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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아름다운 시절_피아니스트 김선욱

아름다운 시절

코로나19로 연기됐던 ‘김선욱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 공연이 재개된다.
음악이 지닌 희망의 메시지를 어느 때보다 깊이 공유하고 싶은 지금,
김선욱은 오랫동안 홀로 고군분투하던 베토벤을 드디어 우리 앞에 꺼내놓는다.
editor 이민정


문학가는 이야기로, 미술가는 그림으로, 작곡가는 음악으로, 연주자는 선율로 인간을 이해하고 세계를 확장하며 자신을 증명한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김선욱이 들려주는 베토벤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고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지금껏 들려주고 보여줬던 베토벤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음악적 깊이 덕분일 것이다. 실제 살아보지 못한 베토벤의 세계에서 우리는 줄곧 그의 강렬한 연주를 통해 정서적 경험과 삶의 동력을 나누었으니까. 해외에서 입국한 그는 2주간의 자가격리를 하는 동안 숱한 매체에서 보낸 질문들에 답을 적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피아노 연습과 결이 다른 노동이었을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선욱의 답변은 손끝에 힘을 준 듯 에너지가 느껴졌고, 모범생다운 기질이 엿보였으며, 친절한 택시기사처럼 문장마다 예의가 흘러나왔다.

ⓒ빈체로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유럽 생활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3월 중순 스코틀랜드에서의 연주 이후로 현재까지 모든 연주가 다 취소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세계의 의료진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 무엇보다도 안전이 중요했기 때문에 연주회가 취소된다 하더라도 크게 아쉽지 않았습니다. 대신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익숙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연습할 수 있었고 요리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늘었으며 잦은 비행으로 지친 건강에도 신경 쓸 수 있었습니다. 가을부터 유럽에도 조금씩 연주회를 재개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은 조심스럽게, 최대한 안전을 우선시하면서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상황이 호전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왜 베토벤 3대 후기 소나타를 선택했나요. 더욱이 3개의 소나타 앞에 ‘안단테 파보리’를 놓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베토벤의 마지막 3개 소나타는 연주자에게도 청중에게도 굉장히 높은 집중력과 호흡이 필요합니다. 베토벤의 초기는 형식과 구조에서 철두철미했고, 중기에서는 엄격한 규율과 규범을 깨뜨리고 새로운 형식과 자유로운 음악을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말년으로 접어들면서 모든 것을 초월해 신념으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베토벤의 정수가 담겨있는 이 3개의 소나타에 앞서, 따뜻하게 베토벤 음악을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발트슈타인 소나타 2악장으로 쓰려다가 독립된 ‘안단테 파보리’입니다.

각 곡들의 해석 포인트가 있다면요?
안단테 파보리는 친근하고 포근한 곡입니다. 그리고 저는 70분간 쉬지 않고 30, 31, 32번 소나타를 연주할 계획이예요. 왜냐하면이 세 곡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 니다. 기도하듯이 관조하는 30번, 고해성사와도 같은 31번, 그리고 자신의 모든 예술혼을 산화하는 32번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30번의 마지막 음 G샵이 31번 A플랫(G샵과 A플랫은 같은 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장대하게 마무리된 다음 불안한 감7화음(Diminished 7th Chord)의 시작으로 분위기가 바뀌면서 32번이 시작합니다. 초조하며 불안정한 1악장이 끝나고 변주곡 형식으로 된 2악장은 마치 생의 마지막 순간인 듯 처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베토벤 전곡을 연주했던 당시와 이번 리사이틀을 앞둔 상황에서 곡에 대한 느낌과 해석이 달라졌을까요.
무엇보다 이번 베토벤 소나타를 준비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 노력을 많이 했다는 점입니다. 베토벤이 청각상실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베토벤이 어떤 소리를 상상하며 음표를 적었을까에 대한 부분은 예전에는 지금처럼 깊게 고찰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악보를 찬찬히 살펴보며, 베토벤이 적은 음표와 주문들을 베토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내가 만약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면?‘ 이라는 가정 하에 제가 예전에 연주해오며 기억하던 음표들을 머릿속에서 다 지워버리고 새로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음표가 새로 들리고 다이나믹도 더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내가 느낀 이 흥분과 놀라움을 연주를 통해 잘 구현해서 청중들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연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32번 소나타는 삶의 시작과 마무리를 생각하며 작곡을 한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C단조(1악장)와 C장조(2악장)는 제일 가까운 조성이면서 제일 먼 조성이기도 합니다. 분출하고 표현하는 1악장은 베토벤 자신의 불같은 성격을 나타내는 것 같고요, 2악장은 베토벤이 좋아하는 변주곡 형식입니다. 변주곡을 다르게 해석하자면 테마(절대적인 본질)가 있고, 그 테마를 모티브로 해서 다양하게 변화하는데 저는 이것이 삶의 ‘여정’같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태어나서 여러 과정을 거치며 변화하고 성숙하고 삶을 마감하듯 이 곡에서는 음악의 태동과 끝이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오랫동안 베토벤을 공부한 연주자의 입장에서 지금 이 시기에 베토벤과 그의 음악이 갖는 의미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성적으로 음악의 세계와 본질을 넓혀 후대 작곡가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바흐라면, 음악에서 인류의 정신과 계몽시대의 정신을 녹여 스펙트럼을 무한대로 넓힌 작곡가가 베토벤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을 갈고 닦으며 발전하기 위해 노력했고 어떤 시련에도 음악이라는 통로로 극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에게 굉장히 엄격했지만 때로는 매우 따뜻한 사람이었고요. 예술의 대한 신념이 무엇보다도 강했기 때문에 자신만의 길을 고집있게 갈 수 있었던 거죠.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은 굉장히 이성적인 방법으로 사람의 감정을 움직입니다. 저는 베토벤이라는 인간에 먼저 매료되었고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예술가에 부합하는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번 그의 음악을 연주할 때 조금씩 발전한다고 느껴집니다.

