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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뜨겁고 섹시하게_뮤지컬 <시카고> 배우 민경아

뜨겁고 섹시하게

 

 

진심을 담은 노래와 연기로 ‘민경아만의 록시’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녀.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ROBIN KIM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롱런하고 있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시카고>가 한국 공연 21주년을 맞았다. ‘21’이라는 숫자는 한국 관객의 응원과 사랑 역시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 돈만 있으면 뭐든지 가능하던 1920년대 시카고, 거리에는 환락이 넘쳐나고 마피아가 지하 세계의 돈으로 도시를 장악했던 시절, 살인을 저지르고도 스타가 되길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에 여전히 전세계인이 환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싸구려 저널리즘에 대한 시니컬한 묘사와 풍자, 남성 중심의 도덕관과 황금만능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이 녹아있는 것은 물론 이러한 주제 의식을 대단히 위트있고 세련된 방법으로 표현한 덕분일 테다. 화려하지만 단순한 무대, 미국적인 재즈 사운드, 밥 파시(Bob Fosse)의 섹시하고 드라마틱한 안무, 블랙과 레드의 환상적인 톤앤매너는, 클래식하고 기승전결이 확실한 기존의 대극장 작품과 분명 차별을 이룬다. 

민경아는 무려 200:1의 공개오디션을 뚫고 새로운 ‘록시 하트’로 관객 앞에 다가섰다. 이미 전작인 <렌트>의 ‘모린’ 역으로 홀로 무대를 이끌어가는 방법을 터득한 그는 인생캐릭터를 만나 그동안 보여주지 못한 매력을 120% 보여주고 있다. 지나온 날들을 잊지 않고, 무대 위에 서는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면서. 2021년 뮤지컬 <시카고>의 키워드 ‘CHICAGO is Hotter than Ever!’처럼 뮤지컬계에서 가장 뜨겁게 주목받는 배우, 다음을 더 기대하게 만드는 민경아와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눠 보았다.  

 

 

 



제작사와 <시카고>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록시의 민경아 배우가 참 궁금하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렌트>의 ‘모린’을 보고 깜짝 놀라서 말이죠. 
(웃음) 꽤 많은 작품을 했는데 제게 그다지 관심 없던 분들도 <렌트>를 보고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예쁘게 노래하고 조용히 걸어만 다니다가 완전 망가져 버리니까 신기하셨나봐요. 

지난번 인터뷰 때 그러셨어요. 지고지순한 역할을 계속 하니 가족과 지인들이 “널 그렇게 숨겨도 되는 거냐” 하신다고요. 
맞아요. 그런데 막상 <렌트>를 보고는 “너 그렇게 망가져도 되는 거냐” 하셨어요. 제가 무대 위에서 바지까지 내려버리니 엄마는 조금 걱정하신 반면, 어릴 때부터 “개그우먼 해볼 생각 없어?”라고 줄곧 말씀하셨던 아빠는 굉장히 좋아하셨죠. <시카고> 오디션을 보기 전에도 아빠는 제게 특별히 바라는 게 없지만 <시카고>는 꼭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너무 세련된 작품이라고요.

치열했던 오디션 얘기 좀 해주세요. 
<렌트> 이후에 정해져 있는 작품이 없었는데 <시카고> 공개 오디션이 떴더라고요. 기회를 꼭 잡고 싶었어요. 무대 위에서 제가 춤을 춰본 적은 없지만 친구들과 춤추는 걸 워낙 좋아하는데다 어릴 때 엄마가 재즈 댄스, 발레 학원을 열심히 보내주셔서 기본기가 좀 잡혀 있었어요. 아예 몸치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래도 걱정은 했죠. 오디션에서 어떤 지정안무가 나올지도 모르고 또 제가 습득하는 시간이 빠르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시험공부하듯 유튜브를 통해 중요한 안무를 연습하고 또 연습했어요. 운 좋게도, 나올 것 같았던 안무가 딱 나온 거예요! 제 춤을 보시고 감독님이 “너, 아이비가 도와줬지?”하시는데 그 말씀이 정말 좋았어요. 아이비 언니는 제가 오디션을 치르는 지도 몰랐거든요. 어쨌거나 최종까지 올라가서 대본도 열심히 외우면서 최선을 다했어요. 떨어지면 이번 기회는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웠고요. 그런데 결국 합격을 했네요. 너무 좋아서 가족들,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이 기쁜 소식을 알렸습니다. 

