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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관계에 대하여_연극 <더 드레서> 연출가 장유정

관계에 대하여

영화와 무대, 두 장르를 오가며 따뜻한 메시지를 전하는 장유정 연출은 곧 선보일 연극 <더 드레서>의 연습실을 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작품 안했으면 어쩔 뻔했지?’
editor 이민정 사진제공 정동극장


인생 3막을 여는 송승환의 연극 무대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연극 <더 드레서>. 한국의 명배우이자 공연제작자인 송승환이 연극 무대에 선다는 소식을 들은 안재욱, 오만석, 정재은, 배해선 배우는 “거절할 이유가 없으니까요.”라는 대답으로 단번에 출연을 결정했고, 오랜 인연으로 송승환 배우와 공연을 올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막식도 함께 선보였던 장유정 연출이 “그야말로 영광”이라며 뜻을 모았다. <더 드레서>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연극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는 로날드 하우드의 작품으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연극 공연을 앞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장유정 연출은 작품의 원형을 훼손시키지 않고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사회적으로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만을 정리하여 90분으로 만들었다. 공연을 3주 앞둔 가을날의 정동길에서 장유정 연출은 연습실의 훈훈한 현장과 배우들의 열의, 작품에 대한 고민들을 아낌없이 털어놓았다.

한 동안 영화를 찍으시다가 5년 만에 연극무대 연습실에 계십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잘할 수 있을까, 기대에 못 미치면 어떡하지, 괜히 한다고 했다가 야단맞고 욕만 먹는 거 아닌가, 처음엔 되게 겁나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연습을 시작하면서 모든 두려움이 그냥 사라졌어요. 완전히! 지금은 조금 야단 맞으면 어때, 이렇게 좋은 경험을 하고 있는데, 감사하다는 생각만 해요. 우선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애티튜드가 너무 훌륭해요. 모두가 프로인데, 모두가 아마추어의 열정이 있는 거예요. 협력해서 무언가를 도모하는 과정, 지난한 모든 과정이 전부 행복하다고 할까요. 너무 신기해요.

제작발표회 때 배우들끼리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처음에 제가 연습을 들어가기 전에 테이블리딩을 하자고 했어요. 이 작품이 가야 할 방향성,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배경 등을 서로 나누고 싶어서였죠. 저 역시 공부하다 보니 재미있기도 하고 굳이 코로나 상황에서 연극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시작했어요. 이 작품의 배경인 1940년대의 한국 상황, 해외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면서 영국에 있던 그들은 어떻게 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니 다 연결이 되는 거예요. 테이블리딩이 거의 제 발표처럼 되었죠.(웃음) 연출 콘셉트를 먼저 말씀드리고, 당시 유행했던 곡들 들려드리면서 저는 여기에 타악기를 라이브로 사용할 것이고, (물론 추후 수정 가능성이 있겠지만) 어떤 방식으로 무대를 세팅할 거고, 분장실은 섬처럼 있었으면 좋겠고, 원작에는 그렇지 않지만 극중극이 있고, 그렇기에 배우님들이 아마 매일 나오셔야 할 수도 있어요 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너무 놀라운 건 배우분들이 이미 대사를 거의 외워 오신 거예요. 이틀 만에 테이블리딩이 끝나고 2주 후에 런쓰루를 했어요.

그럼 지금은 뭘하시나요?
다시 다 엎고 있죠(웃음). 수정하고 보완하고요. 시작한지 22일 됐는데 이 방향으로 가는 게 틀리지 않구나, 생각하고 있어요. 지금은 또 다른 디테일을 만져가는 단계입니다. 저희가 더블캐스팅이 두 팀이 있지만 송승환 선생님은 원캐스트라 4시간 이상 연습이 어려울 수 있어요. 6시간까지는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 서로의 스케줄 때문에 4시간씩 4일을 만나서 완전 몰입하며 연습하거든요. 그런데 6일 연습하고 런쓰루를 했으니 모두 대단하신 거죠.

