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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터플러스

충격적이게 담담하게_연극 <마른대지>

충격적이게 담담하게

지난 8월 8일부터 23일까지 두산아트센터 111에서 선보였던 연극 <마른대지>.
write 김일송


연극은 한 여학생이 다른 여학생에게 명령조로 자신의 배를 때리라는, 강렬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보통의 연극들이 시동을 걸고 천천히 속도를 올리는 듯 진행된다면 이 연극은 처음부터 RPM을 높인 상태에서 질주하는 느낌이다. 연극 <마른대지>는 임신중절을 하려는 고등학생 에이미(황은후)와 이를 돕는 친구 에스터(김정)의 이야기로, 미성년 여성의 임신중절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플로리다는 당시까지도 임신중절이 허용된 주(州)였다. 다만 18세 미만 여성은 부모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에이미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임신중절을 시도한다. 이를 위해 동갑내기 에스터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보통 이런 부탁은 절친에게 할 법하나,  두 사람은 절친한 관계가 아니다. 에이미의 절친은 리바(강혜련)로, 에스터는 이 집단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받는 학생이다. 그런 에스터가 에이미를 선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에이미는 그런 감정을 이용하는 듯하다. 어쨌거나 복부 가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에스터는 에이미가 유산 유도제를 사 먹을 수 있게 체크카드를 빌려준다.
낙태와 섹스 경험, 미래의 꿈 등 비밀을 공유하면서 에스터와 에이미는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러다 둘의 관계가 벌어지는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에스터의 악의 없는 부주의한 말실수에 대해 에이미는 에스터를 업신여기듯 무시하면서부터다. 속상한 채로 대입 실기를 보러 간 에스터는 그곳에서 만난 남학생 빅터(조의진)로부터 에이미의 또 다른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 이어진다. 임신중절 장면이다. 에이미는 에스터의 도움으로 수영장 라커룸 바닥에 반쯤 드러누워 임신중절을 한다. 에이미의 아랫배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신문지를 붉게 적시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연출된다. 이 장면을 놓고, <마른대지>의 작가인 루비 래 슈피겔은 “낙태 장면은 있는 그대로 보여야 한다”고 노트한 바 있다. 작가의 의도가 자극적인 장면의 연출에 있지는 않음은 확실하다. 반대로 무대 밖에서 일어나 관객의 상상 속에 구축되는 장면이 더 선정적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려 했고, 윤혜숙 연출은 작가의 주문대로 임신중절 장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 역시 흥미롭다. 수영장 관리인(정대진)이 등장해 에이미와 에스터가 뒷처리 않고 떠난 바닥을 청소하는 장면이다. 흥건한 피를 닦아 훔치는 이 장면이 약 5분 정도 진행된다. 아무 대사 없이. 이런 일을 여러 번 겪은 듯 그는 무심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수행한다. 이런 그의 태도는 여러 가지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해석과 무관하게 그의 태도를 가장 사실적인 묘사로 읽을 수도 있겠다. 에이미와 에스터, 그리고 관리인의 태도나 장면의 연출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다면 ‘사실적’이라는 표현으로 수렴될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왜 ‘마른대지’일까? 힌트를 마지막 8장에서 찾을 수 있을 듯도 싶다. 에이미와 에스터는 다시 우정을 회복한다. 에스터는 에이미에게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매립에 관해 쓴 보고서를 읽어 준다. 한때 미국 최대 습지로 수십 종의 동식물들이 서식하던 에버글레이즈는 거주지 확보를 위해 매립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4,000명의 인디언이 죽거나 추방당했다. 지금의 ‘마른대지’는 환경을 파괴하고, 수많은 죽음과 희생 위에 가능했다.
<마른대지>는 다양한 볼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슈피겔의 뛰어난 원작과 윤혜숙의 감각적인 연출, 여기에 프로젝트 그룹 ‘사막별의 오로라’로 활동 중인 김정, 황은후의 조화로운 연기 앙상블 등. 그리고 여기 더해 정영의 무대와 성미림의 조명, 그리고 임서진의 음향 역시 기록해 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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