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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Keep Going_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배우 오소연

Keep Going

 

열두 살 꼬마 소녀시절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하루도 무대를 떠난 삶을 상상한 적이 없는 배우 오소연.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김지연


 

 

“제가 어렸을 때 <레 미제라블>에 출연했던 거, 혹시 아세요?” 뮤지컬 좀 본다는 이들 중 오소연의 드라마틱한 데뷔 스토리를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학교 가는 길에서 우연히 ‘<레 미제라블> 오리지널 팀이 한국 소녀 한 명에게 코제트 역을 맡긴다’는 벽보를 보고 오디션을 보기 위해 엄마를 졸랐다는 것, 그리고 서울까지 와서 영어 가사로 된 넘버를 부르며 당당히 합격했더라는 이야기. 어릴 때 뮤지컬을 했던 행복한 기억 덕분에 콕 집어 뮤지컬 학과에 입학했고,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무대에 오른다는 그는 <넥스트 투 노멀><헤어 스프레이><레베카><인 더 하이츠><브로드웨이 42번가> 등 크고 작은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해 왔다. 한창 연습 중에 있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지난 2018년 우란문화재단에서 초연했던 문제작.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의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뮤지컬로 만든 작품으로, 1930년대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어느 농가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남편 안토니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8년상을 치르면서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신의 다섯 딸들에게 극도로 절제된 삶을 강요하며 외부와의 교류까지 차단하는 등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통솔하고, 숨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움트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본능은 스페인 남부의 전통 무용인 플라멩코처럼 치열하고 뜨겁게 불타 오른다. 오소연은 휘몰아치는 격정의 무대에서 베르나르다 알바에 대항하는 막내딸 ‘아델라’를 맡았다. 자신과 아델라가 닮은 점이 많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그는 작품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모든 것이 좋아서”라며 사랑스럽게 웃어 보였다.

2018년 초연에 이어 재연에도 참여하는 배우이십니다. 어려운 시기지만 다시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초연 때 연습과정부터 공연 마지막날까지 모든 것이 좋았던 터라 아직까지 영주 언니(정영주 배우)를 중심으로 사적인 모임을 많이 했었어요. 저희들끼리는 이 작품을 다시 만나길 학수고대했고, 여건이 되지 않으면 우리끼리 콘서트라도 하자며 모두 한결 같은 마음이었죠. 다시 올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반가웠을뿐 아니라 영주 언니가 프로듀서까지 맡았다고 해서 힘을 더 실어주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초연 공연이 굉장히 짧았던 터라 아쉬운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공연에서 모든 아쉬움을 날려버리고 싶어요.

초연 때 티켓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았다고요. 이 작품 기다리는 분들 많을 걸요.
그래서 전 더 무서워져요.(웃음)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기에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세요?
처음 이 작품을 위해 모였을 때 공연장 밖의 이슈는 ‘여자배우 열 명이 모였다’였어요. 저희도 그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나름 걱정도 했었는데 생각보다 팀워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소극장 공연이었지만 ‘좋은 작품이니 같이 합시다’라는, 뭐랄까 의리로 뭉쳐 있는 듯했어요. 웬만한 건 크게 문제 삼지 않고 내부에서 알아서 해결하려 노력했고, 서로서로 나서서 교통정리를 해주는 분위기도 있었어요. 원캐스팅이었기 때문에 자기 몫을 충분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모여있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어요.

작품적으로 초연과 비교했을 때 변화된 지점이 있나요.
연출님이 외국분에서 한국분으로 바꼈기에 소통의 편안함이 있어요. 대본은 거의 비슷할 테고, 이 작품의 브로드웨이 버전과 우란문화재단에서 올렸던 버전에 큰 차이가 없듯이 지난번 작품에서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해석이 열려있는 작품도 아니라서 맥락이 바뀌는 게 없겠지만 초연 무대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초연 작품을 떠올리기보다 베르나르다 알바 플롯 자체에 관심을 갖고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처음 이 작품의 희곡을 읽었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너무 답답했어요. 갇혀 지내는 여성들의 울분이랄까요. 저는 희곡 전에 브로드웨이 버전의 영상을 먼저 본 뒤 희곡을 읽었는데 어떻게 이 원안에서 저런 뮤지컬이 탄생했을까 감탄했어요. 음악이 가미되어 부드러워지고 입체화된 면이 있는 반면 순간적으로 잔혹한 인상도 받았어요. 배경이 1930년대 스페인인데도 한국의 옛날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죠.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어떤 곳인가요. 그리고 막내딸로서 엄마인 베르나르다 알바는 어떤 인물인가요.
제가 감히 말할 수 있는 부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베르나르다 알바의 존재 자체가 억압이라고 생각해요. 막내딸 ‘아델라’는 엄마와 대치되는 인물이자 투쟁하는 캐릭터죠. 테이블 워크를 하면서 알게 된 건데 ‘아델라’라는 이름에 ‘고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요. 아델라는 인간의 본능, 욕망, 자유를 추구해요. 그 자체도 고귀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독재에 반하고 투쟁하고 이겨내고 뚫고 나가는 자아의 모습이 고귀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재자가 중심인 곳에는 병들어가는 사람, 순응하는 사람, 포기한 사람, 자기 비하하는 사람, 아파하는 사람, 잊혀간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겠지만 아델라는 ‘이건 아니다’라며 뚫고 닫힌 문을 열려는 자라고 생각했어요. 음, 아니면 어떡하죠?(웃음)

