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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로마 비극을 여행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_연극 <로마 비극>

로마 비극을 여행하는 관객을 위한 안내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때마다 화제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보 반 호브. <파운틴 헤드> <다리에서 바라본 풍경>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공연되는 그의 연극 <로마 비극>은 공연 소개 자료를 읽어봐도 도통 감을 잡기 힘든 작품이다무려 5시간 30분이라는 긴 러닝 타임고정 좌석이 없이 이동하며 공연을 보는 관람 방식휴대폰 사용과 객석 출입에 제한을 두지 않는 관대함(?)까지대부분의 공연들과는 전혀 다른 문법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들여다볼수록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 작품에 동참하기 위해 관객이 알아야 할 모든 것에 대해서.
editor 김은아

 


공연 시간 330분, 왜 이렇게 길까

<로마 비극>은 총 33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공연된다한국에서도 장시간의 러닝타임으로 화제를 모은 공연은 종종 있어왔다특히 2017년 무대에 오른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총 공연시간은 7시간이었지만 1부와 2부를 독립된 공연으로 구분해 다른 날 공연했고각 공연에서도 인터미션이 존재했다그러니 한 작품이 5시간 30분 동안 별도의 휴식시간도 없이 공연되는 것은 분명 유례 없는 일이다그렇다면 <로마 비극>은 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긴 걸까.

정답은 대본에 있다셰익스피어의 희곡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한 작품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로마 비극>이기 때문이다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 세 편의 희곡에서는 군중 신이나 전쟁 장면이 생략되고핵심적인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90~100여분 정도로 각색되어 무대에 오른다이 과정에서 고전 속의 언어는 현대의 익숙한 단어들로 뒤바뀐다또한 배우들은 고대 로마 정치인들의 의상인 토가가 아니라 타이구두를 착용한 현대적인 수트를 입는다이러한 각색은 등장인물들의 논쟁을 관객들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동시대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작품의 방대한 스케일은 러닝타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작품의 세트 또한 거대하다공연을 위해 현지에서 공수하는 세트와 장비만 40톤 컨테이너 3대 분량인데다가서울 현지에서 조달하는 장비 또한 상당한 규모다이 대형 세트를 설치하려면 무대의 양 옆은 물론 뒤 공간까지 사용하게 되는데이는 LG아트센터 무대가 허용하는 공간의 최대치를 활용하는 것이라고사실 LG아트센터는 이보 반 호브가 처음 내한했던 2012년부터 <로마 비극>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비로소 공연하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공연에 참여하는 투어 인원만 무려 42명에 달하는데이는 인터내셔널 씨어터 암스테르담(ITA)의 대부분 스태프가 포함된 것이다투어를 나서는 동안은 암스테르담에 있는 극장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때문에 세계 각지의 러브콜로 일정이 빼곡한 ITA의 상황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관객은 왜 움직여야 할까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는 꾸준히 존재해왔지만 <로마 비극>은 좀 더 과감히 나아간다객석은 전석 비지정석으로관객은 좌석번호가 적힌 종이 티켓이 아닌팔찌를 받는다공연은 모든 관객이 착석한 상태에서 시작하지만, 20분 정도 후부터는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것이 가능하다무대 위에도 좌석이 설치되기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싶다면 과감히 무대에 올라보면 어떨까반대로 등장인물들에게서 한 발짝 거리 두기를 원한다면 극장 곳곳에 설치된 디스플레이를 통해 뉴스를 시청하듯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보통의 이머시브 극처럼 이동하는 구역에 따라 다른 상황을 목격하는 것은 아니지만관극 위치를 능동적으로 선택함으로써 자신만의 시점으로 극을 해석할 수 있다는 의미가 있다.

심지어 관객은 공연을 보면서 사진을 촬영하고, SNS에 실시간으로 감상을 남길 수 있다극장 로비로 통하는 객석출입문은 공연 종료 한 시간 전까지 계속 열려있는데인터미션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만큼 관객은 휴식을 위해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있다출출함을 느끼는 관객을 위해 바(bar)도 설치된다고 한다이쯤 되니이래도 공연에 집중하겠냐는 관객을 향한 노골적인 유혹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이보 반 호프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관대한(?) 결정을 내린 것일까근느 가장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가장 혁신적인 방식으로 어떠한 선입견도 없이 관람할 수 있는 연극을 통해 극장이 관습적으로 사진 수많은 금기를 깨기를 희망했다다만 관객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자리를 비우거나 한눈을 한 사이 작품 속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지나가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어쩌면 이 놓침’ 역시 연출가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휴식 시간 없이 논스톱으로 공연되는 이 작품은 24시간, 365일 돌아가는 이 세계의 정치를 반영하고 있다극장의 문은 관객들 각자가 원할 때 휴식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어쩌면 관객들은 역사를 바꿀 결정적인 독백이나 정치 살인의 현장을 놓치게 될 수도 있겠지만이런 일은 우리 인생에서 실제로 일어나기 마련이다.”(이보 반 호브)
 

 

정치적인, 너무나 정치적인

2007년 암스테르담에서 초연한 <로마 비극>은 이보 반 호브가 그의 이름을 세계 공연계에 분명히 각인시키게 만든 작품이다긴 러닝타임 동안 정해진 휴식 시간 없이 계속 진행되는 이 공연은 고전 희곡에 현대성과 시의성을 불어넣고공연이라는 장르적 관습을 뛰어넘은 색다른 진행방식으로 관객에게 극적 체험을 선사한다아비뇽 페스티벌런던의 바비칸뉴욕의 BAM 등 세계 유수의 페스티벌과 극장의 지속적인 초청을 받으며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는 역사적 서술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정치 메커니즘을 주목한다. <코리올레이너스>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세 작품을 엮었다작품은 로마 제국을 설립하기까지의 쉽지 않은 여정을 담고 있다시민들과 정치인군인들이 어떻게 그들의 이념을 지켜내는지정치권력 확대를 꾀하는 귀족들이 국내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이 집중되기를 원하는 호민관들에 의해 어떻게 저지되는지를 보여주고위대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앞에서 민주주의가 약점을 드러낼 때 발생하는 비극(<줄리어스 시저>), 옥타비우스는 대제국을 세우지만동시에 그렇게 세계화된 세상은 전쟁과 살인결혼의 파괴우정의 상실을 대가로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셰익스피어는 세 편의 희곡에서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지 않았다. <로마 비극또한 어느 편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해 강요하지 않는다수트 차림의 로마 정치가들은 현대의 정치인들처럼 전략을 짜고논쟁하고뉴스에 출연해 언론 플레이를 하기도 하고심지어 육탄전으로 치닫는 극단적인 대립을 벌이기도 한다오늘 아침에도 텔레비전을 통해 목격한 듯한 이 익숙한 모습을 보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이보 반 호브는 “<로마 비극>은 정치에 관한 대규모 컨퍼런스의 장()이 될 것이라 말한다작품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사람들이 긴축 정책에 대해 불평할 때 정치인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권력 자체에 취하면 어떻게 되는가정치적인 살인은 허용할 수 있는가 등 끊임 없는 딜레마를 그려내기 때문이다. 5시간 반 동안 연이어 휘몰아치는 사건파국을 향해 질주하는 역사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목격하는 관객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게임정치에 자신이 이미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ATTENTION PLEASE!
연극 <로마 비극>
기간 2019년 11월 8일-11월 10일
시간 금 17:00 | 토,일 14:00
장소 LG아트센터
가격 비지정석 9만원
문의 02-200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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