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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한 사람의 일생_뮤지컬 <백범> 배우 김승용·최현선

한 사람의 일생

고통을 해학으로, 힙하게 재탄생한 백범일지.
editor 나혜인 photographer 장호


8월 15일, 75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국립중앙박물관 앞에 선 기분은 한마디로 묘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국립중앙박물관 일부가 한때는 일본인들에 의해 독점 운영되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하늘을가득 메운 먹구름 아래 굳건하게 자리한 자태는 온갖 시련에도 굴하지 않았던 수많은 얼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오로지 해방을 위해 태극기 하나를 붙들고 거리로 나섰던 그들. 가늠하기도 어려운 시절을 곱씹는 순간, 현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슴 뭉클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렇기에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만난 뮤지컬 <백범>은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 ‘박물관 역사 잇기’ 시리즈의 첫 자체 개발 뮤지컬 <백범>은 백범 김구의 일대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펴낸 작품으로, 김구를 독립 영웅으로 한정 짓지 않고 그가 가진 오랜 서사를 밟아간다. 장우성 연출가는 <백범>을 ‘2020년 다시 읽는 백범일지, 눈과 귀와 심장으로 만나는 그의 칠십 생애’라고 표현한다. 어릴 적 한 번쯤 읽어 봤을 법한 ‘백범일지’를 150분 속성 과외로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실제로 배우들이 펼치는 내용을 보고 있으니 반가움마저 든다. 친숙한 소재와 더불어 작품에서 가장 눈 띄는 것은 힙합이라는 요소다. 물론 고전적인 내용과 현대적인 장르, 극과 극의 합이라는 걱정이 전무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무대를 여는 프롤로그 첫 마디를 듣는 순간 의심은 시원하게 씻겨 나간다. “힙합 장르야말로 한국인의 저항정신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장르구나!”라는 깨달음, 그와 함께 나 자신이 새로운 도전에 얼마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는가에 대한 반성. 그리고 확신을 가진다. <백범>을 맛본 젊은 세대는 지루하게 느껴지던 역사를 ‘즐기게’ 될 것이고, 기성세대는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 역사를 ‘다시 보게’ 되리라는 것을.


한국적 장르를 개척하다
배우 김승용

18명의 백범 중 처음으로 만난 백범은 김승용 배우였다. 극장 용에서 마주한 그에게서는 올여름 뮤지컬 <전설의 리틀 농구단>에서 코트를 뛰어다니던 모습과 결이 다른 열정이 느껴졌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해 KBS1 <역사 스페셜>을 즐겨 봤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고 이를 증명하듯 말 한마디, 한마디에 백범 김구를 깊게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김구의 서사를 만들어온 다양한 사건 중 그가 맡은 백범은 ‘해방 이후 환국길에 오른 백범’이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함과 동시에 마침내 1945년, 오랜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된 대한민국. 그토록 그리던 고향으로 발걸음을 뗀 김승용의 백범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담겼다. “그분이 일제 치하에 평생 외쳤던 건 자주독립이었어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 그동안 안중근, 이봉창, 윤봉길 등 자주독립을 위해 수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는데, 결국 외세의 영향으로 독립이 되어버린 상황에 놓인 거죠. ‘이게 과연 옳은 독립인가’에 대한 김구 선생님의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이 고뇌에는 백범뿐만 아니라 김승용 배우의 고뇌도 있었다. 자주독립을 외친 백범을 맡는 동시에 신탁통치를 찬성한 이승만 대통령 역할도 맡게 되면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피할 수 없게 된 것. “역사적 인물에 접근하다 보니 약간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제가 이승만 대통령에게 동조하지 않는다고 하여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분을 희화화해서 표현할 순 없는 거거든요. 물론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사건 자체에 대한 왜곡은 없어요. 다만 배우 개개인이 표현하는 것이 관객에게 잘못 전달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따라오는 것 같아요.”

