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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내가 아는 한 가지_연극 <얼음> 배우 박호산

내가 아는 한 가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말이 무색하게 현대 사회에서는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모든 것이 바뀐다. 그렇기에 연극 <얼음>이 5년의 세월을 지나 무대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많은 부분이 변했으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초연에 참여했던 배우 박호산은 “원본 그대로”라는 대답을 내놓으며, 장진 연출의 말을 빌려 “좋은 작품은 손댈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느낀 바는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다. 바로 수많은 미디어의 러브콜 속에서도 여전히 무대가 가장 좋다는 그의 한결같은 뚝심이었다.
editor 나혜인 photographer 김지연


공연 시작 전부터 많은 화제를 모은 작품인데, 작품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얼음>은 소극장에서 하기 딱 좋은 2인극이라고 생각해요. 형식도 굉장히 독특한 면이 있는데, 무대 위에 배우가 두 명만 나오지만 관객들은 세 명을 보시게 된다는 것. 보이지 않는 ‘혁이’라는 이름의 가상의 캐릭터가 무대 위 배우들에 의해 구체적으로 그려져요. 오감이 채워지는 연극입니다. 장진다워요.

장진 연출님과는 어떠세요. 서로 잘 맞나요?
당연하죠. 벌써 몇 작품째 같이 하고 있는걸요. <얼음> 초연도 했지만, 그전에 뮤지컬 <디셈버>도 같이 했어요. 작품 말고 개인적으로도 만나요. 제가 작품을 하면 보러 오시기도 하고요.

연출님 특유의 개그 코드가 있잖아요. 이번 연극에서도 눈에 띄는 부분들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장진 연출님의 개그는 현실적이죠. 무리하지 않아요.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고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를 극대화시키는 재주가 있어요. 보통 이런 걸 웃프다고 하죠. 그런 말이 있잖아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현실하고 맞닿은 이야기를 참 잘 만드시는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으로 한창 바쁘신 와중에도 출연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 할 이유가 없잖아요. 작품 좋고, 배우들도 잘 모였고, 믿을 수 있는 작·연출에 제작사도 마음에 들었고요. 그리고 극장이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잖아요. 제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과 M씨어터에서 무대를 해봤는데, 여기선 안 해봐서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재연에 오면서 기대했던 부분도 있을까요?
글쎄요. 좋은 작품은 언제 만나도 좋으니까. 재연에서 달라진 점 을 굳이 꼽자면, 캐스트가 달라졌죠. 그러니 작품에 대한 특별한 기대보다는 이번에도 재미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초연이 벌써 5년 전이다 보니 이번 재연에서는 달라진 점들도 있을 것 같아요.
결말 부분이 조금 보강된 것 말고는 거의 원본 그대로예요. 장진 연출님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작품은 손댈 것이 없다.’ 연출면에서 무대 전환이 추가되긴 했는데, 원래 초연에도 계획되어 있던 거거든요. 스태프가 없어서 적용하지 못했죠. 무대 위 배우들이 직접 하자니 번거로운 부분도 있고. 그런데 이번에는 초연에서 걸림돌이었던 부분을 과감하게 시도해본 거예요. 물론 스태프가 무대를 전환해주면 좋죠. 하지만 그런 건 이미 많이 봤잖아요. 게다가 스태프가 하게 되면 암전이 길어지고, 암전된 순간 관객들은 잠깐 다른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무대 전환을 하나의 형식으로 가져가길 바랐어요.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무대 전환을 연습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컵을 정말 많이 깨 먹었어요. 지금은 레일이 있어서 레일을 타고 움직이니 그럴 일이 없지만, 연습 땐 냉장고, 테이블, 휴지통을 따로 움직여야 하니까 세 번을 옮겨야 했단 말이죠. 그런데 괜히 한 번에 옮기고 싶어서 움직이다가 위에 있던 컵을 떨어트리기도 하고.(웃음) 족히 10개는 깬 것 같아요. 페어로만 해도 세 팀이 되니까, 한 번씩만 연습해도 세 번이 되잖아요. 전환은 세 번이니 총 아홉 번을 움직이게 되는데 컵이 하나씩 깨질 수밖에 없죠.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형사1 역으로 돌아오셨어요. 어떤 인물인가요.
크게 변한 건 없지만, 초연 때보다 날카로워진 느낌은 있어요. 형사1만의 세계를 채우려다 보니까 다혈질 같은 성격이 필요하더라고요. 올해는 욱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려고 했어요. 따스하고 다정한 것보다 냉정한. 두 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것이니 저와 형사2는 변별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형사2가 외향적인 다혈질이라면, 형사1은 내성적인 다혈질이에요. 말은 많이 하지 않는데, 한 번 핀트가 나가면 무서워지는 사람. 사실주의적인 면으로 봤을 때, 형사가 사건을 자신의 머릿속으로 구상해서 결론지어버리고 확신을 가지면 안 되잖아요. 하지만 공연에서는 제가 가진 확신이 관객들에게 정당하게 보여야 한단 말이죠. 그러려면 설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형사 투톱을 그려낸 작품들이 많은데, 캐릭터를 구축할 때 참고가 된 작품도 있을까요?
크게 참고한 작품은 없지만,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본을 보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어요. 리차드 기어와 에드워드 노튼이 출연하는 영화 <프라이멀 피어>. 영화에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는 소년이 용의자로 등장하는데,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어요. 이 소년이 딱 혁이 같은 인물이에요. 연극에서도 혁이가 했다는 강한 심증은 있지만, 정확한 증거는 없죠. 또 혁이가 보이지 않는 것도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가라는 면에서 볼 수 있거든요. 실제 수사를 떠올려 봐도 눈앞에 없는 범인을 유추하고 만들어내서 누군지 알아내잖아요. 사건을 역순으로 따라간단 말이죠. 연역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말씀하신 혁이는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보니 배우가 어떻게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 관객들이 반응하게 되잖아요.
맞아요. 그래서 굉장히 구체적인 인물이어야 해요. 혁이가 대답하는 걸 관객들은 들을 수 없지만, 저는 들을 수 있어야 하는 등 모든 장면들이 체계적으로 정해져 있어요. 제 개인적으로도 그 친구의 표정에서 더 나아가 나이, 키, 의상, 성격, 인상착의 같은 것들을 세세하게 정해놓고 있고요. 그런 구체적인 부분이 없다면 보이지 않는 혁이를 관객들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모르는 사람하고 통화하고 있는 사람을 외부에서 바라보면, 보는 사람은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친한 친구하고 통화하고 있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보면 통화 대상이 어떤 사람일지 상상이 된단 말이죠. 그 이유가 바로 ‘구체성’ 이에요.