<시카고>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라 뮤지컬을 즐겨 보지 않는 이들도 다 알아요. 막상 도전해보니까 어떤가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 나왔을 때 제게 여성스럽고 순수한 역할을 많이 주시더라고요. 심장 약하고 곧 죽을 것 같은.(웃음) 제 안에 저도 알지 못하는 모습이 있나 보다 여겼기 때문에 감사했어요. 그럼에도 <시카고> 공연을 보면서 늘 ‘나도 할 수 있는데…’ ‘내 안에도 뜨거운 것이 불타고 있는데…’ 생각했죠. <렌트>는 그런 의미에서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린 첫 작품이에요. 자의식이라는 게 없었던, 정말 모든 걸 내려놓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어요. 굉장히 자유로웠다고 할까요. 많은 걸 배웠어요. 저 혼자 무대 위에서 15분을 끌고 가야하기 때문에 집중력을 배웠고 관객과 밀당하는 방법도 배웠죠. <시카고>는 제게 또 다른 배움을 주는 의미있는 작품일 수밖에 없어요. 연출님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 “뭘 더 하지 마라”거든요. 무슨 뜻이냐면, 저희가 연습하는 공간에는 연기만 하는 작은 방과 춤까지 출 수 있는 큰 방이 있어요. 작은 방에서 연기 연습을 하다 런 스루를 하기 위해 큰 연습실을 갔어요. 공간이 커져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밋밋할 거란 생각에 살짝 과장하고 오버스러운 모습을 보여드린 거죠. 그때 하신 말씀이에요. 연습실에서도 이렇게 하면 대극장 무대에 올라가면 더 당황할 거라 하시면서, 소극장이라 생각하고 스토리텔링을 해줘야 한다는 말씀을 정말 많이 하셨죠. 그 말씀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많은 연습을 한 뒤 무대 위로 올라갔더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연습 때와 똑같이 되더라고요. 관객들을 만나고 기분 좋아서 흥분한 건 있었지만요. 

춤도 굉장히 잘 추시던데요? 
열심히 배운 거예요. 연습하면서 내가 코어 힘이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구나, 알았어요. 중심을 잡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2주 정도는 근육통 약 먹으면서 버텼어요. 그러다 보니 허벅지가 탄탄해지고 내 안에 코어가 딱 잡힌 느낌이 들더라고요. 무대 위에서 춤을 춰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조명이 눈에 비쳤을 때 앞이 안보여서 중심을 못 잡았죠. 이 작품은 춤도 참 절제되어 있어요. 어찌 보면 만화 캐릭터 같기도 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이 안에는 질서와 절제가 있답니다. 

계속 춤 연습을 하다 보면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겠어요.  
맞아요. <시카고> 배우들은 샐러드와 셰이크만 드세요. 음식을 많이 먹고 연습하면 금세 지치고 몸이 노곤해진다고 할까요. 아침에 바나나 하나 먹고 가볍게 몸을 푼 뒤 점심 시간에는 샐러드나 셰이크를 먹어요. 6시까지 연습한 뒤 맛있는 저녁을 먹죠. 이 패턴이 계속 되니까 살이 빠지고 좋더라고요.  

 

 

 

 

 

록시 하트는 어떤 인물인가요. 
보드빌 무대를 꿈꾸는 여자. 물론 왈가닥에다 생각 없이 말하곤 하지만 예쁜 얼굴과 몸매로 남자들에게 사랑받다가 버려지는 인물입니다. 그러다가 단 한 번도 “안 돼!”라고 말한 적이 없는 에이모스를 만나 결혼해요. 춤을 추고 무대에 서야하는 꿈을 지닌 록시는, 어떤 계기로 들어오게 된 감옥 안에서도 유명해지고 싶어해요.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데 그 유명세가 그저 좋은 거예요. 튀는 행동, 철부지 같은 행동만 생각하고 대사를 한다면 어쩌면 관객은 록시 하트를 한없이 나쁘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록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어요. 가여웠고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여자인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록시 장인’이라는 아이비 배우, 새롭게 참여하게 된 티파니 영 배우의 록시는 어떤가요. 
저는 예전에도 아이비 언니가 나오는 <시카고>를 봐왔어요. 이제는 섹시함과 사랑스러움을 넘어 농염함까지 겸비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멋있어요. 티파니 언니는 참 순수하고 감수성이 엄청나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면들이 재미있고요.

