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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즐기는 아주 유쾌한 방법_오페라 <춘향 2020>

사랑을 즐기는 아주 유쾌한 방법

‘로맨틱 코미디’라는 부제가 달린 예술의전당 오페라 <춘향 2020>은 여러모로 끌리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춘향’에 대한 2차 텍스트가 무수히 많이 생산됐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는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김태웅 연출과 소프라노 박하나를 만났다.
editor 이민정 photographer 장호


창작오페라 탄생 70주년을 맞아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나실인, 극작가 윤미현, 연출 김태웅이 오페라 <춘향 2020>으로 의기투합했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춘향의 스토리를 모르는 이는 없겠지만 오페라로 무대에 올린 것은 1950년 5월. 현제명 곡으로 초연된 <춘향전>이 한국 창작오페라의 효시라는 점에서, 창작오페라 탄생 70주년을 맞은 2020년에 이 작품을 재창조하는 일은 분명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창작진도 이러한 무게감을 모르지 않았기에 각자 자신의 몫을 다하되, 셋이 머리를 맞대어 섬세하게 다듬고 수정해 나가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완성된 로맨틱 코미디 오페라 <춘향 2020>. 전통을 지키되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일까마는 젊고 유능한 아티스트와 실력있는 성악가들은 결국 ‘새롭고 유쾌하고 21세기 스타일의 춘향전’을 탄생시켰다. 

어떻게 오페라 <춘향> 작업에 합류하게 되었나요.
김태웅 제안을 받았을 때 바로 승낙하면 좀 없어 보이니까(웃음) “생각해보겠습니다.”하고 끊었는데 솔직히 춘향은 몇 년 전부터 해보고 싶은 컨텐츠였거든요. 제가 생각했던 그림과 연결되는 점이 있지 않을까 해서 하게 되었습니다. 대본을 읽었을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이라는 캐릭터를 살려두고 고전적이지 않게 비트는 방향이 제 생각과 맞았던 것 같아 좋았어요. 저도 늘 생각했거든요. 변사또가 정말 나쁜 사람일까, 춘향은 몽룡을 왜 그렇게 좋아한 걸까.
박하나 제안을 하시면서 음원을 주셨어요. 창작오페라라고 해서 재미있을 것 같은 기대가 있었는데 곡을 들으면서 이미 제 마음은 이 작품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춘향이라는 캐릭터가 독보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음악과 대본이 받쳐주지 않았다면 결정이 달라졌을지 몰라요. 오페라의 문턱을 낮추면서도 동시에 퀄리티가 있으니 안할 수가 없죠.

대본을 보니 첫장면으로 춘향이 이미 망가져 있더라고요. 여자 소프라노는 대개 화려한 옷을 입고 공주 역할을 많이 하는데 걱정은 없었나요.
박하나 저는 더한 것도 해봤는 걸요.(웃음) 미국은 새로운 오페라를 굉장히 많이 시도해요. 미국에 있을 때 도전이 될만한 작품을 정말 많이 해서 이번 작품은 전혀 거부감이 없었어요.

윤미현 작가와 나실인 작곡가는 스타 반열에 오른 창작자들입니 다. 대본을 읽고 곡을 들으며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김태웅 덜컥 겁이 났어요. 곡이 잘 나오면 연출가에게는 큰 부담이거든요. 극이 잘 되면 곡이 좋은 거고 안 되면 연출 탓이니까요.(웃음) 내심 곡이 중간만 했으면 좋겠다 했죠. 오픈하는 순간 너무 잘 나와서 개인적으로 고민입니다.(웃음) 노래만 남지 않기 위해서 들을 때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열심히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참 잠이 많은 사람인데 요즘은 새벽 3시쯤 잠들어요.

가장 마음에 든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박하나 제가 춘향 역을 맡고 있으나 저는 변사또가 마음에 들었어요. 참 입체적인 인물인데, 그에 따라 음악이 바뀌거든요. 연습을 하면서도 ‘어? 매력적인데?’ 놀란 적도 있어요. 극 중 월매도 그래요. 변사또가 낫다고요.(웃음) 
김태웅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대본과 곡이 완성되는 과정을 공유 해주셨어요. 셋이 모여서 우리 ‘변사또전으로 할까’ ‘춘향과 몽룡을 모르는 이가 없으니 향단을 앞세울까’ 이런 저런 얘기를 할 정도로 머리를 맞대는 시간이 많았죠. 막상 완성된 대본을 보니 개인적으로 방자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여섯 명 중에 가장 정상인 사람이 사실 방자예요! 유일하게 현실감각이 있다고 할까요.

박하나 선생님은 성격적으로 고전적인 춘향에 가까운가요, 새로운 춘향에 가까운가요.
박하나 저는 두 모습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버전의 춘향은 춘향이 지닌 목적 때문에 행동파의 모습을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어요. 그래서 대본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제가 굳이 해석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그래, 이럴 수 있어’ 하게 되거든요.

