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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안개 너머의 그대_경기도극단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

안개 너머의 그대

배우 손숙, 연출가 한태숙, 극작가 정복근이 시대를 대표했던 여성 작가를 무의식으로 불러들이는 작업을 한다
editor 나혜인 photographer 김선진


좌부터 연출가 한태숙, 극작가 정복근, 배우 손숙.

경기아트센터가 개관 이후 30년 만에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을 선언했다. 그러나 시작도 하기 전 급작스럽게 맞닥뜨린 코로나19 확산. <브라보, 엄사장>과 <파묻힌 아이>와 같이 당초 정해진 작품들은 기약 없는 인사를 나눠야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노력 끝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완화된 지금, 경기아트센터는 새로운 신작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랜 세월을 연극계에 몸담아온 세 여인이 경기도극단과 의기투합하는 연극 <저물도 록 너, 어디있었니>. 작품은 일상을 흔드는 분노와 갈등의 틈새, 허물어진 시간의 경계에서 딸을 찾아 헤매는 여성을 통해 “존재는 사라져도 기억은 남는가?”라는 화두를 던진다.

이번 작품은 <브라보, 엄사장> 온라인 공연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경기아트센터 신작 연극인데요. 다들 각오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한태숙 각오라고 할 건 없어요. 현 팬데믹 상황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잖아요. 당장 내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죠. 이런 불안 속에서 견고하게 붙잡고 있는 것 자체도 연습의 일종이라고 생각해요.
손숙 지금 공연계가 초토화되었잖아요. 공연을 안 하고 집에 있으면 편할 줄 알았는데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을 하자고 제안해줘서 좋았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은 할 수 없지만 이렇게 연습실에 와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정복근 저는 계속 걱정이 많았어요. 공연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작품을 워낙 복잡하게 써놨거든요. 써놓고도 걱정이 많았죠. 
손숙 저는 가끔 경기도극단 단원들한테 이런 말을 해요. 너희 행복한 줄 알아라.(웃음) 이런 시기에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니까요.

 

연출가 한태숙

연극계에서 많은 업적을 남겨오신 분들이 모인 작품이기에 기대가 큽니다. 세 분이 한 작품에 모이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태숙 1994년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에서 손숙 선생님과 아주 재미를 봤죠.(웃음) 당시 정복근 선생님이 원작을 각색 했고 그때부터 우리 세 사람의 인연이 시작됐어요. 이후에는 손숙 선생님께서 언제 다시 같이 작품을 하느냐고 매번 물으셨어요.
손숙 저는 기다렸죠. 항상 같이 작품을 하려고 하면 스케줄이 안 맞았어요. 그 동안 연극을 꾸준히 해왔는데, 종종 마음에 안 찰 때가 있었어요. 연습하고 무대에 올라가면서도 미심쩍고 덜 된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워낙 한태숙 선생님은 열심히 하시니까 그런 걱정이 없었죠.(웃음) 그래서 다시 작업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전력투구하는 연습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는 느낌. 공연은 연습한 만큼 올라가는 거 잖아요.
정복근 저는 근본적인 계기가 있어서 함께하게 된 건 아니에요. 돌아다니면서 한두 줄 쓴 것들이 모여서 작품이 된거죠.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요?
정복근 한평생을 살아오다 보니까 우리가 매일 싸우고 다투고 하는 것들이 뻔하더라고요. 잘 먹고 잘 살고 있지만, 우리가 살아오는 삶이 정말로 양과 질에 있어 좋은 삶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이번 작품에서는 1940년대 활동했던 여성 소설가 지하련의 시각을 빌려보려고 했어요. 그분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난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었거든요. 당시에는 이익을 위해 정치적 신념을 가지는 요즘과 달리 생존이 주요인이었단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련 소설가는 항상 단정하고 냉정하게 자신의 시각을 유지했어요. 그러다 보니 어떠한 논점을 두고 진영논리에 따라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 같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한 거죠. 그걸 이 연극의 방향으로 잡고 있어요.

<저물도록 너, 어디있었니>는 어떤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한태숙 보수와 진보 간의 갈등, 대립을 지하련-임화 부부의 시대에 빗대는 것은 재미있는 발상이죠. 분단된 조국이라는 상황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불행을 어떻게 안고 가야 하는가. 이 지점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아침에도 정복근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직 작가와 연출가 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해요. 이런 것들이 오히려 연극에 큰 힘이 되기도 하죠. 단선으로 가지 않고 고려할 부분이 있다는 거니까. 지금까지 연극에서 말해온 철학과는 다른 민감한 지점을 건드릴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극작가 정복근

민감한 지점을 건드리는 것에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한태숙 당연히 부담감은 있죠. 부담이 있으니까 할 만하지 않을까요. 이러다가 여기서 쫓겨나는 거 아닐까 싶은데.(웃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로운 분위기 라는 거죠.