작은 규모의 연극에 이런 캐스팅이 나오리라고는 사실 아무도 예상을 못할 거에요.
송승환 배우님에 대한 존경심이 크지 않을까요. 코로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시는 배우들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저도 이제 어디가면 저보다 어린 배우들과 작업하곤 하는데 여기서는 한 분 빼고 제가 제일 어려요. 그럼에도 늘 저를 신뢰하고 예우해주시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고요. 저도 연습을 일찍오는 편이긴 한데, 6시에 연습이라면 배우들이 3시부터 오기 시작해요. 누구 하나 핸드폰 보는 이 없고, 고3 학생처럼 계속 체크하고 메모하고 있어요. 모두가 그래요. 사실 저도 처음에 PD님께 “스케줄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빠지는 날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라고 전했어요. 그랬더니 “아니 요즘 매일 오는 연출이 어딨어요? 걱정마세요.” 하셨거든요. 그런데 웬걸요. 매일 오는 건 당연한 거고 배우들이 와서 달달 외우고 있는데 저도 미리 오지 않을 수가 있나요.(웃음)

<더 드레서>가 연출님께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왜 전쟁 중에도 연극을 해야 하지, 지금의 상황과 만나는 지점도 있지만 이 작품에서 저는 ‘관계’를 생각하게 해요. 일직선으로 줄 긋는 단순한 관계들이 아니라 다양한 감정들이 얽힌 관계들이죠. 원작은 둘 혹은 셋이서 계속 얘기를 나눠요. 노먼과 드레서, 선생님과 사모님 등 계속 이야기하는 방식이죠. 저희는 대화에서 뿐 아니라 선생님이 혼자 있는 장면이나 둘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도 밖에 있는 로드에서 일어나는 관계까지 보여주고 있어요. 이 원작을 작품으로 한 영화가 1983년과 2015년 두 번이 제작됩니다. 1983년 작품은 굉장히 영화적이고 노먼이 젊어요. 공연장 밖의 무너진 건물, 잔해가 보이기도 하고요. 반면 이안 맥켈런이 노먼이고 안소니 홉킨스가 선생님 역할인 2015년 작품은 공연장 안을 벗어나지 않죠. 저희는 단촐하지만 깊고 연극적으로 가보자 했어요. 방향성이 흔들리지 않되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 시대와 맞지 않는 에피소드, 지나치게 문어체적인 것들을 조금씩 삭제하고 완화시켰어요.

사람의 양면성,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관계에서 중요한 지점’ 혹은 ‘관계맺음’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건지 작품이 전달하고 있나요.
메시지 혹은 의미를 이 작품이 명쾌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예요. 음… 우리 인간은 참 어리석기도 하고 나약하기도 하고, 이 사람 앞에서는 엄청 강하면서, 저 사람 앞에서는 호령하고 있어요. 같은 사람한테도 어떤 상황에서는 어쩔 줄 몰라하고 어느 순간 확 변하기도 하고… 그런 게 인간이구나 싶기도 해서 그러한 관계를 보는 것만으로 위로이지 않을까 싶어요. 100% 완벽한 인간은 없고 모두 개인적이고 이기적이고 동시에 배려심이 있고 끝까지 나쁘지 않고요. A와 B가 만났을 때와 A와 C가 만났을 때가 제각각 다르죠. 우리 인간은 대부분 그럴 거에요. 나라는 사람, 내가 일하는 사람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이 작품은 공연이 올라가기 전부터 공연이 끝나고 난 상황까지, 하루에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잖아요. 지루하거나 혹은 급작스러워서 연출하기에 까다로운 지점은 없었나요.
로날드 하우드 작가가 워낙 잘 쓰셔서 그런 걱정은 없어요. 그 분께서 캐릭터의 양면성, 이면을 잘 만들어줬어요. 배우가 연기하는 것을 방해만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드러나요. 다만 40년 가까이 된 작품이다 보니 혹여 지나치게 고루해보이지 않을까, 그런 부분만 잘 풀면 될 것 같아요. 1980년대 작품을 한국에서 2020년에 그대로 만든다면, 아마 배우 보는 맛으로라도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아무 시도도 안하는 건 재미없잖아요. 다양한 시도들과 장치들이 있고, 다행히 배우들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물론 그 시도들은 배우들의 연기를 방해하지 않고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한에서 입니다.

