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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예술가의 작업실③_작가 박해림

예술가의 작업실

 

음악과 글과 연출로 지어지는 무대 위 예술이라는 세계그 우주가 지어지는 공간에서 만난 2020년의 예술가들.
editor 김은아 photographer 도진영

 


기꺼이 시간을 내도록
박해림

 

작가 박해림의 작업실은 혜화동의 번잡한 골목을 지나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언덕배기에 자리해있다대학로 극장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이곳은 가장 연극·뮤지컬 창작진의 작업실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일지 모른다이공간은 연출가 조광화극작가 오은희가 사비로 젊은 창작자를 위해 마련한 공간일명 한국뮤지컬작가모임당으로 불린다작가 성종완장우성정준 등이 이곳을 오가는 멤버박해림은 이곳에서 작가들과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간다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특히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에게 이곳은 중요한 창작의 창구가 된다작품의 얼개를 잡을 때까지 시간을 오래 들이는 편이에요초반에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굵은 줄기를 잡아나가죠이 과정이 끝나면 장면 장면을 쓰는 것은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아요.”

 



2019년은 그에게 좋은 소식이 이어졌던 해다가무극 <나빌레라>, 가족뮤지컬 <점박이>,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 <전설의 리틀 농구단>까지 네 편의 작품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더불어 11월에는 낭보까지 전해졌다그의 뮤지컬 데뷔작인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로 차범석희곡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극작가에게 주어지는 가장 커다란 상 중 하나로 꼽히기에 결과를 듣고도 한동안 실감하지 못했다고아마 지금까지의 시상식에서 제가 가장 사람들을 적게 초대했을 걸요아직 받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도 있었지만저의 힘이라기보다는 백석 시인의 시가 가진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저보다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대본에 힘을 실어 준 채한울 작곡가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박해림에게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특별한 것은 데뷔작이라서혹은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만은 아니다작품의 작업 과정이 더없이 따뜻했기 때문이다배우들이 작품을 참 귀하게 여겨줬어요어떤 한 신을 만들기 위해 배우들이 자신의 인생의 기억을 하나씩 이야기하다가 다같이 운 적이 있어요애틋한 기억이죠제가 쓴 캐릭터를 누구보다 사랑해주는 배우들을 만난다는 것은 작가로서 큰 영광이에요.”

그는 대본에 지문을 잘 쓰지 않는다자칫 연출과 배우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촘촘한 규칙이 되지는 않을까 우려해서다이 비워둔 여백을 읽어주는 이를 만날 때가 작가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낄 때다. “글을 쓸 때 캐릭터의 행동을 상상하면서 글을 쓰거든요그 행간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요배우나 연출가일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무대 디자이너이기도 하죠.” <생쥐와 인간>의 조수현 무대 디자이너 얘기다박해림이 대본 맨 앞장에 작가의 단상(인생이 새장 같아요도망치고 도망쳐도 자꾸 새장 안에 갇히고하늘이 손에 닿을 것처럼 눈앞에 보이는데나는 철창에 갇혀 있다는 걸 잊어버려요)에서 디자인을 착안해무대를 하나의 새장으로 만든 경우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작품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키워드를 기억이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내가 죽기 전에 어떤 기억들이 떠오를까기억은 내가 불러내는 걸까기억이 나를 치고 가는 걸까그런 주제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자야의 기억으로 불러내는 연인 백석에 대한 이야기였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도 그렇지만가족뮤지컬 <점박이또한 기억에 대한 이야기로 풀어낸 작품이다공룡이라는 주제를 풀어갈 키워드를 찾다가 문득 죽음이라는 단어가 떠올렸어요공룡은 다 어디에 갔을까죽음의 세계에 간 것 아닐까그렇다면 어린이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을 공룡을 통해 이야기해보기로 한 거죠죽기 전에는 어떤 기억이 떠오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그가 극작가의 꿈을 키운 것 또한 역시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십대 시절 마음에 간직한 작품들이 지금껏 그의 자양분이 되어주고 있다는 설명.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어요대신 교육방송을 본다고 핑계를 대고 밤마다 영화와 책을 봤죠그때의 기억이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아요그때도 사람의 감정을 깊게 건드리는 작품들을 좋아했거든요이를테면 <퐁네프의 연인들같은 영화요.”

최근 그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재는 죄책감이다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이 아닐까 싶었어요원초적인 본능에서 나오는 감정은 아니잖아요그 감정의 깊이나 스펙트럼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어요아직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할지는 고민 중에 있지만요.”

박해림의 목표는 명쾌하다돈 아깝지 않은 작품을 쓰는 것”. “관객의 판타지를 어느 정도 자극하는 동시에 마음 깊은 곳도 건드릴 수 있는 공연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그런 작품을 쓸 수 있게 무뎌지지 않는 시선을 가지는 작가로 남고 싶어요가끔 관객으로 영화를 보러 가면 이런 얘기를 또 해?’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 있잖아요제 작품은 그러지 않고 관객들의 시간과 돈을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이야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