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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앙상블을 위한 마이크_tvN <더블캐스팅> 이민정 PD

 

앙상블을 위한 마이크

tvN의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은 주연 배우들 뒤에서 한 걸음 물러나있었던 앙상블 배우들만을 위한 조명을 비춘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김선진


오디션장에 긴장된 얼굴로 들어서는 한 배우. 지금까지의 경력에서 딱히 내세울 만한 작품이나 캐릭터가 없는 그이기에 심사위원들의 얼굴은 심드렁하기만 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가 진심을 담아 노래를 시작하자 오디션장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고, 한 곡 안에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펼친 그는 당당히 주요 배역을 거머쥔다. 관객들이 뮤지컬 오디션장에서 종종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풍경이지만, 앙상블 배우들에게는 어디까지나 판타지와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배역이 아닌 앙상블 오디션에서는 전곡을 부르는 것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보통 이들에게 허용되는 시간은 20초. 이 허망한(?) 오디션 끝에 무대에 서더라도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기보다는 하나의 화음을 완성하는 일원으로 입을 맞추는 것이 대부분이다. tvN의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 <더블 캐스팅>은 이렇듯 ‘군(群)’으로만 존재해왔던 앙상블 배우 한 명 한 명을 오롯이 조명하는 자리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만을 위한 마이크를 얻은 배우들의 절박한 노래는 매주 녹화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곤 한다는 후문. 2월 22일 예정된 첫 방송을 일주일 여 앞두고,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을 맡은 이민정 PD를 만났다.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소재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 배경부터 묻고 싶다. 뮤지컬 마니아인가.
소위 말하는 ‘뮤지컬 덕후’는 아니다. tvN에 오기 전 KBS에서 10년 간 PD로 일했는데, <불후의 명곡> 같은 프로그램에 뮤지컬배우들이 종종 출연하곤 했다. 그들에게서 남다른 에너지를 느꼈다. 방송인들에 비하면 덜 다듬어졌을지는 몰라도,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단지 노래를 잘 한다는 것을 넘어서 객석을 단숨에 휘어잡는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뮤지컬배우들과 본격적으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

그중에서도 앙상블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방향은 어떻게 정해진 건가.
뮤지컬이라는 다소 마니아틱한 소재를 어떻게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했다. 뮤지컬이라는 키워드만 정해놓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정해놓지 않은 상태에서 업계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많이 만나 대화를 했다. 재미있는 것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순간 꼭 앙상블 이야기가 나왔다. ‘짠하다’고 배우, 스태프 할 것 없이 입을 모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앙상블 배우들을 만나 고충을 비롯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마음이 아픈 순간이 많았다.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응원을 전하고 싶었다. 내부 보고에서도 오디션이라는 형식보다 앙상블 배우들이 수면 위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지해주셨다.

 

 

 

앙상블 배우들의 어떤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였는지 궁금하다.
“힘들어도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것이 모든 배우들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다. 공연이 없을 때나 연습 기간에는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택배 상하차 같은 일용직 아르바이트까지 다른 일을 하는 배우들이 많았다. 공연을 하더라도 임금 체불로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도 너무나 흔했고. 뮤지컬배우로만 열심히 해서 먹고 살 정도만 되면 좋겠다는 말이 짠했다. 또 한 가지는 앙상블에서 배역까지의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점이었다. 배우들끼리 ‘한 번 앙상블은 영원한 앙상블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을 할 정도라고 한다. 앙상블 또한 엄연히 작품의 일원이자 배우인데 무대를 채우는 소품 정도로 취급 받을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이야기를 잘 풀어주면 시청자들 역시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참가자를 남자 앙상블로 한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참가자 모집 공고가 난 뒤 가장 많은 문의를 받은 부분이다. 심지어 멘토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우선 현실적으로는 우승자 혜택으로 주어지는 주연 캐스팅에 있어서 CJ 공연사업부가 제시한 배역이 남성 캐릭터였다. 또한 프로그램 준비 단계에서 앙상블 배우들을 만날 때도 여자 배우들은 참여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많은 작품에서의 여성 캐릭터가 성녀 혹은 악녀라는 이분법적인 캐릭터가 대부분이다 보니, 자신의 모습을 노출하는 것에서도 조심스럽다고 했다. 만약 남자 배우의 경우 프로그램에서 웃기고 재미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순위와 상관 없이 감초 역할도 맡을 수 있고 그 자체로 새로운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거다. 그렇지만 여자 배우의 경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현재 참여하는 남자 배우들도 이런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사명감과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우리가 잘 해야 여자 앙상블편도 나올 수 있다’고 서로 이야기한다. 제작진 또한 여성 앙상블들이 조명을 받을 수 있도록 이번 프로그램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다.

