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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날마다 새롭게, 경계 없이 즐겁게_서울돈화문국악당 강은일 예술감독

날마다 새롭게,
경계 없이 즐겁게

 

 
강은일 해금연주자가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지 딱 일년이 지났다우리 음악을 기본으로 예술적 가치를 확장하기 위한 기획 공연들은 때로는 고요한 파문으로때로는 상상 이상의 즐거움으로 관객을 매료시키는 중이다. 140석 공연장에서 일어나는 작지만 아름다운 기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y 장호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이 되기 전에도 해금연주자연출가해설가교수 등 누구보다 왕성하게 활동했습니다이곳의 예술감독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서울시에서 서울돈화문국악당의 예술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 이곳에 대해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생각해볼게요라고 대답했어요그리고 열심히 찾아보았죠알면 알수록 즐겁게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무엇보다 동시대 예술가들젊은 작가들과 예술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목마름이 간절했습니다
 
서울돈화문국악당과 함께 보낸 지난 일년은 어떠셨나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열려있는 공간이었어요. ‘공간은 사람이 만든다’ 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서울돈화문국악당이 탄생한지3년 정도 지났는데 전에 계신 김정승 예술감독님이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애를 많이 쓰셨어요우리는 인지도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가치를 확장할 수 있는 방법보편적이고 동시대적인 전통 예술을 위한 작업에 많은 고민과 시간을 쓰고 있습니다그리고 제 다음에 오실 예술감독님을 위한 플랜까지 세워야겠죠
 
다른 단체에 비해 역사가 짧고 상주 예술가가 없는데도 이곳의 공연은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서울돈화문국악당의 개성은 무엇인가요
더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더 포용력이 더 있을 수 있을까요상주 예술가가 없어서 새로운 기획이 있을 때마다 계속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그 친구는 뭐하고 있지저 친구는 요즘 뭐해?’ 자유롭고 상상을 더하게 되고 구석구석 들여다보게 되어 좋아요제가 한창 활동했을 때나 지금이나 상황과 환경은 변하지 않아 답답하고 안타깝지만 그럼에도 젊은 예술가들의 꿈을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어요. ‘너무 잘하고 있어바로 그거야!’ 꿈을 응원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제게는 너무나 필요했고지금 젊은 친구들에게는 위로와 힘이 필요하리라 생각돼요그 사이에 서울돈화문국악당이 존재합니다
 
신규 기획 프로그램 가운데 <당신의 팔자를 살리는 음악>, 남북한과 연변의 음악을 소개하는<대륙시대>, <운당여관 음악회등이 참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팔자를 살리는 음악>은 친한 선생님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명리주역훈민정음 해례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온 아이디어에요자신의 부족한 면을 우리음악으로 채워준다면 너무 설레는 일 아니겠어요팔자를 살릴 수 있는 게 돈이 아니잖아요새해에 사주도 봐주면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음악을 친절하게 들려준다면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았어요. <대륙시대>의 경우는 평화와 통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반도가 아니라 대륙이 되는 거에요북한시베리아를 통해 철도로 프랑스까지 갈 수 있는 거죠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할까그 지점에서 출발했어요근현대사의 아픔으로 지워진 대륙의 역사와 민족의 상상력을 전하고 싶었습니다그 첫 번째로 지난1116-17일 함경도 망묵굿(죽은 이의 넋이 극락으로 가도록 저승길을 닦아주는 천도굿)의 전 과정을 자그마치25시간 진행했는데만석이었어요그런가 하면 <운당여관 음악회>는 박귀희라는 명창의 힘과 정신을 본받고 싶어 기획했어요알려졌다시피 인간문화재23호 박귀희 명창은 종로구 운니동에 있던 운당여관을 운영하면서전국 각지에서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 밥 먹여가며 우리 음악과 소리를 알려주셨죠그분의 역사적인 사명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운당여관은 지금 남양주로 옮겨졌지만 지금 여기엔 서울돈화문국악당이 떡 하고 있잖아요과거의 운당여관처럼 예술인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다가가고자 기획된 공연입니다.

