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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파리로 떠나는 음악여행_첼리스트 이정란

파리로 떠나는 음악여행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연주,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연주 등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오고 있는 첼리스트 이정란이 그녀의 첫 번째 솔로 음반 <랑데부 인 파리> 발매를 기념하며 전국투어 여정에 오른다.
editor 이민정


ⓒTaeuk Kang
첫 솔로 음반 녹음을 앞두고 첼리스트 이정란은 수많은 레퍼토리 중에서도 프랑스 음악, 그 중에서도 생상스와 포레, 드뷔시, 풀랑의 곡을 선택했다. 국내 음악가 중 이정란보다 프랑스의 감성을 더 잘 담아내는 이는 없다고 누군가 얘기했듯 예원학교, 서울 예술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등 엘리트 코스를 차근차근 밟아가던 그녀는 열여덟 살에 돌연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과 피에르 프루니에를 동경하는 마음과 음악을 더 깊이 배우고 싶은 순수한 열정으로, 낯설지만 낭만이 가득한 프랑스 파리에서 그녀는 20대 중반까지 예술가로서 필요한 양분을 듬뿍 흡수하며 음악적인 성장을 경험했다. 그렇기에 뜻 깊은 첫 솔로 음반을 준비하며 프랑스를 떠올린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인 <랑데부 인 파리>는 ‘이정란’이라는 음악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19세기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곡가를 연대 순으로 구성했다. 프랑스 낭만 음악의 정점인 생상스의 첼로 소나타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중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 낭만음악의 정점에서 모더니즘의 문을 연 포레의 화려한 소품곡 ‘나비’, 격변하는 프랑스를 반영하는 듯한 드뷔시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 프랑스의 우아한 재치와 활기를 그려낸 풀랑의 첼로 소나타에 이르기까지 세계대전 발발 이전 문화·경제적으로 융성했던 ‘벨 에포크 시대’와 세계 대전 이후 모더니즘 시대에 탄생한 색채감 넘치는 프랑스 음악으로 가득하다. 리사이틀 준비에 한창인 그녀에게 프랑스 음악에 대한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Taeuk Kang
여전히 조심해야할 시기지만 공연 소식이 조금씩 들리고 있어 다행입니다. 올 상반기에는 어떻게 지내셨는지, 또 8월 굵직한 공연을 앞두고 계신 현재의 마음이 어떤지도 궁금합니다.
지난 3월 공연을 일주일쯤 앞둔 날, 태어나 처음으로 계획되어 있던 공연을 모두 취소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첫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의 의미가 워낙 지대했던 터라 안타까움도 훨씬 컸던 것 같아요. 상반기 내내 모든 공연이 일제히 취소되면서 무기력하고 우울한 시기를 경험했고요. 그러나 동시에, 갑자기 늘어난 자유 시간으로 인해 제 내면을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그동안 갖기 힘들었던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 큰 공연을 준비하며 얼마나 무대가 그리웠는지, 또한 연주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종종 활동내역과 경력만 봐도 그분의 성격이 짐작될 때가 있어요. 이정란 첼리스트의 쉼 없는, 종횡무진한, 왕성한 행보를 보면 ‘굉장한 열정가’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보는 습관이 있었어요. 몇 년 안에 어떤 프로젝트들을 하고 싶은지 늘 리스트를 작성하곤 했죠. 아직도 연필로 하루 일과와 할 일을 다이어리에 매일 작성 하고 하루의 끝에서 그것을 돌아보며 얼만큼 실천에 옮겼는지 체크해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루 단위는 물론 일주일 단위, 분기, 연도별로 계획 세우는 것도 좋아해요. 모든 것을 기록하고 주변을 정돈하며 제 삶을 구상하는 것이 편합니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 있어 그렇진 않고 상당히 즉흥적일 때도 많아요. 사실 악기 연습을 제외한 다른 일들은 하고 싶은 일을 즉흥적으로 그때 그때 하는게 더 즐겁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첼리스트 모리스 장드롱과 피에르 프루니에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파리 유학을 선택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공부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파리’라는 도시 자체가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최고의 교육 기관에서 최고의 선생님을 만나 훌륭한 수업을 받았지만 학교 밖에서 배운 것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공연장과 미술관, 박물관, 카페, 유적지, 거리들, 파리와 파리가 아닌 다른 지방 도시들, 프랑스인의 일상, 그들의 언어, 역사, 문화, 가치관, 삶 자체가 모두 새롭고 제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시절 모든 것이 영감의 원천이자 동경의 대상,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

솔로음반에는 파리에서 경험한 모든 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생상스, 포레, 드뷔시, 풀랑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프랑스는 벨 에포크부터 세계대전을 겪으며 격동의 시기를 보냈 습니다. 생상스와 포레는 제 1차 세계대전 이전의 아름답고 화려한 사교의 중심지였던 파리의 모습을 가장 잘 그린 작곡가들이고, 드뷔시는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며 변모하는 파리의 아방가르드함을 가장 잘 표현해냈으며, 풀랑은 2차 대전에서 스스로 레지스탕스로 활동할 만큼 애국적 색채가 강한 작곡가로, 누구보다도 프랑스적 민족성과 서정성, 고유의 위트를 잘 표현한 작곡가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에서 변모한 파리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작곡가가 저마다 각자의 색깔로 그린 것이 흥미로웠고 <랑데부인 파리>라는 제목에서처럼, 그들이 살았던 다양한 시절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화려한 기교를 지닌 연주자는 많지만 이정란의 연주는 탄탄한 기초 위에 지어진 살고 싶은 집 같다고 할까요. 때로는 담백하면서 때로는 감성의 끝을 보여주곤 하는데 지금까지 숱하게 들은 찬사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무엇이었나요.
과찬이십니다! 가장 좋은 피드백은 ‘같이 울었다’는 말씀이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통해 누군가와 정서적인 교감을 나누는 일은 정말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한 마력이 있어요. 제가 어떤 음악을 접하고 눈물을 흘렸다면 제가 그 음악을 연주할 때 듣는 이에게 같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요. 그러면 저는 ‘전달자’로서의 소명을 다한 것이니까요. 제 연주를 듣고 누군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그 어떤 찬사보다도 제가 연주자로 살아갈 큰 동력이 됩니다.

