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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도덕적 버퍼링’에 대한 질문_모노극 <그라운디드>

‘도덕적 버퍼링’에 대한 질문

지난 5 14일에서 24일까지 우란 2경 무대에 올랐던 모노극 <그라운디드>.
write 김일송


 

 

 

원제는 Grounded’연극은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비행이 금지된’ 여성 전투기 조종사를 주인공으로 한다전투기 조종사로서 그의 자부심은 문자 그대로 하늘을 찌를 만큼 높다이는 첫 대사부터 드러난다. “절대 벗고 싶지 않았어. (…) 내 힘으로 얻은 거야이게 나라구피와 땀머리 그리고 배짱으로 만들어진 이게 내 모습이지단순히 제복이 아니야이게 나야.” 비행용 점프 수트는 그에게 정체성 그 자체다더욱이 피땀 흘려 쟁취한 일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임신에 대해 그가 원하지 않는 퇴출이자 하늘로부터의 낙태라 표현하는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렇게 임신과 출산에 이어 육아의 길을 걷던 그는 몇 년이 지나 복직을 신청한다복직 신고를 하는 그에게 사령관은 그가 놓았던 F-16 ‘타이거의 조종간 대신 무인정찰기 드론 리모트 컨트롤을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다그로선 조종사로서 꿈이 좌초되는’ 순간이었을 지도 모르겠다작전을 수행하는 지역은 중동 사막의 베이스캠프가 아닌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크리치 공군기지게다가 작은 트레일러 안이다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사랑하는 남편과 딸을 매일 볼 수 있는 사실이 조금 위안이 되었을까아마도 그보다는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더 위로되었을지 모르겠다.

그날부터 그는 파란 하늘 대신 회색 스크린으로 뒤덮인 현실을 마주한다회색블루핑크는 이 연극을 관통하는 세 가지 색이다연극 <그라운디드>에서는 회색이 47차례블루가 14차례핑크가 9차례 언급된다마치 블루는 동경회색은 죽음핑크는 생명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발령 초기그는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창문 하나 없이 꽉 막힌 회색빛 트레일러하루 12시간씩 바라보아야 하는 회색빛 모니터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는 그 회색에 익숙해진다그리고 문제가 발생한다.

그가 조종하는 기종은 죽음의 신이라 불리는 MQ9-리퍼조종석만 없을 뿐 길이 11m, 날개폭 20m, 높이 3.6m의 보통의 비행기와 똑같다드론을 조종하며 그는 마치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이라도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이전에 직접 출격을 해 폭탄을 투하했을 때보다 지구 반대편에 앉아 버튼만 누르는 지금죄책감도 덜한 듯하다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실제로 드론 조종사들이 전투기 조종사들보다 더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린다는 점이다그런 점에서 연극 <그라운디드>는 현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다작가 조지 브랜트도 한 인터뷰에서 집필을 하며 이와 관련한 자료를 다수 찾아보았다고 밝힌 바 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 한해 1년간 미국 공군이 양성한 무인 항공기 조종사는 180명인데 반해동기간 일을 그만둔 무인 항공기 조종사는 240명이었으며그 주원인이 PTSD라고 한다신체적 위험은 없지만그들은 더 큰 정신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프랑스 철학자 그레구아르 샤마유는 이를 도덕적 버퍼링이라 명명했다자신은 상대를 볼 수 있지만상대는 자신을 볼 수 없는 지각상의 비상호성그리고 살상이 임무인 일과와 가족과의 평온한 일상 사이의 경계 없는 반복이 도덕적 버퍼링이 발생시킨다는 논리다연극 <그라운디드>는 이와 유사한 증상을 겪는 주인공을 통해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가장 안전한그래서 더 무자비해질 수 있는 드론의 사용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살인에 둔감해지며 인간의 존엄성까지 부정하게 되는 드론 조종사들의 윤리의식 붕괴는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착상 당시 작가는 주인공으로 남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나중에 여성으로 바꿨다고 한다국내 공연에서는 차지연이 원캐스트로 전 회차를 소화했다그동안 (해외에서이 연극에 출연했던 이들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적역이 아니었을까 싶다그는 혼자 90분 동안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무대 위에서 자존감 강한 여인에서 임신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나중에 정신 착란으로 PTSD를 겪는 여성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또한 스텔스기를 연상시키는 피라미드 구조의 무대 역시 인상적이다이 무대는 결정적 순간에 딱 한 번 열리는데이 연극의 화룡점정을 찍는 순간이다.

*본문 속 굵은 글씨는 실제 ‘grounded’의 다양한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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