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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달콤한 꿈_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한여름 밤의 달콤한 꿈

오페라극장을 나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경쾌했다. 많이 웃어서, 노래에 취해서, 힘찬 에너지를 받아서.
지난 여름,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선보인 <천생연분>과 <세빌리아의 이발사>.
editor 이민정


맛있는 잔치국수 한 그릇_<천생연분>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오직 비극만이 인간의 심성을 정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지만 오페라 부파를 더 선호하는 나로서는 이번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의 프로그램(<천생연분><세빌리아의 이발사><플레더마우스:박쥐><레드 슈즈>)은 반가웠다. 기분 좋게 ‘1주일 1오페라하우스’를 실천하리라 다짐하며 첫 번째 작품 <천생연분>을 맞이했다.

이 작품은 오영진의 희곡 ‘맹진사댁 경사’를 원형으로, 독일 프랑크푸르트 오페라극장의 초청을 받아 첫 선을 보인 2006년 임준희 작곡가의 버전이다. 이야기의 얼개는 단순하다. 맹진사는 청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아들을 김판서댁 손녀와 혼인을 시켜 신분 상승을 하고픈 욕구로 가득하다. 하지만 두 사람의 자식인 서향과 몽완은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혼인할 수 없다며 각각 자신의 하인과 옷을 바꿔 입은 후 상대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몽완은 서향의 하녀인 이쁜이에게, 서향은 몽완의 하인인 서동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국 몽완과 서향의 결혼식날, 얼굴을 가린 이쁜이가 몽완과 결혼식을 올리고 서향과 서동은 먼 곳으로 떠난다. 아이들 학예회에서도 선보일 수 있는 이 단순한 구조의 서사가, 해학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둔갑한 건 일단 우아하면서 현대적인 무대 연출의 힘이 크다. 병풍처럼 펼쳐진 기본 무대에 하늘, 구름, 겹겹의 산 등 고유의 문양과 문살은 전통적인 한국의 미(美)를 톤다운된 색채와 간결한 라인을 통해 감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공간은 중앙 부분만 바뀌면서 김판서네 집이 되기도 맹진사댁이 되기도, 또 단오절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똑같은 책거리라도 돈만 많은 맹진사댁의 화려함과 김판서네의 책만 잔뜩 쌓여있는 대조적인 모습 등 의미와 상징까지 녹아있다. 바닥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계단 역시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한지 중에서도 연하장이나 청첩장 등에 쓰이는 솜털이 일고 이끼가 박힌 태지를 덧입힌 것이라 굉장히 신비로운 느낌을 안긴다. 이러한 모든 디테일들은 공연을 보면서 키득거리게 되는 가벼운 웃음에 격과 고급스러움을 달아주고 있었다.

오페라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이 작품의 즐거움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 레치타티보만으로 무대에 올려도 될 만큼 그 누구도 익살스러운 몸짓에 낯가림이 없었다. 서향과 서동이 사랑을 속살일 때는 한없이 서정적이다가, 위너 오페라 합창단과 아름불휘 어린이 합창단이 무대를 가득 채울 때면 상업 뮤지컬의 화려함에 견주어도 손색 없을 정도였다. 힘차게 널뛰기를 뛰는 아이들의 모습은 또 얼마만인가. 다만 배우들의 성량과 발음이 살짝 아쉬웠다. 오케스트라에 묻히는 아리아가 종종 있었고, 빠른 대사는 자막으로 확인해야 했다. 물론 자막 안의 글자가 움직이거나 글자에 표정을 넣은 덕분에 계속 자막을 보고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잔재미에 기분마저 좋아졌으나 ‘산넘어 산을 넘으면 강이 나오고 그 강을 건너면 또 산이 나오는 날이 많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는 누오바오페라단 단장 강민우의 인사 말에서 아픔과 고통이 느껴졌다. 그래도 다행이다. 어쨌든 공연은 올려졌고 관객은 환희에 찬 모습으로 극장 문을 나섰으니까.

아름다운 희극지왕_<세빌리아의 이발사>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사랑의 묘약> 다음으로 좋아하는 작품이라 김선국제오페라단이 이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서곡의 첫 음이 흘러나오는 순간부터 오케스트레이션은 때로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 자유롭게 넘실대는가 하면 때로는 강력한 폭풍이 되어 심장을 강타했다.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카를로 팔레스키는 ‘오페라의 서곡이란 이런 거야’를 상기시키 려는 듯 자신감과 당당함까지 탑재하고 있었다. 작품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정수를 보여주고 싶다는 김선국제오페라단의 포부처럼 이야기 구조는뿐만 아니라 시대와 의상까지 원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알마비바 백작은 귀족처녀 로지나 방의 창문을 행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고, 바르톨로는 후견인이라는 명목으로 로지나를 집안에 가둔 채 재산을 탐하며 결혼하고 싶어한다. 로지나를 사랑하는 백작은 이발사 피가로에게 도움을 청하고 영리한 피가로는 로지나에게 접근하기 위한 다양한 지혜와 기지를 발휘한다. 바르톨로에게 들켜 위기에 처할 뻔하지만 결국 피가로, 로지나, 백작은 그들의 사랑과 승리에 환호한다는 이야기.

보마르셰의 희곡은 당시에도 인기 절정이었다. 원작으로 주인공 피가로가 등장하는 ‘피가로 3부작’이 모두 오페라로 탄생될 정도였으니까. 여기에 음악 천재 로시니가 작곡했으니 어벤져스가 따로 없었을 터다. 오페라 악보를 한 번 보면 다 외울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던 로시니는 침대에 누워 곡을 쓰는가 하면 방에 떨어진 종이를 줍는 것도 귀찮아 같은 내용을 새로운 종이에 다시 적을 정도로 게으름뱅이였다. 공연을 코앞에 두고도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며 늑장을 부리는 통에 극장주가 로시니를 가두어 놓는 일까지 있었다는데, 굉장히 낙천적이고 괴짜였던 그의 성격은 작품 곳곳에 변장술, 아이러니, 계략 등 다양한 희극적 상황으로 연출된다. 대단한 것은 고전적인 웃음의 코드, 할리우드 액션식의 몸개그, 뻔한 계획 등이 김선국제오페라단의 훌륭한 오케스트레이션과 배우들의 거침없는 기량으로 완성도를 높였다는 사실이다. 로지나를 사모하며 부르는 알마비바 백작(테너)도, 사랑에 화답하며 부르는 로지나(소프라노)도, 잘난 척하며 ‘나는 이 거리의 만물박사’를 부르는 피가로(바리톤)도, 심지어 가장 비중이 적은 베르타(메조소프라노)조차도 엄청난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여기저기 “브라보!”가 터져 나왔기에 프로그램 북을 보며 배우들의 이름을 자꾸만 확인하게 됐다. 노래만 잘 부르는 게 아니라 걸음걸이, 말투, 표정까지 텐션 높은 이 배우들은 이탈리아의 어느 극장에 가져다 놓아도 폭발적인 이슈를 만들어낼 것 같았다. 진짜 어벤져스는 공연에 참여한 모든 배우와 이들의 소리를 하나로 뭉친 연출에 있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을 끝으로 제 11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은 막을 내렸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어쩔 수 없이 반쪽짜리가 돼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더위와 습기의 불쾌함을 뒤로한 채 온전히 연습에만 매달린 이들의 노고 덕분에 밤하늘에 뜬 희미한 구름을 보며 집으로 가는 길,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느끼고 싶은 순간, 이것이 오페라가 선사하는 인생의 낭만이 아니고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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