‘내 생애 처음으로 앞을 알 수 없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렵다. 하지만 인생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만큼 멋진 일이 없다’라는 대사가 있어요. 연출님 인생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일까요.
몇번 있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 뮤지컬을 올렸을 때,<김종욱 찾기> 공연에서 상을 받았을 때. 영화화하겠다고 돌아서서 고향을 떠나는 토토처럼 영화계에서 <김종욱 찾기>를 찍었을 때. 그리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했을 때.

이 작품에서 가장 공들인 지점은 어디이고, 애착있는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지금은 다 공들이는 타이밍이라서요.(웃음) 그런데 나를 누군가에게 설명할 때 나만을 얘기 하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이렇대요. “나는 BTS의 팬이고 매운 거 못 먹고 막내딸이고…” 주위 환경 때문에 나라는 사람의 가치관이 보이게 되는 거. 어느 한 캐릭터가 대사를 치고 있지 않아도 주위 사람들, 환경으로 인해 캐릭터가 보이고 캐릭터와 관계 맺는 것들이 보이도록 배치 중에 있어요. 모두가 애틋하지만 아무래도 ‘선생님’ 역할에 고민을 많이 하죠. 맘대로 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 저만 해도 “도대체 이 스케줄 누가 짰어?” 하고 보면 “바로 나”인 거예요. 지금은 머리 감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스케줄을 짜니까 내가 하루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하루가 나를 끌고 가는 느낌이죠. 선생님도 어찌 보면 ‘노예 신사’죠.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어쩌면 선생님 나이가 되었을 때 선생님의 대사 “남는 게 하나도 없고 나의 삶은 뭐 였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들여다보지 못하고…”가 가슴에 와닿을 것 같아요.

송승환 선생님과의 인연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연출님이 바라보는 송승환 배우는 어떤 분일까요.
눈물나죠. 존경하고요. 늘 한결같이 약속을 잘 지키시고 어린 사람에게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하세요. 예전에도 지금도 늘 소탈하시고요. “오늘은 장 작가가 왔으니까 탕수육도 좀 시켜볼까”라고 말씀해주셨죠. 지금은 시력이 약해지셔서 책을 못 읽으시지만 엄청난 독서광에 책도 굉장히 빠르게 읽으셨어요. 한 번은 스위스 로잔까지 함께 비행기를 탄 적이 있는데 앉은 자리에서 3권을 읽으시더라고요.

이 작품 또한 송승환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연출 제안을 받은 거고요. 인생 3막을 여는 연극을 하고 싶은데 네가 연출해주면 좋겠다 하셨어요.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또 다시 존경하는 분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전 좋았어요. 연습을 하면 자주 뵙게 되니까요. 해야겠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했죠.

<김종욱 찾기>, <부라더>, <정직한 후보>의 공통점은 제게 ‘따뜻함’이었어요. 기본적으로 인간을 향한 시선이 따뜻한 것 같아요.
스스로 ‘나는 따뜻한 사람이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어도 차가운 인간은 못 되는 것 같아요. 이성적, 논리적, 냉소적, 자기 감정을 컨트롤할 줄 아는 것과 저는 일단 거리가 멀어요. 저는 맡은 바 임무를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금방 화르르 했다가 금방 미안해 해요. 그리고 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요.

 

ATTENTION, PLEASE

2020 정동극장 연극 시리즈 <더 드레서>
기간 2020년 11월 18일-2021년 1월 3일
시간 20:00(월-금)|14:00 18:30(토)|일요일 공연 없음
장소 정동극장
원작 로날드 하우드
연출 장유정
출연 송승환, 안재욱, 오만석, 정재은, 배해선, 송영재, 이주원, 임영우
문의 02-75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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