너무 맞는 얘기 같은걸요. 실제로 부당한 것, 남들이 눈치보며 말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낸 적이 있나요.
배우들끼리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한 선배님이 “너는 부당한 일을 보면 박차는 성격이니? 아니면 그 반대니?” 물으시더라고요. 저는요, 십대 때부터 완전히 그런 꼴을 못보는 성격이었어요. 그래서 아델라를 너무 이해해요. 그런데 지금은 못해요. 어린 오소연과 달라졌죠. 사회 생활하면서 부당한 일에 대항하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 사람도 나름 사정이 있겠지’라는 면도 있지만 사실 겁이 많아졌어요. 내가 그렇게 주장했을 때 돌아오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굳이 내가?”하는 비겁한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한편으론 작품 속 언니들이 엄마에 순응하는 모습도 이해가 됐죠. 언니들이 아델라 같은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세월에 의해 포기하는 것들이 생겼을 테니까, 불같던 마음이 잠잠해지고 그러다가 익숙해지면서 타성에 젖어졌을 테니까요. 아델라는 피가 끓는 청춘이었기에 가장 순수하게 반기를 들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이 집이 비극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했나요.
흠… 역시나 베르나르다 알바 때문이 아닐까요. 그 사람이 모든걸 쥐고 있고, 딸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니까요. 모든 딸이 아델라 같은 마음을 품고 단체 행동을 했다 하더라도 알바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복종하게 만들었을 거에요. 대사에도 있거든 요. “새처럼 날아간다고? 그럼 총을 쏴서 떨어뜨리더라도 내 안에 가둘 거야.”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는 탭을 추고 여기서는 플라멩코를 춥니다. 춤에 있어서 이제 좀 자유로워지셨나요.
아이고, 제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요. 탭댄스는 물론이고 플라멩코 댄서들에 비하면 정말 아기 수준입니다. 제가 춤 잘 추기로 소문난 배우가 아닌데 그럼에도 저를 캐스팅해주신 이유는 평소에 흥과 끼가 있는데다 “쟤라면 어떻게든 해낼거야” 라는 믿음이 있으신 게 아닐까요. 제가 또 해내지 못하면 잠도 못자는 성격이고, 제 마음에 들 때까지는 쉼 없이 해내야 해서요. 저를 너무 잘 아셔서 일단 구렁텅이에 던져놓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웃음)

그러한 집념과 노력은 배우로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성격 아닌가요.
그건 모르겠지만 예전부터 전 그냥 그랬어요.(웃음)

아델라 외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딸들 가운데 가장 통달한 인물인 막달레나요. 누군가는 닥친 현실을 비겁하게 합리화시키고 누군가는 스스로를 비하하고 또 누군가는 아예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애쓰는데, 그 속에서 순응하는 캐릭터입니다. 해탈한 느낌이랄까요. 나이가 들어 이런 저런 일을 겪다 보면 누구나 철학적인 부분이 생기잖아요. 충분한 고민과 아픔과 시행착오가 없이는 생길 수 없는 삶의 지혜 같은 것들이요. 막달레나는 그런 지혜를 가지고 있는 인물인 것 같아서 매력적이죠.

모든 작품이 소중하겠지만 <베르나르다 알바>에 애착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여자배우 열 명이 모였다는 사실’, 우리 스스로 이 사실을 어필하는 게 아니라 실제 여자 배우 열 명이 모였던 적이 없어서 신기했고요. 스페인 음악에 가깝게 작곡을 한 넘버, 플라멩코라는 강렬함도 좋았어요. 호기심과 신비와 유니크함의 결정체라고 할까요. 처음 영주 언니가 이 작품을 제게 보여주셨을 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나요. “이 작품을 다른 사람이 하면 배 아플 것 같아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은 변함 없고요. 그런데 아마 저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이 작품을 하는 동안 ‘내가 할 역량이 안 되나’ 한 번쯤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동안 우리가 다른 작품에서 연기하거나 노래했던 것과 너무 이질감이 들었거든요.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도 벅차고 플라멩코라는 낯선 동작과 움직임, 연극적인 대사 등 멋모르고 덤볐다간 큰일이겠다 싶었어요. 하지만 연습하면 할수록, 궁금증이 하나씩 풀어질 때마다 매력은 배가 됐죠. 억압된 자유와 본능을 얘기하면서 여성들의 아팠던 역사를 꼬집어내는 것도 좋았어요. 한마디로 모든 게 좋았어요.

