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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너를 위한 이야기_뮤지컬 <더 픽션> 배우 박규원

너를 위한 이야기

 

박규원은 대답을 할 때마다 쉽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고민을 거듭해 알맞은 단어를 찾아냈고,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생각하며 말을 고르고 골랐다. 뮤지컬 <더 픽션>의 그레이 헌트가 표현 하나하나를 고민해 소설을 써 내려가듯 박규원도 찬찬히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editor 손정은 photographer 장호 place 서화커피

 


 

 

 

뮤지컬 <더 픽션>의 와이트 히스만은 작가 그레이 헌트가 쓴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의 엄청난 팬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책을 통해 힘을 얻었기에, 그에게 그레이는 위로이자 꿈이다. 무명 작가 그레이에게도 어느 날 찾아온 유명 신문사 기자인 와이트는 기회이고 희망이었다. 서로가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 힘이 되어주었기에, 작품의 결말은 언뜻 보기에 비극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박규원은 해피엔딩으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작품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라고 덧붙이면서. 그레이가 소설로 와이트에게 위로를 건넸듯, 박규원도 <더 픽션>을 통해 관객들에게 희망을 전하려 작품에 진심을 눌러 담고 있었다.

지난 시즌에 이어 그레이 역으로 참여하게 되었어요.
작품은 이번이 세 번째 공연이고 저는 2019년 재연부터 참여했어요. 무명 작가와 신문사 기자가 만나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며 일어나는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 제가 대학로 무대에서 활동을 한 지 시간이 꽤 되어서, 했던 공연에 다시 참여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고 있는데요. 이전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지난번과 캐릭터의 톤을 다르게 가져가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요. 열심히 고민하는 중입니다.

어떤 톤으로 바뀌었나요?
저라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크게 차이는 없겠지만, 조금 더 정리된 모습으로 찾아갈 것 같아요. 지난 시즌을 복기해보면 ‘왜 그 부분에서 그렇게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그런 것을 채우다 보니 약간은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있어요. 전보다 더 유쾌하지만 깊이 있는 작가의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레이가 쓰는 소설 <그림자 없는 남자>에는 범죄자들을 죽이는 ‘블랙’이라는 인물이 등장해요. 무거운 메시지가 담겨있기도 한데, 관객들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나가기를 원하시나요?
다른 것보다도 와이트에 공감하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용서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우리 사회가 남을 비방하기보다는 조금 더 포용하고 용서해줄 수 있는 사회로 가기를 바라거든요. 물론 와이트의 선택은 잘못되었죠. 관객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 너무 당연해요. 그래도 공연장을 나가실 때는 와이트를 용서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 역할이 더욱 중요하겠죠. 제가 와이트를 원망하는 것처럼 보이면 관객들을 설득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이번에 함께하는 세 명의 와이트(배우 유승현, 박정원, 황민수)는 지난 시즌에도 호흡을 맞췄죠.
세 분의 느낌이 다 달라서 재밌어요. 유승현 배우는 지적인 느낌이 있어요. 승현이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학자 같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와이트가 그레이를 찾아와서 같이 일하자고 웃으며 설득할 때도 마냥 해맑게 보이지는 않아요. 박정원 배우는 자유로운 영혼, 보헤미안 같아요. 와이트라는 캐릭터는 보헤미안 같은 면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원이의 와이트에는 맑은 모습이 담겨요.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이 친구는 정말 나를 원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황민수 배우는 저한테 막냇동생 같은 아이예요. 실제로 저보다 어리기도 하지만 애교도 많거든요. 마주 보고 연기하면 눈에서 애교가 느껴져요. 그래서 작품의 후반부에서 가장 마음이 무거운 것 같아요. ‘얘가 이렇게 된 것이 나 때문이구나’라는 생각. 지난 시즌보다 이번에 더 많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세 배우와 친밀도가 더 생기기도 했고, 지난번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거든요.

