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t of LUNA_배우 루나
Scent of LUNA
루나가 맨발로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맘마미아!>의 배경, 지중해 푸른 바닷가의 시간이 스며들어 있는 듯한 ‘소피’다운 경쾌한 걸음이었다. 특유의 건강한 에너지는 공간에 모여든 모든 이들에게 금세 전파되었다. 한여름의 눅눅한 공기는 화사한 향수를 뿌린 듯 활력을 되찾았다. 건강한 에너지가 향기로운 배우 루나가 플라워 바이 겐조와 함께한 시간.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장원석 stylist 최지향
먼저 <맘마미아!>의 첫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소감을 들어볼까요.
휴, 공연 전에 얼마나 긴장을 많이 했는지 몰라요. 첫 장면에서 아빠 후보들에게 보낼 엽서를 넘겨가며 읽어야 하는데,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발걸음이 안 떼어질 정도였으니 말 다 했죠 뭐. 다행히 뒤로 갈수록 집중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물 만난 고기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공연후반부로 갈수록 더 신이나는 공연은 처음이에요. 이제 막 세 번째 공연을 마쳤는데, 1년 뒤의 저는 어떤 소피가 되어 있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많이 돼요.
소피는 엄마 도나, 그리고 아빠 후보들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이 많죠. 부모님 뻘의 선배들인데도 찰떡 같은 호흡이 느껴지던 걸요.
제가 어려워할 틈 없이 선배님들께서 먼저 다가와 주신 덕분이에요. 반찬도 싸 주시고, 아침도 챙겨 주시고, 정말 엄마 같고 가족 같은 포근함이 있어요. 지금까지 한 작품들에서도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시너지가 좋은 팀은 처음이에요. 인간적으로 많이 배우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요.
선배 배우들에게서 시간이 흐른 뒤 배우 루나의 모습을 그려볼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특히 도나 역의 최정원 선배님은 제 롤모델이시죠. 운동이면 운동, 식단이면 식단. 선배님의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며 배우는 점이 많아요. 그리고 매사에 ‘예스’를 외치시죠. “예스, 예스, 우린 해낼 거야! 우린 할 수 있어!” 이렇게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으세요. 한 번도 힘들다는 티를 내지 않으시죠. 그래서 저도 요즘은 지칠 것 같을 때도 “나는 할 수 있어!”를 외치면서 일어나요.
긍정 에너지로 따지자면 루나야말로 누구한테 지지 않잖아요.
저는 사실 꾀병이 좀 있거든요(웃음). 그렇지만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완전 변했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나의 젊은 나날을 좀 더 즐기고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고 할까요. 쉬는 날이라고 집에만 있지 않으려고요. 오늘도 인터뷰 후에 드라이브하러 갈 예정이에요. 맛집 투어도 하고, 유튜브 ‘루나의 알파벳’도 찍고요!
세어보니 <맘마미아!>가 어느덧 여덟 번째 작품이더라고요. <금발이 너무해>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할 당시와는 많은 점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금발이 너무해>는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요. 운 좋게 훌륭한 작품을 만나서 뮤지컬을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한 작품 한 작품을 거쳐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데뷔 때만 해도 연기가 마냥 재미있었다면, 요즘은 진지하게 고민하게 돼요. 배우로서 어떤 길을 가야할 것인가, 관객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될 것인가… 그간 쌓인 시간이 보람으로 돌아오기도 하죠. 특히 이번 작품을 하면서 관객분들에게 신뢰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루나가 아니라 소피로 봐 주신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객석에서 응원해주는 에너지를 느낄 때마다 저도 최대한 좋은 에너지를 돌려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처럼 인정받기까지는 남몰래 마음 고생을 하는 날도 있었겠죠.
배우로서 인정 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많이 속상했어요. 열심히 무대를 하고 내려왔는데도‘루나가 무슨 배우야, 연예인이지’ 같은 말을 들으면 너무 마음이 아팠죠. 소외감도 느끼고요. 지금은 담담히 넘기려고 해요.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자 특권이니까요. 책임감도 함께 커진 만큼 더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뿐이죠.
뮤지컬로 영역을 넓힌 것이 아티스트 루나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무엇일까요?
작곡가로서 좋은 곡을 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한데 뮤지컬 무대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죠. 가끔은 공연이 끝나면 바로 작업실에 가서 곡을 쓰러 가기도 해요. 참, <맘마미아!>를 연습하면서 쓴 곡도 있어요. ‘소녀(little girl)’라는 뮤지컬 넘버인데, 저와 함께 소피 역을 연기하는 배우 (이)수빈이가 가사를 쓰고 제가 작곡을 했죠.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예쁘게 포장해 온 소녀야, 이제는 너를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드러내도 돼.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야’라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에요.
뮤지컬 배우 루나를 가장 성장하게 만든 작품은 무엇인가요.
