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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정서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_한국 뮤지컬의 해외 진출

정서를 넘어서, 국경을 넘어서

 

한국 뮤지컬에서도 <기생충>의 기적은 일어날 수 있을까.
editor 김은아


 지난 2영화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야말로 기적을 일으켰다오스카 6개 부문 노미네이트무려 4개 부문 수상특히 비영어권 영화로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수상한 것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수상한 결과는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처음이다이렇듯 최초라는 수식어를 몇 번이나 반복하게 만드는 놀라운 뉴스는 영화계를 넘어 우리 사회에 즐거운 충격을 안겨주었다무엇보다 우리를 흥분하게 만든 것은 가장 한국적인 소재가 세계 관객에게 통했다는 점이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라는 거장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말을 인용해 감동을 안긴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반지하대만 카스텔라짜파구리 등 과연 외국 관객이 이 코드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너무도 한국적인 소재에 전세계가 반응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뮤지컬의 경우는 어떨까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큰 영화 시장인 할리우드를 제패했다면한국 뮤지컬 또한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 브로드웨이 혹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승산이 있지 않을까특히 최근 몇 년간은 해외 시장으로의 한국 뮤지컬 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덕분에 뮤지컬 한류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자리잡았을 정도다정말뮤지컬에서도 <기생충같은 성과를 기대해 봐도 되는 걸까.

 

한국 뮤지컬로는 중국에서 첫 라이선스 공연에 성공한 뮤지컬 <김종욱 찾기>

앞으로의 가능성을 따져보기 위해서는 현 위치를 살펴보는 것이 우선일 테다한국 뮤지컬이 해외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특히 아시아그중에서도 중국 시장에서 그렇다중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한국 뮤지컬로는 2001년 극단 학전의 <지하철 1호선>을 꼽을 수 있다그러나 한국 배우와 창작진이 현지를 찾아 짧게는 1~2,길게는 열흘 안팎의 공연을 하는 투어 공연의 경우일회적인 이벤트에 가깝기 때문에 시장 진출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그런 점에서 2013년 공연된 <김종욱 찾기>가 중국에 진출한 첫 한국 뮤지컬이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작품은 <아주연창>(寻找初恋)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뮤지컬 최초로 중국에서 라이선스 공연으로 개막했다.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상하이광저우베이징칭다오까지 7개 도시에서 256일간 공연되었는데이는 중국에서 공연된 한국 뮤지컬 중 가장 장기간 공연된 기록이기도 하다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9 12월 발간한 <중국 공연시장 진출 A to Z> 사례집에는 이러한 한국 뮤지컬의 중국 진출 성과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다이에 따르면 라이선스 공연 건수는 2013년 이후 해마다 증가해지난해에는 총 11편의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19편의 작품이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그중에서도 뮤지컬<마이 버킷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는 대부분 작품이 베이징과 상하이에서만 공연되었던 것과 달리 각각 20개와 11개 도시 극장에서 개막하며 중국 내부 시장을 확대하는 의미있는 역할을 해냈다.

그렇다면 한국 뮤지컬이 이렇듯 중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지난해 공연계 관계자들이 모여 한국 뮤지컬의 중국 진출 현황을 공유했던 한국 뮤지컬해외진출을 말하다’ 포럼에서 나온 의견을 들여다 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다관계자들이 꼽는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정서뮤지컬 제작사 ㈜라이브의 강병원 대표는 지리적으로 가까운 데다가 공유하는 정서가 있기 때문에 로컬라이징 과정을 거치면 충분히 중국 관객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이 많다고 말한다한국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은 뮤지컬이 중국에서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러한 배경 덕분이다여기에 시간이 흐르면서 중국 공연계 관계자들과의 파트너십이 공고해지고현지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한국 뮤지컬은 더욱 큰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지난해 8월 오디컴퍼니가 중국 알리바바 그룹에서 운영하는 다마이의 마이라이브상하이 어메이즈랜드 프로덕션과 체결한 MOU 협약은 고무적인 성과다협약에 따르면 오디컴퍼니는 <지킬 앤 하이드>를 레플리카 프로덕션 형태로 중국 무대에 올리고그간 한국에서 제작해온 다른 작품 또한 매년 레플리카 형태로 공연하게 된다레플리카 프로덕션이란 오리지널 창작진이 전적으로 참여해 원작 공연과 동일하게 구현하는 빅 라이선스’ 형태의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중국에서 공연되는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 오디컴퍼니가 브로드웨이 공연의 대본과 음악만을 가져와 새롭게 창작한 버전으로원작의 역수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성공 사례를 지켜본 제작자와 프로듀서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중국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고 있다이제는 작품의 기획·개발 단계에서부터 글로벌화를 염두에 두고쇼케이스부터 해외 관계자들을 초청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기획 개발 단계에서 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공연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라이선스 수출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는 것이 공연관계자들의 목소리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중국 공연 포스터 ⓒ오디컴퍼니

감정의 연결고리만이 열쇠

그렇다면 세계에서 가장 큰 공연 시장인 영미권으로의 진출은 어느 정도의 가능성이 있을까결론부터 이야기하면작품을 완성품 그대로 무대에 올리려는 현재의 방식으로는 영미권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아이러니하게도 그 중심에는 중국 시장 진출에서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했던 정서의 문제가 있다경희대 경영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지혜원 교수는 브로드웨이 관객들은 역사와 판타지 등 현실과 동떨어진 소재보다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소재를 선호한다고 말한다최근 들어 국내 무대에 오르는 창작뮤지컬들이 경종테레즈 라캥마리 퀴리니진스키 등 대부분 역사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관객에게 호응을 얻는 소재부터 큰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물론 미국에서도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큰 사랑을 받기도 한다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다룬 <해밀턴>이 그 예다. 2015년 초연부터 연일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여전히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지만결정적으로 작품은 역사 속 인물을 지금의 시선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점이 한국의 시대극 뮤지컬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주요 배역을 히스패닉과 흑인으로 캐스팅하는 등 파격적인 시도를 한 것 또한 이런 시도의 일환이다.

