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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언제나 뜨겁게_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배우 남명렬

언제나 뜨겁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남명렬에게도 지금의 대학로는 낯선 풍경이다.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공연만이 극장을 채우고, 그마저도 좌석 간 거리 두기로 객석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 하지만 연극만이 전할 수 있는 생생한 에너지를 알고 있기에, 그는 코로나19가 종식되는 순간 다시 극장이 활기를 찾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그날을 기다리며 한결같이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돌아오는 관객의 반응에 감사를 느끼면서. 마치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의 마쉬칸과 스티븐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주었듯 말이다. 
editor 손정은 photographer 장호


늦었지만 2020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뭘 했다고 선정되었는지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연극을 열심히 해왔다는 것에 대해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상 소식을 직접 인스타그램으로도 알려주셨어요. 최근에 SNS를 활발하게 하시더라고요.
개설한 지는 몇 년 되었는데 요즘 조금씩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하면서 작은 책임감을 느끼기도 하고요. 저는 그냥 개인이 아니라 공개된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글은 정말 오랫동안 남아있는 거라서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글 쓰는 곳에 자기감정을 막 드러냈다가는 그것이 나중에 자기에게 비수가 되어서 돌아올 수 있거든요. 글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게시물에서도 그런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짧은 글에서도 정성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SNS가 왜 필요한가 싶기도 했어요. 무엇보다도 누군가 저의 공간에 들어왔을 때 향기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스스로 그만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뉴스를 보니 ‘SNS에서 이런 이슈가 있었다’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SNS를 안 하니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배우는 세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연극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니에요. 그래서 SNS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기왕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책임감 있게 하려고 합니다.

현재 참여하고 계신 <올드 위키드 송>에 대한 얘기가 궁금합니다. 이번에 처음 참여하지만, 이전에도 제안을 받으셨다고요.
다른 프로덕션에서 초연을 할 때도 제안을 받았었어요. 그때는 제 마음에 걸린 것이 있어서 하지 못했죠. 이번에 다시 제안을 받으니 ‘아, 내가 해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다시 대본을 읽어보니 결국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 자기 자신과 어떻게 화해하는가에 대한 작품이라고 느껴졌어요. 언뜻 보기에는 슬럼프에 빠져있는 청년 스티븐이 마쉬칸 교수에게 노래를 배우며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다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마쉬칸이 스티븐을 가르치고 치유하나, 마쉬칸 또한 스티븐을 통해 치유된다고 할 수 있죠.

마쉬칸의 인물 소개에는 괴짜 교수라는 표현이 붙어있어요.
대본에 아예 괴짜라고 적혀있어요.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괴짜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허튼짓도 많이 하고 이상한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왜 이 사람이 괴짜가 되었느냐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쉬칸은 젊은 시절 자기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죄에 대해 스스로 계속 마음을 부대끼며 살아왔어요. 이건 혼자 해소할 수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괴짜처럼 행동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면에 있는 죄의식과 스트레스를 씻어보려고 혹은 그 상처가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한 것들이 결국 그를 괴짜로 보이게 만들지 않았나. 그래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괴짜를 구현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매일매일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어느 순간에 언뜻 드러나는 모습이 괴짜처럼 보이는 거죠. 규정된 괴짜의 범주 안에 있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 이어 2인극으로 무대에 오르고 계십니다. 특히 이번에 함께하는 스티븐 역의 배우들은 극 중 마쉬칸과 스티븐처럼 세대가 다른 배우들인데, 호흡을 맞춰가는 과정은 어떠셨나요?
젊은 배우들과 함께 연기를 하는 건 정말 즐거운 행위죠. 왜냐하면 젊음을 쫙쫙 빨아들일 수 있으니까.(웃음) 마쉬칸은 더블이고 스티븐은 트리플인데,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서 작업하니까 되게 즐거워요. 장면마다 다른 해석도 보이고. 각 해석에 ‘나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 유연성을 가져야 하니까, 그런 고민이 흥미롭고 재미있었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 꼽아주신다면요?
1막 3장에서 스티븐이 피아노를 치면서 자기 고백을 해요. 자기는 다른 사람을 흉내만 내다가 슬럼프에 빠졌다고 이야기하죠. 그걸 극 중에서는 ‘누군가의 모자를 썼다.’라고 표현하는데, 스티븐이 어느 순간에는 마쉬칸의 모자를 썼을지도 모른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들은 마쉬칸은 애써서 엷은 미소를 띠면서 말하죠. 그럴 리가 없다고. 왜냐하면 스스로 예술가적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거든요. 스티븐은 자기 자신이 뛰어난 테크니션일 뿐이라고 하지만, 마쉬칸은 스티븐을 보며 ‘저런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젊은 친구가 굉장히 부럽다.’라는 생각을 하죠. 제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기가 마쉬칸에게는 자기 고백의 시작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2막에서 과거에 겪은 일에 대해 고백하게 되죠.

그때부터 마쉬칸이 마음을 열게 되는 거군요.
지금껏 가져온 죄책감과 불안감을 이겨내는 첫 번째 걸음인 거죠. 자기 고백을 통해서 새로운 나로 태어나는 시작점. 작품을 볼 때 자칫하면 스티븐의 성장만 보일 수 있는데, 마쉬칸이 자기 자신과 어떻게 화해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젊은 친구가 슬럼프를 극복하고 자신과 화해하는 것보다, 나이가 들 때까지도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드디어 화해했을 때 그 깊이와 농도가 훨씬 더 짙을 수 있지 않을까. 두 인물 모두 성장하기 때문에 작품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스티븐처럼 슬럼프를 겪어 본 적이 있으신가요?
슬럼프는 작품을 할 때마다 있었다가 없었다가 해요. 배우는 매번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잖아요. 새 인물을 마주하고 연습해가는 과정 중에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그 시간이 길어지기도 하고. 그런 순간순간이 항상 슬럼프죠.