낯설다고 느꼈던 지점이 궁금합니다.
일단 제가 부르기에는 넘버의 음역대가 너무 낮았어요. 회전무대에서 움직이며 연기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무엇보다도 그레이라는 캐릭터를 하기에는 제가 어린 것 같다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처음 연습을 할 때부터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제일 어려운 부분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와이트에 비해 그레이가 더욱 성숙해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못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때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박유덕, 주민진 배우도 나이대가 비슷하지만 그들은 연기력으로 성숙함을 표현해내는데, 저는 제가 판단하기에 연기력이 부족했어요. 저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에 제가 가지고 있던 내공으로는 그걸 표현하기가 어려웠어요. 그래서 공연할 때 여유가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여러모로 정서적 여유가 생겼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스스로 부족한 점을 인정한다는 게 쉬운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걸 인정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정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고 계속 떨어지기만 해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긴 하죠. 그래서 노력이 필요하고요.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부분이 있나요?
물론 안 되는 것도 있죠. 배우들은 그런 게 있어요. ‘내가 최고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연기를 할 수 있다고들 하거든요. 이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네가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스스로 잘한다고 계속 믿어야 그 인물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저는 오히려 자기 객관화에 집착하다 보니까 인정이 안 되는 거예요. 처음에 연기할 때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남들은 잘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 너무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죠. 저도 자신감을 얻으려고 노력은 하는데 성격상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렇게 자기 객관화를 하면서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다 보면 스트레스 받지 않아요?
정말 많이 받죠. 그래서 제 자신을 많이 괴롭혀요. 저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고등학생 때 대학 콩쿠르에 나가서 1등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1등을 한 그날부터 ‘다음 곡은 어떻게 하지.’ 이 생각부터 했어요. 내가 진짜 순수하게 실력이 있는 것이 맞나, 운이 좋아서 1등을 한 게 아닐까. 그래서 늘 불안했던 것 같아요. 걱정이 많은 거죠.

그런 스트레스는 어떤 방법으로 해소하시나요?
종교에 어느 정도 의지하는 부분이 있고요. 취미로는 야구를 상당히 좋아해요. 제 인생의 유일한 취미 생활입니다.

야구팀 중에서도 LG트윈스 팬이라고 들었어요.
어릴 때 부모님께서 반대하셔서 못하긴 했지만, 원래 야구선수가 꿈이었어요. 최근에는 가지 못했으나 20대 때부터는 거의 야구장에 살았고요. 특히 박용택 선수를 좋아해서 경기가 끝난 후 밖에서 기다리며 바라보기도 했어요. 용택이 형을 정말 좋아했고, 그 기억이 저한테는 엄청난 추억이에요. 그분은 모르시겠지만.(웃음) 그래서 누구보다 팬의 마음이 어떤지 잘 알고 있습니다.

와이트가 작가 그레이의 팬이었듯, 박용택 선수의 팬이셨군요. 야구에 대한 사랑이 느껴져요.
성악을 전공할 때, 가장 큰 꿈 중에 하나가 잠실야구장에서 애국가 부르는 거였어요. 야구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애국가를 부르잖아요. 특히 어린이날에는 ‘잠실 더비’라고 LG트윈스와 두산베어스의 라이벌 매치가 있어요. 그래서 항상 성악가나 가수 중에 유명한 분들이 와서 애국가를 부르시는데, 그걸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뮤지컬을 하기 전에 생각했던 꿈 중에 하나였죠.

그건 앞으로도 가능한 목표 아닐까요.
예전보다 조금은 근접해 있을지 모르겠지만,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한 번이라도 기회가 온다면 너무나도 행복할 것 같아요. 야구는 없어지지 않을 테니까,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 가능할 수도 있겠죠. 사실 저는 어릴 때 여행을 가도 원정 경기를 맞춰서 갈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거든요. 야구팬들은 공감하실 거예요. 원정 경기가 있는 지역에 가서 낮에는 관광지를 여행하고 저녁에는 야구를 보고.

그럼 지방 공연에 오는 관객들의 마음도 이해하겠네요.
대극장 앙상블을 할 때는 지방 공연을 많이 다녔는데, 그 이후로는 지방에서 공연을 한 적이 별로 없어요. 배역을 맡아서 처음으로 간 게 대전에서 했던 뮤지컬 <파가니니>였는데, 그때 너무 놀랐죠. 공연 끝나고 나왔는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신 거예요. 제가 큰절을 했던 기억이 나요. 너무 고마운데, 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방법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저도 모르게 나온 거죠. 저를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와주셨다는 게 너무 감사했죠.