보다 보편적인 정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정서 차이는 여전히 발생한다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장을 역임한 이다엔터테인먼트의 손상원 대표의 경험은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그는 협회장을 맡을 당시 웨스트엔드 진출을 염두에 두고 런던 공연계에서 활동하는 파트너와 손을 잡았다그와 함께 30여 편에 달하는 한국 작품의 대본을 검토한 뒤 현지에서 성공 가능성이 있을 법한 작품 한 편을 선정했다이를 현지 작가배우들과 함께 번역한 뒤 프로듀서들을 초청해 독회를 열었지만 좋은 결과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2030 세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었는데도 결국 성공하지 못했습니다사랑이라는 소재는 만국의 공통 언어라고 생각했는데작품에 대한 감상을 분석해 보니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굉장한 인식 차이를 보였죠외국 뮤지컬을 한국 무대에 올릴 때 한국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각색하는 것처럼반대의 경우에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 관객들의 문화와 생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손상원)

 

 

애틀랜타에서 성공적인 첫 공연을 마친 뮤지컬 <Maybe Happyending(한국 원작 ‘어쩌면 해피엔딩’)>

해외 진출의 확실한 해피엔딩을 위해서

그렇지만 우리의 것으로도 승부를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다. 2017년과 2018년 미국 뮤지컬계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리처드 로저스 상을 수상한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과 <KPOP>이다한국에서 첫 발을 떼었거나한국의 콘텐츠를 소재로 다룬 두 작품은 정서의 벽을 넘어 미국 관객의 마음에 다가서는 법을 각자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지난 2월 애틀란타의 얼라이언스 시어터에서 약 한 달간 공연을 마쳤다. ‘&’ 콤비로 불리는 박천휴 작사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호흡을 맞춰 창작한 이 작품은 2016년 7월 뉴욕에서의 첫 리딩 작업을 시작으로 3년간의 개발과정을 거친 작품은 현지 정서와 문화를 반영해 한국 공연과는 다른 설정과 장치를 부여하며 <메이비 해피엔딩>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그 결과 작품의 성공은 어쩌면이 아니라 확실하다는 언론의 호평을 받으며 다음 단계를 향한 긍정적인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미국에서는 지역 극장에서의 공연을 통해 관객공연제작자들의 반응을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수정·보완 과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공연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미국 진출에서의 의미 있는 첫 발을 떼었다고 말할 수 있는 셈이다작품은 가까운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수명이 다해 주인에게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작품의 배경으로 제주도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쓰임을 다한 존재로서 느끼는 슬픔이라는 감성은 동서양을 넘어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정서라는 것그리고 두 창작자가 한국이 아닌 미국을 본거지로 활동해 온 만큼 현지의 정서와도 이질감 없이 어우러질 수 있었다는 것이 평론가들의 분석이다.

반면 2017년 가을오프 브로드웨이에서 한 달 반 가량 무대에 오른 뮤지컬 <KPOP>은 본격적으로 한국적인 소재를 주제로 다룬다한국 출신의 제이슨 김과 헬렌 박이 극작과 작곡을 맡은 이 작품은 한국의 케이팝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성형과 오랜 트레이닝 기간연예계의 부정적인 문화 등 한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아이돌 양성 시스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KPOP>은 연일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연장공연을 이어가며 투자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 덕분에 브로드웨이 개막을 앞두고 준비에 한창이다지혜원 교수는 두 작품이 모두 동시대적이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소재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분석한다. “영미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국경을 넘어 보편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소재를 발굴할 필요가 있습니다기획 단계에서부터 현지 파트너와 교류하며 정서의 공감대를 찾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봅이다.”(지혜원)

한국 뮤지컬이 영미권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관객들의 정서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다른 제작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다프로덕션이 꾸려질 때마다 유한회사를 설립해 공연을 제작하는 시스템이나프로듀서작가배우 등 각 직업을 대변하는 조합이 존재하는 등 환경의 차이에 대한 실무적인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브로드웨이 진입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국내 관객만으로 성장에 한계가 있는 뮤지컬 시장에서 해외 시장으로의 라이선스 수출은 꾸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활로인 것은 분명하다뮤지컬 제작사들이 끊임 없이 해외 시장궁극적으로는 가장 규모가 큰 영미권 시장으로 나아가겠다는 포부를 안고 있는 이유다그러나 정작 어떤 방식으로 문을 두드려야 할지 막막함을 느끼는 이들이 많은 상황에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준비 중인 브로드웨이 로드’ 사업은 제작자뿐 아니라 뮤지컬에서의 <기생충>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기대감을 불러 일으킨다기성 뮤지컬 제작자들을 대상으로 브로드웨이 현지에서 비즈니스 구조와 공연 제작 사례관객 분석 등 실무적인 교육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참가자들이 현지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전문가들 사이의 네트워킹과 실무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만큼한국 뮤지컬이 영미권 시장으로의 진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손상원 대표는 웨스트엔드에서 만났던 현지 공연 관계자들이 그에게 건넨 말을 떠올린다. “한국 뮤지컬계의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내는 참신함폭발적인 창작력은 어디에도 뒤쳐지지 않는다이러한 창작진들의 저력이 실무적인 이해현지의 파트너십이라는 자산과 만나 꾸준히 신뢰와 노력을 쌓아간다면 언젠가 한국 뮤지컬도 세계 관객들 앞에서 을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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