이번 작품에서도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셨나요?
이번에 가장 안 풀렸던 부분은 노래입니다. 스티븐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장면이 있는데, 저는 원래 노래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새로운 도전이었어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입니다. 노래를 한다는 것이 하루아침에 연습해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얼마 전에 공연을 봤는데, 능숙하게 하시던 걸요.
숨기는 거죠.(웃음) 노래는 어려워요. 음치가 아닌 덕분에 이 정도라도 속일 수 있는 것이 다행이죠. 이만큼의 재능이라도 있는 것이 저에게는 행복한 일입니다.

지난해까지 2년간 서울연극제에 예술감독으로 함께하셨어요. 코로나19라는 상황 속에서 연극제를 진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이 상황을 거의 1년째 겪어오고 있기 때문에 대처하는 방법이 매뉴얼화되어 있어요. 그런데 서울연극제를 준비하던 작년 2월, 3월에는 모든 사회가 처음 겪는 일이라서, 아무도 대처 방법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죠. 사회적 분위기도 고려해야 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극제를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봤어요. 서울연극제가 대학로 연극계에서는 큰 행사 중 하나인데, 이마저도 취소가 된다면 연극 생태계가 너무 많이 파괴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런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프로덕션 연극은 조심스럽게 하고 있지만 작은 규모의 연극은 많이 취소되고 있잖아요.

국공립 극장의 공연도 중단된 기간이 꽤 길었습니다.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국공립 극장은 문을 열었다가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난감하기 때문에 보수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가지고 있으나, 이해는 해요. 그리고 일반 극단들은 지원금을 받아서 공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지원금을 주는 기관의 입장을 도외시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일 거예요. 그 때문에 취소나 연기,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그게 바른 판단인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어요.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공연이 완전히 락다운 된 것이 아니잖아요. 공연을 하면서도 최대한 방역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상향된 뒤로는 극장에서도 두 자리 띄어 앉기를 하고 있죠. <올드 위키드 송>도 약 30%의 좌석만으로 공연을 이어가고 있고요.
그 부분에 대한 규제도 다시 고려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극장에서 코로나가 전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어요. 양성 환자가 다녀간 이후에 역학조사를 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 때문에 전파된 경우는 없었거든요. 극장 안에서도 마스크 착용과 주의사항에 대해서 계속 안내하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지금처럼 두 자리 띄어 앉기를 하는 것은 과도한 정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로서 무대 위에서 보면 마음이 아프죠. 관객이 앉아있는 객석보다 비어있는 객석이 더 많은 풍경을 보고 있으면 속상하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극장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연극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혹자는 연극이 세상을 변화시킨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까지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연극은 사람들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환상의 시공간을 느끼고, 때때로 개인의 삶을 새롭게 하는 정도의 기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다만 연극은 무대 예술 중에서도 현장에 와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현장성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무대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고 같은 시공간인 객석에서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이상, 연극을 대체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끝난 이후, 연극은 어떻게 변화할까요?
새롭게 변화하기 보다는 급격하게 원래 상태로 돌아가리라 생각해요. 누구든지 다시 공연장에 한 번만 와보면, ‘아, 연극은 역시 현장이야.’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연극은 이 상황이 종료됨과 동시에 빠르게 돌아올 겁니다. 물론 공연을 만드는 자들은 우리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초유의 사태를 돌아보면서 앞으로의 방법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누겠죠.

우리나라 연극의 중심을 고르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대학로를 뽑을 것 같습니다. 대학로에 대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추억이 있나요?
제가 연극으로 전업하기 전에 회사생활의 마지막 해를 서울에서 보냈는데, 그때 일하러 가다가 우연히 버스가 대학로를 지나가게 되었어요. 5월 정도였던 것 같아요. 버스가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동 쪽으로 가는데, 인도에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더라고요. 누더기를 입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당시 저에게 대학로에 대한 선망이 있었는지 그 사람조차도 예술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이야, 대학로는 길거리에 걸어가는 사람도 다르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기억이 딱 나네요. 마음속에서 선망하는 것을 보면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것도 굉장히 다르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는 선망하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대학로가 어떤 곳이라고 느끼시나요?
연극 용광로라고 생각해요. 연극에 대한 모든 것이 끓어오르고 합쳐지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용광로가 아닌가. 그리고 저는 그 용광로에서 매번 녹여지고 새롭게 탄생하기를 반복하고 있어요. 펄펄 끓고 있는 쇳물이었다가, 어떤 틀에 부어져서 형태를 가진 쇠가 되어요. 그것이 쓸모를 다하면 다시 용광로에 들어가서 또 쇳물이 되고. 대학로라는 연극 용광로가 늘 저를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과 무대 위의 관계가 외부에 있는 공동의 적을 향해서 함께 싸우는 동지 같아요. 코로나19라는 큰 위협에 대항하여 극장 안에서 같이 싸우는 전우라는 느낌. 그래서 이 어려운 시기에도 찾아주시는 관객분들에게 엄청나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수많은 적을 뚫고 안전한 공간에 들어왔으니, 극장에서는 위협을 다 잊고 공연을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오는 동안 있었던 걱정을 다 내려놓고 이 작품을, 무대 위의 배우를, 객석에 같이 앉아있는 관객 여러분 서로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ATTENTION, PLEASE!
음악극 <올드 위키드 송>
기간 2020년 12월 8일-2021년 3월 1일
시간 화-금 20:00 토·일·공휴일 14:00 18:00
장소 예스24스테이지 3관
가격 5만5천원
출연 남경읍 남명렬 이재균 정휘 최우혁
문의 02-367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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