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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강물처럼 그렇게_배우 에녹

강물처럼 그렇게

배우 에녹과 퇴근 시간에 만나 공연이 시작할 즈음에 헤어졌다.
부지런히 관객을 설득시키기 위해, 망망대해에서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오늘도 그는 전쟁터의 최전선이라고 빗댄 대학로의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
.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장호 장소 JCC아트센터


 

제 이미지가 노멀(Normal), 보통이잖아요.”라고 말하지만 대학로에 들락거리는 이들은 배우 에녹이 TV화면조정시간의 색상처럼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지녔는지 알고 있다. 뮤지컬 <너를 위한 글자>의 한없이 순수하고 젠틀한 도미니크에서 <카르멘> 속 난폭하고 비열한 가르시아나 <스칼렛 핌퍼넬>의 탐욕스러운 쇼블랑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는 <알타보이즈>의 루크로 데뷔한 이래, 13년을 꾸준히 뮤지컬과 연극 무대에 섰다. ‘새로워서’ ‘행복할 것 같아서’ ‘감이 좋아서’ ‘두근거려서작품을 선택하고 그 작품에 스스로를 던진 것뿐인데, ‘뮤지컬계의 트랜스포머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는 ‘마음이 닿은 순간’이라는 테마로 단독콘서트를 열고, 새해에는 음악감독이자 피아니스트 이범재와 함께 디지털 싱글 ‘별 꽃’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력서를 빼곡하게 채운 프로필(지금도 뮤지컬 <샤이닝>의 1인 2역과 <프리스트>를 병행하고 있다)만 봐도 ‘도대체 언제 쉬지?’ 의아한데, 글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건 그에게 단비 같은 ‘쉼’이었다고. 배우 에녹에서 사람 에녹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몇 년 차 배우인지 시시때때로 헤아려 보는 편인가요. 13년 전 어떻게 데뷔하게 되었나요.
벌써 그렇게 됐다고요? 사실 저는 어느 선교단체에 소속되어 있었어요. 대학 때부터 음악 활동하고 춤도 배웠었는데 이런 저를 좋게 봐준 선배가 제게 딱 맞는 공연이 있다고 지원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작품이 저의 데뷔작 <알타보이즈>에요. 선교적인 내용, MTV에서 나올법한 음악, 춤을 입힌 콘서트 스타일 등 제가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죠.

 
그 작품이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오게 된 거군요.
<알타보이즈>는 정말 우연치 않게 된 거고요. 제가 무슨 실력이 있다고 계속 작품을 했겠어요? 공연에 대한 목마름과 먹고 사는 문제 사이에서 고민했죠. 당장 뭔가를 하기에도 부담스러운 나이라 오디션만 줄기차게 보러 다녔고, 보는 족족 다 떨어졌어요. 안 되겠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극단 스태프 일을 하면서 단역을 맡게 됐어요. 그 극단에 한국종합예술학교 출신 분들이 많았는데 마치 연수받다시피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힘든 생활을 오래했을 텐데 인생에 도움 받은 이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을 해야 하나 하루에도 몇 번씩 포기하고 싶어질 만큼 버티기가 어려웠어요. 차비라도 있는 날에는 서점 가서 하루종일 책을 읽은 것 같아요. 연극책, 뮤지컬책, 음악책… 감사한 건 대학로의 선배들 모두 손만 뻗으면 모두 제 일처럼 도와주세요. ‘이 어려운 길을 너도 갈 거냐?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한 도와줄게.’ 금전적인 건 모두 어려우니까 레슨을 해주거나 책을 빌려주시거나. 저 역시 조금씩 클 수 있었던 건 연출님과 선배님들에게 보고 배운 덕분이에요. 돌이켜 보면 이렇게 절박했던 시기가 결과적으로 제게 큰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지치는 건 똑같은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도록, 쉽게 포기하지 않게 하는 힘이 되고 있으니까요.

이거 아니면 안돼! 하는 게 있었나 봐요.
데뷔 공연 끝나고 정말 뮤지컬을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때가 서른 살이었으니까요. 청춘의 모든 에너지가 선교단체에 있었는데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고, 다른 회사에 들어갈 자신도 없고, 돈은 벌어야 하고…

그 이후의 <알타보이즈>는 왜 안하나요.
안 시켜주던데요?(웃음) 그때는 레게머리도 하고 춤도 엄청 추고… 아무래도 지금은 나이가 좀 있으니까?

