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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오답노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_연극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야. 절대 말하지마>

 

 

오답노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2020년 1월 2일~5일까지 삼일로창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야. 절대 말하지마>.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여러 문화권에서 비슷하게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우리 전래설화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더 드물 수도 있겠다.

 

이야기는 일연이 편찬한 <삼국유사> 권2 48경 경문대왕조에 실려 있다. 설화에 따르면 신라 48대 오 경문왕은 즉위 후 갑자기 귀가 길어졌다고 한다. 이 사실은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匠人)인 복두장이만이 알고 있었는데, 그는 죽기 직전 도림사 대나무 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후 숲에 바람이 불 때면 대나무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리가 들렸고, 왕은 숲의 대나무들을 베어버렸다고 한다.

 

문화권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는 하나 골격도 비슷하고, 골자도 똑같다. 페르시아 신화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비밀을 알고 있는 이발사는 우물에 비밀을 말했고, 그 우물에서 대나무가 올라왔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미다스 왕이 주인공이다. 이발사가 땅속 깊숙이 구멍을 파고 비밀을 말했고, 그 구멍에서는 갈대가 자랐다. 비밀을 누설한 장소는 신화마다 다르나, 바람이 불 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메아리가 쳤던 건 동일하다.

 

 

 

연극 <너한테만 알려주는 건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야. 절대 말하지마>(이하 ‘너.임.마’)는 이 설화에서 착안해 시작되었다. 연극에서는 논술학원 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 학원에서는 대합 입시문제를 빼돌려 원생들에게 유출했고, 그 사실을 알게 된 학생 봄이 복두장이 역할을 맡고 있다. 사건은 친구 방정에게만 알려준 이 비밀이 사회관계망인 페이스북 대나무 숲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좋아요’수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루기 시작하고, 경찰조사가 시작된다. 원장은 비밀을 알고 있고, 비밀을 누설한 당사자가 봄이라고 생각하고, 봄을 협박하게 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여기서부터다. 누명을 쓴 봄은 대나무 숲에 사실을 올린 장본인을 찾고자 하는데, 여기서 이야기는 두 방향으로 흐른다. 1막의 서사는 장본인을 찾는 과정에서, 학생들 사이에 관계가 파괴되는 이야기다.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게 되며, 결국 봄은 원장의 뜻대로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자신이 SNS에 거짓말을 올렸다”고 거짓진술을 하게 된다.

 

2막에서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장본인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2막에서는 학생들의 신뢰관계가 무너지지 않는다. 봄은 이 일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되지만, 원장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봄과 친구들과 연대하여 수강생들 앞에서 학원장의 비리를 고발하며 작은 승리의 경험을 공유한다.

 

 

 

이렇게 설화를 현대화하는 과정에서 작가 이양구는 ‘대나무 숲’에 대한 정의를 확장한다. <삼국유사> 설화 속 ‘대나무 숲’이 익명의 공동체가 아닌, 당대의 지식인 사회였던 ‘죽림’(竹林)에 대한 상징이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작가는 사회관계망 속 ‘대나무 숲’이 그 ‘죽림’의 현대적 대체물이라고 꼬집고 있다. 그리고 이 시민의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이처럼 연극 <너.임.마>는 관객들에게 같은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을 보이며, ‘당신은 어떤 선택에 동의하는가’ 질문한다. 물론 정답이 정해져 있지만, 오답노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두 개의 막은 송장안과 예일, 두 명의 연출가가 각각 연출했다. 경지은(봄)과 최경철(방정), 김미로(주희), 이빛나리(지수)의 연기는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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