그는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을 통해 고전과 힙합의 만남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경험하기도 했다. 당시 작품의 새로운 시도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확연히 다른 두 장르의 융합이 이질감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걱정 어린 시선. 김승용 배우는 그것을 ‘편견’이라고 말한다. “솔직한 심정으론 저도 <스웨그에이지>를 처음 접할 때 이질감이 있긴 했어요. ‘이거 되겠어? 독특하긴 한데’라는 생각이 있었죠. 그런데 이게 먹힌 거예요. <백범>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우리는 더 높은 문화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고, 더 좋은 장르를 만들어내 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힙합과 역사의 만남이라는 게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일정 부분 의아함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던 트로트도 다시 젊은 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잖아요. 저는 이것도 충분히 신선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승용 배우는 시조의 운율을 랩의 라임으로 표현하고, 일제를 향한 저항정신을 힙합이 가진 저항정신에 담아내며 가장 한국적인 장르를 개척해가는 길의 초석을 닦고 있다. 그렇다면 자주독립이 염원이었던 백범 김구처럼 배우 김승용의 염원,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 “저 같은 경우 학창 시절과 20대 초, 중반에는 뮤지컬 무대에 서는 게 염원이었죠. 지금은 꿈에 대한 고민이 많아요. 주어진 삶 자체는 너무 행복하거든요. 제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금전적인 이득을 보고, 그걸 통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밥 한 끼를 같이 하고…. 아무래도 물질적으로 생각하면 부자가 되고 싶죠.(웃음) 하지만 어렸을 때 가졌던 많은 꿈이 점점 사라지면서 현실과 맞춰 살아가게 되는 점이 정말 무서워요. 특히나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조심하려 하고요. 그래도 다행히 그 부분을 자각하고 있고 꿈에 대해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해요.”

고정을 깨는 작품이 되기를
배우 최현선

뮤지컬 <백범>이 국립박물관문화재단에서 처음으로 제작한 김구 선생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2019년 낭독뮤지컬 <백범>을 통해 선보인 적이 있는데, 당시 최현선 배우는 백범의 아내 최준례 역을 맡아 가슴 아픈 삶을 그려냈다. 유일하게 두 작품 모두 참여하게 된 최현선 배우는 이번 작품에서 백범 역을 맡았다. 한 사람의 생애에 걸쳐 당사자와 주변인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가 가진 서사를 가장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던가. 같은 이야기의 다른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로서 최현선이 느낀 낭독뮤지컬 <백범> 과 뮤지컬 <백범>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낭독뮤지컬 때는 말 그대로 낭독이다 보니 동선 없이 서서 이야기를 전달했어요. 노래나 분위기도 많이 달랐죠. 무엇보다 이번에는 극적 효과를 위해 백범 이야기를 뮤지컬 식으로 확장하고 변형한 부분이 있어요. 조금 더 ‘쇼 스타퍼’ 같은 지점도 있고요.”

<백범>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젠더프리’ 캐스팅이다. 실존 인물인 백범 김구를 남녀 구분 없이 연기한다는 사실은 관객들의 흥미를 이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최현선 배우는 젠더프리가 특별한 장치이기보다 김구의 호 ‘백범’이 뜻하는 평등을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김구 선생님은 남자셨지만, 작품은 그 인물의 존재 자체와 그가 지닌 가치에 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여자가 역할을 맡아도 상관없는 거거든요. 젠더프리라는 요소가 대단해 보일 수 있지만 저는 작품이 성별, 정치 성향, 빈부격차 등을 떠나 ‘사람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최현선 배우는 자신의 백범을 말하면 ‘스포일러’라고 비밀에 부치는 대신 힌트로 ‘피눈물’이라는 키워드를 던져 궁금증을 키웠다. “내용의 모든 것이 선생님이 하셨던 말이고 몇몇은 일지에서 발췌한 것도 있을 거예요. 약간의 힌트를 드리자면 제 백범은 피눈물을 흘리며 말을 전해요. 아마 선생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눈치채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18명의 배우가 백범을 맡다 보니 각 장마다 다른 이가 쌓아놓은 감정과 드라마를 고스란히 끌고 가는 것이 배우들의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최현선 배우 역시 그 부분이 염려스럽다. “저 혼자 백범의 주체성을 가지고 드라마를 쭉 이끌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제 것 외에도 무대 위 다른 배우들의 연기 등을 봐야 하거든요. 그 부분이 조금 걱정이예요. 그래도 작품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춰서 최대한 관객들에게 진심을 전하자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그는 <백범>이 하나의 장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나로 정해진 장르는 없으며 무궁무진한 틀 위에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나가면 되는 것 같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는 흥미로운 것 같아요. 아무런 정보 없이 공연을 보는 관객의 입장이라면 ‘왜 남자랑 여자가 같은 역할을 해? 왜 랩이 나와?’라고 당황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와 동시에 흥미롭지 않나요? 현실로만 풀면 너무 가슴 아프고 슬픈 이야기에 위트와 재미를 주는 거예요. 물론 힙합이라고 해서 <쇼 미 더 머니> 같은 힙합은 아니니까.(웃음)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우리의 한을 이런 위트로 풀 수도 있구나 하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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