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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_경기아트센터 사장 이우종

예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최근 경기아트센터가 보여준 변화의 폭은 흥미로웠다. ‘공공성, 예술성, 지속가능성’이라는 기본 철학을 실현시키기 위해 문화계 외부 인사들을 초빙하고, 경기아트센터만의 강력한 무기인 4개의 공연예술단과 함께 올해부터 레퍼토리 시즌제를 도입하여 시즌제 제작 극장으로 발돋움했다. 비록 공들여 준비한 많은 공연이 코로나 19로 무대화하지 못한 아쉬움이 컸으나, 누구보다 발빠르게 수준 높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제작하고 야외극장의 원형좌석제를 도입하는 등 크고 작은 행보를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제 반년간의 침묵을 극복한 뒤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 시작한 경기아트센터. 취임 3년차인 이우종 사장으로부터 경기아트센터가 지닌 의미와 가치,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장호


2년전 경기아트센터에 오신 첫날을 기억하시나요. 이곳에 대한 첫인상이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서류 접수하고 호기심이 생겨 한 번 와보고, 면접 보러도 왔으니 취임되기 전에 2번 온 거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노트르담 드 파리의 ‘대성당들의 시대’가 떠올랐어요. 굉장히 덩치가 크고 각진 콘크리트 건물 같은 느낌이랄까요. ‘각진’이라는 의미가 건축양식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지어진 지 올해로 29년이 되었는데 당시에는 건축 사조가 반영된 첨단 건물이었을 테니까요. 웅장하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장으로서 제한된 계층만 사유할 것만 같은 느낌도 있으셨을까요.
맞아요. 진입하는 경로가 복잡하고 한정적이라 생각했어요. 차를 두고 걸어왔는데 안내가 없어서 한참 두리번거렸죠. 실제로 담장은 없지만 담장이 있는 기분이었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여전히 그런 것 같아요. 접근가능성과 접근편의성을 계속 개선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일단 대문 안으로 들어와봐야 ‘저 커다란 건물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호기심이 생길 테니까요. 백 명 중 한두 명만 그런 생각이 드셔도 저희는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직원들의 수고로움은 증가할 지라도 가급적 많이 오시는 게 좋아요.

2019년에서 2020년 경기아트센터의 가장 큰 관심사는 ‘레퍼토리 시즌제’였습니다. 예술단과 함께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최고의 라인업을 제시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시사한 바 있어요. 어떤 계기로 시즌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셨나요.
감사하게도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임위 위원장님의 주관으로 훌륭한 분들을 모시고 대여섯 차례 라운드 회의를 진행했어요. ‘공공성, 예술성, 지속가능성’ 세 축을 바탕으로 얘기를 나누면서 기존의 라인업을 검토했는데 재미와 감동, 예술성이 부족하지 않았나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죠. 공공성, 문화 나눔이라는 그늘 밑에 예술성의 의무를 숨겨놓고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도민의 문화 향유를 위해 노력했어’ 이러한 자기만족적 상태가 아니었을까. 직원들과 신년계획을 고민할 때도 예술성과 공공성에 대한 리포지셔닝, ‘공공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동시에 예술성을 끌어올려야겠다’ 라는 얘기를 많이 나눴거든요. 이러한 성찰들이 ‘레퍼토리 시즌제’를 탄생시켰습니다. 사실 저희가 지닌 극장 건물이 하드웨어적으로 매력적이지 못하잖아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는 전략적인 강점은 무엇일까 고민했을 때 역시 사람이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경기아트센터에는 경기도극단,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경기도무용단이라는 4개의 우수한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숨어 있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북돋아주는 일, 국내외 순수예술시장 어디에 내놔도 부끄럼 없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을 모은 뒤 작년 한 해 동안 치열하게 준비했습니다.

시즌 프로그램 가운데 기대하는 작품이 많았는데 직접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쉽기만 합니다.
좋은 감독님들 모셔놓고 작품 못 걸어서 약 오르겠다, 이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웃음) 실제 약도 올랐지만 이 또한 운명이겠거니 했어요. 창작자들과 스태프들은 또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많은 난관을 돌파하며 준비했는데 라이브 스트리밍으로만 하니까 아까운 마음이 엄청 컸지요.

모든 단체가 생중계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연극 <브라보, 엄사장>과 경기도무용단의 <춤-ON, 련>은 찬사일색이었죠. 아카이브처럼 쌓아두고 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년에 실험적으로 외부 스태프를 모시고 최신 장비를 사용하여 신년 갈라부터 시작해 라이브 스트리밍을 자체적으로 진행한 바 있었어요. 전부터 영상은 미리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사실 레퍼토리 시즌제 첫 작품에 이미 제작비가 다 들어간 상태였는데 여기서 멈출 것인가, 아니면 여기에 더 얹어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제작할 것이냐에서 후자를 택했습니다. 무용도 마찬가지지만 연극은 배우들의 결단이 필요했어요. 전혀 다른 세계니까요. 100% 만족하진 못해요. 작심하고 방향을 틀었지만 스테이지 연극에서 스테이지 무비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 될까요?