다른 두 분의 입장에서는 이 작품이 어떻게 느껴지시나요?
손숙 되게 어려워요. 제가 맡은 지하련이라는 인물은 극 내에서 실재하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 중이에요. 사실 임화나 지하련은 좌, 우를 가르기 보다 이상주의자로 느껴져요.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 무산계급을 지지하는 쪽이죠. 그런데 회색분자들처럼 각 진영으로 몰리게 되고, 그 와중에 지하련은 임화를 향한 사랑을 숨기지 못해요. 모처럼 저를 데려 왔는데 이렇게 어려운 역할을 주셨어요.(웃음)
정복근 저는 될 수 있으면 연습실에 안 오고 도망가려고 해요. 작가는 일정 부분 극에 대해 무책임해요. 장면에서 나오는 효과만 생각하죠. 그런데 연출가는 무대를 구축해야 하니까 저와 다른 의견을 가질 수 밖에 없거든요. 장면, 장면 쉽게 넘어가려고 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죠. 이번 작품은 제가 생각해도 추상적인 것들이 많아요. 임화와 지하련을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끌어낸다고는 하지만, 무대 위로 끌어내는 당위부터 확실해야 하는데 애초에 이 부분을 대본에서 애매하게 풀고 몽환적으로 만들고 싶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작가의 비겁함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연출가님한테 이 비겁함을 걸려버린 거고요.(웃음)
손숙 가운데서 보고 있으면 너무 재미있어요. 새로운 창작이 탄생하는 과정이잖아요. 끊임없이 분석하고 토론하고. 이게 연극을 만들어가는 재미죠.
한태숙 우리의 과정을 이렇게 다 털어놔서 어떡하지!

극의 제목이 시의 한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이 작품에 쓰이게 됐나요?
정복근 임화의 시예요. 지하련과 임화가 나오는 작품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 내에 넣게 됐죠. 원래는 제목이 <윤무>였고, 지금의 제목은 연출님이 제안하신 거예요.

한태숙 <윤무>라는 제목이 너무 정직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마침 임화의 시에 ‘혜란아(임화의 딸), 너 어디 있었니.’라는 구절이 있었죠.

배우 손숙

지하련은 어떤 인물인가요.
손숙 임화의 부인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지적인 여성이죠. 앞서 말한 것처럼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인물이다 보니 저도 고민이 많아요.
정복근 작가로서 덧붙이자면 지하련은 현재를 살고 있는 부부에게 나타나는 혼백 같은 존재예요. 이 부부는 잘 살아보려고 하는 소시민인데,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죠. 무언가에 휩쓸려서 주의력을 잃을 때마다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지하련을 의식으로 불러내요. 그런 점에 있어서 지하련은 극의 기둥을 세우는 배역인 거죠.

어려운 시기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찾기보다 현실에 가까운 비극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이유가 있을까요?
손숙 저는 연극이 마냥 재미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할 지점이 있어야 하죠. 재미있는 것만 하려면 24시간 텔레비전을 틀어놔도 되지 않을까요?
한태숙 연습하면서 ‘우리도 재미있는 걸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나와서 제가 “나는 내가 재미있게 하면 다들 무섭다고 그래.” 이랬죠.(웃음) 포기하라고!
손숙 제가 예전에 우울한 작품을 두 번 연달아서 했었어요. 어느 날은 한 분이 오셔서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다음에는 그런 작품 하지 마세요. 너무 아파 보여요.” 작품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영향을 받고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는 거예요. 작품 밖에서도 내가 영향을 받는 게 보이는구나 하고 깜짝 놀랐죠.

예술은 재난 상황에서도 언제나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공연예술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많았고요. 이러한 시기에 예술가로서 가지는 사명감이 있을까요?
손숙 해야죠. 계속해서 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팬데믹 시대에 영상물로 대체되는 공연들이 많은 것에 아쉬움을 느껴요. 공연예술과 영상은 별개의 것이거든요. 연극의 3대 요소에 는 관객이 포함되잖아요. 관객 없이 영상을 찍는다는 건 드라마나 영화와 다를 바 없죠. 또 영상을 아무리 잘 찍는다고 해도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따라갈 수 없고요. 영상물로 무대를 접한 잠재 관객이 현장에 대한 호기심을 잃게 될까 걱정도 되죠. 공연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이 무대를 찾아오는 것이니까요.

ATTENTION, PLEASE
연극 <저물도록 너, 어디있었니>
일정 2020년 11월 19일-11월 29일
장소 경기아트센터 소극장
문의 031-230-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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