관객들이 이 장면을 집중해서 보면 작품을 더 자세하게 느낄 수 있겠다는 장면이 있을까요.
글쎄요. 오히려 이런 걸 정해줘야 한다면 좋은 작품이 아니지 않을까요. 넋 놓고 보다가 빠져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이 작품은 그런 장면들이 많고요. 그리고 두 번, 세 번 볼 수록 더욱 구체화되죠.

한 번만 보고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들도 있었어요.
조금 헷갈려 하시는 것 같아요. 사실 확연한 결말을 가졌다고 완벽하게 이해한 건 아니거든요. 반대로 확연한 결말이 없다고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아니고요. ‘혁이가 범인이야?’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해하기 시작한 거예요.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고 이해했기 때문에 그런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이 작품은 강한 의구심을 갖는 것이 이해의 첫걸음이에요.

그동안 많은 작품을 해오셨잖아요. 무대 위에 많은 배우가 서는 작품도 있었고요. 2인극과 비교했을 때 어떤 작품이 더 연기하기 편하세요?
편한 건 없어요. 반대로 어떻게 보면 다 편하기도 하고요. 대신 선호하는 건 있어요. 저는 소극장이 좋아요. 연기를 하다 보면 마이크로한 표현이 되거든요. 또 공기가 움직이는 게 보이고요. 배우가 어떤 표정을 짓는가에 따라 관객들의 기운이 바뀌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공기가 공연장 전체에 흐르죠. 그걸 제가 조종할 수 있다는 점이 짜릿하고 재미있어요. 제가 무대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게 연극을 여러 번 보게 만드는 힘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날 오시는 관객에 따라 공연장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거든요. 날씨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무엇 때문이라고 형용하긴 힘든데… 오늘의 혈액형 같은? 오늘따라 B형이 많이 왔네,이날은 A형이 많이 왔네. 물론 관객들의 실제 혈액형을 알 수 있는 방도는 없고요.(웃음)