관객 입장에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보이시나 봅니다.
너무 많이 부족해요.(웃음) 처음부터 <브라보, 엄사장>은 시나리오 상태부터 영상화를 염두해두었어요. 동선부터 표정, 분장도 다 달라져야 했죠. 무대에서 공연 중인 상태에서는 카메라 100대를 써도 제대로 된 영상화 작업이 될 수 없어요. 보는 이의 몰입을 위해 시점을 달리해서 별도로 찍어야 해요. 금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영상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연출, 촬영 스태프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무용이나 연극은 잘하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연주 장르는 현장이 주는 그대로의 음감이 아무리 높은 버전의 돌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구현이 될까 의문이에요. 그럼에도 저희가 시험적으로 다 해보려고 합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이 분야에 대한 개선이 계속 진행될 예정인가요.
그렇습니다. 무용이든 연극이든 오케스트라든,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잖아요.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적 무대의 오차원, 배우와 관객의 아우라까지 생각하면 육차원 수준의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아날로그 무대가 주는 감동은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전달이 안되겠지만 또 다른 세상이 융합되고 있어요. 투 트랙으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무대가 주는 순수한 감동을 소중히 생각하지만 코로나 중이든 포스트 코로나든 코로나가 없는 세상이든, 누군가는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서울의 어떤 단체보다 빨리 시작하셨고 이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점점 더 좋은 공연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축적되어 경기아트센터의 노하우화가 되면 훨씬 더 쉬워지겠죠.

그밖에 버스킹 상설무대 G-스테이지, 리부팅 축제, 문화나눔 31 등공연장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노력과 시도를 굉장히 많이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간의 개방성도 공공성의 큰 일환 중 하나니까요. 제 생각에는 최소한의 인근 지역주민과 소통하지 않는 기관은 자기 존재 기반이 없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지나친 자체방역과 자기검열로 용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저희 경기아트센터 한 구석에서 공연 행위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예측가능성의 신호를 주고 싶습니다. 억지로 끌고오는 것은 그 이상 지속하기가 힘들어요. 한 번 오신 분이 두세 번 계속 오실 수 있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흥미있는 기획을 마련해야 하고요.

레퍼토리 시즌제 실시와 더불어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경기아트센터로, 예술단의 명칭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경기도문화의전당이라는 이름이 조금 길기도 하고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왜 영어를 사용하냐, 주민센터 같다는 등 명칭 변경에 반대하는 분들도 계셨는데, 무엇보다 고객자문단이나 실제 우리 공연을 소비해주는 타깃 계층은 대부분 변경하길 원하셨어요. 전속 단체 이름도 경기도립에서 ‘립’이라는 글자를 뺐어요. 경기도립은 설립 주체에 대한 명칭의 느낌이 강하니까 ‘경기도’ 라는 큰 개념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홍보를 하기에 경기도라는 위치가 어렵지는 않은가요.
아무래도 많죠. 다만 경기아트센터 주변에 수원, 용인, 화성 등 인구가 300만 명이에요. 다른 나라는 큰 수도도 300만이 될까 말까인데, 우리에게는 충분한 고객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난 봄 ‘레퍼토리 시즌제’를 위한 기자회견장에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경기아트센터가 레퍼토리 시즌제를 한다는 것은 서울 소재 공립 위주의 공급자와 더불어 우리 또한 문화 공급자로서, 공공예술 공급자로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선포입니다.” 팬덤이 두터운 예술 감독님을 영입했기에 자신감도 있어요. 서울시민이 이곳까지 오기에는 불편하겠지만 우리 작품을 좋아하고 흥행이 인정되면 바이럴을 통해 전파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희 레퍼토리를 가지고 서울 가서 공연하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7월부터 서서히 공연이 시작됩니다. 포스트 코로나 이후로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하반기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현재 상태라면 객석거리두기 30%로 시작하기로 했어요. 여의치 않으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할 수 밖에 없지만 가급적 관객들 냄새라도 맡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행스러운 건 100% 검증된 건 아니지만 공연장이 다른 밀집 시설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인정하시는 것 같아요.

하반기에는 이제 2021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떤 테마가 있고 이에 대해 관객들은 어떤 기대를 하면 좋을까요.
내년에는 레퍼토리를 심화, 안착할 예정입니다. 아직 슬로건이 결정 되지 않았지만 예술단마다 킬러 콘텐츠 하나씩 해보자는 의견들이 있어요. 강약을 조절하면서 큰 대표작들을 잘 배치한 뒤 그 사이를 채울 수 있는 작고 알찬 작품으로 구성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조금씩 수정은 될 거고요.

사장님께서 생각하시는 공공극장의 기능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희는 ‘공공예술극장’입니다. 첫째는 시민들이 문화와 공연예술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문턱을 낮춰야 하는 거고, 둘째는 공급자 주체인 저희 문화예술단과 민간단체들의 공급 생태계를 위해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함께 가야합니다. ‘예술극장’이라고 말씀드린 것은 예술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성은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저희는 시대가 주는 예술의 의무, 시대가 사회에 던지는 방향, 화두, 새로운 예술적 실험, 경기도의 정체성을 계몽주의적이 아닌 예술적으로 승화하는 작품을 만들 의무가 있습니다.

경기아트센터의 수장으로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부끄러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 여전히 발표하거나 무대에 오르는 게 힘듭니다.(웃음) 제가 생각하는 리더십은 뒤에서 백업하고 가능성을 발굴하고 허브들을 잘 연결하는 유능한 커넥터거든요. 한신처럼 드러내며 싸우는 장수가 있고 소하처럼 뒤에서 지지하는 공신이 있는데,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경기아트센터가 어떤 곳이 되었으면 하시나요.
경기도를 대표하는 문화허브이자 기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면접 보러 올 때 이곳을 둘러보며 잠깐 생각한 그림이 있어요. 극장 위로는 별들이 반짝이고, 마당에서는 아이들 뛰어 노는 소리가 들리고, 한 켠의 조그마한 식당에서는 지나가는 노마드 예술인이 밥이라도 먹고 하룻밤 머무르는 곳, 형편이 된다면 노잣돈이라도 챙겨줄 수 있는 그런 장소… <시경>에 ‘솔개는 하늘에서 날고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뛰어논다(鳶飛戾天 魚躍于淵)’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되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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