에녹 배우의 프로필을 보면 작품 취향을 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합니다.
한때는 바람둥이, 한때는 악인, 한때는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연약한 사람… 처음에는 다양한 곳에서 찾아주니까 좋다고 생각했는데 종종 기획자님이나 연출님이 보셨을 때 한 가지로 규정하기 어려워하시더라고요. 단점이 된 것 같아요. (두루두루 잘 어울리니까 오히려 장점 아닌가요?) 그죠? 그런데 그건 제 생각이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요즘 저는 한 가지 이미지에 고착되는 것을 걱정하는 후배들에게 그 이미지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보라고 말해줘요. 그렇게 한 뒤 다른 역할을 하는 건 얼마든지 좋다고요. 물론 이 역할 저 역할 떠돌았던 게 장점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가령 연극 <왕복서간>의 경우 끝과 끝을 오가는 캐릭터였는데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겨서 순간 순간의 변화가 두렵지 않더라고요.


작품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을 때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요.
결국 마음이 움직이는 작품으로 가더라고요. 이 작품을 하면서 즐거울 것인가, 내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것인가,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는 것인가.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돈이 빠져 있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어요. 제가 소극장 작품들을 더 많이 하는 이유는 다소 거칠지만 역할에 대한 도전이 더 크기 때문이에요. 기존에 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만나면 대본만으로도 두근거리고 갑자기 새로운 곳으로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요.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은 모두 대형 뮤지컬에 서기를 갈망하는 줄 알았는데 제 편견이더라고요.
저도 처음에 똑같은 연필심이라 생각했는데 경험해보니까 다르더라고요. 대학로에서는 자세가 달라지는 것, 눈동자를 굴리는 것까지 누군가 보더라고요. 한 순간의 긴장도가 높다고 할까요. 작은 뮤지컬을 보실 때 관객의 애티튜드도 다른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매력이 있지만 대학로 공연은 스스로 어디까지 디테일을 가져갈 수 있을까 날 선 자리가 흥미로워요. 무대에 올라가 있으면 몹시 떨리는데 내려오면 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섬세함의 끝판왕은 연극 무대 아닌가요.
뮤지컬은 음악 자체도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한편으론 선율 뒤에 살짝 숨을 수가 있잖아요. 연극은 말 하나로 무대를 끌고 밀어부치니까 가끔은 무대 위에서 손발이 저릿하기도 해요. ‘연기 장인선배들의 공연을 보면 제가 부족한 부분들이 마구 보이면서 그분들이 한없이 부러울 때도 있죠. 그런데 뮤지컬은 음악이 기반이라 목소리를 계속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연기할 때 절제해야 하는 경우가 분명 있어요. 음악을 위해서 아낀다고 해야 하나요. 그런데 연극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다 터뜨릴 수 있으니까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슬럼프는 없었나요. 어떻게 극복하는 편인가요.
배우로서 나이가 마흔 정도 되니까 뭐랄까,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전 정말 실력을 기를 생각에 앞만 보고 달렸거든요. 어느 순간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잘 온 건지, 앞으로 더 갈 수 있을지, 내가 해온 건 도대체 뭐고 이뤄놓은 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체력과 정신은 다른 분야라 생각했는데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정신적으로도 한계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일을 줄여야 하나, 아니면 더 욕심을 부려야 하나 이런 생각들또 한편으로 공연을 10년 넘게 했지만 기라성 같은 분들에 비하면 전 작은 피라미에 불과하잖아요. 그런데도 어느 순간 공연에 대해 꽤 많이 안다고 판단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어요. 작업하는 도중에 비슷하거나 부족한 부분이 눈에 띄면 견디지를 못하는 거에요. 난 다 아는 건데 겪어본 건데 난 더 나아가고 싶은데 하면서요. 한 동안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만들이 제 안에 쌓였었죠. 다행히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너나 잘해!’

