
안은미 2018년에 우연히 인도네시아에 갔다가 무용수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어요. 아무것도 묻지 않은 순수하고 생생한 느낌! 상상하지 못했던 몸이 놀라워서 크게 외쳤죠. 오, 희망이 잔뜩인데?(웃음) 인도네시아 댄서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서, 여러 번의 오디션을 거쳐 다섯 명의 무용수들을 한국에 데려왔어요. 인도네시아에는 1만7천 개의 섬이 있어서 부제를 ‘섬섬섬’으로 정했죠. 혹시 2022년 1월에 인도네시아 수도의 명칭이 ‘누산타라’로 바뀐 거 알고 있어요? 고대 자바어로 ‘군도(많은 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제목을 짓는 시점에서 한달 전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통과가 된 거예요. 디어 누산타라, 친애하는 신도시! 의미가 너무 좋지 않나요?
김혜경 일본, 말레이시아, 태국, 대만, 인도네시아 등 안은미컴퍼니의 <드래곤 즈> 이후부터 꾸준히 아시아 리서치를 해왔어요. 춤이라는 소스 안에서 발견 되는 통일성, 움직임의 언어를 공부하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니라 한없이 가야 하는 여정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안은미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여는 이때, 인도네시아 문화와 한국문화가 섞였을 때의 절묘함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전통이 전통으로 머무르지 않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 저도 몇십 년에 걸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니 제가 받은 걸 반드시 돌려줘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잖아요.
김혜경 선생님하고 작업하다 보면 움직임에 대한 연구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궁금해져요. 예를 들어 얼마 전 무대에 올렸던 ‘북한춤’도 몸의 움직임, 그 궁금함을 끝까지 파헤치거든요. 그들이 어떤 영향을 받아서 그런 몸짓이 나왔는지 말이죠. 할머니 작업부터 낌새가 보이더니 유럽을 거쳐 다시 인도네시아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정말로 선생님의 이 길이 옳다고 생각하거든 요. 다음은 또 무엇일지 호기심이 생깁니다.

이 작품을 보며 관객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요.
안은미 오감으로 다 느껴야죠! 일단 인도네시아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으면 하고, 수도를 옮겼다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고(웃음),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활짝 열려 있었으면 해요. 자주 만나고 교류해서 서로의 벽이 얇아져야 진정한 인류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저는 ‘미(me)’가 중요하지 않아요. ‘위(we)’가 중요하지. 예술의 힘은 서로 다른 문화를 연결하거나 혹은 깨면서 새로운 살을 만들어내는 순간 생겨나요. 그래서 끊임없이 공부해야 해요. 제가 선보였던 ‘막춤’도 할머니들의 역사가 살아있으니 멋지고 아름다웠던 거죠. 막춤이 영어로 하면 ‘즉흥’이에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저급한 시골 느낌이 아니에요.
김혜경 이런 말씀을 들었어요. ‘막 추어지는 춤’이 막춤이 아니라 ‘갓 구워낸’ ‘막 꺼낸’ 싱싱한 상태의 춤이 막춤이라고.
안은미 춤이 지닌 언어에 ‘프레시한’ 지점이 분명 있어요. 좋은 춤을 만나면 이해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니어도 알아들을 수 있는 무엇이요. 춤은 시각적 뇌파를 충분히 자극해서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야 풍요로워집니다. 한쪽으로 쏠려 있으면 건조해져요.

늘 그랬듯 이번 작품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안은미 제 작업은 늘 재미있어요. 관객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내가 궁금했던 것이 당신들도 궁금해했던 점일 거라는 전제하에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니까요. 과학자가 연구하는 프로세스를 보면 즐거운 것처럼, 안무가도 똑같아요.
김혜경 <자조방방>이 딱 이래요. 나로 시작해서 다른 사람은 어떤가 질문을 던지니까요. ‘왓 어바웃 미’에서 ‘왓 어바웃 유’!
안은미 쌍방의 공유성에 대한 훈련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는 것만 하게 돼요. 그래서 참고 연습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춤은 보편적인 세계 언어예요. 말없이 만나도 눈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떤 것!

ATTENTION, PLEASE
‘싱크 넥스트 22’ 안은미컴퍼니 신작 <디어 누산타라>
기간 2022년 9월 1일-2022년 9월 4일
시간 19:30 평일|18:00 주말
장소 세종S씨어터
안무 및 출연 안은미
출연 김혜경, 이재윤, 정의영, 문용식, Eyi Lesar,
Hari Ghulur, Leu Wijee,
Otniel Tasman, Loreina Rena P.
가격 전석 5만원
문의 02-399-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