지금은 마스크를 착용한 관객과 마주하고 있는데, 말씀하신 흐름이 상대적으로 덜 느껴지기도 하나요?
전혀 상관없어요. 관객의 얼굴을 보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공기의 흐름이거든요. 객석 위로 떠다녀요. 관객들이 흠칫 놀라지 않아도 속으로 놀란 게 다 느껴지기도 하고, 소리 없이 웃고 있어도 다 알 수 있죠.

요즘은 방송 현장에서도 다들 마스크를 착용하고 촬영하잖아요. 이전과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분위기가 달라졌다기 보다 함께 촬영했던 사람들과 밖에서 만나면 누군지 모를 것 같아요. 얼굴을 알 수가 없어요. 먼저 말해주기 전까진 제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길이 없죠. 이제는 마스크를 끼는 게 당연시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마스크를 낀 세상이 답답하긴 해요. 가끔 꿈도 꿔요. 마스크를 끼지 않은 사람들이 나오는 꿈. 아주 평범한 일상인데 ‘마스크 안 껴서 너무 좋다.’ 이런 말을 한다니까요.

대한민국 공연계를 이야기할 때 대학로는 빠질 수 없는 장소인데, 팬데믹으로 인해 공간이 주는 힘이 이전보다 위축된 상황이에요. 활기를 되찾을 방안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다섯 명 이상의 친구와 만날 수도 없고, 사람이 겁나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있으니, 공연까지 보지 못한다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참 신기한 게 코로나19가 처음 퍼진 순간부터 지금까지 극장에서 전파된 경우는 없어요. 대중 교통처럼 많은 인원이 밀집된 공간에서 대규모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것도 어떻게 보면 공연장과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어요. 각자 조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 그러니 일상적인 것들은 조금 풀어주는 게 좋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잖아요. 공연하는 우리를 정당화시키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잠시라도 예전 같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공연장을 단순히 밀폐된 공간으로 보는 점이 아쉽기도 해요. 이미 공연 관람이 삶의 낙이 된 분들도 계시니까요.
공연은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은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연극, 뮤지컬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전시 관람도 그렇고요. 예술을 접한다는 건 사람의 시야를 넓혀주는 거잖아요. 또 명상 같은 거라고도 생각해요. 회사원이나 일반인들이 단체로 사색에 잠길 기회가 어디 있겠어요.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니까 굉장히 좋은 취미라고 봐요. 그런데 이것마저 없어져 버리면…

아무래도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공연 좀 안 보면 어떠냐.’라는 말들을 하는 분들도 계세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대신 본인에게 그런 생각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이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죠. ‘공연 좀 안 보면 어떠냐.’라는 생각이 있다면, ‘공연 좀 보면 어떠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같이 노래를 부른다거나, 식사를 한다거나, 호흡기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아요. 그동안 공연장을 통해 전파된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안전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인데, 무작정 비난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혹시 대학로에서의 첫 추억을 기억하실까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로를 오가면서 공연도 보고 그랬죠. 어린 시절 대학로는 주말이 되면 차가 다니지 못하게 길을 막고 문화 축제가 열리던 곳이었어요.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마냥 좋았어요.

대학로는 본인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고향. 서울 시내에서 제가 제일 잘 아는 곳이죠. 골목 구석구석까지! 사실 그렇게 치면 전국에서 잘 아는 곳이기도 해요. 제가 서울 태생이니까.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전 우주에서 가장 잘 아는 곳이에요.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발리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요. 서핑도 하고 싶고요. 

 

 

ATTENTION, PLEASE!
연극 <얼음>
기간 2021년 1월 8일-2021년 3월 21일
시간 화·목·금 20:00 수 16:00
토 15:00 18:30 일·공휴일 14:00 17:30
장소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가격 R석 6만원 S석 4만5천원
출연 정웅인 이철민 박호산 이창용 신성민 김선호
연출 장진
문의 02-69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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