<맘마미아!>인 것 같아요, 정말로요. 거의 인간의 한계를 넘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어요(웃음). 준비하면서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처음이니까요. 하나의 작품 안에 지켜야 하는 약속들이 너무 많은 것도 그렇지만, 15년 동안 만들어진 작품과 캐릭터 안에 저를 맞춰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잖아요. 정해져 있는 소피의 모습과 제가 생각한 캐릭터가 부딪힐 때면 내 개성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았어요.체력적으로도 만만치 않았죠. 제가 운동을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소피의 엄청난 에너지를 감당하려면 연습과는 별도로 세 시간씩 운동하면서 체력관리를 해야 했거든요. 동료 배우들의 응원이 있기에 해낼 수 있었죠. 그 과정을 거치고 마침내 무대에 오르니, 나에게는 정말 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구나 깨닫게 되었고요. 혹시 지금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을 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어요. ‘우리가 이겨내지 못할 일은 없다’고요.
포기하고 싶을 때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이 있었나요?
저의 뮤지컬 스승님이라고 할 수 있는 김문정 음악감독님께서 해주신 말이 기억나요. 제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선영아, 잘 하고 있어. 나는 네가 무대에 설 때 얼마나 잘 해낼지 너무나 잘 보여. 그러니까 네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연습할 때는 부족해도 괜찮아. 공연에서 잘 해내면 되는 거야.” 그날 정말 펑펑 울었어요. 감독님을 실망시켜드리면 안 되겠다 다짐하면서요.
누군가의 격려가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스스로 에너지를 채워야 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먹어요(웃음). 특히 블루베리와 바나나, 샐러드! 제가 체력관리 할 때 빼놓지 않고 먹는 것들이죠.
루나의 정신적인 에너지를 채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운동과 명상이에요. 제 분장실은 항상 어두운데, 조그만 조명이나 촛불만을 켜놓고 한두 시간씩 명상을 하곤 해요. 어제도 한 시간 동안 명상을 했어요. 보통 두세 번 공연을 하면 긴장이 좀 풀리는데 여전히 너무 떨리는 거예요. 대사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요. 이렇게 두려워도 괜찮은 걸까. 무대공포증을 극복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다시 생기는 건 아닐까. 계속 눈물이 났죠. 명상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어요. 무대가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게되는 시점에 있다는 걸요. 배우로서 성장할수록 무대가 냉정하고 무서운 곳이라는 걸 알게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항상 진실되어야 하죠.
루나에게도 시그니처 향이 있나요?
그럼요! 저는 향을 정말 중요시해요. 개인이 가진 본연의 향에 향수가 더해지면 그 사람의 분위기가 바뀌잖아요. 그래서 공연 전에는 늘 향초도 피우고 향수도 캐릭터에 맞게 뿌리고 나가요. 특히 <맘마미아!>는1막, 2막은 물론이고 장면마다 다른 향의 퍼퓸을 뿌린답니다. 소피가 고독하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을 때는 딥한 느낌의 향을, 결혼식 신에서는 플로럴하면서도 향긋하고 가벼운 느낌의 향을. 저 스스로도 도움이 되지만, 상대 배우가 좋은 향을 맡아서 기운을 얻으면 시너지 효과가 날 테니까요.
<맘마미아!>는 소피가 부르는 ‘I have a dream’으로 시작을 열고 끝을 맺죠.
이 곡을 부를 때마다 10여년 전에 처음<맘마미아!>를 보았던 소녀의 마음으로 돌아가요. 공연을 본 날 엄마와 아빠에게 “언젠가 이 작품 꼭 하고 말 거야!”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요. 이번 작품 연습을 시작하면서 당시에 썼던 일기를 읽어봤는데 ‘꼭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가장 기억나는 장면 중 하나로 이 곡을 적어 두었더라고요. 그래서 마지막 곡을 부를 때마다 눈물이 나는 것 같아요.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는 게 느껴져서요. 새로운 도전을 하러 출발하는 느낌도 들고요.
루나의 목소리로 이 곡을 들으니 왠지 희망과 용기가 생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런 진심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군요.
정작 저는 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고민이 많답니다. 이제 데뷔 10년차를 맞이하는 만큼, 새로운 꿈을 꿔야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인지 어느 때보다 꿈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가수로서 어떤 꿈을 꿔야 하는 것인지, 한방을 터뜨리는 가수가 될 것인지,아니면 오래오래 자신의 음악을 하면서 소통하는 가수가 될 것인지. 뮤지컬배우로서도 마찬가지고요. 가사에 ‘믿는다면 이뤄지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실패한다 해도 해보는 거야’라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어떤 꿈을 꿀 수 있을까, 실패를 감안하고도 꿀 수 있는 꿈이 정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상적인 루나의 모습에 대한 꿈을 이야기해볼까요..
믿고 보는 가수, 믿고 보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 무대를 보고 나면 더 행복하게 살고 싶어지고,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지고,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게 만드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런 다짐으로 버텨온 덕분에 10년 동안 힘든 일도 잘 이겨냈던 것 같고요. ‘매사에 감사하며 살자’가 제 모토인데, 이제는 그걸 넘어서 이 행복을 누군가에게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를 어기는 경우에는 민·형사상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