연기할 때 정영주 배우님 보면 진짜 무서울 것 같아요.
저는 초연 때 영주 언니가 안 무서워서 걱정이었어요.(웃음) 신기하게도 저는 ‘영주 언니의 딸 전문 배우’라 해도 될 만큼 작품에서 계속 만났어요. <브로드웨이 42번가><헤어 스프레이><넥스트 투노멀> 그리고 이번 작품. 모두 엄마와 딸이 애증의 관계에 있죠. “언니, 우리는 언제 사랑하는 눈으로 쳐다봐?” 하면 “그러게나 말이다. 이게 운명인가 보다.” 하시죠. 영주 언니는 막 퍼주는 분이에요. 이번에도 갑자기 집주소를 부르라 해서 회사에 제출하나보다 하고 적어줬더니 아침에 귤 한박스가 오더라고요. 모든 배우에게 다 보낸 겁니다. 일도 많이 하면서 사람들 챙길 시간이 어디 있나 싶게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는 사랑스러운 선배님이세요.

 

 

스무곡의 넘버 가운데 가장 공을 들이는 곡은 무엇인가요.
‘오픈 더 도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자유와 욕망을 갈망하고 체계에 반하는 인물도 두려움이 있을 거란 말이에요. 마냥 용감할 수만은 없으니까요. 그러한 갈등과 혼란 속의 내면을 음악으로 기가 막히게 만들었어요. 전주만 나와도 심장이 벌렁벌렁뛸 정도로 코드 진행도 훌륭하죠. 따라 불러도 아델라의 감정이 순식간에 생길 만큼 잘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뮤지컬이 왜 좋은가요.
열두 살 때 아역으로 처음 무대에 섰을 때, 그때 제 인생이 정해져 버린 것 같아요. 저도 왜 좋아할까 많이 생각해봤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중요하더라고요. 그때의 기억이 제 인생을 지배했다고 할까요. 제 의지로 오디션장에 달려가 시험을 치렀고, 합격했고, 공연을 한 기억이 깊이 머릿속에 박혀버렸어요. 전 한번도 제 길에 대해 의심해본 적이 없어요. 신기해요, 저도. 다행이 아직까지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서 감사하고요.

가장 자유롭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 질문을 막 들었을 때는 집에서 혼자 강아지들과 남겨졌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10초 후에 바꼈어요. 제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되는 순간은 몰입했을 때인 것 같아요. 전투력을 가지고 작품 연습할 때. 그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그 에너지가 좋고 행복해요.

참 어려운 시기에 공연 준비를 하고 있어요. 어려움을 뚫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이 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얻거나 느끼면 좋을까요.
뭐를 느끼셨으면 좋겠는지는 음… 잘 모르겠어요. 예를 들어 <브로드웨이 42번가>를 할 때의 대답은 명확하거든요. 관객들이 희망과 선한 영향력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고, 마음의 힐링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리죠. 이 작품은 제가 어떤 가이드를 드릴 수가 없어요. “이런 걸 느끼세요.” 라고 감히 말씀 드릴 수도 없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무언가를 전달해야 하는 목표가 없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각자 느끼시고 받는 것들이 다 다를 거라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가열차게 달려왔는데 앞으로 어떤 배우로 남고 싶은 가요.
계속 무대에 있고 싶어요. 요즘에는 선배님들 보면서 스스로를 투영해보곤 해요. 내가 나이 들면 저런 선배가 될 것 같아, 하고요. 좋은 선배님들이 너무 많아 내가 갈 길이 바로 저기야, 하며 즐겁게 상상을 합니다. 저는 거창한 건 잘 모르겠고요, 여전히 누가 뭐 하자고 하면 너무 기분이 좋고 감사해요. 솔직하게 말씀드 리자면 앞으로도 좋은 사람들과 작품하면서 사랑 받고 싶고, 칭찬 받고 싶어요. 그뿐이에요.

 

ATTENTION, PLEASE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기간 2021년 1월 22일-3월 14일
시간 20:00 평일|15:00 19:30 주말(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정동극장
출연 정영주, 이소정, 강애심, 황석정, 한지연, 이영미,
최유하, 김려원, 임진아, 황한나, 정가희, 김환희, 김국희,
전성민, 오소연, 김히어라, 이진경, 이상아
가격 전석 7만원
문의 02-751-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