프로그램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일단은 최종예심까지는 자신이 가장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꾸미고, 멘토들이 다수결로 합격을 뜻하는 캐스팅 여부를 결정한다. 이후부터는 ‘더블 캐스팅’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처럼 두 명의 배우가 같은 넘버 또는 같은 배역을 맡아 경연하게 된다. 다음 스테이지에는 이중 한 사람만 진출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현재 일대일 대결의 첫 단계까지 녹화를 마친 상태다.

<더블 캐스팅>이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 혹은 뮤지컬을 소재로 했던 프로그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뮤지컬을 다룬 여러 프로그램을 봤는데, 뮤지컬 연기를 TV를 통해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어렵더라. 현장에서는 분명 소름을 돋게 하고 몰입하게 만드는데, 카메라를 거치면 어떤 거리감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심사의 중심을 노래에 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참가자들을 보면서 놀란 것이 3분 짜리 노래 한 곡 안에 모든 메시지를 표현해 낸다. 몇 걸음 움직임만으로, 혹은 가만히 서서 노래만 하더라도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충분히 전달한다. 심사를 맡는 멘토들도 참가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노래만 잘 하고 싶으면 <더블 캐스팅>이 아니라 <팬텀싱어>에 가라”고. 한 곡의 노래 안에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지금 이 순간’처럼 유명한 넘버를 여러 명이 선택하는 경우는 없는지 궁금하다.
제작진이 우려했던 부분이기도 한데, 실제로 예심 때는 지원자가 특정 몇 곡을 많이 불렀다. <더 라스트 키스>의 ‘날 시험할 순간’, <프랑켄슈타인>의 ‘너의 꿈 속에서’ 같은 넘버들이었다. 그러나 녹화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풀 수 있고, 개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넘버에 초점을 맞춰서인지 중복되는 곡이 거의 없었다. 녹화할수록 뮤지컬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표현력이 남다르다. 어떤 사연과 배경으로 그 곡을 선택했는지 소개한 뒤에 노래를 하기 시작하면 단숨에 몰입하게 된다. 절실함이라는 차원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예심을 진행할 당시에 한 배우는 정말 인생을 다 걸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노래를 불러 제작진을 울리기도 했는데, 멘토들도 이런 마음을 그대로 느끼니까 매 방송마다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지나, 차지연, 한지상, 엄기준, 마이클리. 멘토로 참여하는 심사위원의 명단이 화려하다.
이들은 뮤지컬계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기도 하지만, 일반인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이런 장점이 대중과 뮤지컬을 잇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섭외 요청을 드렸을 때, 대부분이 후배이자 함께 무대에 설 동료 배우에게 기회를 주는 오디션이기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하시더라. 한지상씨는 프로그램 취지에 공감하신다면서 이런 말을 했다. “뮤지컬뿐 아니라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출연하고 싶다”고. 어느 분야든지 앙상블로 존재하더라도 언젠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비단 뮤지컬뿐 아니라 모든 산업군에서 아이디어도 능력도 뛰어난 젊은 친구들이 기회를 못 얻는 것이 사실이지 않나. 그런 부분에서 응원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때로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보다 센스 있는 심사평이 화제가 되기도 한다. 혹시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있나.
정말 주옥 같은 말들이 많은데 방송을 통해 확인하시라(웃음).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다른 점은 심사위원과 참가자가 구면이라는 점이다. 같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같은 무대에 섰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네가 이렇게 연기를, 노래를 잘 하는지 몰랐다”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는 이야기를 할 때가 많다. 앙상블은 합창으로 노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개개인의 목소리가 드러날 때가 별로 없는 거다. 멘토들의 잘못이 아닌데도 그동안 알아보지 못했던 것에 대해 계속 미안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불합격시켜야 하는 상황에서마저 작은 팁이라도 하나 더 주려고 애쓴다. 특정 구절에서는 힘을 좀 빼라든지, 음 이탈이 나더라도 좀 더 자신감 있게 부르라든지,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준다.

 

 

프로그램 방영 이후 계획하는 바와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말해 달라.
음원 발매의 경우 라이선스 문제로 일반 가요보다 까다로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최종 라운드에 가까워지면서는 협의를 거쳐 음원을 출시할 예정이고, 최종 10위권에 든 참가자들과는 CJ 콘서트 기획부와 협의를 거쳐 방송 레퍼토리로 공연을 열 계획도 가지고 있다. <더블 캐스팅>을 통해 스타가 탄생하고, 앙상블이 주연이 되는 성공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방송에 한 번이라도 노출되었던 배우들에게 배역 오디션의 기회가 주어지고 많은 작품에서 활약할 수 있으면 좋겠다. 또 출연료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제작사의 이야기가 공론화되어서 자정 작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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