록시를 준비하면서 찾아보았던 자료가 굉장히 많았을 것 같아요. 유튜브 검색만 해도 우르르 나오니까요. 
정말 많이 봤어요. 너무 보다 보니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따라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연출님께서 ‘모두가 자신만이 지닌 개성이 있다. 보는 건 괜찮지만 절대 따라하지 마라’ 말씀해주셔서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머릿속에 있던 다른 배우의 영상을 다 지웠어요. 신기하게도 저만의 것이 나오더라고요. 스스로를 믿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이 작품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나 스스로 넘어야할 산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디였나요. 
모놀로그요. 왜냐하면 이 장면을 통해 관객이 록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야 하거든요. 제가 잘해야 작품이 끝날 때까지 관객이 록시를 응원하게 되고 무죄 받기를 바라요. 이 장면이 잘 풀리지 않으면 관객이 ‘아, 그냥 록시 벌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종이 한 장 차이라 저에게는 정말 중요한 미션이었어요. ‘록시가 저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얼마나 간절하면 저럴까’ ‘용서 받았으면 좋겠다’를 증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풀리지 않아 많이 울었어요. 정말 넘어야 할 산이었어요. 근데요, 그냥 방법은 하나였어요.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것. 연출님이 그러셨어요. 진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말만 해도 통한다고요. 어느 날 제가 이 장면에서 에이모스에 대해 얘기하는데 너무 눈물이 나는 거예요. 해결되는 순간이었어요. 연출님께서도 이해해줘서 고맙다 하시더라고요. 

무대마다 그 장면을 매번, 진심으로 연기하는게 가능한가요? 
음…네. 좋은 디렉션을 받았던 게 “여러분,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가 아니라, “딱 한 사람한테 얘기하듯이 해라.”였어요. 인터뷰한다고 생각하고 솔직하게 얘기해라. 물론 작품마다 조금씩 다른데요, 감정을 100% 모르는 상태에서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배우라면 적어도 진실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습실 분위기는 어땠어요? 
정말 많은 선배님들이 편안하게 해줬어요. 이렇게 좋을 수는 없었을 거예요. 제가 안 풀리는 장면에서 힘들어할 때도 “경아야, 록시가 다 그 장면 때문에 울었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언제나 다독이며 위로해 주셨죠. 최정원 선배님은 한국 <시카고>와 역사를 함께 하시는데 여전히 열정이 넘치시고 재미있게 하시니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무슨 생각 하나요.  
오늘도 재밌게 해야지! 

<시카고>에서 재미있는 건 무엇인가요.  
동작으로 스토리 텔링하는 거요. 모든 동작에 스토리 텔링이 있거든요.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전혀 다른 시대, 다른 나라가 배경인 이 작품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살인, 절도, 사기, 기만 등 어두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해학과 풍자로 재미있게 풀었다는 점이 매력이고요. 그런데 표현하는 방법이 세련되고 통쾌해서 더 매력입니다. 블랙 코미디의 매력이 모두 담겨 있다고 해야할까요. 벨마와 록시 모두 같은 여자가 봐도 멋있는 캐릭터인데다 주저앉지 않고 살아갈 힘을 주니까, 그 에너지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 같아요. 

 

 

 

 

 

 

Attention, Please
뮤지컬 <시카고>
기간 2021년 4월 2일-7월 18일
시간 19:30(평일)|14:00 18:30(토, 일)|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대성 디큐브아트센터
출연 최정원, 윤공주, 아이비, 티파니 영, 민경아, 박건형, 최재린 외
음악 존 칸더(John Kander)
극본&작사 프레드 엡(Fred Ebb)
극본&안무 밥 파시(Bob Fosse)
문의 070-4619-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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