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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팝업북을 보다_아동극 <옛날 어느 섬에서>

거대한 팝업북을 보다

지난 1월 15일에서 16일, 서울 아시테지 겨울축제에서 선보인 아동극 <옛날 어느 섬에서>는 드라마와 라이브 음악, 팝업북 무대가 공존하는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었다. write 김일송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동화는 어린이를 위해 동심으로 지은 이야기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어른들이 아이들을 자신이 원하는 인간으로 훈육하기 위해 고안한 이야기 아닐까? 창작이 아닌, 소비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더 의심스럽다.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히는 부모들의 욕망은 무엇일까? 사실 동화는 아이들의 욕망보다 기성세대의 욕망이 투영된 창작물이다. 그 연장선에서 아동극 또한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아동극은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공연이 꽤 많다. 권선징악이나 인과응보 등의 상투적 교훈을 강요하는 공연은 줄었지만, 여전히 많은 작품이 동화적 세계관을 답습한다. 소수의 작품만이 성인 작품을 능가하는 예술적 성취와 인식의 확장, 그리고 정서의 순화에 성공할 뿐이다.

2021 아시테지 겨울축제의 일환으로 공연된 스튜디오 햇의 <옛날 어느 섬에서>가 그중 하나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인은 유년 시절 전쟁이 난 고향을 떠나 다른 난민들과 함께 어느 섬에 정착한다. 마을을 이룬 사람들은 세월의 흐름 속에 번영을 일구지만, 공동체는 동시에 점점 파괴되어 간다.

작품의 백미는 형식에서 찾을 수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인형극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렇게 정의내리기에는 인형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주로 사용하는 장치는 팝업북이다. 무대 한가운데 위치한 책상 위에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팝업북이 십수 개 놓여 있다. 실연자는 팝업북을 하나하나, 한 장 한 장 펴며 이야기를 진행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실연자가 팝업북을 통해 다양한 영화적, 혹은 영상적 연출을 재현한다는 점에 있다. 팝업북으로 클로즈업 앤 아웃의 촬영 효과를 내기도 하고, 페이드인 앤 아웃의 편집 효과를 내기도 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많은 아동극에 등장하는 ‘아동’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타 아동극에 비해 존재감이 미약하다. 아동이 없으니, 아동의 성장 서사도 필요하지 않고, 어린 시절 회고로 시간을 끌지도 않는다.

결국 <옛날 어느 섬에서>는 어른들의 이야기다. 부모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거나, 혹은 친구 사이에 우애가 깊어야 한다는 등 구태의연한 주제는 없다. 그럼에도 작품은 아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모든 아동극이 다 아동의 성장서사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이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여전히 대개의 아동극 이 틀 안에 있으니 말이다. 이는 수많은 아동극 속에서 <옛날 어느 섬에서>가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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