 
전통의 정수를 담은<산조대전50>도 궁금합니다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젝트가 생기면서 자칫 중견예술가들이 소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산조대전50>은 예술혼이 무르익은 40, 50대 예술가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는 공연이에요.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장르인 산조는 민속기악의 꽃이라 할 만큼 우리 정통 악기의 개성을 단번에 알 수 있는 기악독주곡이죠우리는 이왕 하는 거 현존하는 산조를 전부 한번 해보기로 했어요새로운 곡까지 다 찾아내서요모두 해보고 음원도 만들어봐야 우리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또 어떤 작업을 더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혹시 임기 중 꼭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으신가요
우물터를 만들고 싶어요예전에 우물터에 물 뜨러 가서 이웃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담소를 나눴잖아요젊은 예술가중견예술가 할 것 없이 모두 이곳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음악예술을 마구마구 풀어놓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은일이라는 이름은 해금이라는 악기를 대중에게 알린 연주자로 더 유명합니다어떻게 처음 이 악기를 알게 되었나요.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신 공무원이셨는데 음악에 조예가 깊으셔서 자식 넷을 모두 어릴 때부터 음악 교육을 시키셨어요돌이켜보면 정말 큰 혜택을 받았죠언니는 피아노를 했고 저는 바이올린을 했었는데 피아노 선생님이 오시면 언니 방 문밖에서 귀를 쫑긋하며 듣곤 했어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듣고 너무 감동받아 울기도 했었고요그런데 제 어린 시절에는 학교에서 국악시간이 따로 있던 게 아니어서 바이올린이 우리나라 악기인 줄 알았어요어느 날인가 연습실에 해금이 쭉 걸려있는 걸 보고 같이 간 친구들과 내기를 했어요이게 악기인지아닌지제 눈에는 초라하고 예쁘게 보이지 않아서 악기가 아니라고 했어요저런 악기가 어딨냐고바이올린을 연습할 때마다 악기는 귀한 거라 늘 보호하고 감싸려고 했었는데 말이죠그런데 그 악기가 해금이라네요당시 해금은 인기있는 악기가 아니었어요가야금이 최고였거든요그래서 선생님이 성적이 좋지 않으면 넌 해금이나 해라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이 그렇게 가슴에 못처럼 박히더라고요. ‘그럼 어디 한 번 해볼까’ ‘가장 아름다운 음악누구나 하고 싶은 음악으로 바꿔놓을까’ 라는 마음이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해금은 단 두 줄로 상상 이상의 다채로운 소리를 냅니다이 악기의 좋은 점은 무언가요.  
두 줄이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웃음거문고가 아니어서 힘들지 않아요.(웃음활대가 두 줄 사이에 껴 있어서 닫혀있는 느낌인 동시에 빠져나가기를 갈망하는 느낌이 있어요그래서 새로워요
 
정말 열정적으로 활동해주신 덕분에 해금을 모르는 국민은 없는 것 같습니다
20년 걸리더라고요세상에 안 되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그래서 후배들에게 얘기해줘요.네가 원하면 다 이루어질 수 있다라고

 
처음 무대에 섰던30년 전과 지금관객의 모습이 달라졌나요.  
첫 관객은 중학교 친구들이에요여럿 모아놓고 해금 연주를 했더니 이게 뭐냐고전혀 못 알아듣겠다고 하더라고요지금은 정말 달라졌죠연주자들이 눈높이에 맞게 친절히 설명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들이 엄청났어요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했던 목표가 분명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요
 
감독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공연은 무엇일까요
기돈 크레머(Gidon Kremer)의 두 번째 내한 때 공연장에 갔어요연주를 들으며 저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어요내 움직임이 방해될까봐이건 경외에여요그 음악을 듣는데 말할 수 없이 좋은 거에요공연장을 나오면서 저는 책을 백 권 읽은 것 같았고 제 자신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경험이었죠예술은 우리에게 자존감을 세워주고 살아있음을 행복하게 만들고더 열심히 살아서 좋을 일을 해야겠다라는 다짐을 일으켜요저는 이런 공연이 좋은 공연이라 생각해요
 
우리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봉준호 감독!(웃음이것이 목표가 되어선 안되겠지만 우리가 지닌 좋은 예술성을 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연주자로서는 제 안에 갇히지 않고 좀더 확장되고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는 무경계 연주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