 

 

 

올해 데뷔 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오늘 촬영을 오다가 혜화역에 10주년 기념 광고가 붙어있는 것을 봤어요. 
저도 진짜 몰랐어요. 뮤지컬 <배니싱> 출근길에 봤는데, 평소에는 그쪽이 아닌 다른 출구로 나가거든요. 그런데 오랜만에 샌드위치를 사가려고 1번 출구 쪽으로 올라가는 코너를 돌았는데, 어떤 사진이 저를 보고 있는 거예요. 아무 생각 없이 가다가 심장이 덜컹했어요. 진짜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그걸 보고 ‘아, 나 올해 10주년이었지.’ 싶었어요.

짧은 편지도 남기셨더라고요.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어서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했어요. 사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두 가지가 글 쓰는 거랑 춤추는 거였어요. 살면서 남들 앞에서 절대 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에요. 제가 워낙 악필이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창피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성의를 보이고 싶어서 쓰게 된 거죠. 싫어하는 두 가지 중 춤추는 건 제 직업이 되어서, 결국 둘 다 하게 되었네요. 그래서 인생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하나도 계획대로 가는 게 없어요.

10주년을 기념해서 특별히 준비하는 게 있나요?
3, 4년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10주년이 되면 콘서트나 버스킹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때는 10주년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무언가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요즘은 랜선 콘서트도 많이 하니까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SNS에 ‘작은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기대를 해주셔서 놀랐어요.

혹시 10년 전의 자신을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게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무조건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카르페 디엠(Carpe Diem : 현재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 저는 항상 자기 객관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상황이 어떻든 간에 즐기지 못했던 것 같아요. 좋을 때도 어떻게든 냉정을 찾으려고 노력했거든요. 막상 나이를 먹고 다시 떠올려 보니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 모두가 추억이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이렇게 말을 하는 지금도 즐기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 ‘카르페 디엠’이 지금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안타깝지만 10년 후에도 똑같은 얘기를 할 것 같아요. 원래도 그런 성격이긴 했는데, 배우가 되고 나서 강박이 더 심해졌어요. 저는 사람이 누구나 선함과 악함을 가지고 있고, 잠깐 흐트러질 때 실수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무책임한 행동이나 잘못은 나태해지는 순간에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실수를 안 하겠어요. 누구나 실수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더 겸손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약 자서전을 쓴다면 제목을 무엇으로 하고 싶은가요?
제목은 정해져 있어요. ‘감성 배우.’ 제가 항상 이 타이틀을 밀고 있기 때문에.(웃음) 책의 내용은 감사에서 시작해서 감사로 끝날 것 같아요. 저는 제가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저를 아껴주시는 분들에게 더욱 감사함을 느끼는 것 같아요.

사인을 하거나 소개를 할 때 감성 배우라고 꼭 덧붙이시더라고요. 계기가 궁금해요.
성악을 하던 시절에 홍광호 배우의 노래를 우연히 듣고 너무 감명 깊어서 팬카페에 들어가 본 적이 있어요. 카페 메인 배너에 밝게 웃는 사진과 함께 ‘순수 배우’라고 적혀있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기분이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누군가를 미소 짓게 만들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두 도시 이야기>라는 뮤지컬을 하면서 처음으로 사인을 했는데, 뭐라고 적으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감성 배우’라고 쓴 게 여기까지 왔죠.

그 단어에서 어떤 힘을 받나요?
사실 저는 감성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개구쟁이였고 철부지였는데, 감성이라는 단어는 뭔가 차분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게, 지금은 진짜 그렇게 됐어요. 이 타이틀을 매번 이야기하며 살아오다 보니까 제가 그렇게 되어버린 거죠.

배우로서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요?
저는 좋은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고요. 그래서 오늘처럼 인터뷰를 할 때도 항상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실수를 했을 때 저에게 돌아올 화살이 무서운 건 아니에요. 책임은 얼마든지 질 수 있는데, 제가 진짜 두려운 건 저한테 위로를 얻으셨던 분들이 그 실수 때문에 상처를 받으실까봐. 저는 그게 싫거든요. 저를 통해서 관객분들이 얻은 것들이 깨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은퇴할 때까지 좋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목표예요. 그러기 위해 노력할 거고, 점점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갈 거예요.

 

Attention, Please
뮤지컬 <더 픽션>
기간 2021년 2월 27일-2021년 5월 30일
시간 화-금 20:00 수 16:00 토·일·공휴일 14:00 18:00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1관
가격 R석 6만6천원 | S석 4만4천원
문의 02-588-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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