피아노로 베토벤을 연주할 때와 지휘자의 입장에서 베토벤을 바라볼 때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나요?
피아노를 칠 때에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것 같이, 교향곡을 지휘할 때는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이 접근합니다. 베토벤 특유의 음악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2013년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 멘토링 프로그램의 첫 수혜자로 선정되셨습니다. 특별한 경험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특별했던 순간은 베토벤의 많은 오리지널 자필 악보를 열람하면서 베토벤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베토벤 하우스 지하에 있는 동굴은 많은 사람들에게 출입을 허가하지 않거든요. 그곳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음악학자와 지속적인 대화로 베토벤의 의도를 파악하며 연주에 적용하는 시도를 많이 했습니다. 지금은 베토벤 하우스에서 은퇴하셨지만 베토벤에 관해서는 그 누구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신 음악학자 마이클 라덴브루거(Michael Ladenburger)는 제 3번째 솔로 음반(베토벤 소나타 8, 14, 23번) 내지에 글도 써주셨습니다.

연주가에게 나이가 굳이 중요할까요? 30대가 되어서 스스로 바뀐 부분을 짚어보신다면요?
10년 단위로 구분을 하자면 10대 때에는 그저 연주자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라는 직함을 가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20대가 되어 그 꿈을 이루고 나니, 음악이 일이 되어버려서 방황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힘든 시기를 지나고 나니 음악이 나에게 무엇인지, 음악이 나에게 주는 행복감과 연주라는 절실한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면서 음악이 점점 더 소중해졌습니다. 부끄러운 예전 기억을 돌아보자면 저는 청중을 위해 연주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요. 나의 만족이 중요했고 준비한 만큼 무대에서 결과로 보여주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고 여겼지만 돌이켜보면 틀린 생각이 었습니다. 청중이 없으면 연주자도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이제는 제 연주를 들으러 오신 관객분들이 객석에 계신 동안, 음악이 주는 마법 같은 시간 속으로 함께 공유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합니다.

예원학교 동료들이 입을 모아 ‘어렸을 때부터 음악관이 확고했다’ 고 말씀하십니다. 학창시절과 지금의 음악관에 대해 변한 부분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이 추상적이지만 확실했던 것 같습니다. 균형 잡힌 연주, 화성과 구조를 충분히 풀어내는 연주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연주자가 작곡가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관객들을 위한 연주는 작곡가의 의도를 넘어 많은 상상력을 자극하도록 해야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텍스트에서 여러가지 해석이 존재하는 것처럼 나만의 해석을 담아 설득력 있게 관객들에게 전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음악을 충분히 소화해야 하며 스스로 설득시킬 수 있어야만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연주마다 작곡가를 진지하게 분석하는 ‘학구파 연주자’라고 표현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는 절대 학구파 연주자가 아닙니다. 구조적인 음악을 좋아하지만 구조적이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그런 종류의 음악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굉장히 본능적으로 연주합니다.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연주는 무엇인가요.
‘설득력 있는 연주’입니다. 연주자가 생각하는 음악의 이상을 청중들에게 필터링 없이 직접적으로 전달되는 연주라고 할까요. 또 하나를 추가하자면 깊이 집중해서 들어도, 다른 일을 하며 흘러나오는 음악으로 들어도 좋은 연주가 최고의 연주라고 생각합니다.

피아니스트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직업의 사람이 되었을까요.
구두장인, 양복장인, 와인메이커 등 뭔가 한가지에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연마하는 직업들이요. 지금은 다시 태어나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을 정도로 피아노를 사랑합니다.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정 연기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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