작품이 유쾌하다 보니 연습 분위기 또한 재미있을 것 같아요.
김태웅 지금까지 여덟 번 정도 모였어요.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어떻게 표현하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다소 힘든 것 같았어요. 그런데 몇 번 연습하다 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캐릭터들이 팡팡 터져 나오고 있어요. 글이 좋아서 그런 건지, 곡이 좋아서 그런 건지 얼마나 즐거워하시는지 몰라요. 조금이라도 더 표현하려는 적극적인 모습에 제가 감사합 니다.
박하나 서로 알고 지내던 분들이 아닌데도 분위기가 너무 좋아요.

가장 중요한 장면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김태웅 사실 다예요.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에서는 “암행어사 출두요!”하고 춘향과 몽룡이 다시 만나는 장면을 카타르시스로 꼽잖아요. 저희는 기승전결이 두드러지지 않아요. 어찌보면 지루한 거 아닌가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그럴 틈이 없을 정도로 갈등이 계속 나오거든요. 그 갈등을 노래로 풀어주고요. 매순간이 중요한, 놓치면 안되는 순간입니다.

작품의 주역으로 가장 신경써야 하는 아리아는 무엇인가요.
박하나 춘향이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부은 뒤 독백처럼 부르는 아리아가 있어요. ‘이렇게 산들 저렇게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개인적으로 특별한 장면이 될 것 같고요. 주역이라 말씀하셨지만 이 작품에는 모든 캐릭터가 주역이예요. 각자 이야기를 풀어내는 지점들이 있고, 그게 또 이 작품의 매력적인 요소죠.

작품 속 춘향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박하나 고전 작품의 춘향이 지조있게 몽룡을 기다리며 감옥 속에 앉아있는 처절한 여인의 모습이었다면 이 작품에는 무대에 톱이 떡 하니 등장해요. 톱으로 감옥을 탈출하거든요.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소신을 끝까지 지켜나가는 모습이 마음에 들고요, 사실 예전 춘향도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사랑을 지키기 때문에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다만 이 춘향은 그 소신을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굉장히 능동적인 캐릭터예요. 공부를 못하는 몽룡이를 도와준다고 선뜻 나서기도 하니, 이런 발상들이 너무 재미있어요.

80분 소극장에서 공연하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발전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김태웅 분명 못 보여드리는 부분이 있어요. 시간만 늘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확장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작품 속에 많이 내재되어 있다고 저도 생각해요.

‘로맨틱 코미디’라는 수식이 있는데 부담스러운 점은 없었나요.
김태웅 저는 이런 장르를 좋아해요. 오페라는 여전히 어렵다는 편견이 있고 어떤 이는 평생에 한번 볼까말까한 장르기도 하거든요. 한때는 ‘오페라가 비싸니까’하고 넘겼는데 뮤지컬 티켓과 비교했을 때 그렇지도 않아요. 고전적인 오페라도 좋지만 재미있게 만들어진다면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관객들이 볼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하나 제가 지금까지 했던 작품만 봐도 고전적인 것이 많았고 창작 오페라도 꽤 무거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면 ‘어렵겠다’, ‘공부하고 가야겠다’는 인식이 줄어들 것 같아요. 문턱이 낮아지는 부분은 긍정적이지만 밸런스를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페라도 재미있구나, 그런데 음악도 정말 좋네, 라는 반응이라면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같습니다.

많은 창작자들이 창작오페라에 열의를 담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김태웅 오페라가 우리나라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우리도 ‘대한민국 오페라’라고 말하는 작품들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K-팝도 첫술에 배부르지 않았죠. 계속 꾸준히 만들어야 해요. 인프라는 충분히 갖춰져 있다고 생각해요. 실력 있는 성악가가 우리나라에 정말 많거든요.
박하나 미국이나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새로운 오페라를 위해 작곡가에 의뢰를 굉장히 많이 해요. 새로운 오페라 붐이 일고 있다고 할까요. 서양 음악에 우리말을 붙인 거라 창작 오페라가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렇기에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는 좋은 음악, 좋은 대본이 반드시 필요하고요, 연출님의 의견처럼 끊임없이 만들어지다 보면 해외에서 박수받는 작품이 반드시 나올 거라 생각해요. 창작 오페라의 출연은 지금 이 시기에 제가 활동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박하나로서 감사한 일입니다. 기쁨으로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고요.

머지 않아 만나게 될 <춘향 2020>은 관객에게 어떤 즐거움과 메시지를 줄까요.
김태웅 상투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어려운 시기에 80분 동안 다른 생각 안하고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작품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같은 사랑, 다른 모습, 다른 형태, 다른 느낌이 충돌하기 때문이에요. 그 와중에 웃음의 요소가 생길 거고요. 관객분들이 좋은 연주, 좋은 소리를 듣는 동시에 나는 어떤 사랑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박하나 저도 이 질문에 ‘사랑’이라고 써놓았어요.(웃음) 어떤 작품은 보고 나면 마음이 무거운 경우가 있는데 <춘향 2020>은 그렇지 않아요. 이 오페라와 함께 굉장히 즐거운 저녁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무대가 작아서 배우들의 디테일한 표정까지 살피면서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이니 모쪼록 지켜봐 주세요.

*<춘향 2020> 공연은 코로나19로 인해 취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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