 
불안감은 없나요.
대학로는 참 젊어요. 연기하는 순간에도 혹시 지금 내가 하는 게 올드해 보이면 어쩌지, 기성세대 같으면 어쩌지, 이런 불안이 있어요.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글도 써보고 새로운 걸 배우려고 이것저것 시도하고 있어요. 콘서트와 앨범이 그런 작업이었죠.

 
이 또한 스스로를 드러내고 소비하는 작업이잖아요. 쉬고 싶지는 않은가요
저한테 그게 쉼이에요. 캐릭터에 감정이입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작업도 재미있지만 어쨌든 다른 삶이잖아요. 내 것을 가만이 들여다 보는 시간이 없었어요. 지난 해 나를 한번 끄집어내서 앞으로 십 년 더 갈 수 있는 힘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죠. 큰 도움이 됐어요

 
들여다 보니 배우 에녹과 인간 에녹은 다르던가요.
다르진 않던데요?(웃음) 제 감정들을 그동안 스스로 무시하고 살아왔더라고요. 한동안 도서관에 가서 온종일 글을 썼어요. 어느 날은 욕만 잔뜩 쓰고 어느 날은 옛 기억들을 쓰고그냥 마구 썼어요. 자존감이 낮아진 게 아니라 아니라 저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졌다고 할까요, 겸허해졌다고 할까요. 스스로 솔직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배우는 끊임없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직업이에요. 견뎌내야할 스트레스가 많은 것도 사실인데 스트레스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자요. 잠이 안 와도 억지로라도 자려고 애써요. 아니면 걸어요. 무작정 동네를 구석구석 걸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오늘도 공연 연습을 하고 뛰어오셨습니다. <샤이닝> <프리스트> 둘 다 너무 어두운 작품인 듯합니다. <샤이닝>의 경우는 1 2역이죠?
한 작품 안에서 1 2역은 종종 해왔는데 이 작품에서는 어느 날은 프로이트를 하고 어느 날은 쉐도우를 하니 헷갈릴 때가 있어요.(웃음) 대학 때 심리학 이론 수업을 듣잖아요. 그때도 칼 융이라는 인물이 참 흥미로웠어요. 더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도 프로이트가 아니라 융이었거든요. 처음에 이 작품 제안이 왔을 때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죠. “프로이트와 칼 융의 이야기야.” “할래요. 저 융이죠?” “아니 프로이트.”(웃음) 제가 생각했던 촌철살인이 오가는 냉정한 극은 아니었지만 융과 프로이트에 대해 공부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합니다. <프리스트>의 경우에는 작품보다 오히려 주민진 작가이자 연출을 이해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신선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들여다 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요. 겉으로 봐서 재미있고, 깊이 보면 더 재미있는 작품이에요.

 
이제는 대학로에서 선배 쪽에 가까운 배우입니다.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이고 싶은가요.

한 공연을 책임질 수 있는 중심이 되는 배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무대 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면 조용하지만 분위기를 치열하게 만들어가는 분들이 계세요. 존재만으로 무게감이 느껴지는 분. 저도 그렇게 되려고 노력합니다.

배우로서의 책임감은 언제 생기나요.
관객분들이 늘 일깨워줘요. 예를 들어 작품을 보고 돌아가신 어머님이 떠올랐다는 편지를 받으면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아마 모든 배우들이 그럴 거에요. 피드백을 받을 때나 고생고생 하는 스태프들을 볼 때 무한한 책임을 느끼죠. 내가 원하는 자유로움이 보장되는 곳이 무대지만 마음가짐조차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나이드니까 책임지는 부분들이 더 많이 보이네요.

에녹에게 대학로는 어떤 곳인가요.

여긴 야전생활을 하는 곳, 그 중에서도 최전선입니다. 창작하는 일이 정말 힘들면서 정말 놓을 수 없는 곳. 새로운 것들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곳. 그것들과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곳이 바로 여기 대학로에요. 그게 제게는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ATTENTION, PLEASE
뮤지컬 <프리스트>
기간 2020년 3월 24일-2020년 6월 7일
시간 20:00(화·목·금)|16:00 20:00(수)|14:00 18:00(토·일)|
월요일 공연 없음
장소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 스콘 2관
출연 에녹, 김대현, 기세중, 강찬, 백기범, 이지숙, 김국희,
최호승, 박건
가격 R석 6만원|S석 5만원
문의 02-0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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