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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시대에 건네는 위로_연극 <더 드레서>

시대에 건네는 위로

지난해 정동극장에서 선보인 연극 <더 드레서>. write김일송


“우리는 지금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명은 어둠의 힘에 위협당하고 있고, 미천한 우리 배우들은 무참한 전쟁 옆에서 또 다른 싸움을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를 위해, 그의 연극 안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조국 곳곳에 그의 작품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입니다.”

막 공연을 마친 리어왕 역의 노배우가 커튼콜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전하는 인사의 말이다. 코로나로 하 수상한 시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오르는 모든 연극인의 마음이 다 저렇지 않을까, 감히 상상해본다. 흥미로운 사실은 노배우의 무대인사가 연극 <더 드레서> 속 대사라는 사실이다. 연극 <더 드레서>는 로널드 하우드가 1980년에 쓴 희곡으로, 모티프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년 셰익스피어 극단에서 활동하던 중 전란으로 유랑극단을 꾸리게 된 도날드 울핏의 실화에서 가져왔다. 흥미로운 건 작가 하우드가 실제로 울핏의 전속 드레서로 일했다는 사실이다.

작품 배경에 대한 시대 정보는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1942년에 앞서 1939년 영국 정부는 극장에 폐쇄조치를 내린 바 있었다. 이에 맞서 문을 연 극장도 여럿 있었지만, 주요 도시의 극장들이 폭격을 맞아 파괴되면서, 지역으로 활동거점을 옮기는 극단들이 나타났다. 연극 <더 드레서>의 모티프가 된 울핏의 유랑극단도 그 중 하나였다. 또한 1939년 영국 정부는 18세 이상 41세 이하의 청장년 남성들에게 병역의 의무를 부과하였다. 남성들이 전장으로 끌려나가 무대에 설 젊은 남성 배우들이 부족해졌다.

작품에는 이러한 당대의 현실들이 녹아있다. <리어왕>을 공연해야 하는데, 젊은 배우들이 징집되어 앙상블도 없는 상태. 게다가 주요 배우는 동성애 혐의로 구속되었고, 당장 무대에 올라야 할 극단 대표 선생님(Sir)은 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며 공연을 취소하자고 한다. 설상가상 공연 직전 공습경보까지 울린다. <더 드레서>의 1막은 공연을 올리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막은 올렸지만, 여전히 대표는 무대에 오르지 않겠다며 실랑이를 벌인다. 그로 인해 웃지 못할 촌극이 일어나지만, 다행히 공연은 관객의 환호 속에서 막을 내린다. 앞서 인용한 대사는 이 장면에 등장하는 대표의 대사다.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대표는 긴 잠에 빠져 든다. 그렇게 2막의 공연이 막을 내린다.

이렇듯 <더 드레서>는 기본적으로 ‘연극(인)에 대한 연극’이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그중에서도 ‘소외된 연극(인)에 대한 연극’이라 부를 수 있겠다. <더 드레서>는 소외된 장르인 연극에 대한 이야기이자, 주류가 아닌 비주류 유랑극단의 이야기다. 실제 이야기 또한 화려한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스포트라이트)을 받는 존재는 대표이지만, 각광(풋라이트)을 받는 건 어둠 속에 가려진 스태프들이다. 16년간 그의 옆을 보살핀 드레서와 20년째 그를 보필한 무대감독이다. 그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제목이 ‘선생님(Sir)’이 아닌 ’더 드레서(The Dresser)‘인 사실을 새삼 환기하게 된다.

전란의 시대에 비극을 올리는 연극인들의 이야기지만, 작품의 분위기마저 어둡지는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극단 대표가 노욕을 부리는 장면, 그를 진정시키려 달래는 장면, 공연이 난장이 되는 장면에서는 객석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편 극 중 전시상황과 현실의 코로나 상황이 포개지는 장면에서는 또 다른 감정의 파고가 일렁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