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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아닌 운명_연극 <제인> 배우 임찬민

우연이 아닌 운명

샬롯 브론테의 소설 ‘제인 에어’는 최초의 여성 성장 소설로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가부장적인 사상이 만연한 사회에서 당차게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제인, 그리고 연극 <제인>을 통해 그의 삶을 무대 위로 끌어 올릴 배우 임찬민. 과거 “국내에 작품이 올라오면 제인은 누가하게 될까”라는 기대를 품었던 그는 무대에 서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야기 곳곳에 묻어난 당찬 모습을 보면서, 그와 제인의 만남이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 아닌 정해진 운명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editor 나혜인 photographer 김선진


극의 중심이 되는 제인 역을 맡게 되었어요. 어떤 제인을 기대하면 좋을까요.
게이츠헤드의 어린 시절 제인부터 로우드의 제인, 로체스터가 사는 손필드의 제인, 마지막 모턴의 제인까지. 그가 걸어가는 여정을 그려내죠. 원작이나 영화에서는 제인과 로체스터가 만들어내는 케미 중심이었다면, 저희는 철저하게 제인의 생애 위주로 그려내고 있어요. 마치 파도를 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밀물과 썰물 속에서 헤엄쳐가며, 때로는 물도 먹고… 그런 와중에도 제인은 살아요. 어떻게 잘 사느냐가 아니라 제인 자체로 살아가는 모습이 가득 담겨 있어요.

제인과의 첫만남을 기억하시나요?
샤를로뜨 갱스부르 주연의 영화로 가장 먼저 접했는데그분의 연기 색에 완전히 매료되었죠사회가 기준으로 내세운 여성성에 치우쳐 있지 않으면서 인물 자체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보이는 연기였거든요저 정도의 배우가 하는 역할을 국내에선 누가하게 될까 궁금했는데이렇게 하게 된 게 행운 같아요.

본인의 삶을 되돌아본다면 어떤 점이 제인과 닮았나요.
제인은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거짓말쟁이라고 불려요. 그건 제인의 솔직한 태도가 눈엣가시처럼 보여서 그런 거거든요. 저도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제인처럼 특이한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싫으면 싫다고 바로 말하는 편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 때문인지 신기하게 제인이 너무 잘 이해되는 거예요. ‘왜 이렇게 말하지?’라는 의문이 아니라 ‘이런 말을 할 만하다!’라는 생각이 드니까. 대사량이 정말 많음에도 불구하고 버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이번 작품을 위해 참고한 것들이 있다면요?
평소 영상물을 참고하는 편이 아닌데, 이번엔 작품과 같은 시대를 그려낸 영국 드라마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서 있는 자세 혹은 표정을 어디까지 표현해야 하는지 알아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그때 당시의 사회적 규범들을 익히려고 했어요. 신분 차이가 극명한 시대인 데다 영국은 귀족 문화까지 있잖아요. 또 가정 교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어요.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신분은 거기에 미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주변인들의 반응 같은 것들이요.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대사가 있을까요.
“살아라, 제인.” 그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인데, 뒤에는 작품을 보는 모든 분의 이름이 들어갈 수 있어요. 제인 자리에 여러분의 두 글자를 넣으면 좋지 않을까요.

기대해봐도 좋을 장면도 궁금해요. 단순히 이 장면에서 ‘나 정말 매력적이지.’라고 느낀다던가.
매력이라고 한다면 첫 등장부터.(웃음) 아무래도 제인과 로체스터의 서사가 있는 작품이잖아요. 두 인물이 만날 때 느껴지는 묘한 케미가 있어요. 그 부분에 연출님이 가장 공을 들였어요. 보다 보면 ‘아, 고전미라는 게 이런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관객분들도 간질간질하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또 제인과 헬렌의 관계도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화학적 자극과는 다른 케미가 있거든요. 헬렌이 작품 초반에 제인 곁에 있어줌으로써 그의 여정에 많은 연료를 부어요.

코로나19 확산으로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가 중단되면서 휴식기를 가졌어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공연이 멈춘 바로 다음 주에 이사 일정이 잡혀 있었어요. 이사를 끝내고 나서는 <제인> 연습을 시작했고요. 이 과정을 돌이켜 보면 정말 인생이 거센 파도와 같구나 싶은 거예요. 사실 코로나 시대에 공연이 멈추는 건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 물론 팬데믹 초기에는 슬프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삶을 계속해서 살다 보니 ‘멈추라고? 오케이. 멈출게.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라는 마인드가 되는 거죠. 지금 힘든 것에 속상해하기보다 기뻐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하고 있어요. 마치 로우드에서 교사를 그만두고 가정 교사가 된 제인처럼요.

사실 공연의 메카라고 불리는 대학로가 이전보다 위축된 상황이잖아요.
이전보다 위축된 걸 넘어선 것 같아요. 1월 1일에 <블랙메리포핀스> 공연이 있었는데, 그날 정말 슬펐거든요. 평소 같으면 생기 넘쳤을 곳이 이렇게 되다니 하고요. 그와 동시에 평소보다 더 좋은 공연으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거리두기 좌석제가 시행되면서 공연장에 오는 게 쉽지 않아진 걸 알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지친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예요. 자연스럽게 배역과 배우들 간의 합을 다시 한번 더 고민하게 됐죠. 이 공연이 줄 수 있는 메시지의 최대치를 관객들 주머니에 꼭꼭 챙겨 넣어드려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생겼어요.

대학로의 첫 추억을 떠올린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학창 시절부터 대학로에 오곤 했는데, 근처 골목에 떡볶이집 맛있는 곳 있잖아요. 떡볶이를 예나 지금이나 참 좋아해서 먹으러 온 김에 주변도 구경하고 그랬어요. 그때 민들레 영토가 있을 때였거든요. 거기서 처음으로 차를 마셔봤어요. 그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대학로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난로가 있는 옥탑방에서 같이 앉아서 붕어빵 먹는 느낌. 소소하지만 공간에 대한 따뜻함은 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무대를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말하는 ‘공연 좀 안 보면 어떠냐.’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부족해서 나오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에 대해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그리고 내린 결론이 담아두지 않는 거예요. 담아두지 않으면 이 말이 무의미해지거든요. 배우인 저도 한 텍스트를 매일 공연하면서 하루도 같은 날이 없는데, 이 공연이 관객들의 인생에 어떤 페이지로 기록될지 누가 판단할 수 있겠어요. 관객이 무슨 선택을 하든 간에 지금처럼 안전과 서로의 약속을 지킨다면 공연은 계속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건 뒷산에 마스크 없이 올라가서 노래 한 곡 시원하게 뽑고 싶어요. 민낯으로 크게!

 

 

ATTENTION, PLEASE!
연극 <제인>
기간 2021년 1월 29일-2021년 3월 7일
시간 화·목·금 20:00 수 16:00 20:00
토 15:00 19:00 일·공휴일 14:00 18:00
장소 브릭스씨어터 (구 콘텐츠그라운드)
가격 4만5천원
출연 문진아 임찬민 김이후 정우연
문의 010-2521-8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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