통영에 대한 짧은 글을 쓰셨을 만큼 통영이란 도시와 인연이 있으십니다. 통영에서 녹음을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통영의 국제음악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음향이 훌륭한 홀입니다. 음반에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운 어쿠스틱을 담고 싶었고 제가 경험해 본 홀 중 가장 음향이 뛰어난 통영의 홀이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마침 작업을 함께 한 톤마이스터 최진 감독님의 홈그라운드 같은 곳이기도 했고요. 3일 간의 녹음은 생각보다 타이트한 스케줄에 첫경험이 가져다 준 심리적 압박감이 있었지만, 쉬는 시간마다 대기실에서 보이던 바다의 멋진 경관으로 인해 마음의 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열두 살에 서울시향과 협연을 할 만큼 어릴 때부터 남다른 두각을 보였습니다. 학창시절 첼로를 연주하면서 당시에 꿈꿨던 음악가로서의 모습과 방향은 어땠나요. 현재의 모습과 닮아 있는지 궁금하네요.
그 때는 막연히 어떤 음악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제일 잘하는 대가들을 보며 저렇게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단 꿈을 꾸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도 그 꿈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연주 잘하는 대가들, 특히 돌아가신 분들의 연주 영상을 보며 여전히 그들을 동경하고 있거든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렸을 때 제가 누군가를 모델로 삼고 꿈을 키워왔다면 이제는 누군가에게 저도 영감을 줄 수 있는 롤모델이 되고 싶단 꿈이 추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연주를,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를, 2018-19년에는 트리오 제이드로 베토벤 트리오 전곡 연주를 마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도전이 첼리스트 이정란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이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적 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주요 작곡가들의 전곡 연주만큼 연주자에게 발전을 가져다 주는 프로젝트는 없는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뿐만이 아니라 음악가로, 또 예술가로 성장하는데 지평을 넓혀주는 최고의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계속해서 전곡 연주를 이어가고, 그렇게 주요 레퍼토리를 다 연주하고 나면 다시 바흐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에요. 그 즈음 달라질 제 음악도 궁금합니다.

솔리스트로도 굉장히 연주할 일이 많으셨을 텐데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피아니스트 이효주와 함께 ‘트리오 제이드’를 결성하였습니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같은 해에 각자의 악기로 입학해 유학을 시작한 저희는 원래 마음이 잘 맞는 선후배 사이였는데, 실내악을 보다 깊이 배우고 싶은 열망으로 팀을 조성해 실내악 전문사과정에 입학 시험을 다시 치루게 되었습니다. 어느덧 햇수로 15년이 되었죠. 박지윤, 이효주 연주자와 여전히 음악을 같이 할 수 있어 감사하고, 지금도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중요한 음악적 동료들이자 친구들입니다.

리사이틀 공연에 함께 하는 성신여대 교수이자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통영 녹음을 함께 작업했죠. 어떤 인연이 있는지, 여러차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일리야 라쉬코프스키는 어떤 음악친구인지 궁금합니다.
파리에 오래 살아 일리야와 저는 프랑스어로 대화하기도 하고 워낙 공통 친구들이 많이 있어서 일하기 무척 편한 친구입니다. 제이드의 박지윤 바이올리니스트가 일리야와 작업을 먼저 시작한 이후 저에게 추천을 해줬고 그 이후부터 서로의 연주회도 다니며 음악적 취향을 배워나가며 우정을 이어오게 됐습니다. 리허설을할 때 굳이 말로 요구하지 않아도 한발 앞서 제 생각을 미리 읽고 있는 듯해 항상 든든하고 편안합니다.

코로나19로 리사이틀이 늦어졌습니다. 3개의 연이은 공연과 트리오 제이드 공연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공연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까요.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졌습니다. 저 역시 파리가 너무 그립고 눈에 도시가 아른거릴 정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제 음악회에 오셔서 파리의 정서를 실컷 느끼시고 상상 속 여행을 다녀오신다고 생각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연주자인 동시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하십니다. ‘이정란 선생님’은 어떤 분인가요.
열정적인 선생님이고 싶어요. 학생들 내면에 숨겨진 가능성을 다 끄집어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빛을 발하는 날이 올 때까지 서포트하고 용기를 주는 선생님이고 싶습니다. 가끔 열정의 온도가 지나쳐 학생들이 부담스러워하거나 조금 무서워할 때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학생들이 훗날 어린 시절을 돌이켜봤을 때 저와 함께한 시간들이 그들이 스스로 자립하며 성장하는데 꼭 필요한 자양분 같은 역할을 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할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앞으로 어떤 연주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단 한 줄의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연주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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